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66화 (366/400)

Round 366. 숨겨진 보석

1964-65 시즌 일정을 마친 준영은 해마다 그랬던 것처럼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부산에서 루이스의 성묘를 한 후 김포 공항에 도착하자, 이억관과 할아버지 일가를 비롯한 지인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안뇽하세요.”

“허허허, 네가 안나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에 온 안나를 보고 다들 싱글벙글 웃음을 지었다.

애기가 참 예쁘다는 둥, 한국말도 잘한다는 둥의 덕담이 쏟아지는 가운데, 취재를 온 기자들도 연방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이 선수, 이번 한국 일정은 정확히 어떻게 됩니까?”

“6월에 방한하는 맨체스터 연합 명단에 조지 베스트 선수가 있습니까?”

“둘째 계획은 있으신지…….”

“최근에 진행되는 한일 회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준영은 이리저리 쏟아지는 질문들에 적절한 답변을 해 주고 공항을 떠났다.

그리고 숙소인 조선 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을 때, 이억관이 무안한 표정으로 사과를 해 왔다.

“준영이, 미안하네.”

“예? 저한테 미안하실 일이 뭐가 있다고……?”

미스터리 푸드 한국 지부는 현재 코카콜라와 보틀러 계약을 맺고 생산 판매를 하고 있으며, 빙과류 시장으로도 발을 뻗었다.

억관이 모든 것을 진행하진 않았지만, 준영의 조언과 임원들의 성실한 일 처리로 사업은 잘나가고 있다.

이는 승리제화 쪽도 마찬가지.

미국으로 운동화 수출이 계속 늘고 있고, 최근에는 군의 전투화 납품도 따냈다.

이런데 미안한 일이라니?

준영은 혹시 자신도 모르는 부실이 있었나 싶었지만…….

“그게… 우리 축구팀, 지금 꼴찌야.”

“아, 그것 때문이었군요.”

현재 진행 중인 1965년 전국축구연맹전에서 승리제화는 최하위인 10위.

3월 개막 이후로 아직 승리가 없어 언론으로부터 ‘승리하지 못하는 승리제화’라는 빈정거림을 듣고 있었다.

“작년에 3위까지 해서 올해는 우승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개막하고 내리 3연패를 하고 그 뒤로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더라고.”

이대로는 영국에 있는 회장님, 이준영 선수를 볼 낯이 없다!

이에 심기일전한 선수들이 반드시 1승을 올리자고 다짐했단다.

하지만 사흘 전 열린 한국철도와의 경기는 0 대 0, 무만 캐고 말았다.

“아무래도 시즌 초기의 부진 때문에 심적으로 위축된 모양이군요.”

“감독도 비슷한 소리를 하더군. 애들의 마음에 저도 모르게 패배주의가 싹튼 것 같다고.”

사실 꼴찌가 되었다고 해서 매우 심각한 상황은 아니다.

영국처럼 하위 리그로 강등되는 일은 없으니까.

그래도 자신이 후원하는 팀이 최하위라니, 준영의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원래도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확실히 살펴봐야겠어. 그런 다음 격려를 하든 일침을 놓든 해야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찾아가서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높으신 분과의 약조를 깨는 건 이 시대에 저질러선 안 되는 일이었기에 미룰 수밖에 없었다.

***

청와대에서 김홍일 대통령과의 만남은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간단히 최근 근황이나 덕담만 나누고 헤어졌던 것.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대통령 각하 말인데, 작년보다 훨씬 초췌해 보이셨어요.”

돌아가는 차 안에서 리즈가 한 말에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고민하실 만한 일이 있으니까.”

“그 한일 협상이란 게 잘 진행되고 있지 않은 거예요?”

“아니, 그와 관련한 얘기는 지난달에 전해 들었는데, 거의 합의가 되었대. 한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다음 달에 완료될 거야.”

“그럼 어째서…….”

그러자 조수석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차지철이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베트남전 전투병 파견 문제 때문이겠죠.”

“아, 그 문제가 있었죠.”

작년 5월, 미국에서는 우방국에 남베트남의 지원을 요청했다.

한국 역시 요청을 받았다.

요청에 응하면 국방과 경제 지원뿐만 아니라, 한일 회담 타결에 외교적 도움을 주겠다는 제의를 했다.

“그래서 작년 9월에 의료 지원단과 태권도 교관들이 갔지요. 올해 1월에는 2차 파병 동의안이 국회에서 타결되어 3월에 공병 부대가 사이공에 파병되었고요.”

