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 앳 미(Look at me) 1
Prologue
나 섹스하는 중이구나.
조희락은 몽롱한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속도 울렁거렸다. 숙취 때문에 완전히 망가졌다. 시야가 빙글빙글 도는 것도 아주 죽을 맛이다.
아는 사람은 많았으나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이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친구들과 아주 오랜만에 만나 술잔을 주고받았다. 당연히 자제가 안 됐다. 서로 할 말도 많았고 들어야 할 얘기도 많았다. 빈 병이 쌓이는 속도도 무시무시했다.
그건 그렇고.
희락은 조금 전부터 본능적으로 페로몬을 조절 없이 발산했다. 보다 더 깊숙한 곳을 찌르기 위해 허리도 열심히 흔들어 댔다.
이건 굉장한 압박감이다. 이 정도로 뻑뻑하고 물기 없는 구멍은 처음인 거 같다. 자신의 것을 좀처럼 맛있게 먹어 주질 않는다.
밑에 깔려 헐떡대는 이 오메가는 도대체가 부드럽지 않다.
또한 쉽지 않다.
공간이 꽉 찰 정도로 페로몬을 흩뿌리고 있는데 오메가는 좀처럼 기대했던 반응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극우성 알파가 이 정도로 페로몬을 흘려 대고 있다. 어지간한 오메가라면 얻어맞은 페로몬에 취한 채 벌써 아래가 흠뻑 젖고도 남았을 거였다. 여태까지 맛봤던 오메가들은 적극적으로 다리를 벌리며 쾌감으로 허리를 비틀곤 했다. 그런데 이 오메가에게서는 기대했던 반응이 없다.
극우성 오메가인가.
자신의 페로몬쯤은 코웃음 치며 견뎌 낼 수 있는 오메가라면 이 반응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다만.
희락은 어느 순간부터 위화감이 들었다.
이 섹스는 굉장히 이질적이고 낯설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향이 없다.
이 오메가에게 어떤 향도 맡을 수가 없다.
참 이상한 감각이다.
페로몬이 느껴지지 않는 오메가라니.
그것도 한창 섹스하는 중이다. 오메가든 알파든 본능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페로몬을 방출하기에 최고의 상황이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먹어 치우며 최상의 쾌락을 맛보고자 내달리고 있다. 이럴 때 페로몬을 오히려 잠재우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희락은 정신없는 와중에 자존심이 상했다.
이런 굴욕은 여태까지 없었다.
일부러 거칠게 박았다. 안을 파고들기 위해 차분히 꿈틀대던 허리도 어느 순간부터 가감 없이 움직였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다.
오메가는 베개에 고개를 처박은 채다. 양손으로 베갯잇을 꼭 움켜쥔 채 희미하게 신음하고 있었다. 희락이 허를 찌를 듯 강하게 쳐올릴 때마다 희미하게 울음 섞인 탄식이 들렸다.
뭘까, 이 상황.
점점 더 기분이 가라앉았다. 다정하게 박아 주든 열정적으로 파고들든 이 오메가는 언제까지고 이렇게 엎드린 채 끅끅 신음만 참을 생각인 듯하다.
이런 건 재미없었다.
이 상황은 섹스라기보다 마치…….
희락은 얼굴을 구겼다. 열심히 율동하던 허리도 천천히 움직임을 멈췄다. 팔을 세워 지탱하던 상체를 아래로 내렸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이 빈틈없이 밀착됐다.
“이봐요.”
고개를 숙여 오메가의 귓가에 입술을 바싹 가져갔다. 딱 달라붙은 피부 탓에 아래에 깔린 오메가가 움찔 떠는 게 바로 느껴졌다. 바들바들 떠는 몸이 귀여워서 저도 모르게 목덜미와 귓불을 한 번 핥아 주었다. 맞닿은 피부에서 더욱 진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희락은 벙긋 웃고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혹시 당신을 강간하고 있는 겁니까?”
