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장 (8/29)

7장

* * *

“아펠슈트루델 하나랑 아이스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포크는 두 개 드렸는데 더 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네. 맛있게 드세요.”

새로 추가한 디저트 메뉴의 반응이 제법 괜찮았다. 초반에는 이름조차 생소하여 오히려 주문을 받는 재환 쪽이 버벅거리기도 했으나, 이제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손님 몇 중 하나는 꼭 이 파이를 주문해 가니 세훈이 어깨를 으쓱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애인의 솜씨가 인정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 뚝딱 오빠!”

“안녕하세요, 뚝딱 오빠!”

“어, 응….”

마침 카페 안으로 가게 밖 햇살만큼이나 환한 웃음과 함께 희연과 상지 두 사람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처음 알게 된 사이라고 그랬는데, 저렇게 보면 제일가는 단짝 친구가 따로 없었다. 참 보기 좋았다. 단, 두 소녀가 저를 부르는 호칭 때문에 재환은 마냥 웃으며 그들을 반겨 주기가 조금 뭐했다.

문제의 회식 날 이후, 재환에게는 ‘뚝딱 오빠’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처음에는 뭐든지 뚝딱뚝딱 잘해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턱도 없는 착각이었다. 요새는 춤 못 추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다나 뭐라나. 물론 본인의 참혹한 춤 실력은 스스로 가장 잘 알았으므로 딱히 부정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재환은 하는 수 없이 조금 신경이 쓰였다.

춤 좀 못 추는 거야 기실 재환 인생에서 그다지 문제될 요인은 아니었다. 기타만 잘 칠 수 있다면 재환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어찌 됐든 그는 무대에 서는 사람이었고 기타를 치면서도 그렇게 삐걱삐걱 움직인다면 그건 조금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다만 무대에서의 제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으니 그냥 걱정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적당히 리듬은 타면서 연주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그조차 맹랑한 착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오빠는 이제 퇴근이요?”

“응, 컵만 좀 채우고 퇴근하려고.”

그새 옷을 갈아입고 나온 희연이 헤헤 웃으며 재환 옆에 섰다. 이번에도 뚝딱 오빠라 그러면 ‘그 정도로 심각했어…?’라고 넌지시 물어보려 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더는 그 적나라한 변명이 들려오지 않았다. 공연 때 핸드폰으로 영상이라도 찍어 볼까, 하고 골똘히 생각하던 중 팔목에 낀 고무줄로 머리를 묶은 희연이 해맑게 재환을 불렀다.

“맞다, 뚝딱 오빠!”

“어, 응?”

“지난번 오디션 보신 건 어떻게 됐어요? 혹시 오빠 공연 안 하나 궁금해서….”

또다시 들려온 변명에도 재환은 염두에 뒀던 질문을 하는 대신 씩 입꼬리를 올렸다. 그 미소는 여지없이 앞에 선 소녀의 심장을 자르르 떨리게 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일정 잡혔어. 다다음주에 해. 시간 되면 보러 올래?”

제가 뭘 물었는지도 순간 잊은 희연은 번쩍번쩍 빛이 나는 듯한 재환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살짝 고개를 기울인 재환이 희연과 보다 가까이서 눈을 맞추었다.

“희연아…?”

“어…. 네! 가, 갈게요! 가야죠! 갈 거예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손님이 앉았다 간 자리를 정리하던 상지가 다 놀라 별안간 큰 소리를 낸 희연을 휙 쳐다보았다. 재환도 비슷한 표정으로 희연을 보는데, 시기적절하게 가게 안으로 손님 두엇이 들어왔다. 다소 과장되게 ‘어서 오세요!’를 외친 희연은 얼른 재환의 손에서 투명 컵 봉지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직원 휴게실 쪽으로 꾹꾹 재환을 떠밀었다.

“오빠, 빨리 퇴근하세요! 기타 가져오셨던데, 오늘 연습 있죠?”

“으, 응. 그래.”

괜히 공연 보러 오라는 얘기를 해서 신경 쓰게 만들었나? 재환은 고개를 갸웃하며 카운터를 나섰다.

마감까지 고생할 동생들에게 수고하라 인사하고 카페를 나오자 어서 오라는 듯 바깥의 후끈한 공기가 재환을 맞이했다. 설상가상 전신에 두른 시꺼먼 옷이 직사하는 햇빛을 쭉쭉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등에는 기타 가방을 메고 손에는 페달 보드 가방까지 들고 있으니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죽죽 땀이 흘렀다.

그럼에도 속으로 불평 한 번 하지 않은 재환은 부러 더 씩씩하게 걸었다. 드디어 첫 공연 일정이 잡혔는데, 아무리 덥다 한들 합주하러 가는 길이 고되게 느껴질 리 없었다. 오히려 재환은 진심으로 즐거웠다. 멤버 넷이서 몇 날 며칠 고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사를 싹 뜯어고치길 참 잘했다 싶었다. 이제 남은 건 그 가사로 더 열심히 연습하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입에까지 붙어 버린 가사를 흥얼거리며 부지런히 걷던 중, 전면이 유리로 된 한 가게 앞에서 문득 재환의 발이 멈추었다. 햇빛이 너무 밝아 제 모습이 더 진하게 비치는 유리 너머로 보이는 이는 분명 아는 얼굴이었다.

평소보다 비교적 편한 차림을 한 세훈이 앞치마까지 매고 가게 한편에 노릇노릇한 빵을 진열하고 있었다. 커다란 철제 쟁반을 들고 분주히 집게를 움직이는 모습이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때마침, 세훈 뒤에 또 다른 한 명이 다가와 섰다. 역시나 재환이 아는 사람이었다.

흰색 옷에 제빵모를 쓴 태혁이 톡톡 세훈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입에 쏙 하니 무언가를 넣어 주었다. 태혁이 준 것을 먹은 세훈은 씩 웃으며 집게 쥔 손으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빙긋 미소 지은 태혁이 무어라 더 말을 건넸고, 세훈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태혁이 세훈의 입술에 쪽, 입을 맞추었다. 뒤이어 세훈이 놀란 듯 눈을 커다랗게 뜨는 장면이 유리 너머 재환에게까지 훤히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능글맞은 웃음을 지은 세훈이 더 입맞춤을 받아 낼 기세로 쭉 목을 앞으로 뺐다. 그러자마자 태혁의 두 손이 휙 위로 올라와 삐죽 나온 입술을 막아섰다. 그때까지 눈치 없이 가게 앞에 서 있었던 것이 실수였다.

“……!”

“……!”

“……!”

세훈을 피해 팩 고개를 돌린 태혁도, 태혁과 눈이 마주쳐 버린 재환도, 한 박자 늦게 재환을 발견한 세훈도 동시에 모두 얼음이 되었다. 투명한 유리는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공기를 막아 주는 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하, 재환이가 좋은 구경을 했네.”

“시끄러.”

회식 날과 비슷하게, 또다시 세훈의 등에서 퍽 하는 소리가 울렸다. 얼결에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된 재환은 엉거주춤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소리가 적잖이 커 저도 모르게 놀란 표정이 지어졌다. 그런 재환 앞에 태혁이 휙 커다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먹어.”

“예…?”

“우리 빵 조금 쌌어. 밴드 연습하러 가는 길이었다며. 멤버들이랑 나눠 먹으라고.”

받아 든 봉투의 무게로 짐작하건대, 절대 ‘조금’이라 할 만한 양이 아니었다. 공짜로 이 많은 빵을 받을 수 없었던 재환의 얼굴에 난처함이 떠올랐다. 그러자 방금 대차게 등짝을 맞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멀끔한 얼굴로 세훈이 하하 웃으며 재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뭐, 입막음 비라고 생각해.”

“입막음 비요…?”

“어디 가서 태혁이가 나한테 먼저 뽀뽀한 거 봤다고 말하지 말라고. 쟤가 부끄러움이 워낙 많아서.”

이번에는 저 아래쪽에서 퍽, 하는 소리가 터졌다. 여전히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세훈은 과장되게 ‘아야!’ 하며 허리 숙여 정강이를 매만졌다. 물론 전혀 아파 보이지는 않았다.

“너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래?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말고 먹어.”

심히 무시무시한 얼굴로 세훈에게 으르렁거린 태혁이 얼른 표정을 갈무리하고서 재환에게 안심시키는 말을 건넸다. 제빵모 아래 드러난 두 귀가 조금 발긋한 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 같기도 했으나, 설사 그렇다 한들 재환이 아는 체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빵 봉투를 꼭 품에 안은 재환은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을게요.”

“먹어 보고 맛있으면 다음에 와서 많이 팔아 줘!”

재차 태혁이 세훈을 노려보며 ‘습-!’ 소리를 냈다. 가게에 들어선 이후 줄곧 표정이 경직되어 있던 재환은 그제야 어깨의 긴장을 풀고 작게 웃었다. 어째서인지 안고 있는 빵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빵 먹고 힘내서 열심히 연습하라는 세훈의 말에 또 한 번 꾸벅 인사한 재환은 가게를 나섰다. 재환이 유리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세훈은 휙휙 팔을 흔들었다.

이윽고 다시 두 사람만 남은 가게 안. 비스듬히 카운터 모서리에 등허리를 기댄 세훈이 씩 웃으며 모자를 고쳐 쓰는 태혁에게로 고개를 틀었다.

“재환이 쟤, 인기 많을 것 같지?”

“어느 쪽에.”

“양쪽 다?”

대답 대신 ‘그만 네 가게에나 가 봐.’ 하며 태혁은 카운터 뒤편 주방으로 쏙 들어갔다. 어느새 앞치마를 휙휙 푼 세훈이 느물느물 웃으며 태혁을 뒤따랐다.

“뽀뽀 한 번만 더 하고!”

합주실 안에 고소한 빵 냄새가 진동했다. 안 그래도 내리 2시간을 연습하고 다들 출출해졌던 차라, 너나없이 재환이 가져온 빵을 반색하며 먹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달아 보이는 빵을 드럼 뒤에 앉아 우물우물 씹던 태군이 모처럼 건설적인 질문을 꺼냈다.

“그럼 우리 정확히 뭐 뭐 공연하는 거임?”

“씨유, 미쓰유, 러브유 세 개랑. 가장 신곡인 니드유도 하고. 그럼 일단 총 네 개야.”

태혁의 연락처를 모르니 세훈에게 대신 빵 잘 먹었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재환이 답했다. 금세 세훈으로부터 ‘태혁이한테 전해줄게!’ 하는 답장이 왔다. 심지어 뒤에는 새빨간 하트도 붙어 있었다. 마치 세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피식 웃은 재환은 맞은편에 앉아 손으로 빵을 찢던 한영과 눈이 마주쳤다. 공연히 민망한 마음이 들어 얼른 웃음을 거두고서 주머니에 쏙 핸드폰을 넣었다. 순간 한영의 미간이 폭 좁혀진 것은 미처 보지 못했다.

“근데 이거 빵 졸래 맛있네. 나 빵 봉투 좀!”

그새 빵 하나를 다 먹어치운 태군이 팔을 앞으로 쭉 뻗어 휘휘 흔들었다. 밑에 내려놓았던 봉투를 집어 드럼 너머로 건네자 냉큼 받아 든 태군이 안을 뒤적였다. 방금 먹은 것 못지않게 달아 보이는 빵을 골라 크게 한입 베어 물고는 우물거리는 투로 질문을 이었다.

“그럼 네 곡만 하면 되는 거?”

“보통은 다섯 곡 정도가 평균이긴 해. 악기 세팅이랑 멘트까지 해서 팀당 30분씩은 공연하니까.”

“그럼 한 곡 더 필요하겠네.”

빵 묻은 손을 탁탁 털며 지우가 한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네 곡만 연주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으나, 아직은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으니 아무래도 한번 올라갔을 때 충분히 공연하는 편이 좋았다. 다만 최근에는 가사 수정 작업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새로운 곡을 연습할 여유가 부족했다. 따라서 만약 신곡을 추가한다면 2주 안에 완성시키고 연습까지 완벽히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일정이 조금 빠듯했다. 지우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다.

“재환이 너 오기 전에 만들었던 곡들도 몇 개 있기는 한데, 일단 가사부터 다시 써야 하니까. 공연 전까지 2주 남은 거 생각하면 조금 촉박하긴 하네.”

“그지. 다른 곡도 계속 연습해야 하고.”

