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62. 아이돌 스타의 시대
리버풀을 격파한 맨유가 리그 1위에 올랐을 때,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시티는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버트 트라우트만도 없고, 케네스 반즈도 떠났고…….”
“아- 옛날이여!”
맨시티 팬들은 과거 메인 로드의 영광을 일궈 냈던 스타플레이어들을 그리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60년대에 들면서 성적은 내리막길을 걸었고, 급기야 1962-63 시즌에 21위로 강등, 1964년 11월 현재도 2부 리그에 머물러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팀, 마냥 절망적이지는 않다고.”
“조금씩 나아지곤 있긴 하지.”
반전의 계기는 레스 맥도웰 감독의 어시스턴트로 있던 조지 포이저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였다.
맨시티에 있기 전에도 2부 리그 팀을 지휘해서 FA컵 8강에 오른 적이 있는 포이저 감독은 선수 스카우트 능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왕년의 국가대표인 데릭 케반과 울버햄프턴의 주전 공격수 지미 머레이 등을 영입해 왔고, 앨런 오크스나 글린 파르도 같은 젊은 선수들을 적극 기용했다.
여기에 이번 시즌 맨유로부터 재능 있는 선수 한 명을 영입했다.
버스비 감독이나 머피 코치도 눈여겨보고 있는 인재.
그는 바로…….
“달려! 치고 올라가!”
“리틀 리에게 패스해! 리틀 리에게!”
맨시티와 입스위치 타운과의 경기.
2 대 0으로 리드하고 있는 맨시티의 최전방에서는 키 작은 동양인 선수가 활약하고 있었다.
“콩알만 한 주제에……!”
“흥, 그 콩알에게 골을 처먹은 건 어떤 놈들이지?”
‘리틀 리’라고 불리는 이희택은 상대의 거친 차징을 여유롭게 흘려 냈다.
보기보다 야무진 체격에 고무처럼 탄력이 있는 근육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 가속도는 상대 수비수가 쫓아가기 버거울 정도였다.
거기다 예측하기 힘든 본능적인 발재간은 번번이 수비수들을 농락해 버리곤 했다.
“가라! 몽땅 제쳐 버려, 리!”
“이희택 파이팅!”
맨시티 홈팬들과 태극기를 흔드는 한국 교민들의 응원을 등에 업은 이희택.
마치 폭주하는 자동차처럼 입스위치 페널티 박스 안으로 돌진해 들어간 이희택은 뛰어나온 골키퍼마저 제쳐 버리고 골대에 공을 밀어 넣었다.
“3 대 0이다!”
“Lee! Lee! Little Lee!”
맨시티 팬들은 신이 나서 이희택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러자 이희택은 관중들 앞으로 달려가 계속, 더 크게 외치라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오늘도 2골이나 넣었다고.”
“캡틴 리가 동생처럼 보살피며 가르쳤다더니…….”
“리버풀의 펠레나 토트넘의 유세비오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 같아.”
“에이, 그건 너무 과장이다.”
기대 어린 표정으로 이희택을 바라보는 맨시티 팬들.
몇몇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리틀 리가 팀을 승격시키고 퍼스트 디비전 우승까지 일궈 내는 광경이 그려지고 있었다.
“리틀 리라……. 거칠긴 해도 둔하진 않아. 시야도 넓어 보이고, 투지도 강해.”
경기장에 찾아온 월터 윈터보텀은 이희택의 플레이를 보고 수첩에 꼼꼼히 기록했다.
그는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는 걸 수락한 이후로 영국에 있는 한국 선수들을 먼저 둘러보았다.
준영은 물론, 허더스필드 타운에 있는 조윤옥과 하트 오브 미들로디언의 차태성도 만나 보았다.
‘재능이 있는 선수들이긴 했지. 하지만 그들만으로 한국 선수들을 다 안다고 판단해서는 곤란해.’
현재 대다수 한국의 대표 선수들은 한국 국내에 있었다.
준영에게 듣자니 새로 출범한 실업 리그나 대학 구단, 군부대 팀에 있다고.
‘사실상 대다수가 아마추어 선수들이란 얘기지. 그런 선수들로 아시아-오세아니아 예선을 뚫고 아프리카와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건가.’
아프리카 축구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아프리카 선수들 중에는 현재 유럽 리그에서, 그것도 주전으로 활동하는 이들도 제법 많기 때문.
‘월드컵 예선까지 1년 남짓……. 서둘러 준비해서 한국으로 떠나야겠군.’
다행히 현재 한국 대표팀의 물주 역할을 하는 준영이 잡아 놓은 로드맵이 있었다.
더구나 그와 절친한 한국 축구인들도 지원해 준다고 약속했다.
