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문을 열자마자 이상하리만치 속이 울렁거렸다.
석찬의 도움으로 보안이 까다로운 펜트하우스 현관 앞까지 진입한 것은 좋았다. 석찬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 주고서 마치 줄행랑을 치듯 바쁘게 사라져 버렸다. 듣자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게 들은 숫자가 너무나도 익숙한 번호였다. 자기 주민 번호 앞자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반신반의하며 번호를 누르자 경쾌한 신호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숫자를 누르며 긴장했던 게 싱거울 정도로 너무나 깔끔하게 손잡이가 돌아갔다.
“읏.”
도선이 작게 신음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알 수 없는 스산함에 몸이 떨렸다. 굉장히 을씨년스럽다고 해야 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속이 굉장히 거북해졌고 머리가 핑그르르 울렸다. 주변의 모든 가구며 벽지가 마치 춤을 추듯 일렁거리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오싹했다. 이 집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베타인 자기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석찬이 쌍욕을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날은 놀라기만 했는데 지금 이 순간은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슬리퍼를 신고 현관 복도를 지나 안으로 진입했다. 거실이 굉장히 어둑어둑했다. 등 뒤를 어스름히 밝혀 주는 자동 등이 꺼지면 시야가 차단돼서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을 거 같은 어둠이다. 창이란 창은 전부 두툼한 암막 커튼이 꼭꼭 여미고 있는 게 분명하다. 오전 10시다. 이 어둠은 말도 안 된다.
도선은 벽을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몇 번 더듬거리자 바로 손끝에 걸리는 게 있었다. 망설임 없이 스위치를 눌렀다. 연한 주황빛의 보조 등이 바로 주변을 밝혀 주었다.
“……!”
시야가 확보되자마자 즉시 희락이 보였다. 막연하게 침실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조금쯤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았다. 너무 이른 맞닥뜨림에 어깨가 흠칫거렸다.
희락은 기다란 소파에 누워 있었다. 한쪽 팔로 눈가를 가리고 있어서 얼굴을 자세히는 확인할 수 없었다. 도선은 호흡을 서너 번 가다듬으며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오늘 목요일이구나.”
목소리가 들렸다. 도선은 갑작스러운 음성에 어깨를 떨며 움직임을 뚝 멈췄다. 잠든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인기척이나 불빛에 잠이 깼을 수도 있다.
“네.”
도선은 일단 들은 말에 얼른 대답했다.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벌써 목요일이야……. 내가 넋 빠져 있는 동안 날짜가 많이 지났네요.”
희락이 중얼거리면서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얼굴을 가렸던 팔이 떨어져 내려가는 걸 확인하며 재깍 시선을 그의 눈가로 옮겼다. 여기서 오늘 놀란 것 중 가장 놀랐다. 희락의 미모가 1주일 사이에 어디로 떠나 버린 것은 아니었으나 늘 보던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초췌하고 파리하다. 식사는 제대로 하고 있겠냐는 석찬의 염려가 기억났다. 그의 걱정은 맞아떨어진 듯하다. 이 짧은 사이에 눈으로 야위었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면 최근 그의 식습관이 어떤 꼴이었는지 예상할 수 있다.
“앉아요, 서 있지 말고.”
희락이 맞은편 소파를 손짓했다.
“네.”
도선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도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희락이 그다음 나직이 웃으며 눈가를 찡그렸다.
“미안해요. 쉬는 날 귀찮게.”
“네? 뭐가 말입니까.”
“석찬이가 보냈죠? 좀 가 보라고 했겠지.”
맞는 말이다. 도선이 지금 이 자리에 앉기까지 석찬의 애걸복걸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그 말에 쉽사리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다. 부탁을 받았을 뿐 강요를 받은 것은 아니다. 대표님께 가 보겠노라고 석찬에게 전화한 건 전적으로 자기 판단이었다. 그가 걱정됐고 궁금했으니까 여기로 왔다.
“민 비서님 말씀 때문만은 아닙니다.”
잠깐 침묵 후, 도선은 딱 잘라 대답했다. 그러자 희락이 다시금 연하게 미소 지었다. 이토록 기운 없는 웃음은 심장에 참 좋지 않다.
“그러면?”
“저도 대표님이 걱정됐으니까요.”
“왜요?”
“그야…….”
말문이 막혀 쉽게 말을 잇지 못하는 동안, 희락이 농담과 비아냥거림 섞인 음성으로 툭 말을 내뱉는다.
“지금 병 주고 약 주는 거야?”
“대표님…….”
“내 걱정을 왜 해요. 나를 있는 대로 할퀸 사람이 당신인데.”
“죄송합니다.”
도선이 사과하기 무섭게 희락이 눈을 부릅떴다.
“왜 사과해? 뭐에 대한 사과예요, 그거? 내가 그날 당신 때문에 얼마나 창피하고 또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긴 해요?”
“…….”
희락이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했다. 그게 아팠다. 도선은 도무지 그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잔뜩 흔들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랬어요. 나랑 만나고 언제부터 4만 원 생각을 하고, 보상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그토록 싫다더니 왜? 나한테 물질적인 걸 받으면 견딜 수 없을 거 같다고 애원하던 건 다름 아닌 당신이잖아!”
도선은 가만히 들었다. 무어라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속사포로 이어지는 목소리에 도무지 끼어들 수가 없었다.
“내가 당신한테 전전긍긍하는 꼴이 우스워졌어요? 추억으로 삼기에는 썩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거나? 내가 엉겨 붙으니까 재미가 없어졌어? 흥미를 잃었고? 같이 있기조차 싫어졌으니까 이제 돈이라도 받고 나가떨어질 생각이었어요?”
“대표님, 그런 게 아니…….”
“그렇게 부르지 마, 제발!”
희락이 앙칼지게 소리쳤다. 도선은 달싹거리는 입술에 힘을 꾹 넣었다.
“나를 단 한 순간도 조희락으로 보지 않았다고, 너는 그저 돈 좀 있는 대표였을 뿐이라고, 언젠가 한몫 거하게 챙길 거라고. ……당신이 그동안 날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는, 그런 비참한 생각 들게 하지 마.”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물론 울진 않겠지만.
희락은 좀 더 할 말이 있을 거였다. 여기서 자기가 억울함에 눈물이라도 왈칵 내비치면 마치 그의 입을 틀어막는 행위처럼 비칠까 봐 겁이 났다.
“내 얼굴도 좋아하고, 내 목소리도 좋아하고…… 그럼 나는요?”
“……!”
도선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있는 힘껏 눌러 참는 울음이 그의 눈동자에 번져 있다.
“나는 좋아해요? 그냥 나라는 사람, 당신한테 어때요?”
이런 질문을 들을 줄은 몰랐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건가.
이 짧은 순간, 정말이지 무수한 고민에 휩싸인다. 희락의 말에 대답할 땐 ‘최대한 솔직하게, 최대한 빠르게’를 여태껏 신조처럼 삼아 왔지만 지금은 쉽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도선을 보며 희락이 자조하듯 옅게 웃었다.
“나는 좋아해요, 그냥 윤도선이란 사람을.”
“읏……!”
도선이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도 모르게 다리가 움직이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깜짝 놀란 듯 희락도 어깨를 흠칫하며 고개를 올렸다.
“뭘 이렇게 놀라. 몰랐던 거 아니잖아.”
도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요, 정말 몰랐습니다.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번에는 희락이 눈을 휘둥그렇게 뜰 차례였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말을 들은 사람의 표정을 한다. 경악마저 어린 시선이 이쪽으로 기울어졌다. 도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입만 뻐끔거렸다.
“지금 말 다 했어? 몰랐다고?”
희락이 헛소리처럼 빠르게 중얼거렸다. 대답을 원하는 건지 원하지 않는 것인지 갈피를 못 잡을 무렵 다시 한번 질문이 들려왔다.
“그럼 여태까지 내가 당신한테 했던 건 뭐였는데? 뭔 줄 알았어요?”
