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93화 (393/400)

Round 393. 8강전 개막

7월 23일 리버풀 구디슨 파크.

한국과 포르투갈의 8강전을 보기 위해 많은 관중들이 모여들었다.

“허, 빨간 옷이 많군!”

“한국 사람들뿐만은 아닌 것 같아요.”

준영을 응원하러 온 프레드로 일가는 경기장 입장을 기다리는 관중들을 바라보았다.

앞서 경기에서 보았던 한국 응원단 외에도, 붉은 저지를 입은 이들이 꽤 많았다.

“할아버지, 저길 보세요. 미들즈브러의 유니폼이에요. 그쪽 사람들이 원정 응원을 해 주러 온 걸까요?”

“그럴 게다. 신문을 보니 그쪽 주민들이 한국 팀에 꽤 정이 든 모양이라고 하니까.”

지난 조별 예선에서 미들즈브러 주민들은 약팀인 자신들의 연고팀을 연상케 하는, 거기다 유니폼 색깔도 같은 한국 팀을 열심히 응원해 주었다.

그래서 한국이 일으킨 이변이 자신들의 쾌거인 양 무척이나 기뻐했다.

한국이 해낸 것처럼, 언젠가 미들즈브러 FC도 이변을 일으킬 수 있을 거란 기대와 희망이 들었기 때문.

“저쪽은 올드 트래퍼드에서 왔나 보구나. 가슴의 엠블럼이 유나이티드의 것이야.”

알버트의 눈에 띈 맨유 서포터들은 한 무리의 사내들과 마주쳤다.

“붉은 악마의 하수인 새끼들이 여긴 뭐 하러 왔어?”

“쳇, 콥스 놈들이냐. 너희가 좋아하는 펠레나 응원하러 갈 것이지, 왜 구디슨 파크에 얼씬거려?”

“그야 존 Y. 리의 구겨진 낯짝을 구경하고 싶었으니까.”

“그래? 그 전에 내가 네 낯짝부터 주먹으로 구겨 주지.”

으르렁대는 양 진영은 금방이라도 맞붙을 것처럼 소매를 걷어붙였다.

하지만 경기장에 배치된 경찰들이 그들을 바로 갈라놓았다.

그 광경에 혀를 차던 알버트는 주변을 둘러보다 앤지에게 물었다.

“리즈는 어디 간 게냐? 카린과 안나도 안 보이는데…….”

“군것질거리 사러 간댔어요. 체트리가 같이 갔으니 괜찮을 거예요.”

잠시 후, 셋 다 돌아왔다.

안나는 카린의 손에 들린 호떡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막내 이모, 그거 나도 먹을래!”

“잠깐 기다려. 아직 많이 뜨거우니까.”

안나가 먹기 쉽게 호떡을 호호 불어 준 카린.

그녀에게 앤지가 물음을 건넸다.

“그거 구디슨 파크 스낵바에서도 팔고 있었어?”

“응, 회오리 감자랑 핫도그도 팔고 있던걸.”

본래 경기장 주전부리라고 하면 피시 앤 칩스나 크래커, 과일 정도였다.

하지만 준영이 올드 트래퍼드에서 21세기 군것질거리들을 팔기 시작했고, 이것은 다른 지역으로도 전파되었다.

타 지역 팬들도 올드 트래퍼드에 원정을 왔다가 맛을 들였기 때문.

“근데 올드 트래퍼드에서 파는 것만큼 맛있지 않아.”

“원조를 따라가는 게 쉬운 건 아닐 테니까.”

프레드로 일가가 잠시 식도락을 즐기고 있을 때, 낯익은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Go West네. ADD4가 와서 연주를 하고 있나 본데?”

“아냐, 언니. 이 음색은 ADD4의 것이 아니라고!”

반색을 한 앤지는 저편에서 커다란 트럭 하나가 오는 것을 보았다.

짐칸을 개조해 무대로 꾸민 트럭에는 ADD4 멤버들 외에 깜짝 놀랄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비틀즈다!”

“헉, 진짜 비틀즈네!”

“꺄아아악! 레논! 존 레논이 나타났어!”

8월에 발매되는 앨범 때문에 두문불출 중이라는 비틀즈가 나타났다!

그 바람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트럭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구디슨 파크 앞은 콘서트장으로 뒤바뀌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옛 동료를 응원하려고 왔습니다. 다 같이 응원해 주시죠!”

“네-!”

아가씨들을 필두로 많은 사람들이 ‘Yes.’를 외쳤지만, ‘No.’를 외치는 이들도 꽤 많았다.

“싫다! 우린 존 Y. 리가 지는 꼴을 볼 거다!”

“그 자식은 머지사이드 축구의 원수라고!”