그러나 이 정도로 미국은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최전선에서 싸울 수 있는 전투병 파견을 계속 요청해 왔다.

“한국도 북한과 대치 중이잖아요. 그런데도 병력을 내 달라고 요구하다니…….”

리즈의 말에 준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은 휴전 중이니까. 거기다 거절하기엔 명분이 약해.”

현재 국민 여론은 남베트남 지원에 호의적이었다.

6.25 전쟁 때 우리가 국제적인 지원을 받았으니, 이번엔 우리가 공산주의자들에게 위협받는 이웃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

하지만 전투병 파견에 대해서 반대하는 여론이 있었다.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든다는 말이고, 젊은 장병들이 희생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까.

‘아무리 좋은 명분을 붙여도 남의 나라 전쟁이야. 그것도 나중에 미국이 GG치는 전쟁이지.’

김홍일이나 정부 각료들은 베트남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 전쟁을 겪어 보았기에, 많은 고심을 하고 있는 듯했다.

“기왕에 파병을 간다면 독자적인 작전 지휘권을 가져야지. 그래야 남의 전쟁에 함부로 휘둘리지 않을 테니까.”

“맞는 말이야.”

차지철은 준영의 말에 동의했다. 기왕 싸울 거면 우리 뜻대로 싸워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으므로.

‘작전 지휘권 획득이 어렵진 않겠지. 실제 역사에서 정통성이 부족한 군사 정권에서도 따냈으니까.’

앞으로 10년 가까이 진행될 전쟁.

준영은 부디 큰 희생 없이 지나가기를 기원했다.

***

다음 날, 준영은 승리제화 축구단을 찾아갔다.

지은 죄가 있었던 터라 선수들은 준영 앞에서 쉬 고개를 들지 못했다.

차라리 호통이나 질책이 쏟아지면 나을 텐데, 준영은 한동안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입을 뗐다.

“다들 고개 들고 앞을 봐요.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헤쳐 나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준영은 학창 시절 만년 꼴찌 팀 센터백이었을 때 들었던 충고를 떠올리며 선수들을 타일렀다.

“기대에 못 미친 성적이 답답하겠지. 그렇다고 포기해서도, 성급하게 행동해서도 안 됩니다. 무승이라는 미로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침착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서 준영은 발로 지면을 슥 긁었다.

“자, 지금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해 봅시다. 아직 시즌이 끝난 것도, 여러분이 꼴찌로 확정된 것도 아니니까.”

그 말에 선수들의 긴장이 어느 정도 풀렸다.

이후 훈련에 들어가자, 준영은 엄하게 선수들을 지도했다.

“공만 보지 말고 사람을 봐! 배후로 침투하는 공격수에 대비를 해야 할 거 아니야!”

“늦어. 패스를 좀 더 빠르게 넣어 줘야지!”

공수에 있어 전반적으로 개선할 부분이 꽤 있었다.

거기다 베테랑 선수가 부족한 점도 문제였다.

경험이 많은 고참이 흐름에 따라 경기를 조율하고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그런 점이 부족했던 것.

‘작년에는 30대 선수들이 제법 있다고 들었는데……. 체력적인 문제 때문에 정리한 건가? 젊은 선수들의 패기를 너무 믿은 걸지도.’

준영은 그 젊은 선수들 중 유달리 키가 큰 소년 공격수에게 눈길을 주었다.

기술은 부족하지만, 자신의 체격을 활용하는 플레이를 제법 할 줄 알았다.

“거기 너, 이름이…….”

준영의 지적에 소년은 바로 차렷 자세로 대답했다.

“김재헌이라고 합니다!”

‘얘가 김재헌이라고?’

준영은 내심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 1세대 장신 공격수 김재헌.

동명이인이라고 보기엔 체격이 심상치 않았다.

‘찼다 찼다 차범곤, 센터링 올렸다~ 떴다 떴다 김재헌, 헤딩슛 골인~’

옛날에 이런 노래가 있었다고 할 정도로 김재헌의 공중전 능력은 뛰어났다.

그런 유망한 선수가 바로 이 팀에 있다니!

준영은 곧장 김재헌에 대해서 감독에게 물어보았다.

“재헌이요? 경상북도 금릉군에 사는 제 친척이 소개해 줬지요. 이준영 선수만큼 키가 큰 녀석이라고 말이죠.”

어릴 때는 야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준영의 활약이 한국에 알려진 후로 축구를 해 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고 축구 선수가 되었다고.