이번에는 질문이 확실한 듯하다. 어서 말해 보라는 눈초리가 이쪽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드디어 다소나마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 나왔다. 도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대답했다.
“저도 줄곧 그게 정말 궁금했습니다.”
“하!”
희락은 기가 막힌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도선은 떨떠름하게 웃으며 겨우겨우 대답을 이어 갔다.
“이런 건 어디 가서 물어봐야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또, 아무래도 대표님 신상 걱정도 있고 하니까 섣불리 입을 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 봤더니…….”
도선이 말끝을 흐렸다. 희락의 눈빛이 점점 형형히 빛나는 게 꽤 부담스럽다. 그걸 마주 보고 있는 게 얼마나 죽을 맛인지 모른다.
“봤더니?”
희락이 대답을 재촉하듯 말꼬리를 잡았다. 도선은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며 대답을 이어 나갔다.
“알파가 베타와 만나는 건 순간적인 일탈이나, 호기심, 잠깐의 여흥 정도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대다수라고, 그런…….”
희락이 소리 없이 확 웃어 젖혔다.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게 아니라는 건 틀림없다. 도선은 더는 견딜 수가 없다는 듯 탄식하는 입술만 멍하니 바라봤다.
“와아, 시발. ……진짜 미치겠다.”
희락이 마른세수를 했다. 기다랗고 하얀 손가락이 덮어 버린 얼굴을 끔뻑끔뻑 바라봤다. 슬쩍 시선을 옮겨 동그랗게 도드라진 손목뼈도 힐끗 응시했다. 조금 전부터 느꼈지만 대표님은 정말 안색이 좋지 않다. 대화가 길어질 듯해서 약간 초조했다. 일단 뭐를 좀 드시게 한 다음 말을 해도 늦지 않았을 것만 같다.
“도선 씨.”
“……! 네.”
잠깐 딴생각으로 빠졌던 머릿속이 쨍 울렸다. 나직한 부름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서 얼른 대꾸하자 희락 역시 손을 천천히 내리며 시선을 마주해 왔다.
“그런 생각을 했으면 진작 나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요. 왜 여태까지 가만히 있었어요? 내가 이 상황을 아주 잠깐 즐기는 일탈 정도로 여긴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어? 답답하거나 화도 안 났어요?”
도선은 조용히 웃었다. 이번 질문도 꽤 쉬웠다.
“화는 안 났습니다. 답답한 것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단지, 그냥 좀 불안했어요. 언제 이 상황이 끝날까 싶어서 초조하기도 했습니다. 꽤 불안한 날이면 희락 씨한테 날짜 좀 알려 달라는 말을 꺼내고 싶어지더라고요. 언제쯤 이 상황이 끝날까요. 미리 좀 알 수 있을까요, 하고.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감정을 대표, 아니…….”
희락이 눈을 확 치켜뜨는 바람에 열심히 움직이던 입술이 스리슬쩍 멈췄다. 언제까지고 노려볼 것만 같은 시선을 계속 받고 있으니 지금은 이쪽이 수그리는 게 맞다.
“희락 씨에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요? 다른 누구도 아닌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그게 맞잖아.”
“아니요. 희락 씨한테 말을 하면…….”
도선은 의식적으로 눈가에 힘을 넣었다. 아까는 눈물을 잘 참았는데 지금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희락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뿐이다. 그뿐임에도 드디어 종지부가 한껏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대표님께 4만 원은 언제쯤 받을 수 있냐고 물었던 1주일 전보다도, 오히려 오늘이 한층 더 마지막 날처럼 여겨졌다.
도선이 꺼질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더 일찍 이 상황이 끝날 거 같더라고요.”
말을 마치며 고개를 짤막히 갸웃거렸다.
“이상하죠.”
“그래요. 당신, 정말 이상해.”
희락이 쓰게 웃었다. 도선도 조그맣게 웃고 말았다.
“그럼 1주일 전 그 대사는 뭐야. 왜 말했어요. 계속 참지.”
“더는 말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요.”
도선은 마음에만 담고 있던 것들을 하나둘 풀어냈다.
“제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문제였고, 대표님 앞에서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만 같은 마음도 꽤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대표님이 저 같은 사람한테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고, 휘둘리시는 거 같아서…… 제 욕심 차리자고 이걸 계속 두고 보기엔 너무 죄송스러워서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희락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여태까지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기막히고, 가장 말도 안 되고, 가장 사람 미치게 하는 소리네!”
손이 거칠게 헝클어뜨린 머리칼이 살랑살랑 허공에서 흩어졌다. 도선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생각해 보면 눈앞의 희락 모습이 완벽한 폐인까진 아니다. 얼굴색은 좋지 않았지만 피부가 푸석해 보이진 않는다. 면도도 제대로 됐고, 눈부신 갈색 머리칼 역시 꾸준히 샴푸를 한 듯 보였다.
씻을 시간에 뭐라도 좀 드시지.
도선은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소파 사이에 놓인 테이블을 응시했다. 담배꽁초가 산더미다. 이것도 상당히 못마땅했다.
“이봐요, 윤도선 씨!”
“……!”
지금 딴생각할 때가 아니라는 듯 희락이 고함을 쳤다. 그 바람에 도선은 이곳저곳 훑어보길 멈추고서 허둥지둥 시선을 마주했다.
“지금 전부 이해가 안 가지만, 그중에서 가장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 그게 뭔지 알겠어요?”
“모르겠습니다. 뭡니까?”
“내가 당신한테 휘둘리는 걸 알아차릴 정도면, 그럴 때 내가 당신한테 반했다는 생각은 안 합니까? 보통 그거부터 생각하잖아?”
도선이 눈을 크게 떠올렸다. 입도 살짝 벌어진다. 지금 도대체 무슨 얘기를 들은 거냐는 눈빛으로 변한다. 너무나 황당한 소리를 들은 사람의 얼굴이다. 희락은 그런 도선의 표정에 점점 심기가 불편해진 듯 오만상을 찌푸렸다.
“대표님 역시 굉장히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시네요.”
“뭐요?”
희락이 윽박지르듯 빽 소리를 내자, 도선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차분히 대답했다.
“전 아닙니다. 그런 건 생각도 안 해 봤, 아니, 못 해 봤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대표님, 아니, 희락 씨를 상대로요?”
그러자 희락이 눈빛을 활활 불태우며 다시금 소리쳤다.
“그래, 그거!”
“예?”
“내가 당신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묘하게 자존감 낮은 말투, 진짜 거슬리고 기분이 안 좋았다고! 안쓰러우면서도 이상하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유년기와 청년기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보도 채널에 나올 법한 일이라도 겪은 겁니까?”
영문 모를 질문에 말문이 막힌 것뿐이다. 희락은 오히려 그 침묵이 긍정이라 여겼는지 더더욱 흥분했다. 창백하게 질려 있던 뺨이 단숨에 확 붉어진다.
“그런 거야? 뭔데. 말해 봐요. 내가 아주 가만 안 둘 거라고! 당장 가서 죽여 버릴 거니까!”
길길이 날뛰는 희락을 진정시키려면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도선은 손사래를 서너 번 치며 허겁지겁 입을 열었다.
“아니요, 아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평범하게 잘 자랐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대표, 아니, 희락 씨는 그렇게 느끼셨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냥 분수를 아는 것뿐입니다. 희락 씨 상대로 이렇게 되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습니까?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안 보는 게 답입니다. 희락 씨는 워낙 다정하신 분이라 거기에 사사로운 기대를 가지면 안 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
희락이 입을 두어 번 뻐끔거렸다. 붉으락푸르락 정신없이 안색을 달리하는 남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나 잘 몰라요. 누구를 이렇게 좋아한 것도, 단숨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전부 처음 있는 일이라 잘 모른다고.”
나직하게 이어지던 중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희락이 눈을 번쩍 뜨며 도선을 있는 힘껏 노려봤다.
