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19/21)

3. 송선호, 생각지 못한 상견례?

비싸다는 건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것이다.

비싸다고 꼭 다 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고 가끔 택도 없는 가격에 팔리는 수준 미달의 사기 품들도 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들은 분명히 비싸다.

“이거 너무 예쁘다. 도현 씨한테 딱이겠지?”

송선호는 어쩌다 어머니의 쇼핑에 딸려가게 되었다.

‘비싸네.’

송선호는 가격표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는 스타일이 약간 난해했다. 그도 값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게 몇억짜리 옷이든 샀다. 보통 사람들처럼 본인이 감당 못 할 금액이라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작 옷값 따위 얼마가 들든 그가 사지 못할 것은 없었다. 그 정도 되는 계급의 남자가 비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 돈값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도현이는 이런 게 더 잘 어울리지 않나요?”

송선호는 매우 페미닌한 드레스를 집어 들었다. 몸매가 은근히 드러나면서 여성스러운 곡선을 잘 살릴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재질도 좋고 색깔도 예뻤다. 지연이 그가 들어 올린 옷을 보았다.

“그런 거 너무 무난하잖아.”

“예쁜데요?”

“딱 봐도 불편해.”

“예쁜데. 도현이가 입으면 진짜 잘 어울릴 거 같은데.”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옷에도 눈을 두었다. 들고 있는 것보다 더 섹시한 옷이었다. 아래위로 트임이 더 깊고…. 그녀가 저걸 입고 늘씬한 다리를 은근히 드러내며 자신의 넥타이라도 잡아당기면서 유혹한다면 얼마나 섹시할까.

‘아까 밖에 진열되어 있던 그런 속옷 같은 거 입고….’

몸매가 드러나면서도 우아한,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그 안에는 빨간색의 섹시한 속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너무 좋을 것 같다. 너무 좋을 것이다.

‘사야겠다.’

송선호는 다른 섹션으로 먼저 가 있는 어머니의 눈치를 슬쩍 봤다가 옷을 바꿔 들고 조용히 계산을 하러 갔다. 지연이 제안한 옷보다 더 비쌌다. 하지만 송선호는 그녀가 보기 전에 얼른 사야겠다는 생각에 가격표도 제대로 보지 않고 얼른 계산했다.

“엄마, 보고 계세요.”

“응? 어~”

지연은 옷을 보면서 대충 대답했다.

원래는 아버지가 왔어야 했는데, 주말인데도 회사에 일이 생겨 못 오게 되자 송선호에게 으름장을 놓아가며(송선호도 그 회사의 상무다. 하지만 엄마는 재단 이사장님….) 대신 보냈다. 저번에 바빠서 어머니와의 약속을 파투 냈는데 두 번이나 그럴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왕좌와 사랑을 맞바꿨지만, 어쨌든 그게 송선호에 대한 아버지의 갑질을 약하게 만들진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화하였다. 뭐, 원래 이런 것이야 나중에 다 밑에서 대접받을 걸 아니까 위쪽의 갑질을 듣는 거 아니겠는가.

예전에는 아버지 비서를 보내기도 했고, 집에도 사용인들이 있고, 이제 어머니도 비서가 생겼으니,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지연 이바노프가 쇼핑을 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냐만, 이런 건 성의의 문제인 것이다. 편하게 사용인이나 비서를 쓸 수도 있지만 굳~이 이 돈 많고 시간 없는 바쁜 남자들이 잠자코 짐꾼 노릇을 해주는 게 바로 그녀에 대한 존중이 아니겠는가. 송영제가 굳이 아들을 보낸 것은 자기를 똑 닮은 아들을 보면서 아내가 자기 생각을 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송선호는 아까의 속옷을 도현의 사이즈로(그녀의 친구들 이름은 기억 못해도 도현의 사이즈는 기억했다.) 사서 얼른 돌아왔다. 지연은 옷을 다 고르고 계산을 하러 가다가 그걸 발견하고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휴, 네 아빠도 그러지는 않는데.”

“…….”

여자들이 보기에 남자들이 이런 쪽에서 시선 처리를 똑바로 못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들은 그들의 욕망에 대해 누군가의 눈치를 잘 안 보기 때문이다. 아까 아들이 은근히 그 속옷 가게를 쳐다보고 있는 걸 몰랐겠는가. 송선호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얼른 변명했다.

“좋아할 것 같아서 산 거예요, 도현이가 좋아할 것 같아서.”

“니가 좋아하겠지.”

“다, 다른 건 사실 거 없으세요?”

“자, 계산해라.”

직원들이 옷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송선호는 아버지 카드를 재빨리 꺼내서 직원에게 내밀었다. 송선호와 그의 비서가 짐을 나눠 들었다. 가게를 나왔다.

“도진이 옷 사주고 싶은데.”

“걔 은근히 까다롭다. 데리고 다니면서 사야 돼.”

“도진이는 키가 커서 뭘 입혀도 다 멋지더라구요. 티셔츠 한 장만 입혀도 너무 예쁘던데, 내 동생.”

“너 자꾸 걔 어리광 받아주면 나중에 엄마만 피곤해져. 적당히 해라.”

“뭐 어때요. 귀여운데.”

“그건 그렇지만.”

송선호는 응?! 하고 고개를 돌렸다. 옆옆 가게에서 알렉시스 라인하트와 도현 킬스버그가 대화를 하면서 나오고 있었다. 송선호는 흡 하고 숨을 참았다. 도현이만 마주쳤으면 상관없는데 장모님(?)도 계셨다. 송선호는 지연 이바노프의 팔을 잡았다.

“어머니.”

“응? 왜?”

다른 쪽으로 가려던 지연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녀도 도현을 발견했다.

“어머! 도현 씨.”

도현이야 가끔 백화점에서 마주칠 때도 있었으니 그리 놀랄 것도 아니지만 알렉시스 라인하트를 발견한 지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니?”

도현도 그녀를 발견했다. 알렉시스도 고개를 돌렸다. 정말 똑 닮은 모녀가 아닌가.

‘부럽다.’

지연은 보자마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도현 씨 어머니. 이렇게 뵙네요. 지연 이바노프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선호 씨 어머니 되시죠? 알렉시스 라인하트입니다.”

알렉시스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서로 두 손을 잡고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지연이 상기된 얼굴로 그녀와 도현을 번갈아 보았다.

“언제 한번 뵙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우연히 뵙네요. 따님이랑 오붓하게 쇼핑도 오시고.”