콥스와 에버튼 극성팬들의 토로에 레논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좋습니다. 각자 응원하고 싶은 쪽을 응원하죠. 대신 싸우지는 맙시다.”

“알았으니까 노래를 불러 줘!”

군중의 성화에 레논은 폴 매카트니를 바라보았다.

폴이 고개를 끄덕이자, 레논은 이번 새 앨범에 수록될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To lead a better life~ I need my love to be here~”

다들 잔잔하고 감미로운 신곡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앤지 역시 마찬가지.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고 시선을 건네는 폴에게 조용히 미소를 보냈다.

“폴 오빠가 작곡한 걸까?”

“어디서든 당신 곁에 있겠다라……. 좋은 노래네.”

감탄하는 카린, 리즈와 달리 알버트는 탐탁잖은 기색이었다.

“뻔한 사랑 노래로구먼.”

“할아버지, 평이 너무 박해요.”

“하라는 공부는 안 하니 그렇지.”

투덜대는 것과 달리 알버트는 노래를 경청하고 있었다.

뻔하고 단순한 가사이긴 해도, 쉬 마음에 젖어 들고 있었으므로.

***

경기장 밖에서 비틀즈의 돌발 콘서트가 벌어지고 있을 즈음, 한국과 포르투갈 양 팀의 감독들은 출전 선수 명단을 내놓았다.

<포르투갈>

GK:주제 페레이라

DF:주제 모라이스, 비센테 루카스, 제르마누, 힐라리오

MF:하이메 그라샤, 마리우 콜루나(주장)

FW:주제 아우구스투, 에우제비우, 주제 토히스, 안토니오 시모에스

<대한민국>

GK:함흥철

DF:박중환, 김정석, 김청남, 김효

MF:차태성, 이준영(주장), 박승옥, 이희택, 정병탁

FW:조윤옥

월터 윈터보텀은 임국천을 뺀 대신 차태성을 중원으로 전진 배치하고, 측면 수비에는 투지가 좋은 박중환을 출전시켰다.

그리고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한 정병탁에게 측면 공격을 맡겼다.

포르투갈 감독 오투 글로리아는 고심 끝에 제르마누를 출전 명단에 올렸다.

제르마누 본인이 강하게 요청한 데다, 공중전이나 몸싸움에서 존 Y. 리와 맞설 만한 수비수는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남은 건 결판을 내는 것뿐!”

오후 2시 50분.

양 팀 선수들이 필드로 나왔다.

포르투갈 선수들은 붉은색 홈 유니폼을 입었고, 한국 선수들은 태극무늬가 그려진 하얀 어웨이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

“대- 한민국!”

“Forca Portugal!”

필드로 선수들이 나오자, 양국 응원단이 함성을 높였다.

경기장 한쪽을 붉게 물들인 한국 응원단 정도는 아니지만, 포르투갈 쪽의 규모도 만만찮았다.

거기다 2시간 한정으로 명예 포르투갈인을 자처하는 영국인들도 꽤 있었다.

「선수들이 필드에 도열한 가운데, 먼저 한국의 국가가 연주되고 있습니다.」

경기장 앰프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한국 응원단에서는 커다란 태극기를 펼쳤다.

오늘 경기를 위해 준비한 대형 태극기는 이리저리 천을 꿰매서 만드느라 엉성했지만, 그래도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중계 카메라에도 아주 커다랗게 들어왔다.

‘아차, 저걸 미처 생각 못했구나!’

내심 아쉬워하던 준영은 자발적으로 대형 태극기를 준비한 교민들에게 감사했다.

그들을 생각해서라도 오늘은 정말 열심히 뛰어야 할 것 같았다.

「양 팀 선수들이 진영을 정한 가운데, 아쉬케나지 심판이 시계를 보고 있습니다. 이제 잠시 후면 8강 경기가 시작됩니다.」

오후 3시 정각.

아쉬케나지 심판이 경기 시작 휘슬을 불었다.

킥오프를 하기 무섭게, 조윤옥에게 공을 받은 준영이 측면의 정병탁에게로 패스를 보냈다.

‘오늘 경기는 기필코……!’

조별 리그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정병탁.

뭔가를 보여 주고 말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빠르게 포르투갈 진영으로 달려 들어갔다.

「초반부터 강하게 러시하는 한국. 모라이스가 태클하지만 Jung이 빠르게 툭 치며 돌파해 들어갑니다.」

측면이 뚫리자, 포르투갈 센터백 비센테 루카스가 곧바로 마크에 나섰다.

하지만 그가 근접하기 전에 공은 정병탁의 발에서 떠났다.

‘이런, 중앙으로…….’

조윤옥에게로 향하는 컷백.

하지만 조윤옥은 슬쩍 공을 흘리고 갔다.

그리고 이희택이 번개같이 달려들며 슛.