재환과 지우가 말을 할 때마다 태군은 오물오물 빵을 씹으며 부지런히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다람쥐처럼 부푼 볼이 조금 꺼졌을 즈음, 뭐 그런 고민을 하냐는 듯 툭 한마디를 던졌다.

“그럼 카피곡 해.”

“카피곡?”

“엉. 한 곡쯤은 괜찮지 않아? 아닌가?”

그러고는 또 입을 크게 벌려 합 빵을 베어 물었다. ‘와, 이것도 맛있네.’ 하며 혼잣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태군이 거듭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빵 맛에 감탄할 때, 재환은 별거 아니라는 듯 내놓아진 태군의 아이디어에 내심 감탄했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싶었다. 종종 다른 밴드들도 카피곡을 껴서 공연하는 경우가 있는데 말이다. 물론 재환이 과거 활동하던 이데아는 예외였다. 보컬 형찬에게 남의 노래는 죽어도 할 수 없다는 고집스러운 철칙이 있던 까닭이었다. 뭐, 그때는 그때고. 그래도 혹시 몰라 재환은 한영에게 넌지시 의사를 물었다.

“한영이 넌 카피곡 해도 괜찮아? 다른 가수 노래 부르는 거.”

“아….”

재환을 보고 있던 한영의 시선이 뚝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한참이나 다시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그 반응이 뜻하는 바를 이제는 잘 알고 있기에, 재환은 재빨리 마음속에서 ‘카피곡을 공연한다’라는 선택지를 지웠다. 보아하니 한영 또한 다른 이의 노래를 부르는 걸 썩 내켜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같은 팀으로서 멤버의 그러한 성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런 사소한 일로 부딪쳐 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는 걸 이전 밴드에서 재환은 충분히 배웠다.

“아, 싫은 거면 안 해도 돼. 꼭 카피곡 해야 되는 거 아니니까….”

“나 할 거 있어.”

“어…?”

부러 더 태연한 투로 부연하던 재환은 무심결에 멍청히 되물었다. 그에 반해 한영의 표정은 지극히 덤덤했다. 내처 ‘들어 볼래?’ 하더니 틀어져 있던 마이크 스탠드를 돌려 끝에 꽂힌 마이크를 얼굴 앞으로 가져갔다. 건반 위로 살포시 손가락을 얹은 후, 예고도 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지금만큼은 태군도 쥐고 있던 빵을 슬그머니 아래로 내려놓았다. 한영과 나란히 앉은 지우는 아예 그를 향해 몸을 틀었다. 재환 역시 커다란 모니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하려 숨을 죽였다. 그러나, 집중은 오래가지 못했다.

저 노래…, 설마.

하얗고 까만 건반 위에서 사뿐사뿐 움직이는 손가락을 주시하던 재환의 눈이 점차 가늘어졌다. 어느새 앞니로는 자그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또 오른손은 멋대로 한영이 연주하는 건반 리프를 따라 피킹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고작 한 번 들어 보았음에도 잊을 수가 없던 노래였으니까. 다만, 어째서 한영이 Embryo의 미발표곡을 연주하고, 또 부르고 있는 건지 판단을 할 수 없을 따름이었다. 그 연주와 노래가 의지와 상관없이 의식 저변에 묻어두었던 기억을 툭툭 꺼내 올렸다. 멋대로 눈앞에 펼쳐지게 했다.

이 집 거실 가득 깔렸던 푸르스름한 빛, 그 속에서 함께 앉아 보았던 Embryo의 DVD, 꿈결처럼 흘렀던 노래, 그리고….

내 입술에 닿았던 너의 감촉.

…환아.

…재환.

…서재환.

“야, 서재환!”

“어, 어. 왜?”

화들짝 정신을 차린 재환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일제히 저를 보고 있는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언제 한영의 노래가 끝났는지, 언제부터 자신이 이런 넋 나간 상태였는지 무엇 하나 정확히 인지되지 않았다.

“너 왜 그래? 뭐 잘못 먹었냐?”

경박한 어투와 달리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표정으로 저를 보는 태군에게 아니라고 손사래 치고, 한영의 시선은 피해 자리에서 일어난 재환은 황급히 말을 쏟았다.

“나, 화장실 좀. 그리고 노래 좋다. 그거 하자. 해도 될 것 같아.”

그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후다닥 합주실을 나왔다. 한 번에 계단 두세 개씩을 밟아 단숨에 1층까지 올라왔다. 쿵, 여닫힌 화장실 문에 등을 기대고서야 숨이 길게 터졌다.

“하….”

도무지 생각해도, 한영이 무슨 까닭으로 저 노래를 연습하고 또 오늘 들려준 건지 알 길이 없었다. 그 노래가 흘러나왔던 순간 일어났던 일을 뻔히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래서 재환은 한영이 제게 DVD를 줬을 때도 일부러 문제의 부분은 넘겨서 보았었다. 노래에는 듣는 당시의 기억이 담기기 마련이고, 그 기억을 굳이 상기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하나 한영은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째서…?

고개까지 뒤로 젖혀 문 위에 뒤통수를 대고 있던 재환은 피식 찬웃음을 흘렸다. 한영이 저렇게 태연히 노래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지난번엔…. 외로워서 그랬어. 갑자기 너무 외로워서 너한테 그랬어.

하긴. 외로워서 충동적으로 한 일에 아직까지 연연하는 게 더 우스울 노릇이지. 그렇지.

느릿느릿 거울 앞으로 걸어간 재환은 여지없이 벌그죽죽 달아오른 거울 속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오늘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모자도 안 쓴지라 그 못난 낯빛이 더 훤히 보였다. 쳇, 낮게 혀를 차고서 오른쪽으로 돌린 수도 레버를 짐짓 신경질적으로 위로 올렸다. 세련된 모양새의 수도꼭지에서 콸콸 찬물이 쏟아졌다.

오목하게 모은 두 손에 물을 받아 마치 뺨 때리듯 촥 얼굴로 퍼부었다. 숨을 참고 이를 몇 번 더 반복하자 뜨끈하던 얼굴과 머릿속이 그제야 좀 식는 기분이었다. 거울을 보니 다행히 꼴사납던 얼굴색도 그럭저럭 되돌아와 있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것처럼 빳빳한 수건 위에 쿡 얼굴을 찍었다 뗀 재환은 물기가 남은 손을 탈탈 털며 화장실을 나섰다. 올라온 김에 물이라도 마실 요량으로 저벅저벅 부엌으로 향했다. 지하에서 올라올 때와 비교해 훨씬 힘이 빠진 걸음을 뗄 때마다 앞머리 끝에 맺힌 물이 똑똑 뺨으로 떨어졌다.

언제 봐도 참 크다 싶은 냉장고 앞에 선 재환은 생수가 들어 있는 칸에 연결된 작은 문을 꾹 눌렀다.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문이 스르륵 아래로 내려왔다. 곧장 안에서 생수병을 꺼내려다, 도로 문을 닫고 아예 힘주어 냉장 칸 문 전체를 잡아당겼다. 동시에 하, 하고 나지막하게 헛숨이 비어졌다.

불과 얼마 전 냉장고를 열었을 때만 해도 떡 하니 한 칸을 차지하고 있던 코코아가 없었다. 거의 장사할 기세로 빼곡히 채워져 있던 흑맥주도 없었다. 정갈하게 정리된 반찬통과, 종류가 다른 맥주 몇과, 우유나 계란 따위의 것들이 마땅히 있을 곳에 얌전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 사이에서 생수병을 꺼낸 재환은 조심스럽게 냉장고 문을 닫았다. 몇 걸음 움직여 조리대 상부장에서 컵 하나를 꺼내어 거의 넘치기 직전까지 꼴꼴 물을 따랐다. 숨도 안 쉬고 꿀꺽꿀꺽 물을 마시고서 크, 하며 손등으로 입가를 문지를 때였다.

“괜찮아?”

고막을 간질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휙 몸이 돌아갔다. 가져왔을 때보다 절반은 부피가 줄어든 듯한 빵 봉투를 안은 한영이 부엌 초입에 서 있었다. 훤히 켜진 LED 등 아래 그가 입은 하늘색 트레이닝복이 유독 선명한 빛깔로 재환의 시야에 들어왔다.

“뭐가?”

괜히 다시 컵에 물을 따르며 재환은 정말 뭘 묻는지 모르겠다는 양 되물었다. 물론 상대에게도 그렇게 비쳤을지 확신은 없었다. 그런데, 괜찮냐는 건 또 뭐람. 뭔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다행스럽게도 재환에게 그 이상 캐묻지 않은 한영은 사박사박 조용한 발소리를 내며 냉장고로 걸어갔다. 가볍게 문을 잡아당긴 후 냉장 칸 빈 곳에 빵 봉투를 통째로 넣었다. 정말, 통째로 넣었다.

“유한영. 그거 그냥 그대로 넣게?”

냉장고 문을 닫은 한영이 눈을 깜빡이며 조리대 앞에 선 재환을 보았다. 질문의 의도를 영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뭐, 북엇국 하나 끓인답시고 이곳을 거의 전쟁터로 만들었던 걸 떠올리면 이해 못 할 반응도 아니었다. 픽 웃은 재환은 한영에게 성큼 다가갔다.

“빵 그렇게 넣으면 딱딱해져서 못 먹어.”

다시 냉장고에서 빵을 꺼내자 한영이 보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얼굴을 하는 녀석을 상대로 뭘 그리 복잡한 생각을 했을까 싶어 재환은 다소 맥이 풀려 버렸다. 어차피 녀석은 별생각도 없을 텐데.

재환은 한영이 보는 앞에서 빵을 한 번 먹을 양만큼 봉지에 나눠 담아 비닐 팩에 꼼꼼히 넣었다. 이것을 냉장고의 냉동 칸에 집어넣는 것으로 남은 빵 처리가 끝났다. 사실 얼마든지 모른 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으나, 성격상 그게 안 되었다. 이상하게 한영에 관한 거라면 재환은 더욱 그랬다.

“고마워.”

“됐어. 나는 담배 하나 피우고 내려갈게.”

아까 따랐던 물을 마저 마시고 컵을 씻으며 대꾸하는 재환에게 한영이 또 빤한 눈빛을 보냈다. 재환은 ‘뭐?’라는 의미를 담아 눈썹을 한 번 쑥 올렸다 내렸다. 동시에 합주실에서 제가 보였던 이상한 반응을 재차 꼬집으려는 건가 싶어 살짝 철렁하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굳이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나도 같이 가도 돼?”

“어?”

“담배 피우러.”

재환의 눈썹이, 또다시 꿈틀거렸다.

본인이 흡연하는 입장에서 다른 이에게 담배 피우지 말라 훈계하는 건 아무래도 염치없는 짓이었다. 그리하여 합주하는 사이 제법 해가 진 바깥으로 나서는 내내 재환은 고민에 잠겼다. 어찌 됐건 한영은 밴드의 보컬이었고, 담배를 피워 봤자 그에게 그다지 좋을 게 없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재환은 내가 참 쓸데없는 고민을 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새하얀 담배 끝에 불을 붙이며 재환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쪼그려 앉은 한영을 흘끔흘끔 곁눈질로 살폈다. 애초부터 그에게 담배 피울 생각이 없었다는 건 다행스러웠다만, 그래서 왜 자신을 쫓아온 건지 더욱 아리송했다. 그러다 이내 픽 실없는 웃음이 흘렀다. 아마 이번에도, 한영에게는 딱히 깊은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후, 길게 숨을 내뱉자 매캐한 연기가 더운 공기 중으로 부옇게 퍼졌다. 재환은 다시 한번 흘긋 눈을 돌려 한영을 보았다. 본인은 피우지 않는 담배 연기가 역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한영은 납작한 돌멩이 위에 앉아 얌전히 있었다. 딱히 무언가 하지 않고, 정말 얌전히 있었다. 안 심심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 즈음 한영의 고개가 천천히 재환을 향했다.

슬슬 해가 떨어지는 참이라 아직 조명이 켜지지 않은 정원이 꽤나 어둑어둑했다. 그러나 총총히 구름이 흩어진 여름 하늘에 푸릇한 기운이 남아 있어, 한영의 얼굴 또한 비슷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함께 앉아 DVD를 보았을 때처럼.

