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60. 유망주 격돌
쿠티뉴는 어릴 때 고향 피라시카바에서 산투스 FC의 경기를 봤다.
그 관전을 계기로 그는 프로 축구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안 돼. 허락할 수 없다!”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쿠티뉴는 가출, 집에서 200킬로미터가 넘게 떨어진 산투스 구단에 찾아가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다행히 재능은 인정받았다.
산투스 구단은 아들을 찾으러 온 부친을 간곡히 설득해서 입단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1958년 프로 무대에 데뷔하며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고, 다음 해 국가대표팀에도 선발이 되었다.
‘기왕이면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가 되어야지.’
1962년 10월, 산투스는 쿠티뉴를 앞세워 인터콘티넨털 컵에서 맨유를 격파, 세계 챔피언의 왕좌에 올랐다.
그해 오랫동안 고대하던 월드컵에서도 우승했기에, 브라질 국민들에게는 최고의 한 해가 되었다.
다음 해에도 산투스는 인터밀란을 격파하고 세계 챔피언의 왕좌를 지켜 냈다.
이렇게 되자 쿠티뉴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졌다.
‘남미를 평정했으니, 이번엔 유럽 차례야.’
산투스 구단에서는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는 쿠티뉴의 요청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브라질 축구 팬들은 유럽에서의 경험을 발판으로 월드컵 우승에 공헌한 펠레의 사례를 들며 쿠티뉴의 도전을 적극 지지해 주었다.
“참 나, 왜 자꾸 남의 선수를 보내라 마라 참견이야!”
“상파울루나 코린치안스 놈들 입장에선 쿠티뉴가 떠나는 게 자신들 우승에 유리하다고 봐서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브라질 축구를 위한 대의명분이 걸리다 보니 산투스 구단도 마냥 거절하기 힘들었다.
때마침 유러피언 컵 우승을 노리던 리버풀에서 쿠티뉴의 임대를 요청해 왔다.
이에 산투스는 펠레에게 그랬던 것처럼, 친정 팀으로 반드시 복귀한다는 조건으로 쿠티뉴를 보내 주었다.
‘유러피언 컵을 제패한 다음에 월드컵 우승이다!’
칠레 월드컵 때도 발탁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부상 때문에 무산.
쿠티뉴는 유럽과 남미, 클럽과 국가대표팀 모두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고 싶었다.
그런 꿈을 갖고 있는 건 선배 펠레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만만찮은 장벽이 있었다.
「펠레가 쿠티뉴에게 패스, 노비 스타일스가 마크에 나섭니다. 캡틴 리까지 합세하는군요.」
끈덕진 마크에 능한 노비에 이준영까지 달려들자, 쿠티뉴는 쉽사리 전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크게 난감하게 여기지 않고, 로저 헌트 쪽으로 패스를 보냈다.
전진하던 로저는 슬쩍 패스를 흘렸고, 펠레가 공을 잡아챘다.
“네 녀석이 갈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던컨이 앞을 막아서자, 펠레는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빅 던, 당신 혼자서는 무리일걸.”
“나 혼자 덤빈다고는 안 했는데?”
던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펠레에게 조지 베스트가 접근해 왔다.
그러곤 잽싸게 펠레의 발밑에서 공을 가로채 갔다.
“저 자식이……!”
“캬캬캬! 브라질 축구 황제도 별거 없구만!”
그대로 리버풀 진영으로 돌파해 가려던 조지 베스트.
하지만 과감하게 전진해 있던 수비수 론 예이츠가 태클로 공을 라인 밖으로 걷어 냈다.
“까불지 마라, 꼬마야.”
“쳇, 한 번 막았다고 으스대긴!”
이후로도 미드필드 지역을 중심으로 리버풀과 맨유 선수들은 자주 부딪쳤다.
이 미드필드 싸움을 주도한 이들은 리버풀의 이안 캘러헌과 피터 톰슨, 그리고 맨유에서는 이준영과 노비 스타일스가 맞섰다.
「리버풀의 풀백 고든 마일스, 전진하며 이안 세인트 존 쪽으로 패스. 하지만 빅 던이 중간에 끊어 내는군요.」
「유나이티드의 반격! 공이 가는 쪽으로 잽싸게 달려 들어가던 바비 찰튼, 크리스 라울러의 발에 걸려 넘어집니다. 음, 이거 파울 아닌가요?」
축구인들은 그렇게 뺏고 빼앗는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유나이티드는 공격수들도 수비 가담에 적극적이군.”
“펠레와 쿠티뉴를 막으려면 일단 수적 우위를 갖출 필요가 있으니까요.”
“뭐, 의도는 알겠지만 그런 대응으론 공격에서 숫자가 줄잖아. 반격이 원활할 것 같지 않은데.”
물론 이런 점을 맨유 쪽에서 생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숫자가 부족하면 효율적으로 공격하면 된다.’
맨유에는 효율적인 공격이 가능하게 만드는 선수들이 있었다.
공격으로 전환한 상황에서 재빨리 정확한 패스를 밀어 줄 수 있는 이준영.
넓은 시야에 상황 판단이 빠른 바비 찰튼.
그리고 전후좌우로 번개같이 필드를 누비고 다니는 조지 베스트가 있었다.
이런 효율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은 활동량도 굉장했다.
“늘 생각하지만, 유나이티드 놈들은 마라톤에 나가도 될 것 같아.”
