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76. Pride of Asia
“신영규가 도망친 겁니까?”
(이번 예선 결과로 신변에 위험을 느끼게 되었을 테니까요.)
앞서 1차전의 패배로 신영규는 굉장한 두려움을 느낀 모양.
그도 그럴 것이, 축구 경기에서 패배의 원흉으로 만만하게 지목되는 게 수비수였으니까.
더구나 그는 지주의 아들이라는 치명적인 출신 성분이 있었다.
그 사실이 드러나면 어떤 처벌을 받을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아직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서 도망쳤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북한 감독이 경질당한 것 같더군요. 패배한 것도 모자라 선수 관리에도 실패했으니…….)
“캄보디아 경찰과 북한 쪽에서 우릴 감시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군요. 신영규가 우리 쪽으로 달아났을 거라고 봤을 테니.”
(네, 실제로 신영규 본인도 그러려고 했습니다만, 중간에서 우리가 저지했습니다.)
한국과 캄보디아는 아직 외교를 맺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한국 대표팀을 찾아와 귀순을 요청한다면 아주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되면 준영의 신변에도 문제가 생길 터.
이렇게 판단하고 나선 MI6에서는 신영규에게 스위스 망명을 권유했다고.
(그래서 지금 프놈펜의 스위스 대사관에 있습니다. 그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 리 선수나 한국 대표팀 분들은 신경 쓰지 말고 귀국하시기 바랍니다.)
“그랬군요.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준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북한 대표팀을 흔들고자 저지른 술책 때문에 결국 뛰어난 선수의 커리어를 망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아니지, 본인 앞날을 생각하면 이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아오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스위스가 낫지 않겠어?’
실제 역사에서 북한 대표팀 선수들은 월드컵 8강에 오르고도 이후 숙청당했다.
한때 영국 색주가에서 놀아났기 때문이란 루머가 있었지만, 실제론 정치적인 문제에 휘말렸던 탓이다.
그 정치적인 문제에 지주의 아들인 신영규도 한몫했을 것이다.
‘뭐, 명례현 감독이나 다른 북한 선수들도 문제이긴 하군.’
북한으로 돌아가면 혹독한 비판과 함께 처벌받게 될 터.
꽤 고생은 할 테지만, 그래도 출신 성분들이 좋으니 극단적인 처분까지 내려지진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복수전을 하기 위해서라도 그 인재들을 살려 놓긴 하겠지.’
생각이 있다면 그럴 것이다.
다만 김일성의 골통에 그만한 생각이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아무튼 준영은 이와 관련한 생각은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걱정해 준다고 그들의 앞날이 달라지지도 않거니와, 그들까지 신경 써 줄 여유나 의리는 없었으니까.
***
프놈펜을 떠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서울로 당당하게 개선했다.
스위스 월드컵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본선에 진출했을 때처럼, 화환을 두른 선수들은 지프차에 나눠 타고 시내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거리로 달려 나온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표팀을 맞았다.
“북괴 놈들을 두 번이나 이겼다며?”
“역시 우리나라가 축구는 아시아 최강이야!”
“와! 기영아, 저길 봐. 이준영이다! 이준영!”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은 대표팀은 옛 부민관,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김홍일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이 모여 대표팀 선수들을 맞았다.
“다들 정말 장한 일을 해냈소.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자랑이오!”
김홍일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노고를 치하했다.
그러다 준영의 옆에 있는 선수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 선수의 얼굴에는 검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자네가 정강지로구만. 경기 중에 북괴 놈에게 주먹으로 맞았다면서?”
“예, 각하. 깜짝 놀랐습니다.”
“잘 참았네. 아무리 분하더라도 스포츠 경기에서는 신사답게 행동해야지.”
김홍일의 칭찬에 정강지는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 있던 준영이 말을 거들었다.
“우리 대표팀에서 제일 지구력이 뛰어나고 인내심도 강인한 선수입니다. 나중에 크게 될 겁니다.”
“하하, 준영이 자네가 그리 얘기하면 그렇겠지.”
포지션은 좀 다르지만, 정강지는 맨유의 노비 스타일스와 비슷했다.
체격이 왜소해도 끈기가 강하고 많이 뛰면서 팀에 많은 공헌을 해 주는.
‘미래의 박치성 선수랑도 비슷하지.’
왕성한 활동량과 이타적인 플레이.
물론 박치성과 비교하자면 아직 부족한 면이 많다.