“선호 씨 어머니도 이렇게 잘생긴 아드님이랑 쇼핑 다녀 좋으시겠어요.”

송선호는 긴장한 얼굴로 얼른 인사를 했다.

“어머님, 오셨습니까. 오신다고 말씀하셨으면 제가 만사 제치고 달려갔을 텐데…. 시차는 괜찮으시죠?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으시구요? 짐 주십시오. 제가 들겠습니다.”

송선호가 각이 잡혀 알렉시스가 들고 있는 짐과 도현이 들고 있는 쇼핑백까지 전부 들었다. 알렉시스가 웃었다.

“어머, 남의 집 귀한 아들을.”

“우리가 남인가요.”

지연도 웃으면서 대꾸했다. 그대로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나란히 걸었다. 도현은 자신의 어머니의 왼편에, 송선호도 자신의 어머니의 오른편에서 걸었다.

“우리 아들이 너무 귀찮게 해드리는 건 아닌지. 도현 씨 어머니께 잘해드린다고 나름 부산은 떠는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아무리 잘난 자식을 가지고 있어도 겸양을 떠는 것이 예의다.

“아닙니다. 선호 씨 덕분에 서울 올 때마다 호강합니다. 선호 씨가 원체 훤칠하고 잘생겨서 같이 다닐 때마다 이런 아들 있으신 선호 씨 어머니는 참 좋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상대 쪽은 아니라며 그 자식을 추켜세워주는 것이다. 알렉시스의 말에 지연이 대꾸했다.

“저는 항상 딸이 있었으면 해서 도현 씨 어머니가 참 부럽더라구요. 이렇게 똑똑하고 예쁜 딸이 둘이나 있으시니.”

“자식은 많을수록 기쁨도 힘듦도 두 배죠. 똑같습니다.”

“애 키우는 게 쉬운 건 아니라도 이렇게 다 키워 놓으면 나쁘지 않죠.”

“훌륭하신 아드님을 두고 계신데요. 겸양이 지나치십니다.”

“호호. 알렉시스 씨야말로 딸 자랑을 하지 않으시는 게 대단하십니다. 저는 도현 씨 같은 딸이 있었으면 매일같이 자랑하고 다닐 텐데요.”

“부족한 엄마였습니다. 도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독립적인 성격이라 제가 중간에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도 이렇게 잘 자라서 저도 참 기쁩니다.”

물론 딸과 아들의 미묘한 차이는 있었다. 잘난 아들은 많이 겸양하여 상대의 칭찬을 더 유도하는 것이 좋고 잘난 딸은 너무 겸양하는 것도 면을 깎기 때문에 딸의 훌륭함을 부모가 먼저 말해주는 것이 좋다. 어른들의 체면을 차리면서 서로의 격도 높여주고 나이가 찬 자식들을 적절하게 선보이는 것이다. 효율? 가성비? 그런 걸 따지기 때문에 더더욱 체면과 위신, 말이 중요한 것이다.

“도현 씨가 얼마나 어머니를 존경하고 본받고 싶다고 했는데요. 다 사돈께서 따님을 잘 키우시어… 어머, 사돈이라고 말하고 말았네요.”

“제 딸을 그렇게 좋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하네요.”

알렉시스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사돈.”

엄마가 딸을 가지고 사업을 할 모양이시다…. 도현은 한 걸음 정도 알렉시스의 뒤를 따라 걸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송선호를 힐끗 보았다.

‘그래…. 저 남자가 얼마짜리야.’

결혼 자체가 원래 M&A의 원조다. 손익을 안 따지는 것이야말로 바보짓이지. 결혼 생각은 전~혀 없더라도 손익 정도는 따져볼 수도 있는 것이다. 저 남자가 어마어마한 돈 덩이였기 때문이다.

오른손엔 알렉시스의 쇼핑백을, 왼손에는 지연의 쇼핑백을 들고 그 위에 도현의 쇼핑백까지 다 얹은 송선호는 뒤의 비서에게 앞으로의 일정 조정을 지시하며 이 근처의 레스토랑에 대해 전부 알아보라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도현과 눈이 마주쳤다.

“어떡해. 아버지도 불러? 부를까?”

그가 다가와서 고개를 빼 도현의 귀에다 속닥거렸다. 도현은 피식 웃었다.

“오버하지 마.”

그녀도 그에게 속닥거렸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어머님 자주 오시지도 않는데. 이럴 때 다 같이 한 번 보는 거지.”

“자기가 그러면 우리 엄마가 얼마나 부담스럽겠어? 그냥 오붓하게 나랑 쇼핑하고 수다나 떨려고 오신 건데.”

“그, 그런가? 아, 그래. 어머님이랑 너도 회포를 좀 풀어야지…. 그럼 나는 빠질까? 가? 엄마도 데리고 갈까?”

“아! 오버 좀 하지 마. 가만히 있어!”

“아, 알았어.”

도현이 신경질을 냈다. 송선호는 아차, 하고 도현의 눈치도 보더니 가만히 입을 다물고 ‘여기서 나는 짐꾼이다~ 여기서 나는 사장도 뭣도 아니고 그냥 짐꾼이다~’하는 얼굴로 조용히 걸어갔다.

어머니 둘은 아주 웃는 얼굴로, 어느새 둘이서 손까지 맞잡은 채 하하 호호 웃으며 브랜드 매장을 돌고 물건을 사고 짐은 송선호와 비서들에게 떠넘기며 종횡무진 돌아다니시다가 쇼핑백은 차에 실어 먼저 각자의 거처로 보내고 웃는 얼굴로 서로에게 권했다.

“그럼 시간이 괜찮으시면 식사 괜찮으실까요?”

“그럼요. 영광입니다.”

지연이 웃는 얼굴로 송선호를 보며 눈짓하자 송선호는 얼른 앞으로 나와 고급 다이닝 식당의 이름을 세 개 읊었다. 알렉시스 라인하트가 이제 메트로서울에 있는 식당에 대해선 잘 모르니 사돈께서 정하시라 하고 결정권을 넘기니 지연은 그중에서 가장 최고급의 다이닝 레스토랑으로 결정했다.

말씀은 오로지 어른들만 나누시고 송선호와 도현은 그들의 질문에 답하거나 그들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호응하는 것으로 거의 발언권을 제한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칼질 하나도 전부 평가받는 느낌이라 상당히 긴장했다. 특히나 송선호는 완전히 각이 잡혀 있었다.

