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84. Go West
1966년 6월 13일.
월터 윈터보텀 감독은 잉글랜드 월드컵 출전 선수 명단을 발표했다.
DF:차태성, 박중환, 김청남, 김효, 김정석, 조정수, 최재모, 최길수
MF:이준영, 임국천, 김기복, 서윤찬, 정강지, 박승옥, 이이우, 김삼락
FW:조윤옥, 이희택, 정병탁, 허윤정
예비 엔트리:이세연, 박영태, 정규풍, 김재헌>
발표된 명단을 본 기자들은 대부분 수긍하는 기색을 보였다.
예비 엔트리 쪽을 제외하면 딱히 깜짝 발탁이라고 할 만한 부류는 거의 없고, 국내나 해외에서 활약하며 주목을 받아 온 선수들이므로.
“궁금하신 점 있습니까?”
김용식 코치의 통역을 통해 월터의 물음이 흘러나오자, 기자 한 명이 냉큼 손을 들었다.
“공격수가 좀 적은 것 같은데, 수비 지향적인 전술로 하실 겁니까?”
“수비를 중시하지만, 공격을 포기한 건 아닙니다. 수비수나 미드필더들 중에도 공격에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으니 상황에 따라 적절한 위치에 기용할 겁니다.”
대표적으로 차태성과 이준영은 다양한 포지션을 맡을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들이다.
그들만큼은 아니지만 김효와 최재모, 서윤찬, 허윤정 등도 포지션 전환이 가능했다.
“예비 엔트리 4명은 부상자 대체 자원으로 보기에는 어린 선수들 같습니다만?”
“한국 축구계에서 유망주로 꼽히는 선수들이지요. 이미 한 차례 차출해서 실력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선수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김재헌 선수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만?”
승리제화의 공격수 김재헌은 아직 어린 데다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거기다 득점도 적었고.
하지만 월터가 보기엔 장래성이 있는 선수였다.
“큰 키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선수죠. 남다른 특성이 있으니 경험을 쌓으면 장차 뛰어난 공격수가 될 겁니다. 미래 한국 축구를 위한 투자로 생각해 주십시오.”
예비 엔트리 선수들은 대회 일정을 끝낼 때까지 동행하기로 이미 합의해 놓았다.
결과가 어찌 되든, 큰 무대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면 피가 되고 살이 될 뿐만 아니라 좋은 자극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이준영 선수는 궁극적인 목표가 우승이라고 했는데, 감독님이 기대하는 성적은 어느 정도입니까?”
“역사에 길이 남을 성적을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좋은 쪽으로요.”
월터는 1승이나 8강 진출 등의 구체적인 성적을 말하진 않았다.
팬들의 기대를 부풀리면 부담을 받는 건 선수라는 걸 잘 알고 있으므로.
그렇다고 우승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던 준영을 비판할 마음은 없었다.
준영의 말은 언젠가 꿈을 이루고 싶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
“국내에서의 훈련이 끝나면 우리는 서쪽으로 갈 겁니다. 부디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인터뷰를 끝낸 월터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월드컵 예선이 끝나고 단일팀 문제로 잠시 어수선하기도 했지만, 선수들을 소집하며 많은 훈련을 해 왔다.
특히 체력을 키우고 조직력을 다지는 데 공을 들였다.
‘전술도 준비되었고, 상대국의 전력 정보 수집도 끝났어.’
앞으로 약 한 달.
세계를 놀라게 할 역사적인 성적을 내기 위해서도 남은 일정 동안 잘 준비하리라 마음먹었다.
***
“좋은 날씨군.”
한동안 우중충하던 하늘이 개고 밝은 햇살이 쏟아졌다.
준영은 여행 캐리어를 들고 저택을 나섰다.
오늘 맨체스터에 도착하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에 합류해서 더 클리프에서 최종 훈련을 진행할 것이다.
그런 다음 4조 경기가 치러지는 미들즈브러로 입성할 예정이었다.
“소지품은 잘 챙겼어요?”
리즈의 물음에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갈아입을 옷이나 세면도구 등등 빠진 거 없는지 확인했어.”
가족사진과 리즈가 건네준 탈리스만도 단단히 챙겨 두었다.
항상 자신에게 힘을 내게 해 주는 부적이었으니까.
“다녀와, 아빠. 안나 응원 갈게!”