“그런데 당신은 나보다 더 몰라. 알아? 이 바보야!”
“푸훗.”
이젠 시선만으로 잡아먹힐 듯하다. 도선은 재빨리 웃음을 지웠지만 희락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웃어? 웃음이 나와요?”
도선이 헛기침을 하며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웃어 달라고 애걸복걸할 때도 잘 안 지어 주던 그 웃음이 지금 이때 나와? 나 정말 미칠 거 같아!”
“그거야 대표, 아니, 희락 씨가…… 고작 바보가 뭡니까. 요즘은 초딩도 그런 욕은 안 합니다.”
“와, 미치겠네! 그럼 쌍욕이라도 할까? 내가 당신한테 어떻게 그래!”
이번에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굉장히 낯간지러운 감정이 들었다. 도선이 연하게 미소 짓자 희락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도 더는 뭐라고 타박하진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희락은 열을 식히려는 듯 고개만 푹 숙인 채 이쪽에 시선도 주지 않았다. 가뜩이나 기운 없어 보이는 사람이 풀까지 확 죽은 채 미동도 없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지 않다.
도선은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바로 희락의 앞에 서 있을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그의 답답함과 화병을 유발할 뿐이라면 이젠 해 줄 수 있는 게 딱 하나 남아 있다.
양손을 뻗었다. 아까 희락이 잔뜩 헝클이고 헤집던 머리칼을 마치 정돈해 주듯 쓰다듬었다.
손에 닿는 촉감은 언제나처럼 굉장히 좋다. 다시 한번 웃음이 날 거 같았다. 담배만 축내며 죽은 듯 누워 있던 사람이 그 와중에도 제대로 씻었다는 게 신기하다. 보통은 만사 귀찮을 때면 씻는 것 따윈 대충 건너뛰는 게 일상다반사인데 말이다.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희락의 양팔도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눈앞에 보이는 허리를 천천히 감싸 안았다. 배 부근에 간헐적으로 닿는 뜨거운 숨결이 퍽 간지럽다.
“나 좋아해요?”
기분 탓일까. 건조한 목소리임에도 마치 물기가 묻어나는 듯하다. 듣는 순간 안타까운 마음에 눈가가 푹 주저앉을 정도다. 늘 늠름하고 자신 넘치며 쾌활한 대표님이 좋다. 그런 조희락이 좋다. 이렇게 자신 없는 모습으로 몸을 동그랗게 말아 가며 모든 기운이 죄다 빠진 것 같은 희락은 보고 싶지 않았다.
“네, 좋아합니다.”
여러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다.
도선은 이번에야말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희락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입을 열기가 한결 쉽다. 물론 굉장히 떨리고, 머리를 연달아 쓰다듬는 손끝이 딱딱해졌어도 조금 전보다 훨씬 마음이 가볍다.
“정말 원했던 말인데. 내가 당신에게…… 뭔가, 정보 수집을 좀 하고, 꽃이나 반지 같은 것도 사고, 제대로 된 이벤트 같은 걸 하면서…… 온갖 폼이란 폼은 다 잡아 가며 하려고 했던 말이기도 한데.”
“그러셨어요?”
“그걸 이런 식으로, 이럴 때 듣게 될 줄은 몰랐네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사과하지 마. 당신이 자꾸 그런 말 하는 건 언제 들어도 별로니까.”
투덜대듯 말하던 희락이 갑자기 소리 내 웃었다.
“아하핫.”
“왜 웃으세요?”
희락이 기운 없이 대꾸했다.
“내가 너무 웃겨서. 스스로 황당하기도 하고.”
“네?”
“나 진짜 호구 맞아요. 이 와중에도 좋긴 좋거든. 당신이 날 좋아한다고 말하니까 시궁창 같던 기분이 단숨에 나아지고.”
“…….”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조희락이 자기 말 한 마디에, 자기 태도 한 번에 기분이 급상승과 급하락을 오락가락한다는 사실은 마치 질 나쁜 농담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 세상에는 믿을 수 있거나 믿을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이 상황은 정말이지 후자에 가깝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지?
계속 그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현실감이 없다.
도선이 혼잣말처럼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제가 희락 씨를 좋아하고…….”
이 말을 내뱉는 것은 망설임이 없다. 정말 이보다 더 좋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일상을 쭉 따라 걷다 보니 이렇게 됐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이 모든 게 전부 다 꿈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거 같다. 반쯤 홀린 듯한 감각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의 앞이면 여전히 얼어붙고, 어깨가 딱딱해졌다. 혹시라도 밉보이거나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긴장하며 지냈다.
“그렇죠.”
도통 말을 잇지 못하는 도선을 돕듯 희락이 대꾸했다. 도선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다음 말을 입에 담았다.
“희락 씨가 또, 그런 저를 좋아하고…….”
“바로 그렇죠.”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도선이 멍한 눈을 두어 번 끔뻑거리며 속삭였다. 그러자 희락이 픽 바람 빠진 소리로 웃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당신이 쓸데없는 생각 같은 거 내던지고, 그럴 시간에 날 제대로 봤으면 좋았잖아요. 당신 말 한 마디에 내가 어떻게 되는지, 당신 몸짓이나 손짓에 내가 어떤 표정이나 눈빛을 짓는지. 그것만 제대로 봐 줬어도…… 하아…….”
도선이 억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표님을 항상 바라봤는데요. 늘, 언제나.”
“그래. 그랬을지 모르지. 하지만 여태껏 제대로 안 본 거라니까? 이제는 그러지 마요. 그러도록 두지도 않겠지만.”
희락의 말을 들으며 떠오른 궁금증이 있다. 이걸 입에 담아도 될지 매우 고민스럽다. 이런 생각 자체가 그의 말마따나 쓸데없는 거면 또 어쩌나 싶었다.
용기를 내서 희락의 말을 따라 보기로 했다.
“대표님.”
그 즉시 희락이 아주 딱딱한 어조로 입을 연다.
“내가 태클 거는 걸 포기한 게 아니야. 일단은 당신 할 말 다 하도록 내가 참아 주는 거지.”
참아 주실 거면 그냥 아무 말씀 안 하시는 게 더 낫잖아요.
그런 불평은 속으로만 했다. 도선은 “희락 씨”라고 고쳐 부르고서, 천천히 생각난 것들을 입에 옮겼다.
“희락 씨는 그럼 이제 저랑……, 그, 저랑 말입니다.”
“네.”
“그, 음. 연애라도 하실 생각이신…….”
말을 제대로 다 끝마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희락의 탓이었다. 그 이상 말하면 가만두지 않을 것처럼 허리에 감긴 팔에 힘이 꾹 들어왔다. 쥐가 날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는 손힘이 느껴지는 통에 나오던 목소리가 도로 쏙 들어갔다.
“당신이 정말 오늘 여러 번 날 환장하게 하네요.”
“정말 궁금해서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그럼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건 뭐라고 생각하는데?”
“그거야…….”
“일탈, 호기심. 그딴 단어 다시 한 번만 더 꺼내면 나 그땐 정말 참지 않을 거야. 이제 더는 웃으면서 넘어갈 수 없어요.”
“…….”
지금도 웃으면서 넘어가신 건 아니죠.
이번에도 불만은 속으로만 삼킬 뿐이다.
희락은 연거푸 호흡하며 씩씩거렸다. 그는 잠시 화를 식힐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지만 도선의 궁금증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걸 제대로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정말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괜히 말해서 희락 씨 화만 더 불러일으킬까 봐 좀 걱정이긴 합니다.”
“뭔데요. 일단 들어 보고.”
“희락 씨 같은 분이 왜 저랑……,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저랑 연애할 생각을 어떻게 하실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 그러니까…… 왜 절 좋아하게 되셨는지 잘 이해가 안 가요.”
“…….”
희락이 분을 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바람에 도선의 어깨가 움찔했다. 괜한 질문을 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울분이 가득 스민 목소리가 들렸다. 도선은 지금 이 자세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맞은편에 앉아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위치였더라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게 틀림없다.