결국 재환은 다소 이상하게 비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영에게서 휙 시선을 물렸다. 죄 없는 하늘의 구름이나 째려보며 긴 숨을 뱉었다. 모양만 구름 같은 담배 연기가 너울너울 허공에 피었다. 하지만 잠시 후, 재환은 다시 한영에게로 시선을 되돌려야 했다.

“오늘은 왜 모자 안 썼어?”

미세하게 가늘어진 눈매에 ‘별게 참 궁금하다’라는 감정이 설핏 떠올랐다. 검지 끝으로 툭툭 담뱃재를 턴 재환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대답했다.

“오늘은 알바하고 왔으니까.”

“알바할 땐 모자 안 써?”

“당연히 안 쓰지.”

“…좋겠다.”

어? 하고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말이 없었다. 그 어떤 속셈도 없다는 양 재환을 올려다보던 말간 얼굴이 본인의 발끝으로 숙어졌다. 그러니 재환은 또 눈을 가느스름히 뜨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뭐가 좋은데’라고 구태여 캐묻지는 않았다. 담배나 한 모금 빨았다.

“근데… 재환이 너 노래 잘하더라.”

켁. 이번에는 기침이 터졌다. 그것도 크게 터졌다. 허리까지 굽힌 재환은 쿨럭쿨럭 요란하게도 기침했다. 숨구멍이 아닌 눈구멍, 귓구멍 등 엉뚱한 곳에서 픽픽 담배 연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무지하게 매웠다. 마침내 기침이 조금 잠잠해졌을 때, 언제 일어섰는지 모를 한영이 눈앞에 있었다.

“괜찮아?”

오늘따라 한영에게 두 번이나 괜찮냐는 말을 들어 버린 재환은 지레 민망해져 담배를 쥐지 않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괜, 찮아. 그냥 연기를 좀 잘못 마셔서.”

여전히 말 중간중간에 켁켁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었다. 당연히 상대에게 괜찮아 보였을 리가 없다. 한영은 ‘정말?’ 하고 물으며 보다 재환 가까이 얼굴을 붙였다. 터뜨릴 듯 폐부를 메웠던 담배 연기를 뚫고 훅 달콤한 향이 들이쳤다. 그것이 일순 재환을 멈칫하게 했다. 기침도 함께 멎었다.

“진짜 괜찮아?”

바짝 굳은 재환의 왼쪽 눈가에 살며시 기다란 엄지손가락이 스치고 지났다. 반대편 눈가에서도 같은 감각이 반복되었다. 재환은 더 꼼짝할 수 없었다. 필터 쪽까지 타들어 간 담배 끝자락에서 툭, 시꺼먼 재가 떨어졌다.

“너 울었어.”

하얀 손끝에 묻어난 물기를 저도 봤으니 그건 말 안 해 줘도 알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재환은 뒤늦게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보다 정신 번쩍 들게끔 하는 홧홧한 기운이 손가락에 닥쳤다.

“읏, 뜨거!”

펄쩍 뛰어오른 재환은 언제 이리 짧아졌는지 모를 꽁초를 냅다 옆에 있던 깡통으로 내동댕이쳤다. 화끈거리는 손을 탈탈 털었다. 다행히 덴 정도는 아닌 것 같았지만, 괜히 더 과장스럽게 행동하게 되었다. 그게 더 상대의 걱정을 샀다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데었어?”

휙휙 흔들던 손이 어느새 덥석 붙잡혔다. 또다시 움찔 굳은 재환은 제 손 가까이 숙어진 분홍 머리통을 당황하여 내려다보았다. 타인의 온기가 닿은 손이 지금이야말로 델 것처럼 뜨거웠다. 안 그래도 신명 나게 콜록거리느라 벌게진 얼굴로 다시금 열이 올랐다. 절로 아랫입술이 꽉 깨물렸다.

후, 하고 불어진 숨결이 손가락에 닿는 찰나 재환은 휙 손을 뒤로 뺐다. 다음 순간 위로 들린 순연한 얼굴 가운데서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와 시선이 얽혔다. 그 눈동자와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재환은 서두름 없이 침착하게 한 발 물러섰다. 운동화 바닥이 키 낮은 잔디를 밟으며 바스락, 소리를 냈다.

“괜찮으니까 그만 들어가자.”

“어…?”

“다시 연습해야지. 우리 공연 얼마 안 남았잖아.”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재환은 잔디밭 사이에 난 돌길을 따라 성큼성큼 걸었다. 슬리퍼 밑창이 자박자박 돌을 스치는 소리가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열렸던 문이 도로 닫혔을 때, 한층 어둠이 내린 정원에 반짝 조명이 들어왔다.

두어 시간 더 연습한 후 다 같이 늦은 저녁을 챙겨 먹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껌껌한 한밤중이었다. 골목 아래까지 함께 내려온 태군, 지우와 인사하고 헤어진 재환은 터덜터덜 가로등 켜진 길가를 홀로 걸었다. 한영의 집으로 합주하러 갈 때만큼 내딛는 걸음이 씩씩하지는 못했다. 중간의 쉬는 시간 빼고 내리 이어진 합주 때문에 제법 지친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한영이 무리 없이 한국어 가사를 소화해서 다행이었다.

막 버스가 떠나고 텅 빈 정류장 근처에서 재환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길바닥에 페달 보드 가방을 내려놓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가방 앞주머니를 뒤적였다. 온갖 케이블과 기타 줄 봉지 따위를 헤쳐 겨우 줄이 배배 꼬인 이어폰을 찾았다.

일어서서 찬찬히 줄을 푼 재환은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핸드폰에 기역 자로 꺾인 플러그를 연결했다. 귀에 한쪽씩 이어폰을 꽂아 넣자 도로에서 들려오던 차 소리가 조금 사그라들었다. 환한 화면을 몇 번 톡톡 두드려 음원 파일 하나를 재생시킨 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 손잡이를 들어 올린 재환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배경 음악 삼아 다시 걸음을 뗐다. 물론, 하루를 마무리하는 배경 음악이라기에는 여러 면으로 모자란 곡이었다. 부르는 노래의 박자나 음정도 온전치 않았으며, 가사의 발음은 또 왜 이리 정직한지 모를 일이었다. 그나마 리버브가 잔잔히 밴 기타 소리가 제일 들어 줄 만했다.

그러니 재환은 자꾸 피식피식 싱거운 웃음이 났다. 어떻게 이런 걸 듣고 ‘노래 잘하더라’ 소리가 나왔을까 싶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 그런 얘기를 했다면 어디서 사람을 놀리느냐고 발끈했을 것이다. 그만큼 제 귀로 직접 듣는 제 노래는 참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지금껏 기타리스트가 노래 좀 못 부르면 어때, 하는 다소 속 편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조금은 바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 난데없이 노래 연습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살짝 반성만 했다.

단 두 개의 트랙으로 이루어진 음악 사이사이 차가 지면을 달리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섞여 들었다. 그때마다 번쩍, 하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재환의 시야 옆을 스치고 지났다. 아직은 열대야가 찾아오지 않은 여름밤, 그럭저럭 덥지 않은 공기가 간질간질 앞머리를 흩트렸다. 어깨를 한 번 들썩여 기타 가방을 고쳐 멘 재환은 어느덧 다시 처음부터 재생되기 시작한 노래의 템포에 걷는 속도를 맞추었다. 신기하게 등에 인 것도, 손에 든 것도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 * *

“어째 오늘은 더 더운 것 같어. 여름 진짜 싫다아-.”

출근길에 발긋발긋해진 얼굴 아래로 팔랑팔랑 손부채질 하며 희연이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녀만큼이나 더위를 많이 타는 상지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심지어 표정은 벙벙하게 풀어져 있었다. 쟤가 왜 저래. 입술을 실룩이며 작게 씨, 소리를 낸 희연은 상지의 귀 가까이 입을 댔다.

“야! 이상지!”

히익, 외마디를 터뜨리며 상지가 펄쩍 뛰어올랐다. 그러더니 얼른 검지를 입에 가져가 ‘쉬잇!’ 하고 희연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얘가 진짜…! 도통 까닭 모를 친구의 행동에 희연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욱 부릅떴다. 내처 저보다 조금 위에 있는 어깨를 한 대 찰싹 때려 주려는 때.

“여기요.”

약간 허스키하면서도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데구루루 희연의 눈알이 굴러갔다. 곧이어 픽업 바에 빈 잔을 내려놓는 하얗고 커다란 손에 잠시 시선이 머물렀다가, 휙 위로 올라갔다. 동시에 크게 뜨였던 눈이 한층 더 거대하게 확장되었다. 흡, 호흡까지 집어삼켜졌다. 다 먹은 잔을 가져다주는 손님에게 으레 건네는 ‘감사합니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좀, 희연은 정신이 멍했다.

희연은 눈만 끄먹끄먹 감았다 뜨며 그새 가게 입구 쪽으로 걸어 나가는 남자의 분홍 뒤통수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이윽고 남자가 문밖으로 사라진 후에도 충격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주얼 쇼크였다.

“대박이지? 대박이지?”

상지의 어깨를 때려 주려던 것 따위 말끔히 잊은 희연의 어깨에서 도리어 찰싹찰싹 소리가 울렸다. 아프지는 않았으나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오기에는 충분했다. 휙, 상지에게로 고개를 돌린 희연은 짧은 순간 와글와글 입 안에 고인 질문을 한 번에 다다다 쏟아 냈다.

“야, 뭐야? 연예인이야? 아이돌인가? 난 처음 보는데? 이 근처에 혹시 기획사 있나? 머리 색 봤어?”

“야야, 정희연. 숨 좀 쉬고 말해.”

“어, 어. 응.”

고분고분 친구 말 잘 듣는 아이로 돌아온 희연은 상지의 말에 따라 가슴팍에 손을 얹고 습, 하, 습, 하, 크게 심호흡했다. 여전히 그 밑에 있는 심장이 주책맞게 벌렁거렸다. 이게 정말 무슨 일인가 싶었다.

“너 오기 전에 퇴근한 애한테 들어 보니까, 며칠 전에도 한 번 왔었대. 와서 그냥 아이스코코아 한 잔만 마시고 멍때리다 갔대. 그때도 애들 난리 났었다 그러드라.”

저 정도 비주얼이면 난리가 안 나는 게 더 이상했다. 만화책 표지에서 당장 튀어나온 듯한 머리 색도 머리 색이었지만, 정말이지 생김새 자체가 이 세상 얼굴이 아니었다. 쌍꺼풀이 있었는지, 코는 높았는지 같은 건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냥 다 제치고, ‘존나 잘생긴’ 얼굴이었다. 평소 욕을 쓰는 편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달리 도리가 없었다. 저건 그냥 존나 잘생긴 얼굴이었다!

“근데 누구랑 살짝 닮지 않았어?”

“누구?”

“그, 왜. 요새 연기도 하는….”

때마침 카페 문이 열리며 방금 분홍 머리 남자와는 또 다른 의미로 희연의 가슴을 벌렁대게 만드는 이가 등장했다. 언제 정신 놓고 흥분했냐는 양 귀 옆에 늘어진 잔머리를 재빨리 정리해 넘긴 희연은 발랄한 목소리로 상대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빠, 안녕하세요!”

“어, 뚝딱 오빠. 안녕하세요.”

희연의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른 태세 전환에 속으로 ‘헐’을 외친 상지 또한 재환에게 밝게 인사했다. 이제 ‘뚝딱 오빠’라는 호칭에 그럭저럭 익숙해진 재환은 잠깐 손을 들었다 내리며 ‘어, 안녕.’ 하고 두 사람에게 다정히 답했다. 그 모습은 희연으로 하여금 ‘역시 재환 오빠가 짱이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끔 했다. 재환이 직원 휴게실로 들어가자마자 희연은 다시 홱, 상지에게로 몸을 틀었다.

“이상지! 너 재환 오빠 앞에서 절대 얘기 꺼내지 마!”

“뭔 얘기?”

“아이, 그, 방금 아이돌 같은 사람 왔었던 거.”

언제 재환이 다시 나올지 몰라 소리 낮춰 다그치자 상지의 얼굴이 딱 ‘얘 왜 이래?’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나 재환 앞에서 잘생긴 남자 보고 호들갑 떠는 여자애는 죽어도 되기 싫었던 희연은 다시 한번 상지에게 강력히 당부했다.

“알았지? 말 꺼내면 나 그냥 확, 커피 물에 코 박을 거야!”

