소설리스트

랭커 사용 설명서-9화 (9/115)

09.

내가 꽃다발을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챈 건지, 유현재는 종종 방문 앞에 작은 선물들을 두고 갔다. 나 또한 받은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책상 한구석에 놓아두었다. 불안한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그 작은 아이가 두고 간, 아무 짝에도 쓸모없을 법한 물건들까지 매정하게 버릴 정도로 내 인간성이 마모되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유현재가 인사를 건네거나, 말을 붙일 때 살갑게 대답해 주진 못했다. 그랬다간 진짜로 친해질지도 몰랐다. 사실은 나도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죽을 만큼 힘들어했던 사람치고 시간이 흐를수록 너무나도 쉽게 나는 다시 유현재에게 마음을 열어갔다.

그렇게 나와 유현재는 열 살이 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새 교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건 교실 뒤 구석에 몰려 있는 유현재의 모습이었다. 한 집에 살면서도 같은 반이 되었단 사실을 오늘 알았다. 나는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교실 문을 닫았다. 내 소리에 뒤에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바로 집중됐다.

“찬희 왔다!”

유현재를 괴롭히던 꼬마 애들이 나를 보자마자 손짓했다. 나는 느릿하게 그쪽으로 걸어갔다. 유현재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책가방을 꼭 끌어안고 있었는데 어쩐지 낯익은 모양새였다.

“이거 분명히 찬희 가방 아니야?”

“네가 찬희 가방 훔쳤지?”

“쟤 옷도 찬희 거 훔친 거야.”

어린 유현재가 수치심에 눈을 내리 깔았다. 훔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입고 쓰다 버린 걸 받았다는 것도 말하긴 싫은 모양이었다. 나는 여기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다른 애들한테 꽤 짜증 나는 표정으로 비추어진 모양이었다. 하긴, 유찬희 인상 더러웠지 참.

“찬희야, 현재가 네 거 훔친 거 맞지?”

“아니야!”

유현재가 미약하게나마 부정했다. 나는 적당히 무심하게 대답한 후 자리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뭐든 쉬운 게 있을 리 없었다. 한동안 나타나지 않던 지직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주변이 익숙한 잿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심장이 크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허공에 나타나는 붉은 글씨를 최대한 차분하게 읽었다.

<인정하시겠습니까? Y/N>

이제 이 세계의 매커니즘을 안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표정만으로 내 의도를 알아챈 건지 시스템은 내가 알던 이래로 가장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그거 내가 버린 거야.”

잠깐이지만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러다 수 초 후, 푸핫 하고 웃는 소리를 시작으로 아이들 사이에 비웃음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유현재의 눈빛이 느껴졌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뭐야, 그런 거였어?”

“버린 걸 왜 써? 그런 건 쓰레기 아니야?”

“쓰레기통인가 봐.”

아이들의 악마 같은 웃음소리가 커졌다. 유현재의 귀와 볼이 터질 듯이 시뻘게졌다. 사실이었기 때문에 부정할 수도 없는 듯했다.

“살인자에다가 이젠 쓰레기통이네.”

“너 같은 애는 감옥 가야 돼.”

필터링 없이 뱉어지는 어린아이들의 비수가 눈에 선명히 보이는 듯했다.

“적당히 해.”

나는 천천히 유현재에게 다가갔다. 자신을 도와주려는 줄 알았는지 유현재의 표정에서 아주 작은 기대감이 엿보였다. 속이 쓰렸다. 그렇지만 나는 내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야 했다.

“현재 불쌍하잖아. 엄마 아빠도 없는 애라 버린 거 쓰라고 준 것뿐이야.”