“그야, 저보다 희락 씨가 더 잘 아시겠죠. 희락 씨한테 어울리는, 음, 하여간 저 같은 사람 말고 좀 더 번듯하고 잘난 사람요. 극우성 오메가라든가.”
“혹시 도선 씨, 막장 드라마 좋아해요?”
“네? 막장 드라마요?”
“잘난 아들한테 너랑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라고. 네가 뭐가 부족해서 왜 그딴 애를 만나냐고 길길이 날뛰는, 고집불통 사모님이 입에 담을 법한 소리가 왜 당신 입에서 나오지?”
“읏.”
이쪽이 움찔할 시간도 주지 않는다. 아예 정신을 쏙 빼놓을 것처럼 희락이 거침없이 입을 놀렸다.
“당신을 왜 좋아하냐고? 그런 질문이 세상에 어디 있어. 정말 기가 막히네요.”
희락이 낮게 속삭였다. 음절마다 한숨을 녹아 있는 듯하다.
“잘 들어요. 당신 질문이 얼마나 이상하고 황당한지 내가 지금부터 말해 줄 테니까.”
도선은 대답하지 않고 차분하게 희락의 말을 기다렸다.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할 때 계획적으로 좋아해요? 아, 오늘 멋있다고 느꼈어. 그럼 내일은 호감을 느껴야지. 아, 오늘 또 호감을 잘 느꼈으니까 내일은 반해도 괜찮겠다. 이렇게? 이런 식으로 사람한테 홀리는 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요.”
“그래. 나도 그래요. 얼굴도 모르고 당신이랑 뒹굴던 그날 밤에도 고작 깍지 정도에 귓불을 붉히는 모습이 귀여웠다고! 빨리 돈이든 뭐든 쥐여 주고 끝내 버릴 생각이 가득했던 그날에도 내가 어떻게 했어요? 정신 차려 보니까 한 번 더 안게 해 달라고 조르고나 있었지! 웃는 얼굴이 사람 미치게 할 만큼 예쁘니까 무턱대고 입 맞추고 싶어졌고! 당신은 내 감정 변화를 설명할 수 있겠어요? 반했다는 것 외에 다른 종류의 감정으로?”
잠시 고민하던 도선이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아니요.”
그것 보라는 듯 희락이 낮게 웃었다.
“그래. 배도 맞았는데 눈 맞는 것쯤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뭘 이렇게까지 어렵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더니 희락이 천천히 몸을 떨어뜨렸다. 도선도 몇 번이고 쓰다듬던 머리칼을 놓아주며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찬찬히 얼굴을 뜯어보던 희락의 눈동자가 이윽고 도선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눈빛이 오갔다. 몸이 떨려 왔다. 바라보는 시선의 따스함보다도 그의 눈가가 글썽거리는 것이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이제부터 할 말은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좋아해요. 내가 윤도선 씨를 정말 많이 사랑하게 됐어요.”
“……!”
“좋아한다는 감정 외에 다른 건 몰라. 난 그냥 당신이 좋아요. 좋아졌다고. 날마다 더 좋아졌고요. 이런 감정을 이유 달아 가며 설명해야 해요? 그렇게까지 해야 내 마음을 알아줄 거예요? 우리가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살게 됐다는 걸 그럴싸한 무언가로 포장해야 조금쯤 내 마음을 이해할 거예요?”
묽어진 눈가를 한동안 마냥 바라봤다.
도선은 천천히 두 손을 올렸다. 검지로 아직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물기를 조심스럽게 걷어 냈다. 손끝에 닿는 눈물이 이상하리만치 뜨겁게 느껴졌다.
“와,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네.”
희락이 겸연쩍은 듯 중얼거렸다.
“내가 이런, 무슨 연애학 개론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니 굉장히 이상하네요.”
힘없는 속삭임에 도선은 그저 웃어 주었다.
참 이상하다.
여전히 긴장은 됐다. 딱딱한 어깨며 긴장으로 꼿꼿해진 허리 부근도 여전하다. 하지만 희락을 보며 웃어 주는 게 예전보다는 한결 쉽게 됐다.
그동안은 자신이 정말 그의 말처럼 제대로 보질 않았나. 너무 얼어붙어 있었던 것도 같다.
자기가 웃으면 희락이 더더욱 밝게 웃는다. 자기가 바라보면 그가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을 것처럼 눈동자를 응시해 왔다.
“나도 진짜, 내가 스스로 인정할 정도로 이런 거 잘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서른다섯 넘어가기 전에 누구랑 연애다운 연애를 할 수는 있을까. 그런 실없는 고민도 했을 정돈데.”
희락의 중얼거림에 사그라지려던 웃음이 다시 입술을 감돈다. 서로를 보며 잔잔하게 웃는 시간이 조금 흐르고서, 도선이 마침 떠오른 말이 있다는 듯 “아” 하고 탄식했다.
“그럼 대표님도 제가 세상에서 가장 예뻐 보이세요?”
“당연한 거 아니야? 그 누구보다 최고지. 씹어 먹고 싶을 정도라고.”
“으음. 대표님 얼굴보다도요?”
희락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시원스럽게 대꾸했다.
“네.”
정작 도선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다. 희락의 고백과 이어지는 대화를 들으며 간혹 내비친 긴가민가했던 표정보다도 한층 더 의아해하는 눈빛이다. 조금 전과 달리 이번에는 도선이 의식적으로 꾸며 낸 표정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에 희락이 왜 그러느냐는 듯 턱짓했다.
“아무래도 그건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일단 안과를 가 보셔야 하는 게…….”
“아, 진짜!”
희락이 속았다는 듯 웃음과 불만을 동시에 터트렸다. 도선도 만족하며 마주 웃었다. 잠시나마 그의 눈가에 머물렀던 물기가 어느덧 사라져 있었다. 도선이 가장 바라던 거였고, 그랬기에 필사적으로 쥐어짠 농담이었다.
“망했어요.”
희락이 확 몸을 끌어당겼다. 그 바람에 엉거주춤 그의 허벅지에 앉게 된 도선이 눈을 끔뻑거렸다. 머릿속이 단숨에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창피하지만 이럴 때도 즉각 대답이 나오는 것은 여전했다.
“뭐가요?”
“이런 건 예정에 없었다고. 아까도 말했지만…… 고백할 땐, 나 정말 원 없이 돈 펑펑 쓰면서 러닝 타임 세 시간짜리 영화 한 편 찍을 생각이었단 말이에요.”
희락이 품 안의 몸을 꼭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자기 어깨에 묻은 입술이 한탄을 읊는 동안, 도선 역시 쭈뼛쭈뼛 그의 등과 목을 끌어안으며 천천히 고개를 기댔다.
“희락 씨, 저도 희락 씨처럼 잘 모르긴 합니다. 그래서 늘 의지할 곳은 인터넷뿐이긴 해도…… 어쨌든 그건 좀 아니지 않을까요?”
“왜요?”
“고백 정도에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 별로 없잖아요. 프러포즈면 또 몰라도요.”
“그래요?”
“네, 아마도? 꽃다발은 그렇다고 쳐도, 반지까진 또 너무 거창하지 않나요?”
희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커플링 같은 거 안 하나?”
도선도 덩달아 고민에 빠졌다.
“하긴 할 테지만, 이런 이벤트와 더불어서 주는 반지는 커플링 정도가 아닌 느낌이 좀 들긴 합니다.”
대답하면서 생각난 게 있다. 도선이 조금 농담을 섞어 중얼거렸다.
“희락 씨.”
“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조금 전부터 도선이 희락 씨, 하고 이름을 부를 때마다 희락은 즐거움으로 어깨가 비죽비죽 솟는 듯했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연한 웃음도 그 생각에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아까 저 그렇게 구박하시더니. 지금까지 우리가 한 건 뭐냐고 막 화내셨잖아요.”