커피 물은 모르겠고, 진짜 재환에게 말하면 제게 머리라도 박을 기세라 상지는 ‘알았다, 알았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생각은 조금 딴 데에 가 있었다. 벌써 속으로 ‘핑크남’이라는 애칭을 붙인 그가 또 언제 카페에 올지, 상지는 그게 궁금할 따름이었다.

“와, 어떻게 한 번을 안 쉬냐!”

“집에 가서 쉬어, 집에.”

가방에 드럼스틱을 챙기며 있는 대로 투덜거리는 태군에게 대꾸하자 ‘징글징글한 새끼! 독한 새끼!’ 하는 욕들이 줄줄이 돌아왔다. 그래 봤자 위협적인 느낌은 조금도 없어 바닥에 늘어진 케이블을 정리하던 재환은 피식피식 웃었다. 태군의 말투나 행동이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어째 조금도 변하질 않은 까닭이었다. 그때와 달라진 건 참으로 파격적인 머리 스타일뿐인 듯했다. 그마저도 이제는 하도 자주 봐서 그런지 그냥 원래부터 머리가 없었던 녀석처럼 느껴졌다.

꼼꼼히 만 케이블에 벨크로까지 감아 페달 보드 가방에 넣던 재환은 문득 ‘아!’ 소리를 짧게 외쳤다. 뒤이어 악기 정리가 얼추 끝난 태군, 지우와 번갈아 가며 눈을 맞추었다.

“둘이 먼저 가.”

“엥? 왜?”

“뭐 할 일 있어?”

대단한 볼일이 남았던 것은 아닌지라 재환은 조금 객쩍게 웃었다. 공연히 뒷머리도 긁적였다.

“아니. 피크나 좀 찾아 보려고. 오늘 세 개나 떨어뜨려서. 그 전에 떨어뜨린 것도 있고.”

잘 찾아라. 그러게 잃어버리지 좀 마! 따위의 인사를 남긴 두 사람이 합주실을 나가고, 이제 합주실에 남은 건 재환과 한영뿐이었다. 융으로 꼼꼼히 닦은 기타를 가방에 넣던 재환은 노드 건반 뒤에 멀뚱멀뚱 앉아 있는 한영을 흘긋 쳐다보았다. 합주가 끝난 지 한참이건만, 한영은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할 눈치였다. 재환은 기타 가방의 지퍼를 올리며 한영에게 툭 멋없는 말을 던졌다.

“너도 가 봐. 내가 합주실 불 끄고 갈 테니까.”

“나도 같이 찾을게, 피크.”

일순간 재환의 눈썹이 쑥 위로 올라갔다. 한영이 꺼낸 말이 꽤나 의외였기 때문이다. 동시에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피크 값 몇백 원이라도 아끼고자 잃어버린 피크를 찾으려 했던 것인데, 그 궁상맞은 일을 도와준다고 하니 다소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거나 고맙다면 고마운 얘기였으므로 재환은 머뭇머뭇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주면 고맙지.”

이로써 아닌 밤중 합주실에 떨어진 피크 찾기가 시작되었다. 나름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구역도 나누었다. 가운데 놓인 드럼을 기준으로 재환이 왼쪽, 한영이 오른쪽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제가끔 플래시 켠 핸드폰을 손에 들고 바닥을 훑으며 제법 진지하게 피크를 수색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에서 먼저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찾았어.”

“정말?”

거의 엎드리다시피 하고 핸드폰으로 기타 앰프 아래를 비추던 재환은 휙 몸을 일으켰다. 기대에 찬 시선으로 한영을 보자, 마이크 스탠드 옆에 쪼그려 앉은 한영이 손에 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팔랑팔랑 흔들어 보였다. 재환이 평소 사용하는 1mm 피크가 맞았다. 입가에 씩 웃음이 걸렸다.

“너 눈 좋은가 보다. 엄청 금방 찾았어.”

“응. 양쪽 다 1.5.”

헐, 진짜 좋네. 중얼거리며 재환은 다시 앰프 옆으로 몸을 낮췄다. 지금껏 잃어버린 게 결코 하나가 아니니 분명 잘 찾으면 몇 개는 더 나올 터였다. 앞으로 한 두세 개만 더 찾아도 좋을 것 같았다.

앰프 아래는 포기하고 일어선 재환은 드럼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설마 여기까지 피크가 날아왔을까 싶기도 했지만, 한영이 키보드 근처에서 하나를 찾은 걸 보면 또 모를 일이었다. 평소 태군이 앉는 자리에 앉아 고개 숙인 재환은 드럼 아래를 찬찬히 눈으로 살폈다. 그러다, 난데없이 괜한 장난기가 발동했다.

재환은 흘끔 눈알만 돌려 한영을 보았다. 한영은 납작 엎드려 베이스 앰프 근처를 살펴보고 있었다. 새어 나가는 웃음을 막기 위해 아랫입술을 꾹 깨문 재환은 슬금슬금 킥 베이스의 페달 위로 발을 올렸다. 다음 순간, 발바닥에 냅다 힘을 실었다.

쿵-!

심벌이 다 차르르 울릴 정도로 거대한 타격음이 터졌다. 페달을 밟은 재환 자신의 귀가 다 멍멍할 정도였다. 하니 당연히 한영도 깜짝 놀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무릎 꿇은 상태에서 고개만 슬쩍 옆으로 기울인 한영이 재환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만 깜빡이는 표정이 마치 ‘너 뭐 해?’라고 묻는 듯했다. 필요 이상으로 머쓱해진 재환은 괜히 몇 번 더 쿵쿵 킥을 밟았다. 재미로 드럼 한번 쳐 봤다는 듯이. 물론 속으로는 적지 않은 민망함을 삭이고 있었다. 그러게 왜 안 하던 짓을 해서는.

몇 초쯤 더 재환을 가만히 보기만 하던 한영이 대뜸 훌쩍 일어섰다. 몇 걸음 만에 드럼 근처까지 와서는 키 낮은 의자에 앉은 재환 옆에 섰다. 왜 그러나 싶어 한영 쪽으로 의자를 빙그르르 반 바퀴 돌렸을 때, 별안간 한영이 쑥 몸을 낮추었다.

“유, 한영…?”

갑자기 제 앞에 쪼그려 앉는 한영을 보며 재환은 거짓 없이 당황했다. 벌어져 있던 다리 사이에 분홍 머리통이 자리했으니 그러지 않기가 어려웠다. 거기에 붉은 입술 새로 뱉어진 말이 재환의 당황을 채찍질했다.

“움직이지 마.”

한영의 상체가 점점 앞으로 숙어졌다. 저대로 더 기울었다가는 얼굴이 닿아서는 안 될 곳에 닿을 것 같았다. 설마하니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생기겠어, 라고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당혹감에 젖은 재환은 그저 쭈뼛 굳었다. 그래서 한영의 손이 제가 앉은 의자의 다리 옆을 짚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또 찾았어. 이거까지 네 개 찾았어.”

엉거주춤 허벅지에 올려 두었던 한쪽 손에 자못 서늘한 체온이 닿았다. 이윽고 확연히 피부색이 구분되는 손이 경직된 손을 뒤집어 살포시 손등 아래를 받쳤다. 오목하게 만들어진 손바닥 위로 피크 몇 개가 투두둑 떨어졌다. 정확히 네 개의 피크였다. 재환은 그곳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혹여 그러지 않고 아래로 숙였던 고개를 든다면, 그나마 얼굴에 드리운 모자챙의 그림자가 걷힐 것 같아서. 그래서 보나 마나 멍청할 것이 분명한 표정이 훤히 드러날 것 같아서.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었다.

“더 찾아?”

친히 재환의 손에 피크를 건네준 한영이 긴 다리를 펴 가뿐히 일어섰다. 덩달아 눈높이도 저 위로 올라갔다. 덕분에 재환은 벌겋게 익었을 것만 같은 낯빛을 숨기려 급급해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계획에도 없던 말을 뱉었다.

“응. 다섯 개가 목표였으니까….”

“그럼 내가 다섯 개 다 찾으면 뭐 해 줄 거야?”

그새 자신의 얼굴빛 사정을 까맣게 잊은 재환은 퍼뜩 고개를 쳐들며 ‘응?’ 하고 물었다. 천장에 점점이 박힌 황색 빛 조명 아래서 한영의 솜사탕 같은 머리칼이 은은히 반짝였다. 그 밑에 자리한 커다란 눈이 반달을 그렸다.

“너 하나도 못 찾았잖아. 다 내가 찾았잖아.”

“…왜.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모르긴 몰라도 한영의 형편이 이쪽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재환은 무심코 멍청한 물음을 던지고 말았다. 피크 찾으면 대단한 거라도 해 줄 것처럼. 쥐뿔도 없으면서.

한영도 그 말에 놀랐는지 ‘어….’ 하면서 입을 벙긋이 벌렸다. 꼭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곤 기대도 안 했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하릴없이 멋쩍어진 재환이 ‘비싼 거 말고’라고 얼른 덧붙이려던 때였다.

“코코아.”

“뭐?”

“코코아 마시고 싶어.”

코코아 진짜 좋아하나 보네….

코코아가 정말 마시고 싶었던 건지, 그냥 이 일에 재미를 붙인 건지 눈을 반짝이며 합주실 바닥을 훑은 한영은 얼마 안 가 진짜 피크 하나를 더 찾아냈다. 재환으로선 내심 마지막 하나라도 제가 찾고 싶었으나, 단지 바람으로 끝났다. 한영이 저렇게 눈이 밝을 줄 알았나. 저 녀석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정작 피크를 찾아야 했던 장본인으로서 약간은 부끄러웠다.

방금 건네받은 것까지 포함해 손에 모인 피크를 한 번 더 세어 본 재환은 기타 가방 위에 달린 작은 주머니를 열었다. 총 다섯 개의 피크를 쪼르르 그 안으로 흘려 넣었다. 이것으로 적어도 몇천 원은 아끼게 되었다. 뭐, 한영에게 코코아를 사 주면 그게 그거겠지만. 그런데도 피크를 찾느라 보낸 시간이 아깝지 않게 느껴져 신기했다. 철없는 꼬맹이 시절로 돌아가 보물찾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실력이 좀 형편없었어서 그렇지.

재환은 미세하게 입꼬리를 씰룩이며 피크 몇 개만으로 가득 찬 것 같은 주머니의 지퍼를 닫았다. 지익 지퍼 올라가는 소리가 꽤나 매끄럽게 들렸다. 그때, 한영이 앉은 자리 앞에 있는 노드 건반의 스탠드로 시선이 향했다. 누런 나무 바닥과 스탠드의 철제 다리 사이에 껴 있는 저것은 분명….

마치 아까와는 상황이 반대가 된 것처럼 이번에는 재환이 한영이 있는 곳 근처로 서둘러 성큼성큼 걸어갔다. 노드 앞에 허리를 숙여 스탠드 다리의 고무 패킹 밑으로 빼꼼히 튀어나와 있는 핑크색 플라스틱 조각을 집어 들었다. 재환은 사용하지 않는 1.4mm짜리 피크였다. 꼭 누구 머리 색이랑 비슷한 피크네, 라는 생각이 스칠 무렵.

“그건 딴 사람 거야…!”

엄지와 검지 사이에 쥐고 있던 피크가 단숨에 하얀 손에 낚아채였다. 당황한 재환은 주먹 쥐듯 꽉 피크를 움키고 있는 한영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잠시 후, 재환의 입 밖으로 푸르르 바람 빠지는 소리가 샜다.

“알아. 그냥 눈에 보여서 주운 거야.”

남이 떨어뜨린 피크에 더는 관심 둘 이유가 없었다. 재환은 뒷걸음질 치듯 몇 발짝 물러서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한영은 손안의 피크를 움켜쥐고 있었다. 쓸데없이 자꾸 그곳으로 향하려는 시선을 붙들어 맨 재환은 아직도 훤히 플래시가 켜져 있는 핸드폰을 집었다. 플래시를 끄고 액정을 톡톡 두드리며 덤덤히 한영에게 물었다.

“근데 그 피크는 아까 찾으면서 못 봤었어? 내 건 잘 찾더니.”

그러면서 속으로 아차 했다. 괜히 이상해지려는 분위기를 환기하려 꺼낸 질문이 오히려 상대에게 비꼬듯 들렸을지 몰랐다. 그 정도로 속 좁은 놈은 아닌데….

“…니까.”

“어?”

