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70화 (370/400)

Round 370. 남북전의 전초전

“전승 우승이란 말이디…….”

비대한 체격을 한 장년의 사내가 신문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남파 공작원이 보내온 신문에는 메르데카 컵 우승을 하고 개선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사진이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태국에 3 대 0 승, 말레이에 2 대 0 승, 남베트남에 4 대 0 승…….”

인도와 홍콩 역시 1 대 0, 2 대 0으로 물리쳤다.

결승에서 만난 중화민국을 상대로도 김기복, 정병탁이 골을 터트리며 2 대 0의 완승을 거뒀다.

“기래 봤자 축구 변방의 아시아 팀을 상대로 이긴 거 아닌가. 이거이 자랑이라고 선전하다니, 남조선 반동들도 어지간히 자랑거리가 없나 보구만기래.”

수령이라 불리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일성은 비웃음을 지으며 신문을 집어 던졌다.

그의 시선은 자신의 옆에 기립해 있는 명례현 감독에게 향했다.

“명 감독이 보기엔 어떤가? 이딴 거이 자랑이 된다고 보나?”

“당연히 안 된다고 봅네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명례현은 내심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첫째로 메르데카 컵에 출전한 남조선 축구대표팀에는 이준영을 비롯한 해외파들이 빠져 있었다.

둘째로 인도와 홍콩, 중화민국은 아시아 상위권 수준의 전력을 가진 팀이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 전승은 물론, 무실점 우승이라는 점이다.

남조선 팀을 맡은 영국인 감독도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 무실점으로 대회를 마친 것’이라고 밝혔다.

‘더구나 그 무실점 수비의 핵심이 된 김효와 김청남이란 녀석들은 21세, 22세의 젊은 선수들이라는 거지.’

공격에서도 날카로운 슈팅력을 가진 김기복이나 빠르고 정교한 패스를 선보인 정병탁이 준수한 활약을 했다.

물론 이런 사실들은 속으로만 생각해야지 입 밖으로 낼 필요는 없었다.

“우리 공화국 선수들이 출전했다면 전 경기 5골 이상은 넣고 우승했을 겁네다.”

“기렇디. 소련이나 체코 축구인들도 우리 선수들 기량을 보고 감탄하지 않았나.”

현재 두클라 프라하에서 뛰고 있는 박승진은 팀에서 장기 계약을 요청할 정도였다.

디나모 모스크바에 가 있는 신영규도 야신이라는 소련 대표팀 골키퍼에게서 유럽 일류 선수 수준의 수비력을 갖추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내가 볼 땐 박승진이는 저 서방에서 축구 황제랍시고 으스대는 펠레인지 하는 검둥이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것 같단 말이지.”

“맞습네다. 박승진 동무는 아직 국제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월드컵에 나가기만 하면 세계를 놀라게 할 인재입니다.”

펠레까지는 아니지만, 박승진의 실력은 정말 뛰어나다.

명례현은 그의 기량이라면 이준영이도 능히 뚫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이런 우리 공화국 축구단에 리준영이가 있었으면 금상첨화인데……. 이보라우, 리준영이를 데려오는 건 어케 진행되고 있네?”

김일성의 시선은 명례현의 옆에 있는 보안국 국장에게 향했다.

현재 대남 공작원 관리 및 대외 첩보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보안국의 국장은 김일성의 물음에 진땀을 뻘뻘 흘렸다.

“그, 그것이… 멀리 영국에 있고 주변의 경계도 만만치 않아서리…….”

“나 참, 공화국 최정예 요원이란 것들이 사람 하나 데려오지 못하는 거이야?”

김일성의 질책에 국장은 고개를 떨궜다.

남조선이나 일본인으로 위장해서 공작원을 영국으로 보내 봤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속속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준영을 호위하고 있다는 폴란드 반동들 소행인지, 남조선 장교의 소행인지 알 수도 없었다.

남쪽에 살고 있다는 놈의 가족과 친지를 납치해서 이용해 볼까 계획하기도 했지만, 최근 남조선의 방첩 능력이 강화되어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수령 동지, 송구합네다만 지금 리준영이를 데려와도 쓸데가 없습네다. 국제축구연맹에서 선수 국적을 바꾸어 출전하는 걸 금지시켜 놓은 터라…….”