“그래, 갔다 올게.”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떠난 준영은 잠시 후 맨체스터 공항에 도착했다.
거기엔 먼저 도착한 해외파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여기요!”
조윤옥과 이희택, 정병탁.
가까이 있어 종종 만나서 밥도 먹고 훈련도 하는 대표팀 후배들이다.
“병탁이는 표정이 왜 그러냐?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아뇨. 이제 진짜 월드컵 본선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뭔가 부담이 되어서 한잠도…….”
올 초에 볼턴 원더러스 이적이 마무리되었을 때도 이랬다.
이후 팀 훈련에 참여한다, 데뷔전을 치른다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월드컵 시즌이 성큼 다가왔다.
“부담 가질 거 없어요. 병탁이 형은 출전할 일도 없을 텐데.”
“뭐, 인마? 희택이 이 자식, 좀 유명해졌다고 우쭐대긴.”
이희택은 정병탁뿐만 아니라 조윤옥에게도 머리를 쥐어박혔다.
조윤옥은 살짝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꿈꿨던 프로 무대에서 준영과의 맞대결을 후배 놈이 먼저 하게 되었으니까.
“근데 태성이는 아직 안 왔나?”
“글쎄요, 합류 시간에 맞춰 올 거라고 했는데…….”
조윤옥이 말을 하려다 말았다.
저편에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차태성이 보였기 때문.
“양반은 못 되겠구만.”
“기차가 연착되어서 말이지. 근데 대표팀은 아직 안 온 거야?”
“응, 도착 예정 시간이 아직 조금 남았어.”
공항에는 몇몇 기자들이 취재를 나와 있었다.
한국 대표팀보다는 준영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져 댔다.
그들이 건네는 질문은 최근 인터뷰에서 들었던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어서 준영은 대충 답변해 주고 말았다.
“오, 드디어 도착했군.”
잠시 후, 입국장에 회색빛 단복을 걸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나타났다.
그들과 반갑게 해후한 준영은 모두와 함께 대절 버스를 타고 더 클리프로 이동했다.
이동하던 중, 대표팀 선수들은 버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듣고 반색을 했다.
“이거 신중현이 있는 ADD4에서 부른 거지?”
“제목이 ‘가자, 서쪽으로!’였던가?”
원곡은 ‘Go West’.
준영이 교민 응원단 구성 계획을 짜면서 ADD4를 만났을 때 슬쩍 알려 준 곡이었다.
물론 원곡 그대로 알려 준 건 아니고 1993년 리메이크된 버전에 가사도 좀 바꿨다.
여기에 2002년 대한민국 응원가 버전도 알려 줬으나…….
‘무슨 판소리 비슷한 걸로 생각하고 부르던 모양이던데.’
사실 그 점은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랩이나 힙합 같은 장르가 나오기 전이니까.
아무튼 ADD4는 준영이 작사, 작곡(?)한 이 노래를 맘에 들어 했고, 존 레논이나 폴 매카트니도 듣고 좋아했다.
그렇게 비틀즈가 선택한 곡이라고 알려지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았고, 이제는 라디오에서 틀어 줄 정도로 히트를 쳤다.
‘아무튼 다른 준비는 끝났어. 남은 건 팀 전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뿐!’
여전히 상대국들과의 현실적인 전력 차는 존재한다.
하지만 축구공은 둥글고 어디로 구르거나 튈지는 함부로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에 준영은 점점 결전의 날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
7월 11일 저녁 7시 30분.
약 9만여 명의 관중들이 몰려든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 월드컵의 개막전이 열렸다.
주최국인 잉글랜드의 상대는 우루과이.
공격진에 지미 그리브스와 바비 찰튼, 로저 헌트, 존 코넬리를 배치한 잉글랜드는 경기를 주도하며 우루과이 골문을 두들겨 댔다.
하지만 호라시오 트로체가 이끄는 우루과이 수비진은 견고했고, 페냐롤의 주전 골키퍼 라디슬라오 마주르키에비치의 뛰어난 선방에 번번이 찬스는 무산되었다.
“저 라디오인지 하는 골키퍼, 굉장히 잘 막는걸.”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TV로 개막전을 보던 함흥철은 라디슬라오의 활약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근데 이름이 왜 저리 복잡한 거지?”