이게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부모의 꼰대 짓이나 허례허식이라 생각하는 것은 부모가 물려줄 것이 별로 없는 주제에 그런 격식만 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허다해서 그렇다. 부모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송선호나 도현의 클래스라면 부모의 격과 위신을 지켜주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자연히 이를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두 분은 자식들을 겸양하면서도 은근히 치켜세우고, 자신의 사업이나 하는 일에 대해서도 말을 나누시고, 자신의 남편들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웃는 얼굴로 오랜 식사 시간을 가지셨다.

다이닝 식당을 나오며 도현조차도 약간 피곤한 얼굴이 되어 중얼거렸다.

“집에 가고 싶다. 저 맛있는 걸 먹으면서 맛도 제대로 못 느낄 지경이잖아.”

“조금만 더 힘내. 원래 이런 거라고.”

“넌 어떻게 알아?”

“그거야 다들 하는 거니까….”

송선호가 그렇게 말하자 도현이 그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왜? 한 번 다른 여자랑 결혼해보려고 해서 아는 거야?”

“아니! 그건 상견례까지 가지도 않았거든…! 그리고 그건 니가 나 차서 그런 거라고! 내가 완전히 넋 나가서 결혼이라도 해서 잊어야겠다고…!”

“너 말이야. 응? 남자가 말이야. 응?”

“뭐, 뭐? 내가 뭐?”

“줏대 없이 이 여자, 저 여자 막 들이대고 그러는 거 별로지 않아? 엄마한테 확 말한다? 이거 완전 흠 아냐?”

“아, 아니…. 도현아, 자, 자기야. 그러지 말고. 그거 진짜 내 최고 암흑기 때란 말이야. 너한테 차여서 완전히 정신 나가 있을 때였다고. 나 너밖에 없단 말이야. 나 정말 내 모든 걸 너한테 다 바쳤는데….”

송선호는 억울하고 또 초조한 얼굴로 도현의 허리를 감싸 안고 그렇게 속닥거렸다.

“진짜야?”

“당연하지. 진짜야. 내가 이런 거로 거짓말이나 할 것 같은 남자로 보여? 내가?”

“자기? 자기는 잘생긴 남자지.”

“그래. 내가 빠지는 게 있어, 뭐가 모자라? 나만큼 잘난 남자 정말 없는 거 너도 알면서. 흥.”

“삐쳤어?”

“안 삐쳤거든?”

“자기 삐치면 귀여운데.”

둘은 어머니들에 앞서 식당을 나와 잠깐 그러고 있다가 어머니들이 나오는 걸 보지 못했다. 어머니들은 알콩달콩하게 서로 껴안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거의 동시에 피식 웃었다.

“둘이 좋아 죽네요.”

“우리는 부모 노릇 하기 피곤한데.”

“그러니까요. 그래도 둘이 좋으면 됐죠. 솔직히 도현 씨 결혼 생각도 그렇게 없잖아요.”

“그런 것 같아요.”

알렉시스 라인하트가 답했다.

“도현이 문제에 대해서는 온전히 도현이의 의사에 따르기로 마음먹었거든요. 도현이가 열여덟 살 때부터요.”

“그래요? 그래도 그때는 뭔가 결정하기엔 너무 어리지 않나요?”

“딸은 부모가 존중해주면 존중해줄수록 잘 사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도 도현이가 선택하는 건 뭐든, 실패든 성공이든 전부 다 관심을 가지고 존중으로 대했죠. 지금이야 기억도 안 나겠지만요. 이제 자기가 자신에 대한 모든 걸 책임지겠다는 얼굴을 하는데 제가 강제로 뭘 할 수는 없더군요.”

“역시 아들딸은 다른 거군요. 우리 애 아빠는 선호 교육에 엄청 엄격했어요. 가풍이 그렇기도 하구요. 송씨 집안 남자들, 반은 우리 애 아빠랑 별다를 것 없이 다 잘난 남자들인데 반은 신세 망쳤거든요.”

“그런가요? 몰랐네요.”

“자랑할 건 아니라서…. 아들은 아무래도 신체적으로나 뭐로나 자유롭잖아요. 특히나 돈까지 많으니 여유로움이 방종의 빌미가 되는 거죠. 회장님께서 속된 말로 아들 까지는 거 놔두면 패가망신 하는 거라고, 단속 똑바로 못하고 내 얼굴에 먹칠하면 너부터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단단히 으름장 놓으시곤 했거든요. 당신의 아들도 반은 버렸으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모범이 중요해서 그래요.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모범이 중요하고 딸에게는 어머니의 모범이 중요한 거죠.”

“맞아요. 애 아빠는 아들에게 엄격했던 것만큼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했죠.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것만큼 아들에게도 엄격했던 게 아마 아들을 자신과 같은 남자로 존중해주는 것이었을 거예요. 지금이야 아직 아버지한테 못 당하니까 가만히 숙이고 있어도 가끔 보면 우리 아들이 자기 아빠보다 한술 더 떠요.”

“저도 우리 막내 보면….”

알렉시스는 잠시 도진 라인하트를 떠올려보며 약간 한숨 쉬었다.

“자식에게 사랑과 관심을 줄 여유가 있고 내가 자식을 가지고 싶으니까 낳고 길렀어도…. 자식 키우는 게 쉬운 게 아니더라구요.”

“저도 잘 모르니까 덥석 선호 가졌었죠.”

“주변에서 얼마나 잔소리를 하던지.”

“고생하는 건 난데 다들 이래라저래라.”

“그러니까요. 우리야말로 귀한 집에서 태어나 귀하게 커서 죽을 때까지 귀하게 살 사람들이었는데요. 결혼하고 애 낳는 순간 그것만으로 제 다른 면은 전부 무시되고 아내, 엄마라는 통념으로만 취급되는 게 굉장히 싫었죠. 그 사회적 통념이 귀한 통념이 아니잖아요. 특히나 이 땅에서. 노예나 다름없지. 내가? 이 알렉시스 라인하트가? 참나.”

“아, 그러니까요. 저는 오랫동안 나는 그것뿐인가 보다, 하고 살다가 애가 크고 어른이 되고 저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이혼도 하려고 했구요.”

“아이들은 좋아요. 만약에 다시 돌아간다면 결혼은 안 하고 아이만 낳았을 것 같아요. 제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하아, 저는 고민이 되네요. 우리 애 아빠 정도 되면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어요.”

