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74. 악바리가 친 사고
함흥철의 대선방!
환호와 좌절의 감정이 오가던 남북한 선수들의 시선은 공중에서 떨어지는 공을 향해 있었다.
“아직 안 나갔어!”
“얼른 잡아!”
떨어진 공이 양 팀 선수들의 다툼에 다시 튀어 올랐다.
공을 향해 뛰어오른 준영은 자신보다 높이 뛰어오른 박승진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말도 안 돼.’
170센티미터도 안 되는 단신의 선수가 이렇게 뛰어오를 수 있다니!
준영이 경악하는 가운데, 박승진이 이마로 내리찍은 공이 한국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골! 골인!”
“역시 주장이 한 건 하는구나야!”
박승진을 얼싸안으며 득점에 기뻐하는 북한 선수들.
그들을 응원하던 관중들도 경기장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방금 득점을 패트릭 니스 심판이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득점이 아니라니!”
“코쟁이 심판이 눈이 삐었구만!”
북한 선수들의 벌 떼 같은 항의에도 심판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남한 선수를 짓누르고 뛰어올랐잖아. 당연히 파울이지.”
좀 전에 박승진이 준영보다 높이 뛰어오를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김효의 어깨를 짚고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어쩐지 높이 뛰더라니…….’
어이없었지만, 준영은 박승진의 운동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어깨를 짚는다 해도 1미터 넘게 뛰어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자자, 위기를 넘겼으니 다시 반격한다. 플랜 B의 3번 작전으로 공격을 전개하는 거야.”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공격에 나서는 준영은 스코어보드의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전반전 남은 시간은 약 5분.
그 안에 한 골 넣고 전반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재 경기 흐름을 봐서는 쉽지 않아 보였다.
‘최선의 조건을 만들 수 없더라도 최악의 조건을 만들진 말아야지.’
남은 시간 절대 상대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리라.
준영은 그리 다짐하며 상대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폈다.
***
전반전을 0 대 0으로 마친 양 팀은 하프타임 때 팀을 정비한 후 후반전 경기를 시작했다.
북한은 전반전에 그랬던 것처럼 시작부터 강하게 몰아붙였다.
한봉진과 박승진은 전반보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고, 수비에 있던 하정원도 전진해서 공격에 힘을 보탰다.
‘꽤 거세게 나오는군. 하지만 이 정도로는 밀리지 않아.’
준영은 돌파해 들어오는 박승진의 앞을 막아섰다.
안 되겠다 싶던지 돌아서는 척하던 박승진은 한순간 발목으로 공의 방향을 전환해 냈다.
‘어쭈, 크루이프 턴을?’
어디서 보고 배웠는지 제법 깔끔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등 돌린 순간 트릭을 쓸 걸 예상했던 준영은 곧장 따라붙었기에, 박승진이 뿌리치지 못했다.
어렵게 슈팅까지 시도했지만, 각이 없던 터라 함흥철의 손에 간단히 잡히고 말았다.
“밀리지 말고 앞으로 나가!”
함흥철은 달려 나가는 박중환에게로 공을 던져 보냈다.
공을 툭 치며 림승휘의 마크를 뿌리친 박중환은 앞쪽에 달려가는 차태성에게 패스를 보냈다.
그 공을 받아 곧장 북한 진영으로 달려 들어간 차태성.
이희택에게 패스를 보내려던 그의 앞을 북한 풀백 오윤경이 가로막았다.
“간나 새끼, 더 이상은 못 가!”
“야 인마, 내가 너보다 형이야. 하여간 빨갱이들은 위아래가 없어.”
이렇게 꾸짖는다고 오윤경이 미안해하며 비켜 주지는 않았다.
차태성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북한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이 빠르게 자신들 진영으로 복귀했다.
‘더럽게 빠르네. 이것들이 단체로 약이라도 했나.’
“태성아, 이쪽!”
재빨리 전진한 준영이 손을 들었다.
차태성이 패스를 건네준 순간, 북한 선수 셋이 준영을 감싸듯이 포위하고 나섰다.
“까부숴 주갔어!”
‘이런 십장생들!’
대놓고 스터드를 보이는 북한 선수들의 위협적인 태클과 마크.
준영은 이를 아슬아슬하게 뿌리치고 빠져나갔다.
“우와아! 저게 뭐냐!”
“저런 기술 처음 봐!”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라더니 진짜였네!”
준영이 펼쳐 보인 라 크로케타에 캄보디아 관중들도 혀를 내둘렀다.
그들의 눈에 마크를 뿌리친 준영이 곧장 슈팅을 시도하는 광경이 보였다.
“막아! 막으라!”
