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92화 (392/400)

Round 392. 다크호스와 언더독

잉글랜드 월드컵 조별 리그는 7월 20일에 모두 끝났다.

1조에서는 3승을 거둔 잉글랜드와 1승 1무 1패의 우루과이가, 2조에서는 서독과 아르헨티나가 스페인을 따돌리고 토너먼트에 올랐다.

3조는 에우제비우의 포르투갈과 펠레가 이끄는 브라질이, 그리고 4조에서는 마지막에 칠레를 격파한 소련과 대이변을 일으킨 한국이 8강에 올랐다.

“너희도 들었겠지만 코레아가 8강 상대가 되었다. 기존에 준비한 정보가 소용이 없게 되었단 뜻이지.”

선수들을 숙소 강당에 집합시킨 포르투갈의 오투 글로리아 감독은 쓴웃음을 지으며 전력 분석 정보 파일과 영상 필름들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솔직히 말하마. 내가 한국에 대해 아는 건 존 Y. 리가 있다는 것밖에 없어. 여기에 예상외로 체력이 강하고 스피드가 빨라서 기동력이 대단하다는 것 정도?”

한국 팀 스타일에 대한 것도 어제 신문을 보고 알았다.

하지만 신문으로 접한 정보는 한계가 있었다.

거기다 한국 선수들이 이상한 약초로 도핑을 했다는 둥, 땅을 줄여서 달리는 신비한 동양의 마법을 익혔다는 둥의 헛소문들도 있어 영 믿음이 가지 않았다.

“한국 팀에 대해선 제가 약간 압니다.”

손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난 선수는 주제 토히스.

맨유에서 준영과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었던 그는 종종 맨체스터를 찾아와 전지훈련을 하는 한국 대표팀을 본 적이 있었다.

“대다수 선수들의 수준은 영국 3, 4부 리그 정도인데, 발이 빠른 녀석들이 많았죠. 끈질긴 구석도 있고요.”

“흠… 다른 건?”

“주전 공격수인 Cho는 캡틴 리가 아마추어 시절부터 돌보면서 키운 제자죠. 빠르고 슈팅이 날카로워요.”

“이탈리아에게 골을 넣은 그 공격수로구만.”

“예. 그리고 칠레와의 경기 때 득점했던 리틀 리 말인데요. 이 녀석, 유나이티드 유소년 팀에 있을 때 봤는데 즉흥적이면서도 돌발적인 플레이를 잘합니다.”

“그렇군. 아무튼 소련과 비기고, 이탈리아에 완승을 거둘 정도이니 일단 월드컵 상위권 국가로 생각하고 대비해야겠군.”

“예, 일단 존 Y. 리부터 막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괴물을 막는다라…….”

이미 유럽에서 그 실력이 잘 알려진 초특급 플레이어 존 Y. 리.

덕분에 따로 분석할 필요는 없지만, 마땅한 대책 또한 없었다.

‘중원에서 두세 명이 붙어서 견제하면 저지할 수 있겠지. 문제는 공중전인데…….’

현재 포르투갈에 존 Y. 리를 봉쇄할 장신 수비수는 없다.

180대 후반의 제르마누가 있지만, 나이도 많은 데다 조별 리그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한 게 문제였다.

‘세트 플레이 상황에서는 토히스에게 마크를 맡긴다 쳐도 역습에선……. 휴우, 왜 덩치가 큰 놈이 발까지 빠른 거야.’

골치 아팠지만, 글로리아 감독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그 점은 포르투갈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

축구를 통치에 악용하고 있는 포르투갈의 독재자 살리자르는 4강 진출에 성공하면 1인당 2만 달러의 보너스라는 당근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 어떤 채찍을 두들겨 맞을지 모른다.

그것도 이탈리아나 소련 같은 축구 강국이 아닌 한국에게 진다면?

‘어떻게든 이겨야 해!’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리면 제아무리 존 Y. 리라도…….’

첫 월드컵에 출전하여 다크호스로 떠오른 다섯 방패 군단 포르투갈.

그들은 대이변을 일으킨 언더독을 상대로 방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

미들즈브러에서의 일정을 마친 한국 대표팀은 다음 결전의 장소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잘 가요. 건투를 빌어요!”

“끝까지 응원할 테니까 열심히 하라고!”

미들즈브러 주민들이 나와 한국 선수들을 배웅해 주었다.

조별 리그 동안 성원을 보내 준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 한국 선수들은 버스를 타고 리버풀로 향했다.

“미들즈브러에선 참 많은 성원을 받았는데, 리버풀에서도 그러려나?”

“거기선 좀 힘들걸요. 그쪽 사람들은 우리 주장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알아요.”

“그거야 안필드에서나 그런 거고. 우리 경기는 구디슨 파크에서 하잖아.”

“뭐, 에버튼 팬들이라고 딱히 다르진 않을 것 같은데요.”

쑥덕이던 선수들은 준영을 살펴보았다.