제대로 방향이 꺾인 슈팅은 페레이라 골키퍼가 반응할 틈도 없이 골대 구석에 꽂혔다.

열심히 포르투갈 국기를 흔들던 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한국이… 선제골?”

“아니, 이제 막 경기를 시작했는데?”

전반 1분 대한민국의 선제골.

골을 넣은 이희택은 중계 카메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멋지게 텀블링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크하하! 너 이 자식, 어제 용꿈 꿨구나?”

“아얏! 아파요. 살살 치라고요!”

한국 응원단은 단어 그대로 풍악을 울렸다.

골이 터지면 다시 펼치자며 고이 접어 놓았던 대형 태극기도 부랴부랴 꺼내 들면서 신나게 대한민국을 외쳐 댔다.

「놀랍습니다. 시작하자마자 기선을 제압하는 한국! 오늘 경기도 이변을 일으키는 걸까요?」

경기 시작 전만 해도 전문가들은 포르투갈의 우세를 예상했다.

아무리 한국에 존 Y. 리가 있다지만, 포르투갈은 3조에서 헝가리와 브라질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한 강팀이니까.

거기다 에우제비우나 아우구스투, 마리우 콜루나 등 유럽에서도 주목하는 특급 선수들이 뛰고 있다.

그런데 그런 포르투갈이 시작부터 한국의 강펀치에 맞아 다운당하다니!

“쩝, 몸이 풀리기도 전에 후려칠 줄은…….”

“그보다 제르마누 형님이 제대로 막지 못했어.”

실점 상황에서 제르마누는 페널티박스 중앙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조윤옥 쪽으로 패스가 갈 때, 제르마누는 그가 슛하지 않을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공이 흐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이희택이 벼락같이 달려들어 슛을 하는 게 아닌가.

“쩝, 역시 밥티스타나 카를로스를 넣는 게 나았으려나.”

오투 감독이 후회를 느끼고 있을 때, 포르투갈 선수들이 공격에 나섰다.

「그라샤가 콜루나에게 패스. 콜루나, 한 명 제치고 달려갑니다. 하지만 강한 태클로 저지하는 한국!」

콜루나가 전방을 보며 패스할 기색을 보이자 차태성이 냅다 태클로 쓰러트렸다.

이어지는 프리킥.

키커로 나선 콜루나는 한국 문전을 향해 날카롭게 공을 띄워 올렸다.

장신 공격수 주제 토히스, 그리고 실점을 만회하고자 했던 제르마누가 그 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들보다 높이 뛰어오른 준영이 헤딩으로 걷어 냈다.

「외곽에서 공을 잡은 그라샤, 측면의 시모에스에게 패스하지만 13번 Park에게 차단당합니다. 한국의 역습 기회!」

측면에서 공을 가로챈 박중환이 빠르게 치고 달렸다.

그에 맞춰 한국 공격수와 미드필더들도 일제히 전진해 들어갔다.

“와, 빠르군!”

“마치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은…….”

“뭐 하냐, 포르투갈! 빨리 내려와서 수비해야지!”

한국 공격수들보다 포르투갈 수비수들이 적었다.

상대 진영 깊숙한 곳까지 올라간 박중환은 반대편에서 달려드는 정병탁을 노리고 크로스를 보냈다.

하지만 그 크로스는 비센테 루카스가 헤딩으로 가까스로 라인 밖으로 밀어냈다.

간신히 한국의 역습을 무마했지만,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한국, 코너킥으로 공격을 이어 갑니다. 캡틴 리는 이미 박스 안으로 들어와서 골을 노리고 있군요.」

제르마누와 토히스가 준영의 곁에 바싹 붙은 가운데, 이희택이 코너킥을 찼다.

떨어지는 공을 향해 준영이 뛰어오르고, 그 뒤를 토히스와 제르마누가 뒤쫓았다.

준영은 공을 살짝 건드리며 방향을 돌려놓았다.

하지만 그 헤딩슛은 골대로 향하지 않았다.

‘2선을 보고 흘린 거군!’

모라이스가 황급히 떨어지는 공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기습적으로 공격에 가담했던 풀백 김효가 그보다 먼저 공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

***

당시 기록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8강에서 북한은 포르투갈 상대로 먼저 3골을 앞서 나갔습니다.

대놓고 공격 일변도라 포르투갈이 그대로 허를 찔려 버렸는데, 이후에도 북한은 경기 조율을 하지 못한 상태로 계속 공격적으로 플레이하다 에우제비우에게 탈탈 털려 버렸습니다.

사실 당시 북한 선수들의 컨디션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답니다.

숙소로 쓰게 된 수도원이 공산 국가 출신인 그들에게 너무 낯선 공간이다 보니 밤잠을 설쳤다고 하더군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