“그런데요?”
“대, 희락 씨의 말은 우리가 지금까지 연애한 거라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바로 그렇죠.”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겁니다.”
도선이 쓰게 웃었다.
“이런 선후 관계가 어디 있습니까? 연애부터 하고, 그다음 고백을 하나요?”
“아!”
희락이 탄성을 내질렀다.
“와아, 나 진짜 미쳤었네?”
한동안 혼잣말과 헛웃음을 연거푸 내뱉던 희락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게 말이에요. 도선 씨한테 듣기 전까지는 왜 그거 눈치 못 챘지? 아하핫! 나 진짜 폼 안 나네. 모양새 다 빠졌어. ……만나면 마냥 좋으니까. 당신 얼굴 보기 바쁘고. 끌어안기 바쁘고. 정말 아무 생각도 못 했네요.”
이어지는 목소리를 가만히 듣던 도선이 우물우물 말을 꺼냈다.
“즉, 제 말은 희락 씨가 고백 안 하셔도 괜찮다는 뜻입니다. 오늘 다 하기도 했고요.”
“그건 아니지.”
희락이 딱 잘라 말했다.
“좀 건너뛸 수도 있으면, 좀 돌아갈 수도 있는 거고. 커플마다 다 다를 거잖아? 우린 우리대로, 순서가 엉켰으면 또 엉킨 대로 하면 돼요. 하지만 이벤트는 꼭 챙기는 게 맞다고들 하니까 나도 그건 지킬 거야.”
“누가 그런 말을 했어요?”
도선의 질문에 희락이 아주 겸연쩍다는 듯 미소 지었다.
“인터넷에서 봤어요.”
“푸훗.”
“하여간, 나 꼭 할 거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서 불시에 딱 할 거니까요!”
한 팔로는 등을 감고 반대편 팔로는 머리칼을 매만지기에 열중하던 도선이 “읏” 하고 쓰러지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어깨를 순식간에 덮어 오는 이마에 희락이 놀란 듯 입을 열었다.
“왜 그래요?”
“잠깐 잊고 있던 긴장이 또, 막…… 하아, 가슴 근처가 진짜, 너무 아픕니다. 계속 긴장하고 있으면 차라리 뻣뻣해져서 괜찮은데, 이게 풀렸다가 다시 오면 굉장히 세게 아프더라고요.”
“뭐라고요? 아하핫!”
희락이 밝게 웃음을 터트리며 도선을 힘껏 끌어안았다.
도선도 이번에는 모든 고민을 내던진 것처럼 온 힘을 다해 희락의 등을 꽉 안았다.
아직은 얼떨떨하고, 또 아직은 실감이 안 나지만 귓가에 들리는 희락의 웃음이 너무나도 좋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이 미소를 가까이에서 보고, 들을 수 있을 거였다. 생각만 해도 벌써 눈물겹고 행복하다.
도선은 허겁지겁 눈을 꾹 감았다.
괜스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
<딱 열흘 정도 참을까 했어요.>
희락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둘은 각자 손에 탈취제를 들고 널찍한 집 안을 누볐다. 어느 정도 페로몬이 옅어지자 집 안의 모든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했다.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찍어 누를 수 있다는 극우성 페로몬을 맡을 수는 없다. 그러니 그 향이 지금 어느 정도로 자욱하게 퍼져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조금 전보다 한결 집 안 분위기가 나아졌다는 것은 확실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더 나아가 살갗을 찌릿찌릿 파고들던 이상한 감각이 어느덧 사그라져 있다. 페로몬 탈취제의 덕이겠지만, 창가에서 확 쏟아지는 햇살 덕도 있을 거였다.
희락은 드디어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확인하지 않고 무수히 쌓여 있던 메시지도 전부 읽었고, 부재중 전화를 보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내친김에 석찬에게 연락도 넣었다. 한바탕 이어지는 잔소리를 희락은 묵묵히 들었다. 지은 죄가 있으니 들어 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어 가며 말이다. 그 옆에 앉아 있던 도선은 남몰래 웃었다.
밀린 결재 서류를 가져오라고 말하며, 덧붙여서 간단하게 요기 좀 할 수 있는 것도 부탁했다. 한동안 물과 우유, 가끔 빵 정도로 때웠다던 희락의 말을 들으며 도선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석찬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둘은 침실로 향했다. 희락은 온몸을 사용해서 도선을 꽉 끌어안았다. 자기 가슴 근처에 고개를 파묻고 기분 좋다는 듯 미소 짓는 남자를 도선 역시 꼭 안아 주었다. 거의 자동적으로 그의 등을 토닥이자, 희락은 거기에 답하듯 이마를 비비며 활짝 웃어 주었다.
아까 소파에서 안겼을 땐 갑자기 확 휘몰아친 긴장으로 경황이 없어서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희락의 몸에서 굉장히 익숙한 향이 났다. 보디로션 향이다. 언젠가는 자기 아래를 적실 때 사용하기도 했던 바로 그것이기에 괜스레 얼굴이 뜨거워졌다.
도선은 헛기침을 한두 번 하면서 알아차린 그것을 입에 담았다. 그러면서 꼬박꼬박 씻고 면도하실 그 시간에 차라리 식사를 좀 하셨으면 좋았을 거라는 은근한 구박도 슬쩍 덧붙였다.
그러자 희락이 경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구박조차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한동안 키득대던 그가 드디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희락은 도선이 올 거라고 반쯤 예상했던 모양이다.
충직한 자기 비서는 대표의 은둔을 이 이상 두고 볼 수 없을 게 분명했다고. 이 상황에 부탁할 사람은 딱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을 테니, 석찬은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당신에게 가서 통사정을 하리라고도.
<당신이 언제 올지까지는 모르니까 씻는 건 거르지 않았어요. 뭘 먹어도 모래알 씹는 거 같고, 구정물 마시는 거 같고 그랬단 말이야. 하지만 씻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초췌한 꼬락서니겠지만 하다못해 얼굴은 평소 정도로 반반해야지. 나 보고 질겁해서 도망가 버리면 어떡해. 죽는 시늉을 해도 거지꼴을 한 것보다 좀 사람다운 얼굴이어야 한두 번 정도는 돌아보잖아요.>
희락이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그런 말을 했다. 도선은 일부러 들으란 듯 혀를 찼다. 그런 건 전혀 상관없었다고. 오히려 식사를 거르고 담배만 피우시는 게 더 속상한 일이라고. 석찬처럼 괄괄하게 소리를 지르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따끔함을 담아 보았다. 그래도 희락은 좋은가 보다. 그는 걱정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고, 이제부터는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잠자코 듣던 도선이 조금 장난을 치듯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만에 하나라도 제가 안 오면 어쩌려고 그러셨어요?>
그때, 희락이 바로 이렇게 대답했던 거다.
<딱 열흘까지만 참아 볼 생각이었어요. 그 이상은 내가 버틸 수 없을 거 같아서.>
그는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 누워 이런저런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다고 했다. 무릎이라도 꿇고 매달려 보자는 심산도 있었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윽박을 지르는 것도 있었고, 다 필요 없고 내 마음 책임지라며 배 째라는 식으로 굴어 볼까 싶기도 했다면서 겸연쩍게 속삭였다. 그다음, 아마 전부 하지 못했을 거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당신 얼굴 보면 눈물부터 콸콸 쏟아질 거 같은 거예요. 너무 속상하고, 너무 섭섭하고, 이 지경이 되기까지 희희낙락하기만 했던 나한테도 머리끝까지 화가 나고.>
희락의 말을 들으며 도선은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냥 이렇게 지내다가 서로 없었던 일로 스쳐 지나가게 두면 되지 않았을까. 대표님도 좀 힘들고, 나도 좀 힘들다가 그게 어느 순간 끝나고 나면 서로 몰랐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희락이 굉장히 슬퍼하고 서운해할 거 같았고, 이런 말을 굳이 꺼내서 자기 가슴을 스스로 후벼 파고 싶지도 않았다.