혹 아직까지 영업하는 카페가 근처에 있나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던 재환의 눈이 흘금 맞은편을 향했다. 한영이 주먹 쥔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빼는 것이 보였다. 더 이상 그의 손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관심 있는 것만 보이니까….”

그… 러냐. 대답한 재환은 핸드폰 화면을 껐다. 합주 후면 항시 딱딱하게 뭉치는 오른쪽 어깨를 꾹꾹 주무르며 아예 대화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찾아보니까 지금 영업하는 카페가 근처에 없네. 24시간 카페는 큰길에서 좀 걸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떡할래?”

“걸을래.”

그… 래. 이번에도 조금 뜸 들여 대답한 재환은 부러 더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끙, 하고 일어섰다. 어깨에 기타 가방을 메고 빨리 나가자는 눈짓을 한영에게 보냈다. 그렇게 좋아하는 코코아 내가 꼭 사 주마, 생각하며.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남의 피크에는 관심 없었다.

오늘따라 한영의 집에서 큰길가까지 내려가는 길이 유달리 조용했다. 평소에는 부드러운 엔진 소리를 내며 고급 승용차라도 몇 대 지나갔던 것 같은데, 그마저도 잠잠했다. 집 앞마다 높이 담벼락이 솟아 있으니 당연히 안에서 나는 사람들의 말소리나 티브이 소리 따위도 들려오지 않았다. 조금 습한 기운이 있는 아스팔트 길 위로 자박자박 네 개의 발이 디뎌지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렸다. 그 눅눅한 침묵이 수다와는 영 연이 없는 재환의 입을 종내 열리게 했다.

“아직 밤엔 끔찍하게 덥지 않네.”

“응.”

나름 이쪽에서는 고심해서 건넨 말이건만 돌아오는 대답이 지나치게 짧았다. 그래도 기껏 말문을 텄는데 여기서 또 어색하게 대화가 뚝 끊기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래도 조금 습하긴 하다. 끈적한 거 싫은데. 넌 어때?”

“나도 싫어.”

그렇겠지. 끈적한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 재환은 절로 자신을 향해 ‘병신이냐’ 타박하게 되었다. 새삼 내가 참 말주변이 없구나 싶기도 했다. 물론 말주변 없는 걸로 따지자면 지금 옆에서 걷는 녀석도 만만치는 않을 터다. 벌써부터 재환은 무대 위에서 멘트를 할 일이 조금 막막해졌다.

“근데 난 땀 별로 안 나.”

대뜸 재환 앞으로 불쑥 긴 팔이 내밀어졌다. 방금 말마따나 육안으로도 팔을 감싼 피부가 꽤나 보송보송해 보였다. 제 팔에는 벌써 꿉꿉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근데, 사내놈 팔이 뭐 저렇게 허얘? 그 하얀 살결 위로 무심코 손을 얹을 뻔한 재환은 대신 손등으로 팔을 툭 쳐 냈다. 참 멋없고 불퉁한 감상까지 덧붙여서.

“그래, 좋겠다. 좋겠어.”

‘진짠데….’ 하고 자그마하게 곁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영을 흘긋 곁눈질로 본 재환은 페달 보드 가방을 들고 있던 자신의 팔뚝을 공연히 반대편 손으로 쓱 쓸어 보았다. 역시나 미약하지만 끈적거림이 느껴졌다. 뭘 굳이 확인해 봤을까 싶어 낮게 쯧, 혀를 찰 때였다.

“읏…!”

문제의 팔뚝이 콱 움켜잡히는 동시에 멀쩡히 앞으로 내디디고 있던 걸음이 휙 옆으로 틀어졌다. 그 반동으로 등에 메고 있던 기타 가방이 다 출렁거렸다. 이윽고 갑작스레 벌어진 일로 놀라 동그래진 눈에 부르릉, 엔진음을 내며 멀어지는 검정색 차의 뒤꽁무니가 보였다. 어깨에서 흘러내린 가방끈을 고쳐 메며 재환은 어물어물 입을 뗐다.

“아, 차 오는 걸 못 봤네. 땡큐….”

그때까지도 팔뚝을 움킨 손은 떨어질 생각일랑 없어 보였다. 심지어 재환을 보다 길 바깥쪽으로 잡아끌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길 안쪽에서 걷던 재환은 어느새 한영과 자연스럽게 위치가 뒤바뀌게 되었다. 이게 도대체 뭐지…? 영 익숙지 않은 상황을 속으로 되짚어 볼 즈음.

“재환아.”

“어, 어?”

쓸데없이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유독 목에 뻣뻣이 힘을 주고서 대답했다. 마침 불어온 눅눅한 밤바람에 섞인 단 향이 간질간질 코끝을 건드렸다. 땀내라고는 조금도 스미지 않은 싱그러운 향이었다.

“전에 보내 준 노래 말야.”

또 그 얘기냐. 출처가 분명한 향기를 맡던 재환의 눈썹이 찡긋 찌푸려졌다. 동시에 이 골목이 이렇게 길었던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평소에는 태군이 조잘조잘 쉼 없이 떠드는 이야기를 듣는 새 금방 내려오곤 했었는데. 막 차 한 대가 지나간 골목은 다시금 사위가 고요했다.

“소리가 엄청 깨끗했어.”

“소리?”

“응. 네 목소리가 되게 깨끗하게 들렸어.”

음…, 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재환은 이내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영이 뜻하는 바를 그럭저럭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오인페에 마이크 연결하고 녹음해서 그래. 그래도 잘 들어 보면 그냥 집에서 녹음한 거라 잡음이 꽤 많아.”

“오인페?”

“응, 오디오 인터페이스.”

혹 그게 뭐냐는 질문에 대비해 재환은 서둘러 한영에게 들려줄 설명을 골랐다. 그래 봤자 떠오르는 건 ‘컴퓨터랑 마이크 연결해 주는 거’ 수준의 모자란 설명이었다. 일상 대화도 능숙히 이끌어 가질 못하는데,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서 출력해 주는 장치야’ 같은 유창한 설명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그거 있으면 나도 집에서 녹음할 수 있어?”

별안간 우뚝 재환의 발이 멎었다. 옆에서 조금 빠른 듯한 걸음에 속도를 맞춰 함께 걷던 한영도 얼른 발을 멈추었다. 아예 몸까지 휙 틀어 그를 보는 재환의 눈빛이 당황스러울 만치 반짝였다. 물론 마냥 당황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성큼 앞으로 한 발을 내디딘 재환이 한영과의 거리를 바짝 좁혔다.

“사게?”

“…어?”

“오인페 사려고?”

거기까지 완전히 마음을 굳힌 건 아니었으나 일단 한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재환의 눈이 지나치게 반짝거리는 탓이 컸다. 제가 피크를 찾아 줬을 때보다도 더 빛나는 것 같아 괜히 살짝 의기소침해지기까지 했다. 그 감정을 미처 얼굴에 드러내기도 전, 다시 훅 거리를 벌린 재환이 걷던 길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 한영도 재환을 따라 재빨리 발을 뗐다.

“그럼 마이크도 산다는 거지? 너한테 오인페랑 마이크랑 있음 진짜 좋긴 하겠다. 드럼만 어떻게 하면 데모도 녹음할 수 있을걸? 좀 괜찮은 거 사면 아예 나중에 음원도 홈 리코딩 할 수 있고. 아, 근데 마이크 프리가 없어서 좀 그런가. 내장 프리앰프 괜찮은 오인페는 얼마나 하지? 예산이 너무 올라가려나.”

재환이 이렇게 말을 줄줄 쏟는 것을 본 적이 없던 한영은 그저 크게 뜬 눈으로 멍하니 재환을 쳐다보며 걸었다. 그사이에도 생각이 퐁퐁 샘솟는 듯 재환의 새카만 눈알이 쉴 틈 없이 이리저리로 굴러갔다. 그러다 휙 옆으로 움직여 한영을 향했다.

“유한영 너 노트북은 뭐였지? 산 지 오래된 건가? 사실 장비가 좋아도 컴퓨터 사양이 못 따라가면 그것도 문제거든.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야 하니까. 그러고 보니 시퀀싱 프로그램은 있는지 모르겠네. 사서 깔아야 될 수도 있겠다.”

이제 한영은 핑글핑글 머리가 돌아갈 지경이었다. 재환이 말하는 바를 도무지 쫓아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뭐가 뭔지 모를 소리를 쉼 없이 읊는 재환을 딱히 막지 않은 것은, 그의 목소리가 조금 더 듣고 싶은 까닭이었다. 이다지도 들뜬 목소리는 좀처럼 들을 일이 없었으니까.

“아. 이럴 게 아니라, 나중에 나랑 구경하러 갈래?”

“구경?”

“어. 오디오 인터페이스랑 마이크.”

이번에도 또, 한영은 속으로 결정을 내리기도 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몇 번이고.

시간에 맞지 않게 비교적 빠른 템포의 음악이 나오는 카페를 벗어나자 조용한 밤거리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자정을 넘긴 시간이라 도로를 달리는 차들도 몇 없었다. 한영 것만 사기는 뭐해 얼결에 함께 주문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손에 쥔 재환은 살짝 머뭇거리다 말문을 뗐다.

“그…, 난 이제 이쪽으로 가는데.”

다른 손에는 페달 보드 가방을 쥐고 있어 고개만 옆으로 까닥여 집 가는 방향을 가리켰다. 조금 에둘러 말한 감이 있었으나, 어쨌든 여기서 그만 헤어지자는 소리였다. 두 손으로 쥔 코코아를 빨대로 쪼옥 빨던 한영의 눈이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재환과 그의 손에 들린 페달 보드 가방을 두어 번 오갔다.

“야, 너…!”

일언반구 말도 않은 한영이 갑자기 재환의 보드 가방을 휙 낚아채 갔다. 적잖이 당황한 재환은 급히 한영이 쥔 가방 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닿을 새도 없이 가방은 휙 길쭉한 다리 뒤로 숨었다.

“집까지 이거 들어 줄게.”

“뭐…?”

빙긋 웃은 한영이 사각 형태의 시꺼먼 가방을 손에 쥔 채로 성큼성큼 보폭을 넓혀 걷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 재환의 집을 향하는 방향이었다. 오늘 유독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골라 하는 한영의 뒷모습을 멀거니 쳐다보던 재환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 뒤를 쫓았다. 짐 하나가 줄어 몸이 가벼워진 덕분인지 거리의 가로등 아래 반짝이는 분홍 머리를 금방 따라잡았다.

“무거울 텐데.”

“안 무거워.”

“우리 집 멀어.”

“안 멀어.”

도통 말이 먹히질 않았다. 결국 폭, 낮게 한숨 쉰 재환은 한영과 집까지 사이좋게 함께 걷는 수밖에 없었다. 아까만 해도 오디오 인터페이스니 마이크니 신이 나 떠들었으면서, 지금은 그러지도 못했다. 어쩌다가 한 번씩 ‘걸으니까 좀 덥네.’, ‘밤이라 사람이 진짜 없다.’ 같은 싱거운 말 몇 마디를 건넸을 뿐이다. 그마저도 돌아오는 대답은 ‘응.’ 하나였다.

저 멀리서 아득하게 울리는 술 취한 이의 고성방가를 들으며 좁고 지저분한 골목길을 따라 걷던 두 사람은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다. 벌그죽죽한 벽돌이 발린 5층짜리 연립 주택의 입구 앞에 선 재환은 한영에게 쑥 손을 내밀었다.

“자. 이제 나 줘.”

한영은 군말 없이 재환에게 보드 가방을 돌려주었다. ‘들어 줘서 고맙다.’ 인사하며 이를 받아 들던 재환의 눈길이 문득 한영의 다른 손에 들려 있던 투명한 플라스틱 컵으로 향했다. 안에 남은 것은 녹아서 모서리가 동글동글해진 얼음 알갱이 몇 개가 전부였다. 뚜껑에 닿을 정도로 찰랑찰랑 담겨 있던 코코아는 흔적도 없었다.

“야, 너….”

이러면서 전에 내가 준 코코아는 왜 안 먹었냐. 차마 뱉지 못한 뒷말을 도로 꿀꺽 삼키자 재환을 보는 한영의 얼굴이 살짝 옆으로 기울어졌다. 전구 표면이 벌레 사체들로 범벅된 가로등 불빛 아래서도 모래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가 ‘응?’ 하는 물음을 보내왔다. 이대로 가다가는 ‘컵라면이나 먹고 갈래?’ 따위의 허튼소리를 뱉게 될 것 같았던 재환은 어서 다른 말을 덧붙였다.