“확실히 장래성이 있어 보이는군요.”

“그렇긴 한데, 다른 공격수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출전은 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키 하나만 보면 웬만한 성인 선수보다 컸다.

하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아서 훈련만 시키는 중이라고.

“그래도 경기 경험이 중요하니까 일단 고등학교나 대학 팀에 보내서 뛰게 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하고 있지요.”

“그래도 다음 경기에 한번 출전시켜 보는 건 어때요?”

“글쎄요. 아직 덜 여물었는데 그건 좀…….”

“예상외로 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선수 본인에게 상당한 자극이 될 수 있다.

거미손 레프 야신도 프로 데뷔전 때 호되게 신고식을 치른 후에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하니까.

“다음 경기가 언제죠?”

“사흘 후에 주택 공사와 시합이 있지요.”

그리 많은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준영은 그 기간 안에 김재헌을 맨투맨으로 특별 지도해 주기로 했다.

배움에 있어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10대의 나이이니, 분명히 발전이 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갈색 폭격기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

분데스리가뿐만 아니라 유럽을 들썩여 놓았던 아시아 최강의 스트라이커 차범곤.

전설의 차붐도 이제 떡잎을 드러낼 나이가 되었다 싶었지만, 아직까지 소문을 듣지 못했다.

‘이름을 알고 있다고 대놓고 수배하듯 찾으면 이상하게 여길 거고…….’

혹시 자신이 저지른 역사의 변화로 축구를 하지 않는 건 아닌지?

애써 그런 불안감을 감춘 준영은 일단 눈앞에 나타난 원석부터 다듬어 보기로 했다.

***

경기도 화성군.

비포장길을 달려온 버스에서 젊은 외국인이 내렸다.

신학생 차림을 하고 있던 이 청년은 시골 풍경과 촌사람들을 보면서 난감한 기색을 띠었다.

“쩝, 한국에서 봉사할 기회라고 해서 찾아왔더니 이런 시골일 줄이야.”

기숙학교에서 계속 지내는 게 따분해서 해외 봉사에 지원했던 윌리엄 터너.

하지만 상상과 다르게 그가 가게 된 곳은 청계천 판자촌 같은 곳이 아니라, 한적한 시골이었다.

“실례합니다. 한마음 보육원이 어디죠?”

터너는 묻고 나서 아차 했다.

영어로 건넨 말을 시골 사람이 알아들을 리 만무하다고 여겼기 때문.

그런데 우마차를 모는 농부는 의외로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쪽으로 가는 길이니 타시오.”

“영어 할 줄 아시는군요.”

“전쟁 때 미군 부대에서 일하면서 귀동냥으로 배웠지.”

다행히 미아가 될 걱정은 덜었다.

한결 마음을 놓은 터너는 느긋하게 풍경을 감상했다.

그러다 공터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축구 하는 광경을 보았다.

‘오, 저기 빡빡이 녀석은 발재간이 제법…….’

퍼억-!

빡빡이가 찬 강슛이 터너의 얼굴에 정면으로 꽂혔다.

공터에 엉성하게 세워진 골대에 골망 같은 게 없으니 벌어진 참사(?)였다.

“어이쿠, 괜찮소?”

“아아, 괜찮습니다.”

찔끔 흘러내리는 코피를 대충 훔쳐 낸 터너는 아이들에게 다시 공을 던져 주었다.

어쩔 줄 몰라 줄행랑을 칠까 하던 빡빡이와 아이들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착한 아저씨라 다행이다.”

“한국말을 할 줄 몰라서 그냥 간 게 아닐까?”

“그렇진 않을걸.”

시합을 재개하던 아이들.

그때 머릿수건을 쓴 아주머니가 막 공을 몰고 가는 빡빡이에게 소리를 쳤다.

“범곤아! 인석아, 밥때가 되었는데 집에 안 들어오고 뭐 하고 있어?”

“엄마, 나 배 안 고파요.”

“안 고파도 밥은 먹어야지! 그래야 이준영이처럼 쑥쑥 클 거 아니야!”

배고픈 줄도 모르고 축구에 빠져 있던 빡빡이 소년 차범곤.

미래의 갈색 폭격기는 아무도 모르게 내일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

차범근 선수는 실제 경기도 화성이 고향입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참기름에 밥을 비벼 먹는 것도 사치로 생각했었고, 짜장면이 뭔지도 몰랐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부터 운동 신경이 뛰어나서 안 해 본 운동이 없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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