데려와 봤자 지도자로 활용하는 게 고작이다.

더구나 스스로 자본주의자라고 자처하는 놈이 얼마나 협조할지도 미지수였다.

“내래 그걸 모를 거라 생각한 거이야? 됐으니 11월 예선이나 잘 치를 준비나 하라우. 그때 리준영이도, 남조선도 콧대를 납작하게 해 주는 거야. 알갔네?”

“예, 수령 동지.”

“알았으면 나가서 일들 보라.”

명례현 감독과 국장은 곧장 김일성의 면전에서 물러났다.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최고 지도자의 엄명을 완수해야 할 숙제가 남았기에 마냥 안심할 수가 없었다.

“국장 동무, 남조선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더 모아 주시라요.”

“알겠소. 내 들어오는 대로 보내 주겠소.”

실패하면 결과는 뻔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남은 시간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맨유의 상승세는 9월, 10월에도 계속 이어졌다.

9월 말 아스날 원정에서 덜미를 잡히기도 했지만, 다음 경기에 데니스 로와 조지 베스트의 골을 앞세워 강력한 우승 경쟁자인 리버풀을 2 대 0으로 꺾었다.

그리고 토트넘 원정에서도 1 대 1 무승부를 거두며 선두를 계속 유지했다.

준영은 이렇게 소속 팀 경기에 매진하는 한편, 최정민으로부터 대표팀 상황에 대해서도 꾸준히 전해 듣고 있었다.

“남아공이 결국 실격되었다고요?”

(그래, 인종 차별 정책 때문에 회원국들 반발이 컸다고 해.)

“역시나…….”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던 일이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반발을 사서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에 참가하는 신세였으니까.

그러나 아시아, 오세아니아 국가들이라고 해서 남아공을 환영하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6.25 전쟁 때 남아공의 도움을 받은 한국도 등을 돌릴 정도였다.

(뭐, 걔들이 빠지는 거야 문제가 안 돼. 진짜 문제는 따로 있지. 예선 토너먼트 장소가 변경될 수 있다는 거야.)

“뭐라고요?”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은 원래 일본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본 쪽에서 자국의 축구 인기가 저조하다는 핑계로 예선 토너먼트 개최도 취소했다고 한다.

‘아니, 자기 나라 대표팀이 출전하는데도 취소하다니!’

준영이 이후 따로 내막을 조사해 보니 취소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일본 정부는 외교 관계도 없고, 도쿄 올림픽을 보이콧한 북한이 입국해서 경기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겼단다.

거기다 예선 광탈 가능성이 높다 보니, 자국 대표팀에게 불참을 권유했다고.

하지만 젊은 감독 오카노 슈니치로가 ‘경험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는 이유로 출전을 고집하자, 예선 토너먼트 개최를 취소해 버린 것이다.

“안방에서 망신당하기 싫다 이거구만.”

이러면 예선은 어디서, 어떻게 진행되는 걸까.

다행히 개최지 문제는 곧 해결되었다.

제3세계 국가인 캄보디아에서 예선 토너먼트를 맡기로 한 것이다.

‘캄보디아? 거기 킬링 필드로 유명한 나라 아니던가?’

알아보니 아직 크메르 루주가 집권하지 않고, 노로돔 시아누크라는 국왕이 통치하고 있었다.

프랑스 식민 통치의 영향 때문에 국가 인프라도 괜찮고, 나름 문화와 경제가 발전한 나라라고.

그래서 국제 대회 개최도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개최지가 변경되자 한국 정부에서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협회 관계자에게서 그 소식을 들은 준영은 곧바로 김홍일 대통령에게 연락을 보냈다.

(정보부 보고를 보니 시아누크 그자는 모택동이나 김일성과 친하게 지낸다던데? 그런 자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우리 선수들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겠나?)

대통령의 우려에 준영은 그를 설득하고 나섰다.

“각하, 제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캄보디아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양쪽에서 줄타기하는 나라입니다. 섣부른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글쎄, 5월에 미국하고 단교해 버리지 않았나. 북베트남을 폭격한다는 이유로 말이야.)