“조심히 가라고.”

“…응. 아, 맞다.”

이번에는 반대로 재환이 한영에게 ‘응?’이라는 눈빛을 보내야 했다. 무슨 까닭인지 한영은 데구루루 눈을 굴리며 조금 뜸을 들였다.

“내일 알바 가?”

알바?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지? 아, 혹시….

“알바 가지. 오디오 인터페이스 땜에? 그건 일단 공연 끝내고서 보러 가자.”

“어? 아, 응…!”

깜짝 놀랄 정도로 대답하는 목소리가 밝았다. 괜히 실망해 시무룩해하는 것보다야 낫다만, 재환으로서는 조금 아리송한 반응이었다. 뭐, 그건 그거고. 이제는 정말 한영을 보내야 될 때임을 상기한 재환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절반쯤 남은 컵을 쥔 채로 손을 흔들었다. 컵 안에서 얼음끼리 서로 부딪치며 잘그락잘그락 소리를 냈다.

“잘 가, 그럼.”

“응. 갈게.”

멀어지는 한영의 뒷모습을 계속 보고 있기가 뭐해 재환은 얼른 뒤돌아 건물 입구 안으로 들어섰다. 짧은 복도를 지나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밟고 나서야 한 박자 늦게 1층에 센서 등이 들어왔다. 2층, 3층 센서 등도 반응이 굼뜨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있는 게 어디냐고 나름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재환은 익숙한 현관문 앞에 섰다. 문 위에 붙은 전단지 몇 장을 떼어 내고 열쇠 구멍에 열쇠를 집어넣었다.

복도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문이 쿵 소리를 내며 여닫힐 때, 어두컴컴한 골목에 선 한영은 3층까지 차례로 불이 켜졌다 꺼지는 건물 계단참의 창문을 우두커니 올려 보았다. 이어서 막 커튼 쳐진 창문 안쪽에 불이 들어올 즈음 바지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진동음을 울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한영은 표정 없는 얼굴로 화면에 표시된 이름을 확인했다. 다만 통화 버튼을 누르지는 않았다.

느릿느릿 몇 걸음을 움직여 종전까지 재환이 서 있던 건물 입구 턱에 털썩 앉았다. 지금은 집에 가기 껄끄럽기도 했고, 조금 더 여기서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다. 여전히 손안에서 부르르 몸을 떠는 핸드폰 화면에는 ‘박세웅’ 세 글자가 떠 있었다.

* * *

[야, 대박. 카페에 핑크남 떴다. 너 어디야?]

[진짜??? 아씨 나 곧 자격증 시험이라 집콕ㅠ 근데 너 오늘 출근 아니지 않았음?]

[내일 일 있어서 재환 오빠랑 바꿨지롱 ㅋㅋㅋㅋ]

[헐 부러워ㅠㅠㅠ]

징징 우는 소리가 나는 듯한 상지의 메시지에 ‘공부 파이팅~’이라고 다소 얄밉게 답한 희연은 다시 창가 자리에 앉은 핑크남에게로 휙 시선을 돌렸다. 공교롭게도 카운터에서는 그의 옆얼굴만 보였는데, 그게 또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다.

전면 창으로 들이친 햇빛이 딸기 스무디 같은 핑크색 머리칼을 올올이 비추는 가운데, 그 아래로 떨어지는 얼굴선이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코에 찔린다는 건 바로 저런 걸 두고 하는 소리구나 싶었다. 게다가 도톰한 입술은 또 어찌나 붉은지. 희연 자신의 입술이 저 정도만 되었어도 틴트니 립글로스니 하는 것에 아르바이트비를 쏟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지….

볼수록 감탄만 나오는 상대의 자태를 살피던 희연의 눈이 점차 가느스름하게 좁혀졌다. 앙다문 입술 새에서는 작게 ‘흠….’ 하는 소리가 흘렀다.

때마침 매끄러운 마찰음과 함께 카페 문이 열렸다. 동시에 테이블에 놓인 코코아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핑크남의 고개가 번쩍 위로 들렸다. 하지만 ‘어우, 시원해!’를 외치며 들어서는 남녀 커플을 확인한 순간 다시 뚝 아래로 떨어졌다. 곧이어 그린 것 같은 핑크남의 얼굴에 일렁일렁 애수가 드리웠다. 절대 희연의 착각이 아니었다. 바라보는 쪽이 더 마음 짠해지는 저 표정을 좀 보라고…!

희연이 일하는 틈틈이 지켜본바,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핑크남은 줄곧 지금과 같은 반응을 내비쳤다. 꼭 누군가가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번번이 실망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니 희연은 어느새 속으로 ‘누구냐! 저런 존잘남을 기다리게 하는 XX는!’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거 참 야박하고 인간미 없는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반복되고 난 후, 결국 핑크남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오지 않는 상대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을 포기한 모양이었다. 하여 또 희연이 오지랖 넓게 안쓰러운 마음을 품으려는 때, 핑크남이 얼음만 남은 잔을 들고 성큼성큼 카운터로 걸어왔다. 어…, 빨리 딴청 부려야 하는데….

딴청을 부리기는커녕 점점 가까워지는 훤한 낯에서 눈 한 번 못 떼는 사이 핑크남이 카운터 앞에 와 섰다. 빈 잔을 카운터 위에 내려놓으며 ‘저….’ 하고 말문을 뗐다. 눈만 땡그랗게 뜬 희연은 ‘필요한 거 있으세요?’라고 묻지도 못한 채 숨죽여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와, 어쩜 목소리도 저렇게 좋아. 노래하면 죽이겠다. 라는 생각을 하는 중에도 핑크남은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때, 저 뒤편에서 또다시 카페 문이 열렸다. 약속한 듯 핑크남과 희연의 시선이 함께 그쪽으로 움직였다.

동시에 한 사람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서렸고, 또 한 사람의 얼굴에는 ‘얼씨구’ 하는 감정이 떠올랐다. 희연은 입술 끝을 쭉 떨어뜨리고서 땀범벅이 된 얼굴로 학학 숨을 고르는 상지를 쳐다보았다. 기집애, 겁나 뛰어왔구만. 하지만 금방 앞에 선 이에게로 시선을 되돌려야 했다.

“잘 마셨습니다.”

희연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 핑크남이 휙 뒤돌아섰다. 햇살 쏟아지는 카페를 가로지른 핑크남은 입구 근처에서 할딱거리는 상지를 지나쳐 쏙 카페 밖으로 나갔다. 눈알만 데구루루 굴려 핑크남 가는 길을 좇던 상지가 후다닥 카운터로 달려왔다.

“아, 대박! 그래도 얼굴은 봤다!”

시험공부도 내팽개치고 온 친구를 딱히 나무랄 주제가 되지 못하는 희연은 그저 ‘으이구.’ 하며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필사적으로 달려온 상지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갔으므로.

“야, 근데 이거 뭐야?”

대뜸 상지가 카운터에 놓여 있던 유리잔의 손잡이를 쥐어 얼굴 가까이 들어 올렸다. 하다못해 꽃미남이 놓고 간 잔이라도 관찰하려는 건가, 싶어 희연은 재차 입술을 비죽였다. 그러다 송골송골 결로가 맺힌 잔 표면으로 눈길이 갔다.

투명한 유리 위에는 손끝으로 죽죽 그은 듯한 글씨로 ‘I see you’라는 문구가 흐릿하게 적혀 있었다. 아아,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끝내 오지 않은 상대를 향한 핑크남의 절절한 마음이 다시금 희연의 심금을 울리는 순간이었다.

며칠 전 이 길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던 것은 기분 탓이 맞았던 모양이다. 몇 번 지나가는 차를 피해 담벼락 가까이 붙고, 안에 땀이 맺힌 티셔츠 자락을 펄럭이는 사이 재환은 이제는 익숙해질 만치 익숙해진 대문 앞에 금세 다다랐다. 그러나 평소처럼 곧바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설 수 없었다.

한쪽 손으로 어깨에 멘 기타 가방 끈을 꽉 움킨 재환은 대문 옆 담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선 상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상대의 손에 들린 담배 끝에서 몽실몽실 희부연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 아래 길바닥에 떨어진 꽁초 여럿을 일별한 재환의 눈이 다시 위로 들렸을 때, 흩어진 연기 너머로 두 남자의 시선이 얽혔다.

“너….”

곱상하면서도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다물었다. 그러고는 흘끔 눈만 움직여 재환이 등에 멘 것과 손에 든 것을 살폈다. 꽤나 노골적인 눈길이라 재환이 모를 수가 없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대뜸 관찰을 당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당연히 달갑지 않았던 재환은 슬그머니 눈썹을 구겼다. 뒤이어 남자의 입에서 재환의 표정을 더욱 굳게 할 만한 말이 튀어나왔다.

“네가 새 기타야?”

말투에도 내용에도 날이 잔뜩 서 있었다. 보내오는 눈빛 또한 만만찮게 적대적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합주하러 왔다가 기분이 조금 좆같아진 재환은 상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어조로 차갑게 대꾸했다.

“알아서 뭐 하게?”

자신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걸 알지 못하는 듯 남자의 눈이 왈칵 찌푸려졌다. 그래 봤자 재환에게 주는 감상은 하나였다. 어쩌라고.

“언제부턴데?”

또 남자는 지나치게 짧은 말로 그다지 대답하고 싶지 않은 물음을 던져 왔다. 인사도 없어, 자기소개도 없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의 따위 개나 줘 버린 듯한 태도였다. 하여 기가 막힌다는 듯 ‘허.’ 하고 짧게 헛웃음을 터뜨린 재환은 가뿐히 남자를 무시하고 대문 도어 록 앞으로 가 섰다. 뭐 저딴 새끼가 다 있어.

“야!”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우악스러운 힘으로 덥석 팔뚝이 붙잡혔다. 고개를 비뚜름히 기울여 낮게 ‘아씨….’를 중얼거린 재환은 천천히 남자 쪽으로 몸을 틀었다. 눈만 흘긋 내려 남자가 움켜쥔 팔뚝을 가리켰다.

“놔라.”

뭐 하는 새끼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말로 할 때 저리 꺼지라는 뜻이었다. 한데, 재환을 보는 상대의 표정이 종전과는 사뭇 달랐다. 시건방져 보이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어째서인지 묘한 초조함이 깔려 있었다. 그게 재환의 눈에 훤히 보일 정도였다. 한층 더 ‘이 새끼 뭐지’ 하는 생각이 강해졌다.

“안에 유한영 있지? 유한영한테….”

“박세웅?”

마침 들려온 목소리에 남자와 재환의 눈이 같은 방향으로 휙 돌아갔다.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기다란 베이스 가방을 등에 멘 지우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제야 재환의 팔뚝에서 스르륵 남자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화끈거리는 기운은 남았다.

“네가 여기 왜 있어.”

“씨발….”

지우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눈을 내리깐 남자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욕을 짓씹었다. 재환을 맞닥뜨렸을 때와는 또 다른 반응이었다. 표정과 행동에 ‘좆됐다’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영이한테 연락하고 온 거야?”

“연락을 받아 줬음…, 왔겠냐?”

‘아….’ 하며 지우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재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졸지에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재환은 지우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굳은 표정을 풀 수 없었다. 대신 그에게 ‘이게 뭔데?’라는 눈빛을 보냈다. 눈치 빠른 지우는 그 뜻을 금방 알아차린 듯 휴, 하고 한숨을 뱉었다.

“재환아. 넌 먼저 들어가 있어라.”

“넌.”

“난 세웅…, 이 새끼랑 얘기 좀 하고 들어갈게.”

‘어.’라고 짧게 답한 재환은 아직까지 어정쩡한 자세로 옆에 서 있는 놈에게서 몸을 틀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귀찮은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으므로 서둘러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달칵,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때였다.

“한영이한테는 일단 말하지 마. 내가 나중에 말할 테니까.”

따라붙는 지우의 말에 철문을 힘주어 밀려던 재환의 미간이 슬며시 좁혀졌다. 어차피 저와 상관도 없는 일, 한영에게 가타부타 말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굳이 지우에게 알았다 대답하지 않은 재환은 얼른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쿵쿵 돌길을 밟는 자신의 발소리가 거슬렸다. 페달 보드 가방 안에서 이펙터들이 덜거덕거리는 소리도 유난히 요란했다. 그 와중 재환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왜, 이제 와서 이 밴드의 전 기타리스트가 나타난 걸까. 그것도 유한영이 밴드를 그만두게 만들 뻔한.