머지사이드 주민들에게 깊은 원한을 심어 준 그는 출발하자마자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네요.”

“그럴 수밖에 없지. 훈련하느라 바빴지, 인터뷰하느라 바빴지, 거기다 축하 전화나 전보를 받느라고 바쁘기도 했잖아.”

“하긴 진짜 여기저기서 축하를 보냈죠.”

맨유의 맷 버스비 감독과 지미 머피 코치가 제일 먼저 축하 전화를 해 왔다.

뒤이어 잉글랜드 대표팀에 차출된 던컨과 바비를 시작으로, 소속 팀 동료들도 연락해서 축하해 주었다.

뒤이어 리버풀의 빌 섕클리 감독, 애S턴 마틴의 회장 데이비드 브라운, 나2키의 사장 조셉 포스터, 007로 유명한 배우 숀 코너리 등등 수많은 지인들이 축하 전화와 전보를 보냈다.

“설마 오드리 헵번한테까지 축하받을 줄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영국 여왕한테 전보가 왔을 때 제일 놀랐죠.”

월드 클래스 선수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나 유명한 사람들과 친분이 있을 줄이야!

이런 사람과 함께 뛰고 있다는 게 정말이지 믿어지지 않았다.

“잠시 정차하고 가겠습니다.”

약 2시간 정도 도로를 달려가던 버스가 휴게소에서 멈춰 섰다.

“후암~ 잘 잤다. 벌써 도착한 거야?”

“아뇨. 잠시 쉬었다 간대요.”

“마침 점심때인데 밥이나 먹고 가죠.”

한국 선수들은 출발할 때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식사할 모양인데?”

“뭘 먹고 마시는지 제대로 찍어 보자고. 그럼 저들이 조별 리그 경기에서 보여 준 기동력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지도…….”

미들즈브러에서 쫓아온 몇몇 기자들이 몰래 식사 중인 한국 선수들을 촬영했다.

그들은 한국 선수들이 엄청난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비결을 궁금하게 여겼다.

캡틴 리나 한국 팀 관계자들에게 물어도 전혀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

“던컨 에드워즈나 바비 찰튼도 한국산 Red Ginseng을 먹으면서 몸 관리를 한다니…….”

“하지만 그건 금지 약물 목록엔 없는 거라고 하던걸?”

나쁜 약물이기는커녕 옛날부터 동양에서 유명한 명약이라고.

사실 맨유 선수들이 인삼을 복용하는 건 이미 예전에 알려져 있었다.

소문을 들은 타 구단 선수들도 차이나타운을 기웃거리거나, 한국 대사관에 구입 방법을 문의할 정도였다.

“리즈의 잭 찰튼도 ‘그 좋은 걸 너만 처먹냐!’라며 동생에게 역정을 냈었다고 하더군.”

“뭐, 좋은 거라도 남몰래 먹는 건 비겁한 거야.”

자신만의 논리를 주장하던 기자의 카메라에 한국 선수들이 쌀밥에 고기 요리를 먹으면서 뭔가를 나눠 먹는 광경이 찍혔다.

그는 바로 렌즈 비율을 확대해서 무엇인지 확인해 보았다.

“뭔가 퍼런데 길쭉 뾰족하군.”

“칠리잖아. 그것도 덜 익은.”

“칠리라고? 그 매운 걸?”

한국 선수들은 그 매운 향신료를 아무렇지 않게 통째로 씹어 먹고 있었다.

그것도 이상한 소스에 찍어서.

“맙소사, 대체 몇 개나 먹는 거야?”

“저렇게 매운 걸 먹다간 위장이 탈이 나고 말 텐데…….”

잠시 후 식사를 마친 한국 선수들이 떠났다.

그들이 떠난 후, 기자는 탁자에 떨어져 있던 소스를 손끝으로 찍어서 살짝 맛을 보았다.

그러다 이내 인상을 찡그리며 침을 뱉었다.

“왜 그래? 이상한 약물 같아?”

“아, 아니. 그냥 매워. 끈적한 타바스코 소스 같달까.”

매운 향신료를 매운 소스에 찍어 먹다니.

참으로 지독한 놈들이 아닌가!

“이탈리아가 왜 졌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군.”

이런 지독한 놈들의 상대는 브라질을 밀어내고 1위로 8강에 오른 독종 포르투갈.

23일 구디슨 파크에서 양 팀이 과연 어떤 경기를 펼칠지 기대가 되었다.

***

약 2시간 후, 한국 대표팀은 리버풀 근교의 수도원에서 여장을 풀었다.

“여기가 원래 이탈리아가 8강 진출에 대비해서 숙소로 잡은 곳이래.”

“우리한텐 승리의 전리품이 된 셈이군요!”

“이놈들아, 떠들지 말고 얌전히 지내. 여긴 우리나라로 치면 절간 같은 곳이다.”

선수들은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푼 다음, 저녁에는 강당에 모여 포르투갈의 조별 리그 경기 영상을 보았다.