<열흘이나 절 기다리려고 하셨어요?>
그거 당신이 할 소리 아니라는 구박과 함께 희락이 입술을 샐쭉거렸다.
<말했잖아요, 정말 눈물 날 거 같았다고. 그러니까 마지막 시뮬레이션은 그런 거였어요. 당신 무덤덤하고 딱딱한 표정 계속 떠올리면서, 그걸 직접 맞닥뜨렸을 때 안 우는 연습 같은 거? 자신감 키우기? 다 실패했지만.>
도선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끌어안은 팔에 힘을 꾹 넣었다. 희락이 나직이 웃으며 보다 더 가까이 엉겨 붙어 왔다.
4만 원을 운운했던 그날 밤도 화제에 올랐다. 희락은 그날을 생각만 해도 머릿속에서 열이 올라와서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정말 창피하다고, 기대에 부풀어서 구멍이 날 정도로 두근거렸던 심장을 떠올리면 당장에라도 접시 물에 코 박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이다.
<나는, 고백을 할 줄 알았어. 당신이요. 그래서 난 보기 좋게 선수를 뺏겼구나. 와아, 어쩌지. 그래도 좋긴 좋다. 난 낌새도 못 챘는데 도대체 언제 이런 결심을 한 거지? 막, 그런 것도 궁금해하면서. 오만 가지 생각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긴장까지 몰려오지, 손은 또 왜 이렇게 떨려? 하핫……. 내 착각이었지만.>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무마시킨 마지막 말은 희락에게나 도선에게나 쓰디쓴 것이었다. 이제야 그날 희락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부채질하던 모습이 어렵지 않게 떠오른다. 그 기대를 아주 산산조각 박살 내 버린 죄인이기에 할 말이 없다.
<도선 씨가 오늘 사람 둘 살리신 겁니다. 일단, 저를 살리셨고요. 감사합니다.>
한동안 침대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둘은 침실을 빠져나왔다. 상대의 체온을 느끼며 깜빡 잠이 들 뻔한 때에 딱 맞춰서 석찬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석찬은 도선을 보자마자 허리를 숙여 가며 연거푸 감사 인사를 했다. 도선도 엉거주춤 몸을 구부려서 인사를 받았다. 괜찮다고, 인사받을 일 한 거 없다고. 도선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석찬을 만류했지만 그의 감사는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변변한 음식물이 들어간 적 없는 위장에 부담스러운 식사를 집어넣으면 안 될 거 같았다면서 석찬이 봉투를 쓱 내밀었다. 죽이었다. 함께 먹자는 희락의 말에 도선은 고개를 저으며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 됐다고 대답했다.
<나는 서러움으로 입에 풀칠도 못 했는데, 당신은 밥이 넘어갔어요? 밥 먹으면서 내 생각은 안 났고?>
희락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도선은 말갛게 웃으며 그의 머리칼을 서너 번 쓰다듬어 주었다.
희락은 식탁에 앉아 죽을 먹으며 석찬이 일목요연한 보고와 함께 내미는 서류에 사인을 했다. 별생각 없이 그 옆에 앉아 있던 도선이 그다음, 아차 싶은 얼굴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그러냐는 눈빛에 자리를 비켜 드리는 게 나을 거 같다는 말을 했더니 희락이 픽 웃었다. 설령 당신이 산업 스파이라고 해도 전혀 상관없고, 뒷감당도 내가 다 할 테니까 앉아 있으라는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도선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쓴웃음은 오직 석찬의 몫이었다.
<상무님도, 전무님도. 저한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셨습니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는 말에 되지도 않는 변명 말씀드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죠. 기왕 정신 차리신 김에 그것도 좀 어떻게 하십시오.>
잘은 모르겠지만 오가는 대화에서 그들이 희락의 형제들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도선은 속으로 석찬의 말에 백번 동의했다. 그저 SNS를 통해 사진으로 근황을 살피는 게 전부인 사람들도 대표님의 무소식에 걱정을 했다. 형제들은 오죽할까. 아까 어쩌다 보게 된 부재중 전화는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였다. 전부 석찬의 전화만이 아니었던 거다.
희락은 쓰게 웃으며 알겠다고 말했다. 인기쟁이는 너무나 피곤하다는 농담을 곁들였지만 석찬은 안경만 치키며 목석같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석찬아, 되지도 않는 변명은 뭐였어? 나도 말을 맞춰야 할 거 아냐.>
그러자 석찬이 도선을 힐끗 쳐다봤다. 갑작스러운 시선에 도선은 약간 움찔했다. 희락은 기분이 상한 듯했다. 낮은 목소리로 ‘너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건 아니지?’라고 중얼거리며 눈을 가늘게 떠 올렸다.
<도선 씨한테 죄송해서 쳐다본 거뿐입니다. 정말 생각나는 게 없어서 도선 씨를 팔았거든요. 거듭 죄송합니다.>
석찬이 다시 허리를 숙였다. 도선 역시 갑작스러운 사과에 함께 허리를 숙여 가며 꾸벅꾸벅 인사를 받았다. 희락이 참으로 못마땅한 듯 입술을 비죽 내밀며 ‘뭘 어떻게 팔았는데?’라고 물었다.
<상사병에 단단히 걸리셨다고 했죠. 대표님이 지금 그분 때문에 오늘내일한다고요.>
도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생각도 못 한 말에 질겁하며 눈만 끔뻑거리기 바쁘다. 희락은 오히려 손바닥으로 식탁을 가볍게 두드려 가며 깔깔 웃더니 그다음, ‘그거 되지도 않는 변명이 아니잖아? 지극히 사실만을 말한 거였네’라며 태평하게 말을 꺼냈다.
<그래서? 형들 반응은 어땠는데. 누나는 뭐래? 아버지랑 어머니 귀에도 들어갔나?>
뜬금없지만 이 순간, 도선은 희락이 아까 언급했던 막장 드라마가 떠올랐다. 조만간 불려 가는 일이 생기면 어쩌지. 저 같은 사람이 아드님과 사랑에 빠져서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아니면 아예 확 노선을 바꿔서 부족하지만 아드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하고 이쪽이 먼저 납작 엎드리는 상황도 있을 법하다. 아니, 그것보다 본의는 아니지만 귀하신 막내 아드님을 배곯게 했으니 죽어 마땅하다고 싹싹 빌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는 게 아닐까 싶어졌다.
도선이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안, 석찬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질문에 대답했다.
<궁금해하시죠. 어떤 분인지 묻기도 하시고.>
가만히 있던 희락이 확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답은 잘했겠지.>
석찬은 놀라지도 않았다. 희락의 사나운 표정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고개를 가볍게 끄덕거릴 뿐이다.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대표님이 가족분들께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제가 먼저 그분을 품평하면 그날로 대표님이 절 가만두지 않으실 거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을 거 같다고도 말씀드렸고요. 그랬더니 더는 묻지 않으시네요.>
이제야 희락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꽃 같은 미소를 단숨에 되찾은 얼굴을 슬쩍 곁눈질하던 도선도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렸다.
<민 비서님, 참…… 극한 직업이네요.>
갑자기 생각난 것을 거르지 않고 입에 담았다. 도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석찬이 무뚝뚝한 표정을 지우고 확 웃어 젖혔다. 희락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뭐야, 지금 이거. 내 앞에서 쟤 편들어요?’라며 투덜투덜 불평하고 불만스러움 가득한 입술을 우물거렸다.
결재 서류를 한 아름 끌어안은 석찬이 집을 나섰다.
다시, 둘만의 시간이었다.
끽해야 1주일인데, 무려 1주일이기도 하다.
