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81. 단일팀 논란
목요일 아침, 준영은 일어나기 무섭게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이준영입니다. 각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러니 연결 좀 부탁합니다.”
대표팀을 지원하는 정보부를 통하니 얼마 후 청와대에 있는 김홍일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각하, 북한에서 단일팀 제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 정부 내에서는 물론이고 여론도 찬반이 갈린 상태야.)
북한의 월드컵 단일팀 제안.
남북 최고의 선수들로 팀을 꾸려 분단의 갈등을 씻어 내고, 한민족의 기상을 만방에 떨치자는 게 북한의 주장이었다.
여기에 솔깃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대표적으로 부통령인 장면은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거라 보고 찬성하고 있었다.
“개선 안 될 겁니다. 독일도 1956년 동계 올림픽 때 단일팀을 했지만, 여전히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서독과 동독 양국은 전쟁을 치른 적도 없다.
단일팀을 구성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그런데 이제 반년도 안 남은 월드컵에 단일팀을 구성하자니 될 말인가.
그것도 예선에서 난투극을 벌인 추태로 FIFA에서 징계까지 받은 놈들이랑 한다니!
(준영이 자네도 그렇게 보는군. 장 비서실장도 북괴 놈들의 간교한 술책에 불과하다고 하던데.)
“간교한 술책이 맞죠. 우리 월드컵 준비에 깽판을 놓겠다는 의도일 테니까요.”
전보를 보낸 최정민이 알려 준 바에 따르면 단일팀 구성에 대해 선수들이 동요하고 있다고 했다.
남북 단합이라는 정치적인 대의 때문에 출전 엔트리의 절반을 북한 선수들에게 내주게 되는 게 아니냐며.
일부 선수들은 예선에서 정강지가 구타당한 일을 사과받지도 못했는데, 북괴 놈들이 묻어가려 한다며 분노하고 있었다.
“그 양보 탓에 우리 선수들 간에 경쟁과 다툼이 심화되어 팀 분위기가 엉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더라도 남북 간 비율을 나누지 말고 실력 우선으로 선발해야 한다 이거구만.)
“그렇다 하더라도 문젭니다. 시간도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코칭스태프가 북한 선수들을 살펴봐야 하니까요.”
이 점을 타개하고자 북한이 자신들 쪽 지도자를 코칭스태프에 넣자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 지도자들이 아무런 다툼 없이 선수를 선발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거기다 말입니다. 쟤들이 유니폼에 태극기 달고, 경기 전에 애국가 제창되는 걸 받아들이겠습니까?”
(하긴, 이미 전례가 있지.)
실제로 로마 올림픽이나 도쿄 올림픽 직전에 북한이 단일팀 구성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스위스에서 남북 대표들이 만나 논의했지만, 결국 결성에는 실패했다.
단기와 단가 제정에서 합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그 자식의 속셈은 뻔합니다. 우리 잘되는 거 못 보겠다는 거죠. 태극기와 애국가가 국제 무대에 나오는 걸 막겠다는 거고요.”
한편으로 본인은 실컷 생색을 낼 수 있다.
조선의 지도자가 남조선 괴뢰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화해를 제안했다면서 말이다.
즉, 단일팀이 구성되어도 김일성의 공이요, 구성되지 않으면 남조선 괴뢰들 탓이라는 것.
“단일팀을 할 거면 예선 전에 했어야죠. 지금은 너무 늦었습니다. 북한의 정치적인 의도에 놀아나선 안 됩니다.”
(알겠네. 단일팀은 진행하지 않을 테니 염려 놓도록 해.)
통화를 마친 준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통일과 남북 관계 개선에 혹해서 엉뚱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 두어도 될 듯했기에.
‘정말이지 미래에나 지금이나 북한 놈들은 북한스럽군.’
실제 역사에서도 한국이 올림픽을 유치하자, 공동 개최를 하자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심지어 김포 공항과 대한항공 858편 여객기에 테러 만행도 저질렀다.
‘테러 문제는 확실히 주의해야겠지. 정보부나 MI6에 그 문제와 관련해서 대비를 부탁해야겠군.’
아무튼 반드시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야 김일성이 열폭해서 부들부들 떨 테니까.
***
3월 9일 유러피언 컵 2라운드 2차전.