“부친이 폴란드 사람이래요.”
준영은 라디슬라오의 혈통에 대해 알버트와 로베르트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우루과이뿐만 아니라 프랑스 대표팀에도 로베르 부진스키라는 폴란드계 선수가 뛰고 있다고.
‘아마 그들의 활약을 보는 폴란드인들의 심정은 1958년에 잉글랜드 대표로 출전했던 날 보는 한국 사람들의 심정이랑 비슷하겠지.’
그런데 폴란드인들은 라디슬라오의 활약에 환호할지 몰라도, 잉글랜드 사람들은 짜증을 낼 것 같았다.
전반은 물론 후반전도 계속 0 대 0으로 진행되고 있으니까.
더구나 후반 말미부터는 우루과이도 페드로 로차나 밀턴 비에라 같은 장신에 발재간이 좋은 선수들을 이용해 날카로운 역습을 펼치고 있었다.
“위험한데. 저러다 잉글랜드가 지는 거 아냐?”
“그럼 웸블리가 폭발하겠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경찰 병력이 경기장에 진입할 때였다.
태클로 페드로 로차의 발밑에 있던 공을 빼낸 잭 찰튼이 전방으로 달려가던 동생 바비 찰튼에게로 롱 패스를 전달했다.
「바비 찰튼, 우루과이 박스로 돌파. 하지만 여의치 않자 뒤쪽에서 접근한 던컨 에드워즈에게 패스…….」
바비의 패스를 받은 던컨은 잡아 세우지 않고 그대로 슛을 때렸다.
크게 휘어져 날아간 던컨의 슛은 라디슬라오의 손끝을 스치며 골대에 박혔다.
「골! 골인! 빅 던의 아름다운 슛이 잉글랜드의 승리를 밝혀 줍니다!」
딱 필요한 순간에 터진 결승 골.
준영은 물론 한국 선수들 모두가 감탄과 박수를 보냈다.
경기는 1 대 0으로 잉글랜드의 승리로 종료.
이후 준영은 런던의 잉글랜드 대표팀 숙소로 전화를 걸어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기가 막힌 골이었어. 잉글랜드 사람들 모두가 네가 대표팀에 있다는 걸 감사하겠지.”
(하하, 너무 낯간지러운 소리 하지 마. 겨우 진땀승이었는걸. 아무튼 축하해 줘서 고마워, 존.)
감사를 표한 던컨은 준영의 선전을 기원했다.
(너희 팀은 내일 소련이랑 첫 경기를 하지? 반드시 이겨라. 난 너희 팀 승리에 걸었어.)
“자식이, 무모한 도박을 하는구만.”
(무모한 경기에 직접 뛰는 놈도 있는데, 뭐. 아무튼 필승이다! 언론에서 떠벌리는 명백한 운명 따위 박살 내 버려!)
“오냐, 알았다. 다들 깜짝 놀라게 해 볼게.”
던컨의 격려를 받은 준영은 이후 통화를 끝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는 탁자에 놓인 신문을 보았다.
거기 작게 실려 있는 한국 팀 관련 기사에서도 명백한 운명 운운하는 내용이 있었다.
“진짜 누가 만든 표현인지 몰라도 지겹게도 쓰는군.”
덕분에 조 편성이 된 후로 지겹게 보고 있었다.
심지어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선전에 회의적인 몇몇 한국 국내 언론에서도 냉정한 현실 운운하며 그 표현을 빌려다 쓰곤 했다.
“그 빌어먹을 운명 타령, 내일부터 못하게 해 주지.”
모두를 구하기 위해 이 시대로, 머나먼 유럽 서쪽의 섬나라에 왔다.
그리고 준영은 역사를, 미래를 바꿔 가며 여기까지 도달했다.
그렇기에 여기서 포기하거나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갈 길도, 바꿔야 할 일도 많으니까.
***
라디슬라오 마주르키에비치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의 4강 진출에 공헌한 골키퍼입니다.
레프 야신 이후, 잉글랜드의 고든 뱅크스와 더불어 월드 클래스 골키퍼로 손꼽혔지요.
골키퍼치고 신장이 작았지만, 몸놀림이 잽싸고 상당히 안정적인 선방 능력을 갖춘 선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펠레 앞에선 어쩔 수 없었는지 노터치 트릭의 굴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