둘은 떨어져 있었던 시간을 보충하듯 계속 피부를 겹쳤다. 부엌에서 거실로 이동할 때도, 거실에서 침대로 이동할 때마저도 희락은 손을 뻗어 왔다. 깍지가 끼어지며 장난스럽게 앞뒤로 흔드는 동작에 도선은 조금씩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시선이 마주치면 서로 당연한 것처럼 눈을 감았다. 머지않아 입술에서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장난처럼 입 맞추고, 뜨겁게 키스했다.
이젠 나란히 앉는 것도 좋았다. 물론 맞은편에 앉아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여전히 좋지만, 오늘 갑작스럽게 나란히 앉는 묘미를 찾은 듯했다. 미동만 해도 서로의 옷깃이 비벼지는 것도 좋고, 손을 쉽게 맞잡을 수 있는 것도 좋다. 희락이 장난스럽게 관자놀이를 어깨에 기대는 감촉은 그 무엇보다도 좋았다.
희락은 한동안 손장난을 치다가 이윽고 도선의 어깨를 베개 삼아 잠에 빠져들었다. 귓가에 편안하고 고른 호흡이 들렸다.
그저, 정말 딱 그뿐인데도.
도선이 살며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렇게 벅찬 마음이 드는 걸까.
창밖은 아직도 환했다.
시뮬레이션 운운한 것을 비추어 볼 때 희락은 식사를 비롯해서 수면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토막잠이라도 좋으니 부디 편안하게 잠들었으면 한다. 그가 일어나면 오랜만에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을 거였다. 그가 뭘 먹자고 할까. 그게 어떤 것이든 이번에는 꼭 자기가 한 끼 사기로 마음먹었다. 매번 ‘계산 다 끝냈어요’라고 빙글빙글 웃던 그를, 이번만큼은 자기가 흉내 내 보기로 다짐도 했다.
바람이 불었다. 코끝으로 희락 머리칼에서 나는 샴푸 냄새를 즐기는 천국이 이어졌다.
도선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 모든 게 꿈이 아니기에 안심하고 다디단 낮잠을 즐길 수 있다.
* * *
“와아, 나 씻을 여유가 손톱만큼도 없는데 어쩌죠.”
잠시 생각하던 도선도 대답했다.
“저도 좀 그래요.”
그다음 서로 약속한 것처럼 웃었다. 키득거리면서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깊숙하게, 맛보듯이. 연거푸 서로의 입술을 느끼면서도 어쩐지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틈을 주지 않고 하염없이 달라붙는 온도가 굉장히 기분 좋았다.
오늘은 여러모로 굉장한 하루였다.
희락과 손깍지를 끼고 거리를 활보했다. 평일이었지만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길목이었기에 사람으로 다소 붐볐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간혹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어?’ 하고 탄식하며 눈을 크게 떠 올릴 때도 여유 있게 눈웃음을 되돌렸다.
진땀이 나고 마른침을 삼키는 것은 오직 도선의 몫이었다. 붙잡힌 손을 여러 번 스리슬쩍 빼려는 시도는 모조리 실패로 끝났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희락은 더 바싹 옆으로 다가왔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 시선을 신경 썼으면 이렇게 손잡고 나다니지 않았을 거라는 말에 더 할 말도 없었다. 덥다는 핑계 역시 소용없었다. 그는 큭큭 웃더니 이윽고 발견한 가게로 들어갔다. 다시 나왔을 때 도선의 손에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높다랗게 올라간 콘이 쥐어져 있었다.
사진을 몇 번이나 찍혔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이쪽을 보자마자 의아한 시선을 한두 번 던지더니, 그다음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보나 마나 사진이 목적일 게 뻔했다. 이번에도 희락은 신경 쓰지 않았고, 오히려 가끔은 잘 찍어 보라는 듯 포즈까지 취해 가며 렌즈를 응시해 주기도 했다.
사진을 찍힌 것만이 아니다. 희락은 직접 사진을 찍기도 했다. 좀 웃으라는 구박에 억지스레 웃긴 했지만 머릿속은 빙글빙글 돌았다. 그동안은 희락이 알아서 자기 얼굴이 보이지 않게끔 잘 찍어 왔었다. 이번에 찍는 사진은 다를 거였다. 웃으라는 말을 하는 건 렌즈에 담기 위함이다.
희락이 이곳저곳 누비며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 때마다 댓글이 수십 개씩 달렸다. 한동안 잠잠하셔서 걱정했는데 갑자기 폭풍 업데이트냐며 놀라워하던 사람들은, 사진에 희락 외에 한 사람이 더 자리 잡은 것을 보고 더더욱 놀라워했다.
이리저리 쏘다녔다. 도선은 그럴 리가 없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이건 마치 대표님이 일파만파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걸 알리려는 게 아니냐는 착각이 이따금 들었다.
어딜 가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느껴졌다. 점심때부터 저녁을 목전에 뒀을 때까지 계속 그랬다. 도선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어떤 말을 하면 희락이 기뻐하며 자기 청에 응해 줄까. 이런저런 것들을 떠올리다가 드디어 이거 좀 그럴싸하다고 떠오른 것을 입에 담았다. 저녁만큼은 제발 ‘단둘이서 오붓하게’ 먹고 싶다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희락이 얼싸안았다. 사람 보는 곳에서 갑작스러운 포옹은 꽤 부담스러웠지만,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희락이 좋아했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는 말이야. 당신이 나 정도로 얼굴이 팔리고 유명해졌으면 좋겠어요. 빠른 시간 안에.>
식사를 하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여태까지는 저랑 지낼 때 사람 많은 곳을 가급적 피하시는 듯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보여 주지 못해서 안달이 나신 거 같냐고. 도선이 참을 수가 없어서 이것저것 질문했더니 희락이 활짝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당신 얼굴을 볼 때마다, 당신 뒤에 버티고 있는 내 얼굴도 동시에 떠올리면 참 좋을 거 같아.>
가만히 듣던 도선이 이내 졌다는 듯 웃었다. 물론 그다음, 한껏 질색한 표정을 꾸미고서 ‘저는 엄청 불편할 거 같은데요’라고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동안 최대한 사람 없는 곳으로 다니고, 식사는 반드시 별실을 잡고, 데이트는 집으로 한정이었던 것은 전부 희락이 원해서였다. 그는 그 이유도 설명했다. 여태까지는 누가 당신을 쳐다만 봐도 싫은 기분이 들었다고. 마음 같아서는 며칠이든 몇 달이든 밀실에서 단둘만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저는 저랑 있는 모습을 들킬까 봐, 베타랑 다닌다고 오해받기 싫어서 그러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자 희락이 푹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랬으면 당신 퇴근 시간 맞춰서 직접 호디에로 가지도 않았지. 그리고 그런 걸 생각할 정신머리가 나한테 있었겠어요? 고백도 건너뛸 정도로 완전 제정신 아니었는데?>
도선은 그도 그렇다며 마주 웃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나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택시를 이용했다. 뒷좌석에서 계속 손을 잡아 오는 통에 도선은 자꾸만 입술 주변이 허물어졌다. 이런 건 역시 간지럽고 낯 뜨거웠다. 어쩜 눈 하나 까딱 안 하고 태연하게 깍지를 껴 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거 있잖아.>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입술을 겹쳐 왔다. 펜트하우스 전용 엘리베이터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치는 키스 세례에 호흡을 가다듬을 동안 희락은 거의 붙잡아 끌어안듯 복도를 걸었고 현관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평소라면 희락이 직접 운전하는 차로 이동하기에 키스도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 오늘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희락이 쉰 목소리로 청개구리 심보는 이럴 때 더 생기는 거 같다고 중얼거렸다. 정신이 쏙 빠진 도선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응하듯 고개만 두어 번 끄덕여 보였다.
희락이 능숙하게 벗겨 낸 도선의 옷들 위로 그의 고급 슈트가 팽개쳐졌다. 한데 엉켜 침대 발치에서 구르는 옷가지에 잠시 정신이 팔렸지만 곧 다급하게 움직이는 손길에 신음하기 바빠졌다.