원정에서의 패배를 원통하게 여긴 벤피카는 보복을 외치며 진지하게 경기에 나섰다.
「유나이티드 7번 조지 베스트, 수비수 크루즈를 제치고 박스로 돌파! 뛰어나오는 코스타 페레이라 골키퍼… 골입니다! 베스트 골!」
전반 6분, 절묘한 칩슛으로 조지 베스트가 벤피카의 골문을 열어젖혔다.
이후 전반 13분에 조지는 또 한 골을 터트렸다.
바비 찰튼이 밀어 준 패스의 결을 따라 들어가 파 포스트를 노리고 휘어 찬 슈팅이 골망을 흔든 것.
그런데 조지의 원맨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추가 골을 넣고 2분 후에는 벤피카 우측면을 돌파하며 크로스를 올렸고, 이것이 쇄도해 들어온 이준영의 머리에 제대로 걸렸다.
강력한 헤딩슛은 페레이라 골키퍼가 반응할 틈도 없이 골대 안에 떨어졌다.
“벌써 0 대 3이라니…….”
“아직 전반이 3분의 1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게 버스비의 붉은 악마들인가.”
벤피카 선수들도, 관중도 대략 정신이 멍해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반을 그렇게 망친 벤피카는 후반에 만회 골을 넣으려 애썼다.
그리고 후반 7분, 코너킥 세트 플레이 혼전 상황.
골키퍼 해리 그렉이 쳐 낸 리바운드 볼이 수비수 빌리 맥닐의 등에 맞고 골대로 들어가 버렸다.
“으윽, 하필이면…….”
“재수가 없었던 거니까 잊어버려.”
벤피카가 운 좋게 만회 골에 성공했지만, 맨유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후반 33분 코너킥에서 던컨 에드워즈가 달려 들어오며 내리찍은 헤딩슛이 골망을 흔들고, 종료 직전에는 바비 찰튼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들어갔다.
원정에서 맨유의 1 대 5의 대승.
승리의 주역인 조지 베스트는 기자들에게 카메라 플래시 세례와 질문 공세를 받았다.
그러고는 팀원들에게 돌아와 잔뜩 으스댔다.
“캬, 월드 클래스 플레이어가 된 기분이 이런 거군.”
“그렇게 좋냐?”
“그럼. 프란츠 넌 모를 거다.”
그 말에 꿈틀하던 프란츠 베켄바워는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 난 모르겠다. 월드컵에 못 나가는 월드 클래스의 기분이 어떨지.”
“크윽!”
북아일랜드는 이번 월드컵 본선 탈락.
베켄바워의 비겁한(?) 팩트 폭력에 조지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러다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으스댔다.
“뭐, 월드컵이야 앞으로 얼마든지 나갈 기회가 있어. 어차피 유럽에서 나하고 견줄 실력자가 있지도 않을 테니까. 안 그래요, 주장?”
조지의 물음에 준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없긴 왜 없어, 인마.”
“아, 포르투갈의 유세비오 말인가요? 그 흑표범이라면 확실히 경계할 만하죠.”
“걔 말고. 네덜란드에 진짜 천재가 한 놈 있어.”
“예? 누군데요?”
“아약스의 요한 크루이프.”
플라잉 더치맨 요한 크루이프.
이미 1964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준영의 레이더망에 들어와 있었다.
작년에 영입 제안도 보냈지만, 아약스의 감독 리누스 미헬스가 완강히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기억해 둬. 몇 년 안에 유럽을 들썩이게 만들 놈이니까.”
“크루이프라……. 아약스의 요한 크루이프…….”
조지와 베켄바워는 그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 두었다.
준영이 언급한 선수들 중에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아 참, 주장 형, 형네 나라 단일팀인지 뭔지 한다더니 어떻게 되었어요?”
남북 단일팀 구성은 유럽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아무래도 지금이 냉전 시대이다 보니, 화합과 평화를 지향하는 그런 이슈들이 주목받게 된 것.
“지난번에 안 한다고 얘기했잖아.”
“신문에서는 여전히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하던데…….”
“신문 팔아먹으려는 헛소문이야.”
김홍일은 준영에게 약속한 대로 남북 단일팀은 진행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의 농간에 마냥 당하기는 싫었던지, 이후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남북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김 위원장의 태도를 환영한다. 사실 단일팀보다 급한 게 이산가족의 상봉과 서신 교류라 본다. 그 문제를 조속히 타결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윗동네를 당황하게 만든 발언은 따로 있었다.