가까이 있던 수비수들이 몸을 날리는 순간, 슈팅하는 척 페인트를 시전한 준영은 골 에어리어 부근에 있던 이희택에게 패스를 찔러 주었다.
공의 하단을 툭 차서 띄워 올린 이희택은 바로 시저스 킥을 시도했다.
하지만 북한 수비수 신영규가 먼저 달려들어 공을 걷어 냈다.
“쳇, 또 저놈이야.”
“진짜 악착같이 막는구만.”
전반전에도 신영규의 마크에 번번이 기회를 놓쳤던 조윤옥과 이희택은 이를 갈았다.
“어떻게든 한 골 박아 넣어야 하는데…….”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어. 차분히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0 대 0의 스코어는 계속 이어졌다.
양 팀 모두 여러 차례 기회를 잡았지만, 수비수들의 저지와 골키퍼의 선방에 번번이 무산.
그 때문에 팽팽한 흐름은 경기 막판까지 이어졌다.
‘무승부 아니면 한 골 차 승부가 되겠군.’
그 한 골이 과연 어느 쪽에서 터질 것인지?
준영이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리동운이 올려 준 크로스가 박두익 쪽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김청남이 중간에 끊어 냈고, 이를 받은 임국천이 곧장 조윤옥 쪽으로 패스를 밀어 보냈다.
과감하게 치고 달린 조윤옥은 골대가 사거리 안에 들어오자 곧바로 중거리 슛을 때렸다.
상단 구석을 노린 그 슈팅은 골키퍼 리창명의 펀칭을 맞고 골대 위로 넘어갔다.
이어지는 코너킥 찬스.
준영은 쇄도하며 헤딩슛을 하기 위해 박스 외곽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그를 막기 위해 박두익과 하정원이 가까이 붙었다.
삑-!
휘슬이 울리고 임국천의 코너킥이 날카롭게 날아왔다.
‘젠장, 이거 파울이라고!’
박두익과 하정원이 은근슬쩍 유니폼을 잡아 지연시킨 바람에 준영의 헤딩은 공에 닿지 못했다.
외곽으로 흘러 나간 공은 정강지가 잡아서 다시 골문 쪽으로 붙여 넣었다.
잽싸게 이동한 이희택이 슬며시 발을 대며 공의 방향을 꺾어 놓았다.
터엉!
골대를 맞고 나오는 슈팅.
리창명과 신영규가 안도하는 그때, 갑자기 뒤쪽에서 달려 들어온 선수 하나가 발을 쭉 뻗었다.
그의 발에 맞은 공은 그대로 북한 골대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낯빛이 파리해진 북한 선수들이 주저앉은 순간, 한국 선수들은 눈밭의 강아지처럼 날뛰었다.
“골인!”
“누가 넣었어? 누구야?”
“중환이에요! 중환이가 해냈어!”
악바리 박중환.
은근슬쩍 공격 가담을 하러 올라와 있던 그가 제대로 사고를 쳤다.
“잘했어! 진짜 큰일을 했어!”
박중환의 등을 팡팡 두들겨 준 준영은 스코어보드의 시계를 보았다.
남은 시간은 5분 정도.
심판 재량의 추가 시간까지 포함해도 10분은 되지 않을 듯했다.
‘이대로 승리를 굳힌다!’
재빨리 수비로 전환한 한국 선수들은 이후 북한 선수들의 총공세에 맞섰다.
상황이 급해지자 북한은 최소한의 수비만 남겨 둔 채 죄다 공격에 가담했다.
최전방의 공격 숫자도 무려 5명까지 늘었다.
“바로 골문 쪽으로 올려 줘!”
“다들 튀어 들어가!”
측면에서 크로스가 들어오자 하정원과 한봉진, 박두익, 김승일, 리동운이 우르르 뛰어올랐다.
‘어라, 이거…….’
가까이서 그 쇄도를 본 준영은 21세기에서 봤던 흑백 사진을 떠올렸다.
1966년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북한 선수들이 공중볼을 두고 차례로 뛰어오르던 모습.
그거랑 완전히 판박이가 아닌가.
‘하지만 별로 효과는 없네.’
그들보다 높은 위치에서 공을 따낸 준영은 동료가 있는 곳으로 안전하게 처리했다.
바로 역습을 시도한 한국은 적절하게 시간을 지연하며 경기를 끝냈다.
“이겼다!”
“본선이 눈앞에 보이는구나!”
“설레발치지 마! 아직은 몰라!”
1차전 승리에 신이 난 한국 선수들과 달리 북한 선수들은 석상이 된 것처럼 굳어 있었다.
아직 기회는 남아 있었지만, 당장 날아들 질책을 생각하니 그들은 숨이 턱 막혀 오는 것 같았다.
***
신토불이(身土不二).