모자 위로 떨어지는 햇살이 짜증스러울 만큼 뜨거웠다. 몇 걸음이면 닿을 입구가 멀게만 느껴졌다. 처음으로, 합주하기 싫은 날이었다.

“야, 서재환! 거기 싱코라니까?”

벌써 세 번째였다. 이번에도 또 같은 부분에서 혼자서만 엉뚱한 박자로 연주해 버린 재환은 멤버들 앞에 얼굴을 들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심지어 이제 공연이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무어라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땀이 밴 손바닥을 쓱쓱 바지춤에 문지르며 멋없는 사과는 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 응. 미안.”

“좀 쉬었다 할까?”

그나마 지우가 꺼낸 말이 재환을 한숨 돌리게 했다. 다만 지금 제가 이따위로 연주하는 이유가 꼭 아까의 일과 연관이 있어 보일까, 그게 재환은 내심 걱정이었다. 물론 완벽히 부정하지는 못하겠다.

“담배?”

나무색 베이스를 스탠드에 세워 놓으며 지우가 재환에게 물었다. 왠지 지금은 지우와 단둘이 되는 게 썩 내키지 않아 재환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지우는 두 번 묻지 않고 훌쩍 일어서서 합주실 밖으로 나갔다. ‘아, 그럼 난 전화 한 통 하고 온다!’라고 외친 태군도 조르르 지우 뒤를 따랐다. 이제 합주실에 남은 건 재환과 한영 둘뿐이었다.

늘 그랬듯 한영은 〈송어〉나 〈죽은 왕녀의 파반느〉 같은 곡들을 완전히 제 식대로 해석한 버전으로 연주하며 쉬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야 속으로 ‘저게 도대체 뭔 곡이야’ 했지, 이제는 저 독창적인 연주를 듣는 것도 나름 재환의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차마 즐길 수가 없었다. 튜너를 켜고 그다지 틀어지지도 않은 기타 음을 다시 맞추며, 재환은 마치 지나가는 이야기를 꺼내는 듯한 투로 한영을 불렀다.

“유한영.”

“응?”

건반 위에서 춤추듯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가락이 멎었다. 데구루루 굴러온 갈색 눈동자가 재환을 향했다. 기타의 헤드 머신을 만지작거리며 재환은 다음 꺼낼 말을 고심했다.

박세웅이란 놈이랑 친했냐? 걔가 치는 기타는 어땠냐? 나도 그만큼은 하냐? 지난번 핑크색 피크는 걔 거지? 근데…, 걔하고도 키스했냐?

미친.

순한 눈빛으로 이쪽을 보는 한영 앞에서 무심코 거친 소리를 뱉을 뻔한 재환은 와작 눈머리를 구겼다. 당장 생각나는 건 하나뿐이었다. 담배. 담배 피울 시간이 지나서, 몸에서 니코틴이 떨어져서 속으로 저딴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거였다.

“나도 담배 피우고 올게.”

“어? 어….”

기타를 놓고 벌떡 일어서자 당연히 한영의 표정이 얼뜨게 바뀌었다. ‘아까 박세웅이란 놈 왔었어’라는 말을 다른 쓸데없는 질문들과 함께 꿀꺽 삼킨 재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합주실을 나왔다. 뒤통수에 따라붙는 눈길은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겨우 혼자가 되었는데, 쿵쿵 계단을 오르는 도중 화장실에 들러 막 손을 씻은 듯 손목을 탈탈 털며 내려오는 지우와 마주쳤다. 재환은 지우가 내려갈 수 있도록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땡큐.’ 하며 지나치던 지우가 갑자기 홱 몸을 틀었다.

“재환아.”

“어.”

“아까 그 새끼는 신경 쓰지 마. 전에 기타 치던 놈인데, 괜히 너한테 시비 턴 것 같더라. 아마 이젠 안 올 거야.”

오거나 말거나, 라는 속마음을 재빨리 숨긴 재환은 ‘그래.’ 하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런 재환의 어깨를 지우가 두어 번 툭툭 두드렸다. 그대로 다시 계단을 밟아 내려가는 지우를 이번에는 재환이 불러 세웠다.

“현지우.”

계단참에 발을 디딘 지우가 뒤를 돌았다. 박세웅인지 뭔지 하는 놈에게 관심 두기 싫었지만, 이런 제가 진짜 유치하단 것도 알았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확인하고 싶었던 재환은 주저 없이 입을 열었다.

“그 박세웅이란 놈, 나보다 기타 잘 쳤냐?”

핸드레일을 짚고 재환을 올려다보던 지우의 눈이 큼지막하게 뜨였다. 그사이에도 재환은 무표정한 얼굴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잠시 후, 지우가 제법 큰 소리로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와, 진짜…. 재환아.”

“응.”

상대를 따라 입꼬리 한 번 움직이는 일 없이 재환은 담담히 지우의 답을 기다렸다. 농담 삼아 건넨 질문이 아니기 때문에 웃을 이유가 없었다. 그 속내를 훤히 꿰뚫은 듯 금세 표정을 갈무리한 지우가 답을 들려주었다.

“한영이, 원래 저렇게 연습 열심히 안 해.”

단, 그 답이 조금 모호해 재환의 눈이 설핏 가늘어졌다. 어떻게 해석해도 ‘누가 더 기타를 잘 치냐’라는 물음에 마땅한 답변은 아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그런데?’ 하고 되묻게 되었다.

“누구 때문이겠냐.”

“내가 닦달해서?”

“쟤가 닦달한다고 듣는 애야?”

아니지, 라고 재환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래서 그게 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지우가 왜 저런 소리를 하는 건지 오롯이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또 한 번 풋, 하고 웃은 지우가 나름 결론이라면 결론이랄 말을 던져 왔다.

“너 좋아하니까 그러는 거잖아.”

지우가 웃든 말든 지금껏 나름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던 재환의 얼굴이 일순 어리벙벙하게 풀어졌다. 재환을 보고 보다 씩 입꼬리를 올린 지우가 휙휙 커다란 손을 앞으로 내저었다.

“아아, 재환이 네 기타. 네 기타를 좋아한다고. 말이 좀 이상하게 나갔네.”

정말 사소한 말실수를 한 것처럼 지우의 말투와 표정이 더없이 산뜻했다. 저러한 면전에 대고 ‘뭔 개소리야’ 따질 수도 없었다. 그러기에는 종전 재환의 뒤통수를 탁 친 당황이 작지 않기도 했다. 그런 재환을 못 본 체, 지우는 천연덕스럽게 굳이 필요 없는 뒷말을 덧붙였다.

“재환이 네가 훨씬 한영이 스타일이지. 아, 그니까. 네 기타 플레이가. 그럼 먼저 내려간다.”

무어라 대꾸 한마디 못 하는 사이, 쿵쿵쿵 나무 계단 밟는 소리가 이어졌다. 얼마 안 가 저 아래에서 두꺼운 합주실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도 멀뚱히 서서 꼼짝 못 하고 있던 재환은 천천히 몸을 낮춰 털썩 계단 중간에 주저앉았다. 푸시식 안에서 김이 나는 듯한 모자를 훌떡 벗고 넓게 벌린 다리 위에 두 팔을 얹었다. 하, 하고 헛숨을 내쉬며 푹 고개를 숙였다.

역시, 오늘은 합주하기 싫은 날이다.

* * *

잠깐의 방황은 있었지만 몇 번 더 합주하고, 생일 생일 노래를 부르는 태군의 생일 파티를 조촐하게 열어 주는 사이 공연 날은 금방도 찾아왔다. 오디션 때처럼 함께 지우의 차를 타고 공연장 근처까지 이동한 더 숨의 네 사람은 간단히 이른 저녁 식사를 해결한 후 클럽으로 향했다. 벽 가득 다닥다닥 포스터가 붙은 계단을 내려가자 그들을 가장 먼저 반겨 주는 건 다름 아닌 코스믹 라테의 멤버들이었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형님들!”

같이 오디션을 보던 날에도 생각했다만, 참 파이팅이 넘치는 친구들이었다. 비슷한 기세로까지는 무리였으나, 그럭저럭 반가움을 담아 재환도 ‘응,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마자 다소 부끄러운 칭찬이 돌아왔다.

“와, 형님네는 오늘도 비주얼이 어마어마하네요.”

그런가, 하고 얼버무리며 흘긋 눈을 돌린 재환은 제 옆에 선 세 명을 차례로 빠르게 훑었다.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라며 눈썹에 피어싱까지 하고 나타난 태군은 머리 스타일을 포함해 단연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저 비주얼로 록을 하지 않는다면 필히 그게 더 수상쩍어 보일 외양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두 사람에게 눈이 가지 않느냐, 하면 그건 또 절대 아니었다. 오늘도 위아래로 알록달록한 옷을 곱게 입고 나타난 분홍 머리는 말할 것도 없었고, 기럭지가 남다른 지우는 평소와 다름없는 차림새인데도 가만 서 있는 것만으로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재환 자신은….

길게 설명할 것도 없었다. 오디션 때와 같이 그는 검정 바지에 흰 셔츠 차림이었다. 옷 입는 걸로 세심히 고민하는 성격도 되지 못했을뿐더러, 그런다 한들 선택지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상당히 신경 쓴 편이라 할 수 있었다. 평소의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이건 너무 속 편한 생각인가? 뭐, 아무렴 어때. 옷으로 기타 치는 것도 아닌데.

코스믹 라테의 멤버들과 그간 연습은 잘했냐,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냐 따위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리허설 순서가 돌아왔다. 보통 리허설은 공연의 역순으로 진행했는데, 따라서 네 팀 중 두 번째 순서인 더 숨은 세 번째로 리허설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리허설은 오늘의 오프닝을 맡은 코스믹 라테였다.

네 팀의 리허설이 모두 끝나고, 공연 시작 전까지 약 30분 남짓의 자유 시간이 생겼다. 자유 시간이래 봤자 악기 점검하고, 화장실 다녀오고, 담배 한 번 피우면 훌쩍 지날 시간이었다. 긴장한 듯 귀에 이어폰을 꽂고 쉴 새 없이 스틱으로 테이블 모서리를 치는 태군, 그 옆에서 핸드폰을 보며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지우를 두고 재환은 1층으로 올라왔다. 공연 전 마지막으로 담배나 하나 더 피울 생각이었다.

바깥으로 나오자 화장실에 간 줄 알았던 한영이 덩그러니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오디션을 보던 날과는 상황이 반대라는 생각을 잠깐 하며, 재환은 그 옆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여지없이 미세하게 기운 벤치가 삐거덕 소리를 냈다.

“혼자 여기서 뭐 해.”

“그냥.”

손에 핸드폰도 들지 않은 걸로 보아 정말로 한영은 그냥 앉아만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냐, 답하며 재환은 담뱃갑 안에서 꺼낸 담배 끝에 라이터 불을 갖다 댔다. 바깥 공기가 요 며칠 새 더 습해진 탓에 불은 한참 만에 붙었다.

필터를 길게 빨아올린 재환은 나름 배려한답시고 한영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후, 연기를 내뱉었다. 그제야 리허설 때부터 은근히 속을 들쑤시던 긴장감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듯했다. 그러나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이데아 시절에도 몇 번이나 섰던 무대였지만, 재환에게는 공연 자체가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거기에 ‘더 숨’으로서 첫 공연이라는 것까지 더해져 괜스레 더 마음이 떨렸다. 그래서인지 저도 모르는 새 한쪽 다리를 들썩이며 뒤꿈치로 탁탁 지면을 찍고 있었다. 물론 인지하는 순간 곧바로 멈추었다.

그즈음 재환은 옆자리가 지나치게 조용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평소에도 한영은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은 녀석이 아니었으나, 확실히 지금은 유독 조용했다. 빨리도 타들어 간 담뱃재를 툭툭 검지 끝으로 튕기며 재환은 흘깃 눈을 옆으로 굴렸다.

멍하니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한영이 양손을 번갈아 가며 꾹꾹 주무르고 있었다. 그 손이 조금쯤 희게 질려 있는 듯한 것은, 재환 자신의 착각이었을까. 뭐, 한영은 원체 피부가 하얀 편이었으니 얼마든지 기분 탓일 가능성은 있었다. 그렇지만….