‘최근에 소련과 중공이 대립하는 가운데, 김 위원장이 이들과 거리를 두고 독자 노선을 걸으려 한다고 들었다. 지금 우리에게 보내는 화해의 제스처는 민족상잔의 전쟁을 참회하고, 통일의 길로 나가겠다는 의지라고 믿어 보고 싶다.’
최근에 북한은 영토 문제로 중소 간에 마찰이 일어나자, 어느 쪽 편에도 서지 않고 두 나라가 구애하면서 건네는 꿀을 빨았다.
이렇게 간만 보고 있으니, 소련과 중국이 내심 못마땅하게 여길 수밖에.
그 와중에 김홍일이 저런 발언을 해 버렸고, 당연히 중소 양국에서는 김일성이가 진짜 딴생각을 하느냐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김일성이 독재를 위해 연안파나 소련파 인사들을 숙청했다 보니, 의심을 안 할 수 없었다.
‘괜히 우릴 흔들어 보려다가 자기들만 난처하게 된 거지.’
그 뒷수습에 바빠서 그런지, 북한 쪽에서는 이후 단일팀 얘기를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수습을 잘해야 할걸. 중월 전쟁이나 소련의 아프간 침공 같은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공산 진영도 내부에서 자기 세력을 키우는 데 안달이 나 있다.
그들의 대립과 분열은 결국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역사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바꿀 수 있는 역사를 바꿔 보도록 노력해야지.’
좀 더 나은 미래에 레전드로 이름을 선명하게 남기기 위하여.
준영은 앞으로 치를 경기들도 최선을 다해 승리를 따내리라 마음먹었다.
***
벤피카를 대파하고 준결승에 오른 맨유의 다음 상대는 유고슬라비아의 FK 파르티잔이었다.
4월 13일 1차전 베오그라드 원정.
준영은 상대 팀 선수들을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쳇, 낯익은 면상들이 보이는군.’
파르티잔에는 칠레 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에 아픔을 주었던 밀란 갈리치와 벨리보그 바소비치가 있었다.
그들을 비롯해 무스타파 하사나기치, 라도슬라프 베체자치 등 유고 최고의 선수들이 파르티잔에 모여 있었다.
“이 정도 스쿼드면 거의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인데?”
“듣자니 파르티잔 팀을 후원하는 라다코비치라는 장군이 손을 썼대.”
준대표팀급 전력인 파르티잔은 상당히 강했다.
맨유는 전반전에 데니스 로와 조지 베스트의 골로 앞서갔지만, 수비수 빌 포크스가 부상으로 이탈하며 위기를 맞았다.
후반전엔 밀란 갈리치의 어시스트를 받은 하사나기치와 베체자치에게 연달아 골을 허용하며 추격을 당했다.
하지만 해리 그렉의 연속 선방 덕분에 무승부로 경기를 끝냈다.
그리고 일주일 후 2차전.
1차전보다 경기가 더 팽팽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후반 27분 마침내 승부가 기울어졌다.
준영의 헤딩 어시스트를 받은 노비 스타일스가 마수걸이 골을 터트린 것이다.
“좋았어! 이제 버티면 이긴다!”
“물러서지 말고 계속 공격해! 놈들이 공을 잡을 기회를 주지 마!”
이후 약 20분의 공방이 이어진 후, 경기는 종료되었다.
그리고 맨유는 다시 유럽 정상에 오를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결승전 상대가…….’
경기 후, 결승전 상대 팀에 대해서 들은 준영은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결승전이 열리는 브뤼셀 헤이젤 스타디움.
실제 역사에서 그곳과 안 좋은 사건을 겪은 팀이 상대가 되었으므로.
***
훗날 아약스의 첫 주장으로 트레블을 안겨 주는 바소비치는 놀라운 활동량을 가지고 지능적인 수비를 할 줄 아는 선수였습니다.
그는 원래 즈르베나 즈베즈다로 이적할 예정이었지만, 라다코비치 장군이 죽인다고 협박해서 파르티잔에 남았다고 하네요.
물론 나중에 이 일이 알려지고 라다코비치가 좌천을 당하면서 파르티잔의 전성기는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