사람의 눈빛에서 커다란 생채기가 보인다는 게 이런 걸까. 나는 유현재가 망연히 나를 보고 있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찬희 진짜 착한 것 같아. 형이 쟤 땜에 죽었는데…. 나는 수군거리는 뒷말을 듣지 않은 척했다. 1년간 어떻게든 버텨야겠지. 결국 나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

유현재는 순조롭게 왕따 생활의 수순을 밟아갔다. 안 그래도 주눅 들어 있던 놈이었는데 더더욱 표정이 어두워졌다. 문 앞에 가끔 놓여 있던 선물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는 책상 위 박스에 들어 있는 조그만 물건들을 만지작거렸다. 꽃은 이미 바짝 말라 바스락거렸고 뽑기 같은 것으로 뽑은 반지는 녹슬어 쇠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에 나는 황급히 박스 뚜껑을 닫고 문제집을 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엄마였다. 간식 몇 가지를 챙겨 온 것이었다. 엄마는 기특해 죽겠다는 듯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유찬희는 유도현이 죽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자식이었기 때문에 어떤 생에서든 엄마 손 안에서 귀히 컸다. 다만 문제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압력 아래에선 너무나도 무력한 방관자일 뿐이었다는 거겠지.

“우리 찬희, 새로운 반에는 좋은 친구들 많니?”

나는 유현재를 괴롭히며 낄낄대는 그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네. 다 착해요.”

“다행이네.”

엄마는 따로 유현재 얘기를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오로지 유도현의 유언에 따라 유현재를 거두어 주고 최소한의 삶을 지켜 주고 있는 것뿐,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진 적은 여덟 번의 생 중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 저녁으로 먹고 싶은 건 있고?”

“으음….”

왜인지 모르겠지만 첫 번째 삶에서 유현재와 자주 떡볶이를 먹던 게 생각났다. 학교 근처에 있는 음식점이 분식집뿐이라 그런 것도 있었지만 실제로 유현재가 유독 좋아하던 음식이기도 했다. 나는 몇 번 망설이다 조심스레 대답했다.

“떡볶이 먹고 싶어요.”

평소 딱히 먹고 싶은 걸 말해 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엄마는 반색을 하며 직접 만들어 봐야겠다고 신나게 방문을 나섰다. 나는 유현재와 함께 떡볶이를 먹고 시험공부를 하던, 너무나도 평범하고 일상적이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아, 또 눈물 나려고. 짜증 나게. 나는 문제집 위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 어차피 똑같은 공식과 똑같은 문제, 똑같은 교육일 텐데. 달라지는 건 유현재와 나의 관계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앞으로 일 년간 같은 반으로서 생활해야 할 시간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

유현재를 향한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어린아이들의 괴롭힘이래 봤자 거기서 거기일거라 속단한 게 잘못이었다. 어렸기에 더욱 더 적나라하고 유치했다. 어디에서 가져온 건지 모를 정도로 더러운 물을 흠뻑 뒤집어쓴 유현재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서랍에 손을 넣었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꺼낸 손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 어디서 냄새 나잖아.”

거의 주동자나 다름없는 녀석이 소리쳤다. 아마 반에서 유일한 2급이었던 것 같다. 그 녀석의 목소리를 기점으로 아이들이 코를 쥔 채 인상을 찌푸렸다. 유현재는 피가 뚝뚝 흐르는 손을 붙들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멍청이.”

나는 아무도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유현재는 결국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에 터벅터벅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날 내내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간간히 쉬는 시간마다 보건실 근처를 얼쩡거렸다. 결국 보건 선생님을 마주친 내가 어색하게 물었다.

“저, 제 친구가 여기 왔었나 해서….”

“친구?”

“네에… 아까 축구하다가 다쳤다고 했거든요….”

보건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오늘 3학년 중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나는 태연한 척 보건실을 빠져나와 복도를 걸었다. 수업 시작 종이 울렸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나는 생각 없이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발견하고 말았다.

운동장 구석이라 잘 보이진 않았지만 유현재가 수트를 입은 성인 남성과 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멀리서 보았음에도 그 남자의 실루엣이 무척이나 익숙하다는 걸 알아챘다. 몸이 본능적으로 바르르 떨렸다.