그 때문에 월터 윈터보텀 감독도 그를 두고 ‘미완의 대기’라 평했다.
“여기가 끝은 아니지. 내년의 본선에서도 좋은 결과를 거두기를 기원하겠소.”
그리 말한 사람은 야당인 한국독립당의 국회의원인 김신.
4월 혁명 당시 한국에 들어온 준영을 못 본 척 보내 주었던 그는 공군에서 예편한 후 정계에 진출해 있었다.
“스위스 월드컵 때는 전쟁 직후라 어수선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이번엔 제대로 준비할 겁니다. 대표팀 훈련은 물론이고, 본선 상대 팀 분석도 해야죠.”
준영의 말에 김신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본선에서 어떤 팀을 만날 것 같소?”
“글쎄요… 일단 내년 1월 6일 런던 로열 가든 호텔에서 열리는 조 추첨을 두고 봐야 합니다.”
실제 1966년 월드컵에서 북한은 이탈리아, 칠레, 소련과 4그룹에 속해 있었다.
한국이 북한 대신 그 자리에 낄지, 아니면 역사가 바뀌었으니 조 편성에도 변동이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 뛰어 주시오. 어제 나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중화민국 장개석 총통도 여러분의 건투를 빌겠다고 연락을 보내왔소.”
“장 대인, 아니 장 총통께서 그렇게 말했다고요?”
“그렇소. 아무래도 여러분이 대한민국 대표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오세아니아의 대표로 본선에 나가는 거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소.”
그냥 예의상 건투를 빈다고 전한 것을 확대 해석한 게 아닌지?
하지만 김신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여기에 보이콧을 한 아프리카까지 포함해서 출전 티켓은 단 하나.
정말 단 한 나라가 본선에서 세 지역을 대표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프라이드 오브 아시아(Pride of Asia)로군.’
반드시 그 타이틀에 어울리는 결과를 성취해 내리라.
역사를 바꾸어 가는 사나이는 그리 다짐했다.
***
준영은 한국에 사흘간 머물며 회사 일도 살펴보고 지인들도 만났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 중에는 할아버지 일가의 친척들도 있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인 양 갓을 쓰고 하얀 도포를 걸친 어르신들은 집안 큰 어른들이라고 하는데, 이미 작년과 재작년에도 만났었다.
“이번 공로로 나라에서 훈장을 내릴 거라면서?”
“태석이가 정말 손주 하나는 잘 뒀어.”
“이보게, 이번에 우리 막내가 대학에 입학했는데 어떻게 장학 지원을 좀…….”
“이번에 제실을 수리해야 하는데 자네가 도와줬으면 하네.”
준영은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어르신들을 대충 상대해 주고 물러났다.
동행했던 증조부 이 씨는 혀를 찼다.
“하여간 저 노인네들은 염치도 없다니까. 진짜 태석이 삼촌이 일 저질렀을 땐 다들 모른 척하더니만, 이제 와서 뻔뻔하게…….”
분통을 터트리는 이 씨의 반응에 준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쪽은 뻔뻔함을 대물림했나 보군.’
저 집안 어른들의 자제나 후손들은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 일절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랬으면서 나중에 자신이 선수로 출세하자 친척이랍시고 불쑥 튀어나왔다.
“일일이 챙겨 줄 필요 없으니까, 저치들 일로 신경 쓰지 마라.”
“뭐, 생색 낼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한국에 있는 할아버지 일가가 철면피 친척들의 닦달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적당히 챙겨 주고 펼치는 갑질로 괘씸한 친척 놈들을 손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참, 요즘 황후마마 소식은 들었냐?”
“예, 건강이 그리 좋지 않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준영이 도움도 줬고, 나라에서도 구황실을 살펴 주면서 순정효황후도 무탈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한 가지 걱정거리만 빼면.
“문제아가 속 썩이고 있으니 그렇지, 뭐. 황손이 유학까지 가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가수가 되었으니…….”
“그래도 제법 유명합니다만.”
사동궁 이석은 한영 재단의 장학생이 되어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갈 때만 해도 열심히 공부해서 유럽 공주님과 결혼하겠다는 포부를 보였다.
그런데 영국 현지에서 지인들과 재회한 것을 계기로 다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한국 왕족 출신 가수라는 입소문을 타고 TV 쇼에 나왔다.
본인이 준영과 먼(?) 친척이라고 밝힌 점도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한몫했다.
물론 이런 내력만으로 방송에 나온 것은 아니다.