무슨 이런 질문이 다 있나 싶어도 어쩔 수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 행위를 곧장 중단해야 하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베개에 파묻힌 고개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좌우로 맹렬히 움직이는 머리를 보며 희락이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하긴. 내가 그럴 리 있나.
아무리 취했어도 싫다는 오메가를 힘으로 찍어 눌러 강간까지 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강간이라는 행위 자체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거부하는 상대를 기어코 침대로 끌고 왔다는 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자존심의 문제다. ‘나 싫다는 사람은 나도 싫다’라는 거다. 상대가 부족하지도 않다. 안기고 싶어 하는 오메가는 줄을 세울 정도로 있다. 거기서 고르면 그만인 일이다.
그런 내가 뭐가 아쉬워서 강간 같은 걸 하겠어.
희락은 헛웃음을 쳤다. 잠시나마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서 피가 식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럼 우리가 합의하에 뒹굴고 있다는 거네요.”
그럼에도 굳이 한 번 되묻는다. 강간이 아니라면 다행인 일이지만 이 상황이 주는 위화감이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았다.
아까는 즉각 반응했던 오메가가 이번 질문에는 꽤 뜸을 들인다. 귀를 기울여 보니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린다. 강간이 아니라면 이 질문이 이렇게까지 고민할 문제인가 싶다.
언제까지고 침묵으로 일관할 것만 같은 오메가 덕분에 이상한 오기가 생긴다. 희락은 안에 파묻어 두었던 것을 사용해서 안을 휘저었다. 원을 그리듯 부드럽게 꿈틀대다가도 이따금 때려 박듯 강하게 찌르기를 반복했다. 안을 치댈 때마다 밑에 깔린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게 흡족함을 자아냈다.
희락은 바로 보이는 귓불을 한 번 깨물고서 다시 물었다.
“대답해요. 맞습니까?”
그러자 아주 미적지근한 움직임으로 오메가의 고개가 움직였다. 상하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머리를 보며 희락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베개 아래 파묻혀 있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어떤 표정일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굉장히 떨떠름한 눈빛을 짓고 있을 게 틀림없다.
“그럼 얼굴 좀 봅시다. 비싸게 굴지 말고.”
그 어떤 때보다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좌우로 흔들리는 고갯짓도 그랬고 몸마저 심하게 떨고 있다. 명백한 거부 의사에 희락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알았어요.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
말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희락은 떨리는 몸을 달래듯 어깨와 목덜미를 시작으로 보이는 곳곳 혓바닥을 사용해 부드럽게 빨아 주었다. 짭조름한 땀을 핥아 대다가 이따금 충동적으로 쪽 소리 내 입을 맞춰 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효과가 꽤 있다. 긴장으로 굳었던 몸이 조금씩 물렁거리는 게 느껴졌다. 흥분으로 시뻘겋게 변했던 귓불이나 목 주변도 이젠 딱 보기 좋을 정도의 붉음을 되찾았다. 그게 참 먹음직스러웠다.
가장 궁금했던 게 어찌어찌 해소되니 이젠 또 다른 궁금증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여러 말들이 입 안에 맴돌았다.
젖을 기미가 도통 보이지 않는 하반신도 그렇고, 왜 이렇게까지 페로몬을 흘리지 않는지도 이상한 일이다. 어쩌다가 우리가 지금 침대에서 몸을 나누게 됐는지 역시 궁금하기 짝이 없다.
혹시 내 페로몬이 별로예요?
물론 이것도 궁금했지만 굳이 묻고 싶은 마음까진 없다.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한동안 자존심이 갈라진 채 부득부득 이를 갈 것만 같으니까.
얼굴을 보여 주기 싫다고 하니 느낌으로 해결하고 판단해야 할 상황이 이어졌다. 이쪽만 기분이 좋은 것은 상대에게 미안한 일이다.
덕분에 희락은 그 어떤 때보다 상대를 민감하게 관찰했다. 안을 파고들었을 때 들리는 앓는 소리라든가, 목덜미에 이를 세울 때 느껴지는 떨림이라거나. 그런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자 노력했다. 피부가 밀착된 탓에 아주 미세한 반응도 즉각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허리 놀림도 보다 더 세밀하게 조정했다. 이 오메가가 찔러 주면 좋아서 자지러지는 부분을 꼭 찾고 싶었다.