그때와 달리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아 바로 알아채진 못했지만, 분명 두 번째 삶에서 내게 죽음을 선사했던 그 남자였다. 날카로운 칼끝의 촉감과 뒤따라오는 고통이 아직도 생생히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저 남자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내 본능이 도망치기를 종용했다. 나는 겨우 마음을 다스리고 계속해서 둘을 지켜보았다. 유현재는 다소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다가, 남자의 말 몇 마디에 순순히 그의 손을 잡고 차로 걸어갔다.

나는 그 순진하고 약한 열 살의 유현재가 너무나도 한심했다. 그 누구도 기댈 사람이 없는 주제에 희망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믿음을 퍼 주는 그 모습이 미련하게 보였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그 녀석에게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말이다.

유현재는 금방이라도 남자가 끌고 온 차에 올라타 가버릴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이미 유현재를 죽이려 한 전적이 있으니, 그가 무사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유현재가 죽으면 모든 것이 리셋된다. 물론 이 소설의 이야기는 반드시 유현재를 살려 그를 주인공으로 만들 것이었다. 머리로는 그렇게 이해하면서도 나는 이 불안함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새 유현재는 남자의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나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복도를 내달려 현관을 통과한 뒤 그리로 마구 뛰어갔다. 막 시동을 걸고 움직이려던 차가 급하게 멈춰 섰다. 나는 차 앞을 가로막고 소리 질렀다.

“내려!”

별다른 대답 없이 차에서 클랙슨이 울렸다.

“유현재! 내려, 이 멍청아!”

곧 뒷좌석 쪽에서 달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문을 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괜히 좌석 쪽으로 달려갔다가 차가 출발할까 싶어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소리만 질렀다.

“문 열어요!”

나는 용감하게도 핸드폰을 꺼내 차의 번호판을 찍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를 하고자 통화 탭으로 들어갔다. 이상함을 느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때, 차 안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들리더니 급작스레 차가 후진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주춤거리자, 몇 미터 뒤로 가던 차체가 내게 돌진했다. 안에서 유현재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겨우 문을 열고 뛰어내린 유현재를 쳐다보았다.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린 것이었기 때문에 유현재의 작은 몸은 바닥을 뒹굴었다. 몸을 털고 일어나기도 전에 유현재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몸은 거세게 차와 부딪히고 말았다.

유현재의 눈이 커졌다. 몸이 살짝 떠오르더니 그대로 바닥에 추락했다.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지만, 나는 수용했다. 그를 무시할 수 없었던 그 시점부터 어차피 이 인생은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현재가 얼굴에 상처를 가득 단 채로 내게 뛰어왔다. 나는 차에 치인 어린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태연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마 제정신인 사람이 내 얼굴을 봤으면 소름 끼친다 말했을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유현재는 엉엉 우느라 정신이 나가버린 상태였다. 아무래도 사고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찬희야, 눈… 눈 떠….”

“시끄러워….”

나는 힘없이 말했다. 유현재가 서럽게 울어대는 게 너무 시끄러웠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면서, 매번 처음 보는 척하기는. 나는 속으로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도대체 언제쯤 되어야 유현재를 내 삶에서 완전히 빼버릴 수 있을까. 익숙한 의식의 점멸 끝에서 나는 고민했다. 하지만 대답을 강구하기도 전에 또 다시 나는 돌아오고야 말았다.

천천히 눈을 뜨자 내 눈앞엔 아까보단 조금 어린 유현재가 순진한 얼굴로 서 있었다. 시작점으로 무사히 돌아온 것이었다. 아홉 번째로 보는 이 얼굴. 곧 저 얼굴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내 이름을 부를 것이었다. 나는 그에 태연히 대답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한참을 지나도 어수룩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너… 왜 울어?”

대신 유현재는 울고 있었다. 소리 나지 않는, 조용한 울음이었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기 시작했다. 유현재는 결국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무릎을 꿇었다. 그가 바닥에 엎드린 채 끊임없이 울었다. 어린아이의 울음이라기엔 너무나도 무겁고 처절한 울음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뭔가가 조금, 달라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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