“당연하죠. 저라도 제 남편이 지연 씨 남편 정도만 됐어도 이혼 안 했어요. 차라리 죽이면 죽였지.”

“하하하.”

지연은 농담이라고 웃었다가 어랏, 하고 생각했다.

‘의외로 좋은 생각일지도. 아니, 정말로.’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지연은 도현에게 매우 질척거리는 아들의 애정행각을 보며 잠깐 어쩜 좋아, 하고 뺨에 손을 댔다.

“우리 아들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참 도현 씨한테는 저렇게 정신을 못 차리더라구요. 저러다 도현 씨가 질리기라도 하면 우리 아들 어떡해요.”

“귀여워서 괜찮을 것 같아요. 지연 씨가 남편에 대해 고민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 도현이도 고민하게 되겠죠. 이미 하고 있겠네요. 나도 내 전남편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했었고.”

“비싼 남자라는 건 비싼 값을 한다는 거니까요. 참.”

“얼굴이 문제예요.”

알렉시스가 웃으며 말했다. 지연이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전남편도 잘생겼군요?”

“잘생겼어요. 그러니까 결혼까지 했죠.”

지연도 피식 웃고는 다시 도현과 송선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참 딸이 좋아요. 지금 와서 보면 선호는 우리 애 아빠 입맛대로 기른 작품이라 내 배로 낳은 자식인데도 가끔 쟤가 어려워요.”

“딸도 마찬가지예요. 도현이야 어른스럽게 절 배려해주는 것뿐이지, 도현이도 도진이도 어려워요. 자식들이 우리랑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어려운 거겠죠. 우리가 자식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니까 어려운 거예요.”

“자식들 쉽게 쉽게 막 대하는 사람들 보면 놀라워요.”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게 옳아요. 자식들에게 자신이 부모나 타인에게 착취당한 것을 되갚아 받으려는 인간들이 여전히 많죠. 미성숙한 인간들이에요.”

“아이들만 불쌍해요.”

“맞아요.”

운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어른이 되고 자신의 인생에 다른 누군가를 변명으로 삼지 못할 때가 온다. 스스로에게도 말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빠릿빠릿하게 두 어른의 안색을 살피며 일정을 챙기던 송선호가 도현에게 홀려 헤벌레하여 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지연이 다가가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만해, 그만. 우리 나온 지 꽤 됐어.”

“엄마, 언제 나오셨어요? 헉! 장모님…!”

벌써 장모님이냐. 물론 그들도 서로 사돈사돈거렸지만 말이다. 송선호는 도현의 립스틱이 잔뜩 묻은 얼굴로 알렉시스를 돌아보았다. 알렉시스는 웃는 얼굴이었다. 송선호는 제풀에 찔려 변명했다.

“제, 제가 그렇게 많이 밝히는 편은 아닙니다! 요새 일이 바빠서 도현이랑 같이 있을 동안만이라도 좀 붙어 있고 싶어서…! 그것보다도 이번엔 도현이가 먼저…! 맞지?”

송선호가 얼른 도현을 돌아보며 대답을 종용했다. 지연이 대신 변명했다.

“아휴, 얘가 사돈께 잘 보이겠다고 기를 쓰고 있는 거라. 귀엽게 봐주세요.”

“저번부터 벌써 귀여웠어요. 얼굴부터 닦아야겠어, 선호 씨.”

알렉시스는 그의 행커칩을 뽑아 그의 얼굴을 직접 닦아주었다. 그는 황송하다고 연신 감사의 말을 했다. 도현도 엄지로 그의 얼굴을 문질렀다. 지연도 참, 하면서 그의 옷깃을 바로잡았다. 양손의 꽃을 넘어서 아름다운 미녀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았다. 송선호는 그쪽에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어딜 감히 똑바로 쳐다보는가. 똑바로 마주 보는 것만으로 보던 사람들이 시선을 피했다.

‘값을 할 거란 말이지.’

도현은 잠깐 송선호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차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으로 와서 기사들이 나왔다. 송선호는 지연 이바노프의 차 뒷문을 먼저 열었다.

“어머니,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다음에 뵙겠습니다.”

도현과 알렉시스가 인사를 했다. 지연도 알렉시스와 다시금 손을 맞잡고 도현과 포옹을 했다. 그리고 지연은 차 문을 잡고 있는 자기 아들을 보았다. 약간 복잡한 기분이 쓰쳤다.

“내 아들.”

그녀는 송선호의 뺨을 한 번 만졌다. 그리고 차에 탔다.

“그럼 어머님, 도현아.”

송선호는 대기하고 있던 차의 뒷문을 열었다. 그가 도현에게 사준 R사의 진주색 고급 세단이었다. 알렉시스는 도현과 송선호를 바라보았다.

“나 먼저 갈게. 도진이도 온다고 했고. 둘이 오붓하게 있다가 와.”

“어머님….”

“그럴까?”

송선호는 감동한 얼굴로 알렉시스를 바라보았고 도현은 그렇게 반문하며 송선호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도현의 차는 알렉시스 라인하트만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송선호는 마지막까지 차의 꽁무니를 바라보고 있다가 도현을 홱 돌아보았다.

“나 오늘 완전 괜찮았지? 그러니까 어머님이 널 나한테 이렇게 맡기고 가신 거 아냐.”

“내가 물건이야?”

“날 믿는다는 거지!”

송선호는 기뻐했다. 그가 이렇게 기분 좋아 보이는 것도 드문데 말이다. 참나. 도현은 잠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였다. 그는 도현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자신만만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도현은 그냥 웃겨서 웃었다. 그가 도현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어디 갈까? 놀러 갈까? 뭐 하고 싶어? 말해봐.”

“음~ 일단 너 때문에 못 한 쇼핑을 마저 해볼까?”

뭐, 이런 건 나쁘게만 보지 않고 잘 사용하는 게 맞을 것이다. 도현은 송선호를 다시 백화점으로 데려가서 사고 싶은 걸 왕창 샀다. 그는 기쁘게 돈을 썼다. 그리고 야경이 멋진 와인 바에서 와인을 마시고 멋진 프레지덴셜 스위트로 갔다. 알렉시스의 말대로 오늘은 둘만 오붓하게 있을 예정이었다.

둘은 웃음소리와 함께 침대로 쓰러졌다. 술까지 약간 들어간 송선호는 진짜 기분이 좋았다.