기분이 좋았다.
이 섹스는 없는 것투성이다. 알파 페로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애액을 쏟아 내는 내벽이 없다. 오메가 특유의 다디단 페로몬도 없다. 좀 더 깊게 찔러 달라거나 더더욱 강하게 움직여 달라는 탐욕스러운 호소 역시 존재하질 않는다.
그런데도 기분이 좋다. 왤까.
희락의 시선이 옆으로 기울었다. 베갯잇을 쥐었다가 놓았다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쉴 새 없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손가락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그 양손 위에 자신의 두 손을 겹쳤다. 오메가는 정말로 깜짝 놀란 듯 짤막하게 탄식마저 터트렸다. 반응이 꽤 좋다. 내친김에 양손 단단히 깍지도 꼈다. 그러자 오메가가 어깨마저 떨며 다시금 놀라움을 표현했다.
“마음에 들었어요? 이런 게 좋아?”
잠시 사이를 두고 나온 반응은 긍정의 고갯짓이다. 부끄러운 듯 상하로 끄덕여지는 머리를 보며 희락은 픽 웃고 말았다.
정말 간지럽다. 이런 섹스는 처음이다.
손을 꼭 잡고서 몸을 단단히 밀착한 채 오직 허리만을 움직였다. 머뭇거리듯 혹은 거부하듯 안을 꼭꼭 여미던 안쪽도 매 순간 조금씩 물크러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오메가는 합의하에 치러진 섹스일지라도 다소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게 손 한 번 맞잡은 것으로 이다지도 쉽게 부드러움을 띤다. 안을 터트릴 기세로 커지는 자신의 것을 필사적으로 머금으려 노력하는 것도 모를 수가 없다.
오메가가 깍지 낀 손에 살짝 힘을 넣었다. 이깟 게 뭐라고 이토록 고민까지 할까 싶을 정도로 망설임이 느껴지는 손짓이었다. 희락은 속으로만 웃으며 그 손짓에 답하듯 얽힌 손가락을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오메가가 희미하게 웃는 듯했다.
콘돔을 안 낀 거 같은데.
평소에는 철두철미할 정도로 콘돔을 챙기는데 오늘따라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긴.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놓였는지도 모르는데 그런 자잘한 것이 기억날 리 만무하다.
머리가 점점 더 어지러워졌다.
이대로라면 하다가 잘 것 같다. 사정감이 차오를 때마다 그 이상으로 수마도 머릿속을 덮어 왔다. 오메가는 딱 좋을 정도로 자신의 것을 품어 주었다. 그 기운에 이끌리듯 허리를 돌릴 때면 아주 가느다랗게 들리는 신음도 굉장히 듣기 좋았다.
입술을 목덜미에 파묻고서 귀를 기울였다.
귓가에 달뜬 호흡이 들려왔다. 고막을 부드럽게 두드리는 듯한 숨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 근처가 달짝지근함으로 물든다.
이건 이거대로 좋다.
하지만 목소리를 들었다면 더 좋았을 거 같다.
달콤하게 젖은 음성으로 이쪽 이름을 불러 줬더라면 흡족했겠지. 이 오메가는 어떤 목소리를 가졌을지 새삼 궁금해졌다.
희락은 소리 없이 웃었다.
목소리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섹스를 하고 있다. 이 상황 자체가 우습기도 했고 황당하기도 했다. 군데군데 사라지고 없는 기억의 파편이 이제야 조금쯤 답답하게 여겨졌다.
섹스가 동시에 떠안기는 나른함과 피로함에 눈가가 가물가물해졌다. 희락은 저절로 감기는 눈꺼풀을 내버려 뒀다.
어쩌면 다 꿈일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좋다. 기분이 좋은 건 달라지지 않으니 꿈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그저 이 오메가 안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