그가 속한 ADD4라는 밴드의 노래는 브라이언 앱스타인에게 나쁘지 않은 평을 받았다.
대중적인 로큰롤에 독특한 동양적인 정서가 담겨 있는 듯하다고.
“그 히키인가 재키인가 하는 놈이 나빠. 영국에 공연 갔으면 노래나 부를 것이지, 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을 꼬시느냔 말이야.”
“낯선 외국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뭉칠 수밖에요.”
그저 같은 한국인을 만난 것만으로도 반가워서 친분을 나누는데, 그전부터 알던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준영이 알아보니 원래 히키 신, 신중현은 영국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위문 공연을 하러 왔다고 한다.
기왕 영국에 온 김에 최신 음악을 더 배우고자 머물러 있다가, 과거 미8군에서 함께 공연하며 안면을 텄던 이석을 만난 거라고.
‘ADD4가 한동안 영국에 있을 거라고 했지? 내년 월드컵 때 응원을 부탁해 볼까.’
경기 전에 현지 교민들을 대상으로 공연도 하고, 같이 응원도 하고.
그럼 단합심도 고취시키고, 응원력도 높아질 것이다.
‘응원가도 있어야겠지. 21세기의 응원가들을 몇 개 가르쳐 줄까나.’
앞으로 여덟 달 남은 월드컵.
준영은 그때를 대비해서 준비할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해 두었다.
***
“코리아가 월드컵 본선에 올라왔군.”
훈련을 끝내고 신문을 보고 있던 빌 섕클리의 말에 펠레가 냉큼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디 코리아요? 북이에요? 아니면 남쪽?”
“남쪽 한국이군.”
“좋았어!”
쾌재를 부르는 펠레의 모습에 섕클리 감독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녀석, 그리도 좋으냐?”
“당연하죠. 존 Y. 리 그놈과 붙을 기회가 왔잖아요!”
지난 월드컵에서 우승하고도 이준영과 맞붙지 못해 얼마나 아쉬웠던가.
이제 그때의 아쉬움을 풀 기회가 왔다!
“두고 보라고요. 이번에야말로 최고의 무대에서 그 꺽다리를 박살 내 주고 말 테니까!”
잔뜩 흥분한 펠레에게 섕클리 감독이 말했다.
“이 녀석아, 좋아하는 건 일러. 조 편성에서 만나지 못하면 어쩔 거냐?”
“아, 그건…….”
“한국은 절대 토너먼트에 올라올 실력이 못 돼. 조 추첨을 하면 포트4에 속할 것이 유력한데… 솔직히 포트4 국가들만으로 조를 꾸려도 한국은 꼴찌일 거다.”
그 말에 곁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밥 페이즐리 코치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모르죠. 지금 한국 감독이 월터 윈터보텀이잖습니까. 더구나 존 Y. 리가 있으니 예상 밖의 선전을 할지 몰라요.”
“하긴…….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놈이긴 하지.”
저승사자 군단을 물리치고 올드 트래퍼드의 붉은 악마를 유럽 정상, 그리고 월드 챔피언의 왕좌에 올려놓은 주역.
축구 종가에 최초의 월드컵 우승을 안겨 준 것도 그 녀석이다.
과연 그 녀석이 내년에 어떤 사고를 칠 것인가?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에 섕클리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
신영규는 실제 스탠리 루스에게 세계 수준의 수비수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66년 월드컵이 끝나고 북한 내에서 갑산파 숙청 사건이 벌어지며 축구대표팀에 불똥이 튀었는데, 이때 신영규의 출신 성분이 드러나서 함경북도 경성군 광산에서 노역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국가대표로 월드컵에서 조국을 8강에 올린 공훈이 있어 당시 작업장에서 지도원으로 임명되는 등 예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당에서 이마저도 시키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심지어 그를 지도원으로 임명한 간부까지 해임되었죠.
3년 후에 복권되어 평양으로 돌아갔지만, 과거 대표팀 동료들과 만난 자리에서 ‘역시 우리가 아니면 조선 축구는 안 돼.’라고 한 말이 보위부에 발각되어 이후 행적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사실 신영규뿐만 아니라 수비수 림중선이나 몇몇 선수들 중에서도 지주나 상공인 출신 성분을 가진 선수들이 있어서 이들 역시 자강도와 평안북도의 공장과 광산으로 추방당했습니다.
나중에 생존한 이들이 복권되긴 했지만, 이미 북한 축구는 성장의 추진력을 상실한 후였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