“자기야~”

그가 그녀의 뺨에 쪼옥 입을 맞추며 힘을 주어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음…! 읏! 알았어. 알았어. 하하.”

그가 도현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뺨과 목에도 입을 맞췄다. 알다시피 이 남자는 굉~장히 비싸게 구는 남자라 이런 짓을 잘 안 한다. 오늘 진짜 기분이 좋다는 말이었다. 그는 도현의 턱 끝만 손가락으로 살짝 받치고 웃음소리를 내며 계속 입을 쪽쪽 맞췄다.

“너도 참 단순한 남자야.”

침대에 팔꿈치를 대고 살짝 얼굴을 괸 도현이 그렇게 말했다. 송선호가 대꾸했다.

“인생을 단순하게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몰라?”

“…그건 그렇네?”

미르 킹쉴드를 봐라. 그의 얼굴, 그의 몸, 그의 성격, 그의 젊음. 그렇게 타고난 것만으로도 이미 특권이다. 송선호는 웃으면서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세를 바꾸어 도현의 위로 올라갔다.

“요즘 다시 자신감이 좀 생겼어. 내가 세상에 못 가지는 게 어디 있어?”

“흐응?”

도현이 그의 넥타이를 슬렁 잡았다.

“그래?”

그리고 콱 잡아당겼다.

“우리 엄마가 사돈, 사돈 하니까 이제 나 가진 거 같아?”

“…아니야?”

그는 그녀와 몸을 마주 대고 가까이 얼굴을 한 채로 약간 진지하게 물었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난 처음부터 네 거였는데.”

“거짓말.”

“왜 이게 거짓말이야?”

“내가 네 것이 되어주지 않으면 너도 널 줄 생각이 없었잖아.”

도현은 그의 다리 사이로 무릎을 약간 아플 정도로 쿡 찔러 넣어 다시 자세를 뒤집었다. 그가 신음을 흘렸다. 그녀는 그의 위에 올라타서 그의 비싼 실크 넥타이를 목줄처럼 짧고 강하게 잡았다.

“안 그래?”

“…그럼 나 같은 남자를 그냥 맨입으로 먹게?”

도현은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송선호는 그녀의 눈빛에 지지 않으려고 했다. 얼굴을 가까이하고 넥타이를 쥐지 않은 다른 손의 검지로 그의 입술을 살살 희롱했다. 이 입술이 말이다. 도현을 짜증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쾌락을 주기도 했다.

“너는 비싸다?”

도현이 속삭여 물었다. 송선호가 인상을 약간 찌푸리며 답했다.

“당연하지.”

도현의 입술이 호선을 그린 채 웃음소리를 냈다. 송선호는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린 채 잠깐 입을 다물고 있다가 슬쩍 물었다.

“그래서 싫어?”

도현은 또 웃었다.

“난 비싼 것만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그렇게 말하며 도현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혀가 그의 입술을 가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송선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으응….”

그가 신음을 흘리며 그녀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가 고개에 힘을 주어 그녀의 입안에 자신의 혀를 넣으려고 하니 그녀가 그의 이마를 손으로 딱 눌러서 침대에 고정시켰다. 잠깐 그녀가 입술을 떼자 그들의 입술 사이로 타액이 잠깐 이어졌다가 떨어졌다. 그는 벌게진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둘 다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었다.

“…….”

“…….”

둘은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현은 잠깐 그의 얼굴을 다이아몬드 작품이라도 감상하듯이 바라보며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녀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굉장히 흥분되었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강하게 쥐었다. 손가락이 얇은 속옷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여성기 위를 압박하자 그녀가 신음을 흘렸다.

“아앗.”

그녀의 얼굴이 굉장히 섹시해졌다. 송선호는 방금 전까지 그녀와 타액을 나누며 입을 맞췄는데도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장이 엄청 세게 뛰고 있었다. 송선호는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그녀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추며 그녀의 타액을 훔치고 속옷 위로 그녀의 다리 사이를 애무하며 그녀가 입은 드레스의 지퍼를 천천히 내렸다.

‘너무 예뻐…. 부드러워. 너무 부드러워. 너무 좋아.’

그녀의 입술과 뺨, 목덜미가 너무나 부드러웠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좋은 향기가 났다. 그녀가 너무 좋았다. 여행을 갔다 와서는 확실히 바빴다. 하지만 도현의 장난기는 그대로라 출근을 하려는 그를 곧잘 덮쳐서 그의 멋지고 비싼 옷을 포장지라도 벗기듯 휙휙 아무렇게나 벗겨 구겨버렸다. 그녀를 만족시킬 때까지 온 힘을 다하다 보면 시간이 술술 가서 정신을 차리면 지각하기 일보 직전이라 구겨진 양복을 입고 출근을 하고 회사에서 갈아입고는 했다. 중요한 회의라도 있는 날에 붙잡히면 낭패하여 애원도 하고 화도 내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놀리고 괴롭히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너무나 행복하고 좋았다.

“앗. 으응…. 으으음….”

그녀가 눈을 감은 채로 그의 키스와 애무를 느끼며 눈을 가만히 감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너무나 예뻤다. 그녀의 드레스가 열린 지퍼를 따라 벌어지는 모습이 마치 꽃이 피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가 드러났다. 벌어진 지퍼 사이로 손을 넣어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만졌다. 너무나 부드러웠다.

“부드러워….”

그는 그녀의 얼굴을 홀린 듯이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가 짙은 속눈썹으로 둘러싸인 예쁜 눈을 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송선호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그녀의 옷을 마저 벗겼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늘어졌다. 검은색 하의 속옷만 남긴 채 그녀는 알몸이 되었다. 알몸이 된 그녀가 더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녀의 사슴 같은 목과 어깨, 늘씬한 팔과 다리, 여성적인 선이 극대화되는 허리와 골반. 송선호는 천천히 시선을 내려 그녀의 몸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다시금 올라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도현이 웃었다. 그의 눈빛이 섹시했다.

송선호는 옷을 하나도 벗지 않은 상태였다. 양복의 겉옷 단추만 풀어 양쪽으로 벌려져 있었을 뿐 베스트도 다른 것도 그대로였다. 도현은 배 위에 허리를 펴고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가진 내 지분보다 내가 가진 네 지분이 훨씬 더 많은데 말이야.”

“응….”

송선호는 순순히 그렇게 말했다. 그는 완전히 홀린 눈으로 도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누군가 봤을 때는 그가 아니라 그녀가 트로피처럼 보일까? 그게 전부 그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를 약간 괴롭히게 된다. 도현도 그가 가진 모든 특권이 부러운 모양이다. 잘생기고 능력 있는 재벌 3세의 젊은 남자. 그가 가질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말이다.