‘한국 현지에서 영어가 가능한 코치가 합류할 거라고 하지만, 수석 코치는 이쪽에서 뽑아 가야겠지. 근데 한국까지 같이 가려는 사람이 있을지…….’
이리저리 생각하고 있는 사이, 관중석에서 또 한 번 환호성이 일어났다.
왼쪽 측면을 재빠르게 내달린 이희택이 크로스를 올렸고, 중앙에서 쇄도하던 데릭 케반이 헤딩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거참, 어시스트까지 했나?’
월터는 이따 경기가 끝나면 작은 리를 찾아가 축하와 격려를 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앞으로 한국 대표팀의 공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선수가 틀림없었으니까.
***
1964년 11월 21일.
올드 트래퍼드에서 맨유와 블랙번의 경기가 열렸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리그 경기였지만, 이날은 좀 특이한 점이 있었다.
“꺄아아악! 조지-!”
“사랑해요~ 나의 베스트 플레이어!”
맨유의 붉은 레플리카를 걸친 소녀들이 경기장에 잔뜩 몰려와 환호성을 내지르며 플래카드를 흔들어 댔다.
특히 코너 쪽에 많이 몰려 있었는데, 조지 베스트가 코너킥을 처리할 때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소녀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에 조지는 당황하거나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가볍게 손 인사를 하거나 윙크를 건네는 등, 서비스를 충실하게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환호성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곤 했다.
“조지 녀석, 인기 엄청 많은걸.”
조지 베스트의 열성 팬들을 본 던컨은 혀를 내둘렀다.
축구장에 여성 팬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온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어리고 잘생긴 데다 발재간이 좋잖아. 거기다 스탯도 잘 찍고 있고.”
준영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조지 베스트가 축구계의 아이돌 스타로 인기를 끌었다는 건 21세기에 있을 때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건 역사가 바뀐 지금도 마찬가지.
‘역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렇게 아이돌 스타로 인기를 얻고 있는 건 조지 베스트만이 아니라는 점이지.’
일전에 더 가디언에서는 이번 시즌 맨유의 상승을 이끄는 10대 선수들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조지 베스트,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이 ‘새로운 버스비의 아이들’은 다들 뛰어난 실력에 준수한 용모이다 보니 소녀들의 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경기장으로 여성 팬들이 몰리고 있었던 것.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구단에서는 이런 여성 팬들을 노린 구단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조지 베스트의 캐리커처와 사인이 든 머그컵이 그 대표적인 상품이었다.
“존, 생각나? 우리도 저렇게 사랑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야.”
“그러게. 10년도 안 지났는데 왜 이리 옛날 같냐.”
왕년의 아이돌들은 이제 다들 유부남에 애 아빠들.
하지만 무상한 세월을 한탄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그들은 아직 녹슬지 않은 기량을 펼쳐 보이며 한창 반짝이는 후배들의 플레이를 든든하게 뒷받침했다.
***
맨유는 경기를 주도하고도 전반에 점수를 내지 못했다.
혹시 후반전에도 답답한 양상이 이어지려나 했지만 후반 7분, 조지 베스트가 멋지게 박스를 돌파하며 선제골을 터트렸다.
그 골로 승세는 맨유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후반 20분에는 게르트 뮐러, 그리고 다시 10분 후에는 알렉스 퍼거슨이 추가 골을 넣었다.
그렇게 3 대 0 완승으로 경기를 끝낸 맨유 선수들은 홈팬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필드에서 퇴장했다.
“야, 조지, 너 유니폼 어쨌냐?”
알렉스의 물음에 웃통을 까 놓고 있던 조지가 으스대며 말했다.
“그거요? 아가씨들한테 던져 줬죠. 엄청 좋아하던데요.”
“이 쉐키, 골 좀 넣었다고 까불긴!”
“아얏, 왜 때려요?”
머리를 쥐어박힌 조지의 입이 불쑥 튀어나왔다.
“맞을 만하니 때렸지. 잘 들어. 우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유럽 최고의 구단이라고. 그에 걸맞은 품위를 보일 필요가 있는 거야.”
“쳇, 주장도 옛날엔 유니폼 던지고 그랬다던데…….”
“야 인마, 네가 주장이랑 같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아아악! 주장 형! 살려 줘요! 퍼기 형이 나 죽이려고 그래!”
알렉스에게 헤드록이 걸린 조지가 꿱꿱댔지만, 다들 피식 웃기만 하고는 만류하지 않았다.
그때 그들의 앞으로 정장 차림의 청년이 나타났다.
“다들 여전하네. 잘 지내고 있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겠어.”
“오, 레논이잖아.”
“진짜 오랜만이다!”
준영과 선수들을 찾아온 청년은 비틀즈의 리드 보컬인 존 레논.
그의 등장에 데니스 로, 알렉스 등 절친하게 지냈던 또래의 선수들이 무척 반가워했다.