그 지역 사람의 몸에는 그 지역 음식이 좋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국 대표팀은 해외 원정을 다닐 때 한국 식자재를 챙겨서 다녔다.
여기에 21세기의 대표팀 지원 스태프처럼 조리사와 영양사도 있었다.
이들은 평소에는 미스터리 푸드 한국 지부에서 제품 관리와 개발 업무를 하다, 대표팀 소집 때 참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외에도 식사 지원 업무에 참여한 사람이 있었다.
“어떻습니까, 준영 형님?”
“음, 국물 맛이 딱 좋아! 근데 쇠고기를 더 썰어 넣는 게 좋을 것 같아.”
준영의 평에 박중환은 냉큼 쇠고기를 썰어 된장찌개가 끓고 있는 큰 냄비 속에 집어넣었다.
그사이 준영은 21세기 동영상에서 본 대로 웍에다 안남미 밥과 계란, 해산물 등을 넣어 볶았다.
“형님, 요리하는 거 힘들지 않아요?”
“뭐, 취미 삼아 하는 거니까. 우리 여왕님이 내가 만든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하하, 좋아할 만하네요. 저도 형님이 만드는 요리가 좋습니다.”
“아, 짜식이 징그럽게……. 어어, 불 낮춰. 찌개 넘친다!”
잠시 후, 점심시간이 되자 선수들은 셰프(?) 이준영이 만든 계란 볶음밥과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었다.
“부슬부슬한 안남미도 이렇게 하니까 먹을 만하네.”
“캬, 찌개 국물 죽인다!”
“준영 형님은 진짜 주장이 아니라 주방장을 해도 되겠어.”
희희낙락하는 선수들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던 준영은 최정민 코치가 정보부 요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뭔가 심상찮은 기색이기에 곧장 다가가서 물어보았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겼습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북한 애들이 좀 이상하다는데?”
몰래 북한 대표팀 동향을 살피던 요원들의 말에 따르면 회복 훈련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숙소나 훈련장 주변에 감시 인력도 더 늘었다고 한다.
“거기다 북한 감독이 안 보인다고 해.”
“설마 도망친 겁니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해.”
그렇다면 1차전 패전 때문에 혹시 경질당한 게 아닐까?
감독이 훈련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는 걸 봐서는 경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걸 호재라고 봐야 하나, 아니면…….’
예선 중에 감독이 잘렸다면 팀의 혼란이 적지 않을 것이다.
훈련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일 터.
하지만 마냥 낙관적으로도 볼 수 없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대한민국 대표팀이 그랬던 것처럼 오히려 분발의 계기가 될 수 있으니까.
더구나 지금 북한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었다.
“충분히 경계하면서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안 그래도 1차전 이겼다고 애들이 좀 들떠 있는데 단속해야지. 잘못하다 2차전에서 큰코다칠 수 있으니…….”
그렇게 한국 대표팀이 차분하게 2차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 심상찮은 일이 또 하나 발생했다.
대표팀 숙소인 호텔과 훈련장 부근에 경찰의 숫자가 부쩍 늘어났던 것.
심지어 외출할 때도 행선지를 캐물으며 따라다녔다.
이유를 물어도 안전 운운하며 둘러댈 뿐이었다.
“이 자식들, 혹시 우릴 잡아서 북괴 놈들에게 넘기려는 거 아니야?”
“중립국이라고 자처하는데 설마 그런 짓을 하겠어요.”
그래도 모른다.
주변에 늘어난 건 캄보디아 경찰들뿐만 아니라, 북한 측 감시자들도 있다고 하니까.
이에 정보부 요원들은 사전에 세워 둔 탈출 경로를 점검했다.
그렇게 여차하면 빠져나갈 준비를 하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11월 24일, 프놈펜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결정지을 2차전 경기가 시작되었다.
***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북한의 전술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진입니다.
소위 사다리 전술이라고 해서 공중전에서 공을 따내기 위해 동료 선수들을 차례로 들어 올리는 묘기를 선보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실전에서 저런 짓은 쉽지 않습니다.
북한이 이탈리아 선수들과 비교해서 신장이 작아서 그랬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키만 크다고 헤딩 경합에서 무조건 이긴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건 그냥 세트 플레이 같은 상황에서 다수의 공격수들이 차례로 쇄도하며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를 교란시키는 전술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미드필드를 지워 버리고 공격과 수비 둘 중 하나에 치중하는 극단적인 2줄 전술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런 형태가 사다리 같다고 해서 사다리 전술이라 한 겁니다.
현대 축구뿐만 아니라 당대에도 도박과 같은 전술이었죠.
북한은 반드시 이겨야 8강에 오를 수 있었으므로 승부수를 던진 셈이었고, 그 도박은 성공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