일전 땀이 별로 안 난다며 불쑥 내밀어진 팔에도 뻗어 나가지 않았던 손이 이번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스르르 상대를 향해 움직였다. 이윽고 보이는 것만큼이나 차게 식은 손에 재환의 손이 닿았을 때, 꼭 딜레이가 걸린 것처럼 한 박자 더디게 한영의 고개가 움직였다. 손보다도 더욱 하얀 얼굴이 비로소 온전히 재환을 향했다.

“떨려?”

“…어?”

“손 엄청 차가운데.”

재환은 제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하듯 서늘한 손등에 겹쳐진 손에 가볍게 힘을 주었다. 한영의 손이 움칠, 오므라들었다.

사실 구태여 직접 만져서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재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나 무대에 섰던 저도 이렇게 떨리는데, 공연 경험이 전무한 한영은 오죽할까. 거기다 건반 치며 완벽히 노래까지 부르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나마 녀석의 긴장감을 조금 나누어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같은 멤버니까. 넌 우리 보컬이니까.

그사이 붙잡힌 손으로 내려갔다가, 괜히 길가로 한 번 돌아갔다가, 또다시 아래를 향했던 한영의 시선이 느릿느릿 재환에게 되돌아갔다. 붉은 입술을 달싹이던 한영은 재환의 손안에서 슬그머니 손을 반 바퀴 돌렸다. 전혀 다른 온도를 품은 손바닥 두 개가 맞닿았다.

방금 전과는 반대로 재환의 손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살짝 고개를 숙이자 제 손가락 사이사이로 얽힌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이 보였다. 마치 손장난하듯 하얀 손가락은 재환의 손등을 꾹꾹 누르기도, 엄지만 움직여 가만가만 살결을 매만지기도 했다.

긴장감이 녹아내린 자리에 차츰 밀착한 체온으로 빚어진 온기가 고였다. 어쩌면, 또 다른 긴장의 시작인지도 몰랐다. 상대의 떨리는 마음을 풀어 주려던 재환의 심장에 쿵쿵쿵, 꼭 킥 드럼을 밟는 듯한 묵직한 박동음이 퍼졌다.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은 채 씽, 앞을 지나치는 차 소리에도 그 소리는 묻히지 않았다. 선선한 건지 더운 건지 모를 공기가 목덜미를 스치며, 혀뿌리에 고인 침이 열없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이제 안 떨려. 넌?”

나는….

어느덧 지척으로 다가온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재환은 감히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간질간질한 숨결이 살갗에 와 닿고, 달콤한 향이 폐부로 흘러들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얼굴이 가까워지면 오늘따라 구불구불해 보이는 저 분홍 머리칼이 이마를 스칠 것 같았다. 그다음에는 코끝이 마주 닿고, 또 그다음에는….

문득 재환은 이대로 눈꺼풀을 닫아 시야에 맺힌 모든 것을 차단하고픈 충동이 일었다. 아니, 진짜로 그렇게 해 버리고 말았다.

“오빠!”

중력에 이끌리듯 스르륵 아래로 떨어졌던 눈꺼풀이 한순간 번쩍 위로 들렸다. 인지하지 못한 새 서로를 꼭 붙잡고 있던 손이 단숨에 멀어졌다. 눈앞에 있는 상대의 표정을 살필 틈도 없이 벌떡 일어선 재환은 얼른 뒤를 돌았다.

“어, 희연아.”

오르막길 아래 서 있던 희연이 방긋방긋 웃으며 재환을 향해 풀쩍풀쩍 뛰어왔다. 그때마다 앞코가 동그스름한 구두 밑창이 바닥을 밟으며 또각또각 경쾌한 소리를 울렸다. 그 소리에 재환은 껌뻑 나갔던 정신을 한층 또렷이 차릴 수 있었다.

“아직 공연 시작 안 했죠?”

원피스를 입고 거기에 조막만 한 크기의 핸드백을 사선으로 멘 희연 옆에는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함께 온 친구인 모양이었다.

“응. 곧 시작할 거야.”

지금이 정확히 몇 시 몇 분인지도 모르면서 재환은 대충 짐작으로 답했다. 쓸데없이 벤치에서 긴 시간을 보낸 듯한 기분이 든 까닭이었다. 그래도 아직 아래에서 요란한 연주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코스믹 라테의 공연이 시작되지는 않은 듯했다. 그들의 연주라면 필히 이곳까지 쩌렁쩌렁 울릴 터이므로.

“상지가 오늘 안 된다고 그래서 학교 친구랑 같이 왔어요.”

“안녕하세요.”

수줍게 인사하는 희연의 친구를 향해 재환도 ‘안녕하세요.’ 하며 고개를 꾸벅였다. 저 또한 함께 있던 녀석을 그녀들에게 소개하려는데, 그러기 전 재환 옆으로 고개가 돌아간 희연의 눈이 저러다 튀어나오겠다 싶을 정도로 커다랗게 뜨였다.

“어….”

아닌 게 아니라, 진심으로 당황한 희연은 재환 옆에 선 이를 보고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뻐끔거렸다. 그 반응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재환은 멋쩍은 듯 뒷목을 긁적였다.

“아, 여기는 우리 보컬. 야, 유한영. 너 보고 희연이가 놀랬나 보다.”

그러고는 괜스레 한영의 배 부근을 손등으로 툭 쳤다. 조금 전 둘 사이에 감돌았던 이상한 분위기를 씻어 내기 위한 행동이기도 했다. 그래, 이상한 분위기. 어쩌다 잠깐, 그냥 그렇게 되어 버린 거다. 당장에 재환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 정도였다.

여전히 당황에 잠긴 희연은 재차 ‘아….’ 하며 말을 머뭇거렸다. 분명히 상대의 얼굴을 알고 있는데 완전히 모른 척하기도 그랬고, 그렇다고 반갑게 아는 체하는 것도 영 이상했다. 무엇보다 고작 카페 아르바이트생인 자신을 저쪽이 기억하고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때, 희연과 눈이 마주친 상대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살짝이나마 분홍 머리칼이 살랑살랑 흔들렸으니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잠시간 그 뜻을 파악하기 위해 혼란한 머리를 굴리던 희연은 속으로 ‘아!’를 외치며 조급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재환 오빠랑 같이 카페에서 일하는 정희연이에요!”

단, 필요 이상으로 큰 소리가 나간 게 문제였다. 같이 있던 친구는 물론이고 재환까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릴없이 희연의 작은 얼굴이 발긋발긋한 색으로 달아올랐다.

“희연이 너 오늘 왜 그렇게 씩씩해. 암튼 와 줘서 진짜 고맙다.”

“아, 아니에요! 제가 전부터 꼭 온다고 했잖아요. 오늘 오빠 영상 찍어서 상지 보여 줘도 돼요?”

“당연히 되지. 그럼 슬슬 내려가자. 내 게스트라 그러면 티켓 안 사도 될 거야.”

어우, 아니에요! 하면서 희연은 손사래 쳤다. 아무리 그래도 밴드가 열심히 준비한 공연을 공짜로 보는 건 염치없는 짓이었다. 그러자 재환은 와 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며 툭툭 희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끝내 희연과 그녀의 친구를 게스트로 클럽에 입장시켰다. 여기에 더운데 오느라 고생했다며 병맥주도 하나씩 사 줬다. 그러니 희연은 그야말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재환 오빠가 저럴 때마다 정말이지 까무러칠 것 같다.

그 마음이 순수하게 드러나는 소녀의 말간 얼굴에서 한영은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재환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닿을 때, 맥주를 건네주며 두 사람의 손끝이 스칠 때 특히 더 그랬다. 당연히 이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환이 사 준 맥주를 들고 친구와 함께 관객석에 자리 잡은 희연은 일단 핸드폰부터 꺼냈다. 카메라를 켜 푸릇한 조명이 들어와 있는 빈 무대를 얼른 한 장 찍고서 냅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헐. 지금 공연장?]

[응. 방금 도착. 재환 오빠가 맥주도 사줌 ㅋㅋㅋㅋ]

[아씨 부러워ㅠㅠㅠㅠ 난 오늘도 집에 짱박혀 있는 중ㅠ 자격증 책 집어던지고 싶어ㅜㅜㅜㅜ]

우는 표시가 반인 상지의 메시지를 보고 킥킥 숨죽여 웃던 희연은 핸드폰 위에 두 엄지를 얹은 채로 잠시 머뭇거렸다. ‘오늘 클럽에서 핑크남’, ‘핑크남이랑 재환 오빠랑 사실 같은 밴드’ 따위를 메시지 창에 쳤다가 지우기를 서너 차례 반복했다. 그러다 그냥 눈 딱 감고 ‘여기 핑크남 있다!’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카페에서 본 걸 모른 척해 달라는 듯 저를 향해 고개를 젓던 모습이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재환 오빠 앞에서만 그러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무슨 사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몇 초 지나지 않아 희연의 손안에 있던 핸드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까만 화면 가운데 떠 있는 이름은 ‘이상한이상지’였다. 급히 상체를 납작 숙인 희연은 통화 버튼을 누른 핸드폰을 귀로 가져갔다.

“야! 곧 공연 시작해. 끊어!”

최대한 소리 낮춰 다다다 말한 후 종료 버튼을 누를 때까지도 스피커 너머에서는 껄떡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뭔 소리냐, 진짜냐, 나 지금 거기 간다, 하는 것들이었다. 말만 그렇지 실상은 책상 앞에 발이 묶인 친구를 향해 속으로 심심한 위로를 전한 희연은 핸드폰을 무음 모드로 돌렸다. 그새 보다 환히 조명이 들어온 무대 위로 첫 번째 팀이 오르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조명이 눈앞을 푸르고, 노랗고, 빨간, 온갖 다채로운 색깔로 물들였다. 강한 힘으로 킥 드럼의 페달이 밟힐 때마다 쿵쿵 터지는 타격음이 심장을 뒤흔들었다. 여기에 얹히는 묵직한 베이스 음과, 자글자글 드라이브가 걸린 기타 사운드가 공간 사방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유려한 건반 멜로디가 그 사이사이를 물결치는 가운데, 꿈결처럼 흐르는 노랫소리가 아득한 잔향을 퍼뜨렸다.

이 모든 것을 귀와 마음에 새기며 재환은 잠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쪼개지는 리듬 따라 고개를 흔들고, 발로 바닥을 짚고, 지판 위에서 손을 미끄러뜨렸다. 피크로 줄을 긁었다. 헉헉 숨이 차오르고, 흔들리는 머리칼 끝에서 쉴 새 없이 자잘한 땀방울이 튀었다.

발 앞에 놓인 페달 보드의 디스토션 페달을 밟았을 때, 재환은 제 손안에 조르륵 피크를 떨어뜨리던 한영을 잊었다. 그 옆에 있는 부스터 페달을 밟았을 때, 또 재환은 아까 제가 먼저 잡았던 하얀 손의 감촉을 잊었다.

그렇게 페달을 한 번씩 누를 때마다 재환은 마땅히 지워야 할 것들을 차례로 지워 나갔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쓸어 가던 손끝의 부드러움이나, 입술에 닿았던 온기 같은 것들까지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집 앞에서 한영을 기다리는 남자의 발아래 떨어져 있던 수 개의 담배꽁초였다. 재환은 그렇게 되기 싫었다. 전 기타리스트와 한영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나, 그 녀석처럼 대문도 넘을 수 없고, 심지어 합주실에도 들어갈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공연이 즐거운데, 음악이 즐거운데 잠깐의 지나가는 감정에 사로잡혀 그런 식으로 밴드에서 멀어지기 싫었다. 그러기에는 ‘더 숨’이 재환의 인생에서 너무 큰 부분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관객석에서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스트로크를 하던 재환은 굳은 마음을 먹었다.

오늘까지다.

녀석 때문에 심장 소리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도, 속으로 쓸데없이 애먼 기대를 피워 올리는 것도 다 오늘까지다.

챙! 차이나 심벌을 때리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무대 위 있던 모든 이의 움직임이 일제히 멎었다. 미처 사그라들지 않은 악기와 보컬의 잔향이 달아오른 공기 중을 배회했다. 잠시 후, 그럭저럭 자리가 찬 객석에서 커다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으로 재환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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