희락이 정신을 쏙 빼놓을 기세로 온몸을 핥고 빨았다. 전신을 혓바닥으로 애무해 대며 손에 쥔 러브젤을 전부 들이붓듯 도선의 아래를 적셨다. 피부에 연달아 주어지는 자극으로 벌름거리던 은밀한 안쪽이 망설임 없이 다가오는 손끝에 헤집어지고 한껏 늘어졌다. 오늘 희락은 러브젤을 꺼낼 때 예의상이라도 꺼내 놓던 콘돔에 손도 가져가지 않았다. 아마 그걸 챙길 생각마저 못 하는 듯했다. 도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농담처럼 말해 볼까 했지만 그걸 말하고자 입을 열면 목소리가 아닌 낯 뜨거운 비음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희락이 아프냐고 물을 때마다 간신히 입을 벌려 아니라고 대답하는 게 고작이다.
낯선 섹스다. 그래서 더 흥분되는 걸까.
전희에 굉장히 공을 들이는 희락이 다급하게 아래를 공략하며 무언가를 꾹 눌러 참는 듯 계속 앓는 소리를 내는 게 귀여우면서도 조금쯤 겸연쩍었다.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어 가며 아래를 어루만지는 그에게 도선은 괜찮다고 말했다. 더 참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에 희락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렇게 가혹한 인내심 테스트는 또 처음이라고 중얼거렸다. 도선은 포기하지 않았다. 섹스할 때 당신이 꽉 차올라 느끼는 통증은 오히려 기분 좋다고 말했다. 오늘은 그런 식으로 기분 좋아지고 싶다고 말하는 도선을 보며 희락이 입을 헤, 벌리더니 이윽고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확 치밀어 오른 표정을 지었다.
희락이 안쪽으로 단숨에 침입했다. 고개를 뒤로 젖히며 아래를 꽉 채운 열기에 숨을 몰아쉬었다. 호흡하며 도선의 몸이 흔들릴 때면 안에서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는 살덩이도 더더욱 커져만 갔다. 발끝부터 손끝까지, 머리부터 종아리까지. 찌릿찌릿한 감각이 쏜살같이 퍼진다.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희락의 모습을 비추길 반복했다. 도선은 희락이 가르쳐 준 대로 천천히 움직이는 허리에 두 다리를 꼭 감았다. 그러자 그 역시 눈웃음을 치며 고개 숙였다. 키스를 했고, 서로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입술로 훑어 주었다. 다정함과 따스함이 오가는 위쪽 사정과는 다르게 아래쪽은 질펀한 소리가 온갖 야릇함으로 범벅이다.
희락의 두 손이 도선의 양손을 찾았다. 겹쳐지고, 깍지가 껴져 베개 위로 눌렸다. 손바닥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딱 맞물리는 것이 기분 좋았다. 도선은 긴장도, 아주 약간이나마 안쪽에 남아 있던 망설임까지 모조리 지우고서 지금 이 순간 느끼는 행복으로만 웃음 지었다.
허리 짓에 속도가 붙었다. 희락이 페로몬을 도선의 안에 모조리 꼭 눌러 담을 기세로 움직였다. 몸을 흔들 때마다 보다 더 묵직해지는 희락의 것에 도선은 급기야 꺽꺽 신음하며 바들바들 입술을 떨었다. 목덜미에 이를 세우고 낮게 으르렁거리던 희락이 달뜬 호흡과 비음을 내뱉는 입술을 먹어 치우듯 달려들었다.
희락이 허리를 잘게 돌리며 여린 내벽을 문지르고 비빌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눈물에 통증은 없었다. 휘몰아치는 쾌감과 열기에 완전히 사로잡힌 채다. 도대체 뭐가 뭔지. 어떻게 이런 섹스가 있는지. 아래에서 차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열락이 올라올 때마다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비음을 흘렸다. 고막에 닿는 자기 목소리가 마치 자기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도선이 쉰 목소리로 손을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희락은 눈을 가늘게 뜨며 불만을 표했지만 애원 어린 목소리에 꺾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마지못해 청을 들어주자, 도선은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올려 눈앞의 목과 어깨를 끌어안았다. 둘의 몸이 바짝 맞닿았다.
두 손은 땀으로 젖은 등과 머리칼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한동안 모든 움직임을 멈춘 채 자기 몸에 닿아 오는 손길을 느끼던 희락이 흐릿하게 웃었다.
비명과 흡사한 신음이 터졌다.
희락의 팔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도선의 머리가 침대 헤드에 부딪치지 않도록 보호하듯 감쌌다. 반대편 팔은 시트와 몸 사이에 끼워 넣고서 끈적끈적한 등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다음, 한계까지 안을 파고들던 희락의 것이 더 깊은 곳을 갈망하듯 움직였다.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은밀한 곳은 그가 엉덩잇짓을 하며 안을 후벼 파듯 때려 박을 때마다 잘게 떨렸다.
도선이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느끼는 곳만을 집중적으로 치대는 것이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굵직하고 뜨거운 것이 아래에서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얼마만큼 안을 헤집고 있는지 매 순간 느껴졌다. 그만두라고 하고 싶고, 더 해 달라고 하고 싶다. 상반되는 감각에 현기증이 물씬 올라왔다.
뚫고 뚫리는 시간이었다. 안을 마구잡이로 얕게 헤집다가도 간헐적으로 깊숙한 곳을 찔러 오는 움직임에 속수무책으로 비음이 흘러나갔다. 울음으로 열이 고였던 입 안도 어느 순간 쩍쩍 갈라진 채 갈증으로 타들어 갔다.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구멍마저 따끔거렸다.
서로를 나눠 갖는 과정에 집중했다. 도선은 희락을 꽉 부둥켜안고서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시야가 부옇게 변할 때면 그저 눈을 감고 아래에서 전해지는 감각에만 신경을 집중했다.
기나긴 섹스였다.
지금 몇 번 사정을 마쳤고, 또 몇 번이나 서로의 이름을 불렀으며, 허벅지와 어깨에 서로 몇 번이나 이를 세웠는지 알 수 없었다. 이따금 시선이 마주칠 때면 상대의 눈빛에 몸을 떨어 가며 전율했다. 정신없이 내달리던 시간이 끝나고서 상대의 붉어진 뺨과 목덜미에 웃다가, 웃음이 키스로 이어졌고, 어느 순간 삽입으로 바뀌었다. 물크러진 안쪽은 무리 없이 희락의 것을 받았다. 원래대로 돌아가려던 내벽은 쑤시듯 밀고 들어오는 그의 것을 부드럽게 감싸며 이윽고 닥칠 쾌감을 기대하듯 떨림을 머금었다.
짧은 말 한 마디 없이 오직 호흡과 시선으로만 감정을 나누긴 처음이었다. 희락이 달려들며 꿰뚫으면 도선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등을 얼싸안았다. 전신이 얻어맞은 것처럼 저릿저릿했지만, 희락이 굵직한 것을 안으로 찔러 넣으면 달콤한 신음이 절로 새어 나갔다.
희락이 화사하게 웃으며 손바닥으로 땀에 젖은 얼굴을 가벼이 어루만지고 쓸어 주었다. 도선 역시 감각이 없는 팔을 올려 그의 땀 맺힌 이마를 매만졌다.
바로 보이는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앞으로 골백번 더 본다 한들 이 남자의 눈동자에, 콧날에, 입술에 질리는 날이 올까 싶을 정도다. 그만큼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싶어졌다. 땀에 젖은 얼굴이라도 상관없다. 드라이기의 바람으로 머리칼을 허공에 비죽 세우며 장난치는 아이 같은 얼굴도 좋다.
쾌감으로 적셔졌던 눈가가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감정으로 젖어 들어 갔다. 기분 탓일까. 가까이에서 바라본 희락의 속눈썹도 땀이 아닌 다른 것으로 젖어 있는 듯했다.
둘은 동시에 눈을 감고서 서로의 입술을 찾았다.
오래도록, 영원하도록 입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