“영국에 언제 온 거야?”
“미국을 점령하고 다니느라 바쁘다면서?”
한때 맨유에서 활약했던 축구 선수는 이제 미국 가요계를 평정하고 있는 대스타.
이제 프로 선수로 활동하지는 못하지만 레논은 맨유의 명예 선수로 남아 있었고, 미국에 축구를 보급하는 데도 한몫하고 있었다.
“새 앨범 준비도 하고, 오랜만에 주장이랑 모두의 얼굴도 보고 싶어서 들렀지.”
그리 말한 레논은 준영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건넸다.
“주장, 다들 건강하죠? 안나는 잘 크고 있어요?”
“폭풍같이 성장하는 중이지. 얼마 전엔 뭐래는 줄 아냐? 내가 집에서 좀 뒹굴거리고 있으니까 ‘아빠, 훈련하러 안 가?’ 이러면서 갈구더라고.”
“하하핫! 벌써부터 그런다니, 무서운 공주님이네요.”
조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준영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레논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가 레논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유소년 팀에 있을 때, 1군 선수 중에 밴드와 프로 선수 활동을 겸업하는 괴짜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고 실제 누군지 살펴본 적도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무면허로 말티즈를 몰고 다니던 괴짜 형씨가 영국은 물론 미국까지 점령한 록스타가 되었을 줄은.
“주장, 이 녀석은……?”
“우리 1군 막내 조지. 제법 쓸 만한 발재간을 갖고 있지.”
“아! 그 벨파스트에서 왔다던 녀석 말이죠? 정말 많이 컸네요.”
레논과 눈을 마주친 조지는 냉큼 자신을 소개했다.
“조지 베스트입니다, 선배님. 측면 공격을 전담하고 있죠.”
“윙어라고? 나도 그쪽 포지션이었지.”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둘을 보며 준영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가요계의 아이돌과 축구계의 아이돌의 만남이라…….’
이 또한 역사적인 만남이 아닌지?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싶었던 맨유 선수들과 레논은 단골 클럽으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 나갔다.
클럽 밴드들은 레논이 온 줄도 모르고 비틀즈의 곡을 신나게 연주하고 있었다.
“미국 생활은 좀 어때? 폴에게 들으니 불쾌한 일도 좀 있었다고 하던데?”
준영의 물음에 레논은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저희가 느낀 불쾌감은 그 땅에서 오래 핍박받은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9월에 플로리다에서 레논과 비틀즈 멤버들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았다.
콘서트를 보러 오는 청중을 백인과 유색 인종으로 분리시킨 것.
미국의 인종 분리 정책에 대해서 대충 듣긴 했지만, 실제 목격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가 이런 식이면 콘서트를 안 하겠다고 하니까 그쪽에서도 물러서더군요.”
“거참, 노래를 듣는데 인종이 무슨 상관이라고……. 혹시 나중에 너희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그러진 않던?”
“전혀요. 주장 말대로 하면 저희가 ‘Gab’이었으니까요.”
이미 비틀즈가 침공하기 전에 미국에는 비틀즈의 열성 팬들이 가득했다.
미국의 청소년들은 마치 신이 강림한 것처럼 그들을 맞았고, 가는 곳마다 수만 명의 팬들이 따라다녔다.
어찌나 열성인지, 비틀즈 멤버들이 덮은 이불을 잘라 낸 천 조각도 비싸게 팔릴 정도.
“이런데 어쩌겠어요?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장 자기네가 박살 날 판인데. 그래서 결국 인종에 상관없이 다 같이 듣게 했죠.”
“멋진 갑질을 했구나.”
“예. 뭔가 뿌듯했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 일 덕분에 알게 된 사람도 있었어요.”
레논은 정장 안주머니에서 사진 하나를 꺼내 준영에게 보여 주었다.
사진에 레논과 찍힌 사람을 본 준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이 신부님은…….”
“주장도 알아요? 마틴 루터 킹이라고, 미국에서 흑인 민권 운동을 하는 분이에요.”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는 분.
준영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레논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실제 역사와 다른 이유로 총에 맞아 죽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서.
***
조지 베스트는 현역 시절에 ‘엘 비틀(El Beatle)’, ‘다섯 번째 비틀즈 멤버’로 일컬어질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비틀즈가 시나트라같이 중후한 남성 지향의 음악이 주류였던 가요계에 소녀 팬들의 열광을 이끌어 냈던 것처럼, 조지 베스트 역시 당시 남자들의 스포츠였던 축구에 여성 팬들이 가세하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안정환이라고, 그런 스타플레이어가 있었지요.
지금도 임상협이나 박정인이나 정승원 등 꽃미남 축구 스타들이 있지만, 왕년의 안정환 선수에 미치지 못하여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