“옷 벗어.”

도현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는 그녀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다가 그녀의 말대로 자신의 베스트 단추를 풀고 겉옷과 함께 벗었다. 넥타이를 풀어 던졌다. 그는 허리를 더 일으켜 허리띠를 풀었다. 셔츠 단추를 풀자 몇 겹이나 되는 옷으로 꽁꽁 감춰둔 그의 몸매가 드러났다. 큰 키에 글래머러스한 몸매. 모양도 딱 그녀의 스타일이었다. 그도 알몸이 되었다.

이제 사귄 지 제법 되었으니 안 그럴 법도 한데, 그는 알몸으로 그녀와 마주할 때마다 매번 긴장했다. 도현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는 아주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엉덩이와 허리가 이어지는 부분을 쓰다듬었다. 그는 도현의 얼굴을 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리더니 자신의 얼굴 앞에 바로 있는 그녀의 가슴을 보았다. 한 손에 알맞게 들어올 정도의 크기에 젖꼭지도 예뻤다. 좋은 냄새가 났다. 송선호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정말 부드러웠다. 천국은 여기 있는 것이다. 그녀가 웃었다. 천국은 여기 있었다.

“도현아….”

그녀의 이름을 주문이라도 외우듯 부르며 그녀의 가슴 사이에 양 뺨을 비볐다.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와 골반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날씬한 허리와 배도, 탄력 있고 부드러운 다리도…. 그리고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그녀의 왼쪽 가슴에 입술을 누르고 그녀의 젖꼭지를 엄지로 쓰다듬었다.

“으응….”

도현이 움찔하며 신음을 흘렸다. 그의 오른손이 그녀의 허리를 다시금 쓰다듬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음핵을 꾸욱 눌렀다.

“하앗. 아…!”

도현은 섹시한 신음소리를 내며 그의 목덜미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의 넓고 단단한 어깨와 날개뼈, 머리카락을 만졌다. 그의 피부는 자신의 피부와는 달랐다. 좋은 냄새가 나고 단단하고 살짝 건조한 듯했다. 그는 크고 아름다운 남자였다. 품에 넘치는 그의 커다란 몸을 쓰다듬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만족감이 들었다. 이상할 정도로 말이다.

“송선호…. 아앗. 하아….”

도현은 그의 뒷머리를 꽉 잡았다. 그의 손가락이 자신의 것을 만지고 있었다. 미끌미끌한 소리가 났다. 그는 도현의 가슴을 빨았다. 도현은 본능적으로 그의 머리를 꾸욱 눌렀다. 그녀는 눈을 뜨고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하아….”

도현은 그의 잘생긴 얼굴을 내려다보며 잠깐 숨을 헐떡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음핵에서 떨어져 그녀의 살을 손으로 가득 잡고 있었다. 도현은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섹시했다.

“해줘.”

도현이 그렇게 말하며 그의 얼굴에 자신의 하반신을 가까이 대었다. 그의 머리도 눌렀다. 송선호는 눈을 크게 뜨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얼굴이 확 빨개졌다. 그가 약간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넌 진짜….”

“응? 내가?”

“너무 야하잖아….”

“흐응.”

도현은 웃었다. 송선호는 그녀의 허벅지를 끌어안았다. 그의 뜨거운 입술이 음핵의 앞부분에 닿았다. 도현의 그곳은 엄청 민감했다.

“아!”

도현이 하늘로 고개를 들며 신음을 냈다. 그의 혀가 음핵에 닿으며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으응! 하아…! 송선호. 송선호…! 하아. 좋아…. 좋아. 더 세게. 아앗!”

잘난 남자의 얼굴을 깔고 앉는 건 언제나 즐거운 유희다. 게다가 이들은 그녀에게 깔아 뭉개지면서도 기뻐했다. 재미가 없을 리가 있는가. 도현은 그의 얼굴을 완전히 내리눌렀다.

“읍…!”

그는 끙 하고 침대에 그대로 짓눌렸다. 도현은 두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과 귀를 꽉 잡았다.

“하아…! 아앗! 하…! 송선호…. 아읏. 아아앗!”

그녀는 크게 신음을 냈다. 그리고 곧 눈을 질끈 감고 절정을 느꼈다. 하반신이 짜릿짜릿하며 뜨거워졌다. 그녀의 온몸이 빨갛게 변했다. 그녀는 뜨거운 한숨을 쉬며 부르르 떨었다. 끝내주게 기분이 좋았다.

“푸하…!”

송선호가 그녀의 여성기에 깔려 있다가 그녀의 엉덩이를 떼어내며 숨을 들이켰다. 그는 잠깐 기침을 하며 입가를 닦았다. 그의 얼굴이 엄청 빨갰다. 그의 것이 아주 단단하게 서 있었다.

‘진짜 예쁜데…. 오늘….’

도현은 온몸이 늘어지는 것 같은 나른함을 느끼며 그의 단단한 허벅지를 만졌다. 그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그의 빵빵한 가슴에 입을 쪽 맞췄다. 누가 미르 킹쉴드에게 비할 수 있겠냐만 그도 꽤나 글래머러스한 건 사실이다.

‘뭐, 필리페 버밍험만 한 몸매는 진짜 드문 거니까. 미르는 진짜 대단하지. 다니엘이랑 에반은 모델 같고…. 송선호도 예쁘다.’

원래 할 때는 다른 남자들이랑 비교할 수밖에 없다. 이건 다들 그럴걸? 당연한 거다. 다른 남자들이랑 비교를 꼭 하고 그들보다 질이 떨어진다면 한시라도 빨리 관둬야지. 안 그렇다면 기분 좋은 것이고.

도현은 그의 허벅지를 슬슬 문지르며 다시 그와 몸을 가까이했다.

“뽀뽀하고 싶은데. 빨리 닦아.”

그는 프레지덴셜 스위트에 비치된 티슈로 입가를 닦았다. 그는 약간 도취된 느낌을 받고 있었다.

‘도현이가 해준 것도 아닌데….’

아랫배가 돌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구음에 절정을 느끼는 환희의 목소리만으로도 뒷골에 소름이 돋았다. 도현은 그의 섹시한 목덜미에 입을 똑 맞추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빛이 그의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도현아.”