전력 분석관인 로저 바인이 공수해 온 따끈따끈한 최신작이었다.

“에우제비우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요?”

“그래도 3골이나 넣었어. 그것도 천하의 브라질한테 2골을 박아 넣었구만.”

득점을 빼면 에우제비우가 명성에 다소 못 미치는 활약을 한 것은 사실.

오히려 공격에서는 주제 아우구스투와 토히스의 폭넓은 활약이 돋보였다.

“그나저나 저놈들도 꽤 거칠군요.”

“와, 살인 태클 거는 것 좀 봐. 저게 사람 새끼냐.”

포르투갈 수비수 주제 모라이스가 문전에서 브라질의 펠레에게 백태클을 날렸다.

펠레가 잽싸게 피하자, 놈은 쫓아가서 또 백태클을 했다.

다행히 펠레는 두 번째도 감지하곤 껑충 뛰며 피했다.

하지만 위험한 태클을 연달아 맞을 뻔하다 보니,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없었던 모양.

축구 황제는 자신을 시해(?)하려 든 암살자를 와락 밀쳐 쓰러트렸다.

“와, 싸운다, 싸운다!”

“관중들도 뛰쳐나오고, 개판 5분 전이군.”

안 그래도 펠레는 전반전부터 마리우 콜루나나 다른 포르투갈 선수들에게 심한 견제를 받고 있던 참이다.

그렇다 보니 펠레도 격분했고, 그를 응원하던 리버풀 사람들도 화가 단단히 났다.

수십 명이 필드로 난입해서 쫓아오자, 모라이스는 총알같이 도망쳤다.

“크크, 쟤 진짜 빠르네.”

“잡히면 죽어요. 리버풀 콥스가 얼마나 악명 높은데.”

다행히 사태는 금방 수습이 되었다.

경찰과 대회 진행 요원들이 관중들을 돌려보내고, 조지 맥케이브 심판도 펠레와 모라이스를 불러 구두 경고를 주었다.

그리고 두 선수가 세상에서 제일 어색하게 악수한 후, 경기는 재개되었다.

“포르투갈 쪽이 기가 좀 죽었네.”

“2골이나 앞서고 있는데 경기 흐름이 저렇게 되다니…….”

이후 펠레가 분노의 연속 골을 터트리며 경기는 원점.

후반전에 브라질의 역전 골이 터졌지만, 마지막에 에우제비우의 골이 터지며 브라질의 승리는 날아갔다.

영상 재생이 끝나고, 월터 윈터보텀 감독이 선수들에게 말했다.

“영상들을 봤으면 알겠지만, 포르투갈의 공격은 대부분 마리우 콜루나의 발끝에서 나온다. 수비 상황에선 그를 최우선으로 차단해야 해.”

패스의 맥이 끊기면 에우제비우나 아우구스투, 토히스의 공격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콜루나는 패스 능력만 좋은 게 아니라 드리블도 뛰어나다는 점.

발재간도 좋고 몸싸움도 탁월하니 웬만한 선수로는 묶어 둘 수 없었다.

당연히 준영이 상대해야 하겠지만, 월터는 그런 뻔한 방책을 내세우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는 포르투갈 쪽에서도 예상할 테니까.

‘부상자에게 너무 의존해선 곤란하지. 거기다 존은 공격적으로도 활용해야 해.’

포르투갈 쪽에서도 부랴부랴 이쪽 경기를 살펴보고 있을 터.

그 점을 생각하면 저들의 허를 찌르는 전술이 필요하다는 게 월터의 생각이었다.

그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상치 못한 돌풍을 상대로 싸워야 하겠지만, 난 제군들을 믿는다. 제군들은 열심히 준비했고, 명백한 운명을 걷어차면서 자신을 증명했으니까.”

이탈리아전 승리로 팀의 사기는 최고.

포르투갈이 아니라, 전성기의 매직 마자르가 상대라고 해도 깨부수겠다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 끝내기는 아쉽지. 그러니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해 주자.”

“물론입니다!”

“파이팅, 대한민국!”

우렁차게 외친 태극 전사들.

그들은 예상치 못한 돌풍을 헤쳐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스포르팅 CP 출신인 주제 모라이스는 펠레에게 더블 백태클을 날리고 ‘세상에서 가장 인정머리 없는 남자’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지금 그랬으면 레드카드는 물론이요, 추가 징계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악질적인 파울이었죠.

모라이스의 살인 태클은 2014년 ESPN에서 선정한 월드컵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파울에 4위로 랭크되었습니다.

여기엔 2002년 박지성 선수가 핀투에게 당한 백태클 파울도 9위에 올라 있습니다.

참고로 1위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의 클라우디오 카니자가 카메룬의 벤자민 매싱에게 걷어차인 파울입니다.

당시 매싱은 다이렉트로 퇴장당했고, 아르헨티나는 수적 우위에 있었지만 카메룬의 오맘 비크에게 헤딩 골을 먹고 충격패를 당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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