심지어 시아누크는 북베트남과 베트콩 세력을 몰래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이미 베트남에 전투 부대를 파병한 한국 입장에선 캄보디아를 적성국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발을 빼면 북한 놈들이 우릴 비웃을 겁니다. 싸우지도 못하고 지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그거야 그렇네만…….)

“대표팀 모두가 월드컵 본선으로 가기 위해서 땀 흘려 왔습니다. 그 노력을 헛되이 날릴 수는 없습니다.”

준영의 말에 김홍일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긴 침묵이 이어지다 마침내 수화기 너머에서 다시 그의 말이 들려왔다.

(이길 수 있겠나?)

“제 축구 커리어를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이 말로 안 되면 과거 이유형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패배하면 바다에 몸을 던지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김홍일은 거기까지 몰아붙이지 않았다.

(부디 국민들이 실망하지 않을 결과를 만들어 주게.)

“알겠습니다, 각하.”

그렇게 어렵게 예선 출전을 결정지었다.

이제 남은 건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뿐이었다.

***

11월 중순, 준영을 비롯해 영국에서 뛰고 있는 해외파 선수들은 비행기를 타고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향했다.

“캄보디아 거긴 1년 내내 여름이라면서요?”

“아, 나는 더운 건 질색인데…….”

“인마, 덥다고 안 뛸 거야? 빨갱이들 못 이기면 본선도 못 가.”

조윤옥과 이희택, 차태성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 잠시 좌석을 옮긴 준영은 승무원으로 위장한 MI6 요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부탁했던 정보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프라하와 모스크바에 있는 현지 협력자들이 보내왔지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군사 기지나 정보기관을 터는 것에 비하면 약과죠.”

준영은 요원이 건넨 서류들을 살펴보았다.

거기엔 박승진과 신영규를 비롯한 현재 북한의 해외파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연수 개념으로 와서 훈련과 경기를 하고 있는 건가?’

공산권의 구단 운영이나 선수 계약은 서방과는 다르다.

중요한 건 실적인데, 박승진과 신영규 두 선수의 경우엔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호평을 받고 있었다.

‘이 시절 북한 선수는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넣은 박두익이 제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잠깐, 이건 대체…….’

눈에 띄는 정보 하나를 본 준영은 요원에게 물었다.

“여기 적힌 이 정보가 사실입니까?”

“현지에서 그리 파악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평등을 추구한다지만, 그런 문제는 은근히 민감하게 굴더군요.”

“흠… 알겠습니다.”

준영은 21세기에 있을 때 들었던 북한 축구 관련 ‘썰’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 불분명하게 들었던 썰이 오늘 전달받은 정보와 규합하자, 꽤 신빙성이 높아졌다.

‘이건 활용할 수 있겠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요원의 말대로 민감한 사안이라면 예상보다 큰 타격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어찌 보면 좀 비겁하긴 한데……. 아니, 생사람을 납북해 가려는 놈들의 수작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준영은 북한 정부가 자신을 노리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김홍일에게 경고를 듣기도 했지만, 실제 MI6에서 막아 준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어차피 저놈들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겠지. 감수하거나, 감수하지 않거나.’

어떤 선택을 할지, 그로 인해 혼란에 빠질 것인지 아니면 더욱 결속할 것인지.

모든 것은 북한 스스로에게 달렸다. 그로 인해 벌어질 결과 역시도.

건네받은 서류를 품속에 넣은 준영은 다시 동료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

보통 1966년 월드컵 아시아 예선 때 북한의 전력이 후덜덜해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불참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그런 문제도 있지만, 정세적인 요인도 없진 않았습니다.

이미 베트남전에 참전한 대한민국 입장에선 미국과 수교도 단절하고, 공산권과 긴밀히 교류하는 나라에 선수단을 파견하기 곤란했으니까요.

그나마 승산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으면 안 하느니 못한 결과를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게 당시 우리 입장이었던 겁니다.

아무튼 당시 북한은 전력도 강했지만 운도 따랐습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단체로 보이콧을 선언해서 아시아-아프리카 플레이오프도 그냥 통과했으니까요.

문제는 좋은 성과를 냈으면서도 자신들 스스로 파괴해 버렸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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