송선호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녀의 허벅지를 자신의 허벅지 위에 겹치고 그녀의 여성기에 자신의 남성기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리고 둘은 끊임없이 입을 맞추면서 섹스했다. 그의 단단하고 아름다운 몸이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그는 자신의 입술을 그녀의 귓가에 문지르며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도현아…. 기분 너무 좋아…. 하윽…. 나, 나올 것 같아.”

“으응…. 벌써?”

“벌써… 가 아니잖아…. 으윽. 나 아까부터 참았어.”

“참아…. 같이 하자….”

“으윽…. 언제…? 갈 것 같아? 하아….”

그는 참기가 꽤 힘든지 그녀의 허리를 꽉 안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그는 도현의 것을 손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잘해도 손의 정교함을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도현은 그의 젖꼭지를 검지와 엄지로 잡아 살살 문지르며 꼬집었다.

“으윽! 아, 거기 하지 마.”

송선호가 도현의 손목을 잡았다. 도현이 웃으며 속삭였다.

“기분 좋았어?”

“으윽….”

그는 얼굴이 벌게져서 신음을 흘렸다. 그의 찌푸린 얼굴이 굉장히 섹시했다. 도현은 그의 뺨을 느리게 날름 핥았다. 그가 약간 진저리를 쳤다. 도현은 그의 손이 자신의 음핵을 빠르게 문지르기 시작하자 그의 자지를 손으로 꽉 잡았다.

“아으응…! 하아. 앗. 아앗. 으응….”

“으윽! 아파!”

“하앗. 아프기만 한 거 아니면서….”

“도, 도현아, 귀… 는…. 으윽….”

그가 다급한 숨소리를 내며 헉하고 온몸을 움찔했다. 도현도 그의 자지 끝을 검지로 둥글게 그렸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절정에 달했다.

“으으응…!”

“아…!”

둘은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송선호는 그녀의 하반신과 자신의 것을 마구 부볐다. 서로의 체액이 이리저리 묻었다. 도현은 그의 넓고 멋진 등을 꽉 끌어안고 그의 엉덩이도 한 손으로 꽉 쥐었다. 둘은 짜릿한 쾌락을 함께 느끼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송선호가 도현의 목덜미에 입술을 비볐다.

“도현아….”

“송선호….”

둘은 그대로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잠깐 있다가 입을 맞추었다. 그들은 그대로 서로를 쓰다듬으며 침대에 누워 함께 잠들었다.

다음날, 송선호는 도현보다 먼저 잠에서 깼다. 그는 매우 좋은 집안에서 교육을 매우 잘 받은 영식이었다. 그건 수많은 좋은 습관들이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몸을 옆으로 돌리며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그리고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온 햇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잠들 때 마지막으로 본 얼굴도, 눈을 뜰 때 처음 보는 얼굴도 그녀가 되었다. 송선호는 마음이 욱신거렸다. 감동적이었다. 너무나 행복했다. 그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응…?”

도현은 잠에서 깼다. 그녀는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의 냄새가 났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몇 시야?”

“6시.”

“더 자자….”

“응….”

그녀의 다리가 송선호의 다리 위로 올라왔다. 송선호는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댄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30분 뒤 함께 일어나 샤워를 같이했다.

“응? 내 거야? 어제 산 거야?”

“어? 응….”

비서한테 양복이랑 도현의 옷을 가져오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옷장을 보니 이미 새 옷이 걸려 있었다. 진주색에 허리가 쏙 들어간 쉬스 드레스였다. 쇼핑백에 들어있는 상자를 여니 와인색에 가까운 빨간색 속옷이 나왔다. 도현이 실크 가운을 입은 채로 속옷을 들어 올렸다. 넥타이를 매고 있던 송선호는 그녀의 시선을 느꼈지만 모르는 척했다. 이런 건 자연스러워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별말 없이 그 속옷을 입었다. 엄청 잘 어울렸다.

‘섹시하다….’

송선호는 참지 못하고 계속 그녀를 힐끗거렸다. 그녀는 송선호가 사온 드레스도 입었다.

“송선호.”

그녀를 힐끗힐끗 보고 있다가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니 자신의 옷으로 시선을 홱 돌렸다.

“어. 왜?”

“나 지퍼 좀 올려줘.”

송선호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며 천천히 지퍼를 올려주었다. 여자들 옷 중에 혼자서 입기 불편한 것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건 꽤나 의미심장하다. 송선호 같은 남자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다. 이런 소용이라도 있어야 그녀와 같은 여자가 자신을 한 번 더 보게 되는 거 아닌가. 옷을 다 입고 그녀가 간단하게 화장도 한 뒤 손을 잡고 호텔 조식을 먹으러 갔다.

“우리 취리히 갔던 거 갑자기 생각난다.”

그녀가 말했다.

“취리히? 왜 갑자기?”

“거기서 마셨던 커피 진짜 맛있었는데…. 풍경도 너무 예쁘고. 다시 가고 싶다.”

“한 번 갈까? 어머님도 계시니까.”

“응…. 난 바다 좋아해서 산은 자주 가진 않는데, 스위스는 좋더라구.”

“알았어. 일정 짜볼게.”

“엄마랑 잠깐 같이 살까?”

도현이 말했다.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송선호는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으, 응? 왜? 왜 갑자기?”

“아니… 도진이도 자꾸 같이 살고 싶다고 하고. 전에 엄마가 우리 집에 왔던 것처럼 나도 잠깐씩은 가서 가족끼리 일 년에 한두 달 정도는 같이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고.”

“…….”

그녀가 가족들과 오래 떨어져 지낸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생각 정도는 할 수 있고 그녀의 동생이 같이 살자고 노래를 부르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송선호의 입에서는 쉽사리 그래, 라는 말이 안 튀어나왔다.

“어차피 도진이는 독립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고. 예전에 못했던 것들도 다 같이 해보고….”

도현은 하나하나 꼽아보며 그렇게 말하다가 송선호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뭔가 딱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이었다. 도현은 피식 웃었다.

“왜?”

“아니… 좋은 생각인데…. 매년 한두 달씩이나…. 스위스 춥고….”

“자기도 시간만 나면 자기 집에 가잖아?”

“아니, 나는 가업이 있으니까….”

송선호는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커피를 벌컥 마셨다. 도현은 웃었다.

“자기가 여기 있는데 어딜 가냐고?”

“두 달은 너무 길잖아, 두 달은…. 윽.”

“참나. 자기 출장 가고 이럴 때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거든? 그리고 두 달이나 간 적은 없잖아.”

“정 그러면 자기가 주말마다 오면 되잖아.”

“그건…!”

송선호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대꾸하려다가 응? 하고 표정을 풀었다.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응? 뭐가?”

“주말마다 취리히 가서 어머님 뵙는 거.”

그 말에 도현도 심하게 어이가 없었다.

“자기…. 요새 나보다 우리 엄마가 먼전가 봐?”

“아니, 그런 말이 아니지…! 나한테 네가 중요하니까 어머님도 중요한 거지!”

송선호는 그렇게 지레 찔려 화를 냈다가 식탁 밑으로 그녀의 구두가 자신의 바지 밑단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헉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 도현아, 여기 나 아는 사람 있어. 어? 나 아는 사람 있다고.”

“그래?”

도현은 그대로 아침 식사 시간 내내 그를 괴롭혔다.

“자, 자기야, 내가 뭐 잘못했어?”

아침 식사를 끝내고 엘리베이터를 타자 송선호가 그렇게 물었다. 도현은 송선호의 엉덩이를 만지면서 입을 맞췄다.

“왜 그래? 좋으면서.”

그녀는 그의 엉덩이를 한 대 찰싹 쳤다. 그의 넥타이를 목줄처럼 그녀에게 꽉 잡혀 있었다. 차를 탈 때까지도 그랬다. 송선호는 백기를 들었다. 이대로 갔다간 꼴사나운 차림으로 출근해야 할 것이다.

“왜, 왜? 말로 해, 말로. 그, 그만….”

“난 이제 네가 좋은데. 그래도 가끔 밉단 말이야.”

도현이 그의 잘생긴 코를 꾸욱 누르며 그렇게 말했다. 송선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왜?”

“넌 나랑 결혼하고 싶다면서 나보다 다른 사람들한테 더 잘하려고 하잖아. 뭔지 알아. 내 인생이 우리 엄마나 너나 에반이나 다니엘이나, 그런 다른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처럼 보이는 거지? 내가 약해 보이는 거잖아. 그래서 그렇게 취급하는 거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도현은 그의 위에서 일어났다. 그는 완전히 당혹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넥타이를 바로 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도현 킬스버그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였다. 그녀와 처음 만날 때부터 그녀는 가족도 없이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여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름답고 위태롭고, 누구나 그녀를 먹잇감처럼 노리고 있고…. 자신을 선택한다면 반드시 지켜줄 거라고 생각했다. 평생.

‘약해 보이는 게 아니라….’

그녀는 팔짱을 끼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약간 불안해졌다.

“도현아.”

그는 도현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보며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녀가 돌아보기를 말이다.

‘내가 언제 사람한테 그렇게 휘둘렸다고.’

도현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사람이라면 다들 주위에 다소 영향을 받긴 하지만 도현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었다. 물론 절대적으로 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캘리 박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그녀는 적게 받는 편이었다. 그건 분명히 도현이 강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남자는 왜 항상 그녀를 이런 식으로 취급하는 걸까.

‘내가 약하길 바라서겠지.’

도현은 그를 돌아보았다. 도현의 눈길을 받자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도현은 그의 턱을 검지로 슬슬 쓸다가 그의 단정한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어떡해야 할까?”

“으, 응? 뭘?”

“아직도 기가 너무 세단 말이야. 송선호.”

“내가? 아, 아닌데. 아닌데요, 자기님.”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것처럼 굴어야지 그제야 고분고분해지는 남자라. 자기가 비싼 남자라는 걸 잘 알아 항상 가격을 세게 부른다. 본능적으로 그랬다. 전에 지연에게 말했던 것처럼 그는 생각날 때마다 기를 꾹 눌러주는 게 필요하다.

“어쨌든 엄마랑 도진이랑 얘기해 봐야겠어. 스위스 좋으니까.”

도현은 다리를 꼬고 등받이에 편히 기댔다. 송선호는 약간 눈치를 보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로웰 선생님은 어쩌고….”

“아, 선생님한테도 같이 가자고 할까?”

“나도 주말엔 갈게.”

“으으응. 아니야. 넌 목적의식이 너무 투철해서 주위에 있는 사람이 피곤하다고. 가족끼리 오붓하게 지내러 가는데 부담스럽잖아. 나 딱히 결혼 생각 없는 거 알면서 요새 너무 오버해, 너.”

“그, 그건….”

지금까지도 사랑으로 그녀를 지배하려는 남자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리고 다들 시시했다. 그래서 그냥 남자라는 것들의 수준이 이 정도겠거니, 라고 생각했다. 에반을 만났다. 진정한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려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다니엘과 미르를 만났다. 에반과도 재회했다. 전부 도현에게 지배당하고 싶어 했다. 자기 자신을 바치고 싶어 했다.

이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아닌 척했지만 결국엔 도현의 것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제값을 다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심보란 말이다.

송선호는 끄응 하더니 도현의 얼굴을 애처롭게 보았다.

“보고 싶으면 어떡해?”

“우리 엄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연히 너지….”

그는 한숨을 푹 쉬었다가 다른 손으로 자기 두 눈을 감쌌다가 겨우 대답했다.

“일단… 알았어.”

“니가 알았든 말든 난 어차피 갈 건데?”

“안다고….”

“흐응.”

그는 약간 상처받은 것 같았다. 도현은 슬그머니 다시 그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다니엘이나 에반 같은 남자들은 도현을 깊게 이해하고 공감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려고 노력도 했다. 미르 킹쉴드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여자에게 기쁨을 준다. 어쩌면 도현 킬스버그에게 송선호는 영원한 타인일지도 모르겠다. 말하지 않으면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요구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다. 힘을 보여줘야 굴복하며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깎는 일은 절대 없다.

그의 회사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좀 늦어(회사 주위를 4바퀴 정도 돌았다.) 검정색에 번쩍번쩍한 R사의 고급 대형 세단의 뒷좌석에서 구르듯 튀어나와 엉망이 된 양복과 베스트, 넥타이를 손에 쥐고 머리를 정리하고 셔츠를 바지 안에 넣으며 빠른 걸음으로 회사 건물로 향했다. 잠깐 뒤를 돌아보았더니 약간 내린 창문으로 그녀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송선호는 벌건 얼굴로 빠르게 셔츠 단추를 잠그다가 그걸 보고 슬쩍 자기도 손을 약간 흔든 후 쫓기듯 회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