“활동량 하나는 잉글랜드, 아니 유럽을 통틀어서도 최고지.”
“흥, 많이 뛴다고 무조건 이기는 건 아니야.”
일부 리버풀 팬들은 무식하게 뛰기만 하는 축구라며 맨유의 축구를 폄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활동량이 많은 건 리버풀 역시 마찬가지.
빌 섕클리는 선수들이 많이 뛰고 적극적으로 플레이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발이 느려서는 절대 저 붉은 악마들을 잡을 수 없지. 거기다 2~3개의 포지션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는 동료의 빈자리를 쉽게 메워 준다.
맨유에는 그렇게 다재다능한 선수들이 많았고, 새로운 주전으로 도약한 10대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섕클리의 눈에 띄는 선수는 프란츠 베켄바워였다.
‘어린 나이에 상당히 침착하고, 시야도 넓고, 발 기술도 좋아. 무엇보다 상대의 플레이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나.’
나이에 맞지 않는 판단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쿠티뉴와 비슷했다.
그 때문에 쿠티뉴가 박스 안으로 들어왔을 때도 잘 막아 냈다.
「펠레가 살짝 제쳐 내며 쿠티뉴에게 패스. 쿠티뉴, 툭 치고 들어가며 슛-!」
콥스의 환호성이 안필드에 울렸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쿠티뉴의 슛이 옆 그물이었기 때문.
찬스를 날린 쿠티뉴는 미간을 찌푸렸다.
프란츠라는 저 덩치 큰 독일 놈은 마치 자신이 어떻게 플레이하려는지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방금 전에도 사냥개처럼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 결국 빗나가는 슈팅을 쏘게 만들었다.
‘쳇, 잘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소문 이상이잖아.’
투덜대던 쿠티뉴는 이내 손바닥으로 뺨을 두들기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플레이가 안 된다고 짜증을 내서는 슛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게 될 테니까.
‘오히려 기뻐해야지. 저런 선수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을 말이야.’
저 독일 소년은 틀림없이 월드컵에 나올 것이다.
훗날 우승을 막는 강적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그러니 이 기회에 상대를 파악해 두기로 마음먹었다.
***
중원에서 뺏고 뺏기는 공방전이 치열하게 벌어진 전반전은 무득점으로 마무리되었다.
홈팀인 리버풀은 물론 맨유 역시 역습으로 몇 차례 기회를 잡았지만, 득점으로 연결하진 못했다.
“어이, 뮐러, 이제 영점은 충분히 잡았지?”
하프타임이 끝나고 다시 필드로 나온 준영은 게르트 뮐러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뮐러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반전에 두 차례 슛 기회를 얻었지만, 상대 골키퍼 토미 로렌스의 선방에 막혔다.
하지만 단지 아쉬워하고 물러난 건 아니었다.
“골키퍼의 움직임이나 수비수들의 대응이 머릿속에 들어왔어요. 그러니 언제든 패스만 전달해 주세요.”
‘헐, 하여간 괴물 같은 놈이라니까.’
독일이 낳은 최강의 득점 기계.
그걸 알고 영입해 온 준영도 녀석의 플레이에 섬뜩할 때가 있었다.
마치 컴퓨터 인공지능처럼 상대 수비수의 움직임을 분석해서 다음에 일어날 상황을 예상, 기회를 만들어 내곤 했다.
훈련 때 준영도 뮐러의 그런 플레이에 당한 적이 있었다.
‘같은 팀이니 망정이지, 적으로 만났다면 진짜 진땀을 뺐을 거야.’
게르트 뮐러는 앞으로 한창 성장할 여지가 있는 유망주.
어쩌면 원래 역사보다 더한 괴물이 될지 모른다.
“그래, 후반전엔 네 활약을 기대할게.”
“주장 형, 이 천재의 활약도 잊지 말라고요!”
다가와서 깐죽대는 조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준영은 팀원들과 어깨동무하며 우렁차게 구호를 외쳤다.
“가자! 왕좌를 탈환하자!”
“왕좌를 되찾자!”
잠시 후,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필승의 의지를 다진 건 리버풀 쪽도 마찬가지.
이안 캘러헌의 패스를 받고 박스로 들어간 쿠티뉴는 현란한 발재간으로 베켄바워의 눈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침착하게 대응하던 베켄바워도 변칙적인 쿠티뉴의 레인보우 플릭을 보고 움찔했다.
‘이건 주장이 보여 주던…….’
쿠티뉴를 놓쳤다.
하지만 베켄바워는 당황하지 않았다.
‘우리 팀 수문장은 만만찮다고! 틀림없이 막아 낼걸!’
그의 기대대로, 골키퍼 제프 마이어가 달려들어 쿠티뉴의 발 앞으로 떨어지는 공을 주먹으로 쳐 냈다.
「박스 바깥쪽으로 흐르는 공, 피터 톰슨이 그대로 슛! 하지만 빌리 맥닐의 육탄 방어에 막힙니다. 코너킥 얻는 리버풀.」
곧바로 낮고 빠르게 날아든 코너킥.
마크하는 던컨을 달고 박스 안으로 들어간 펠레는 살짝 공을 건드리며 골대 구석으로 방향을 틀어 놓았다.
들어갔다고 확신한 그 순간, 제프 마이어가 몸을 던지며 공을 쳐 냈다.
그 선방에 관중들 모두가 경악의 탄성을 내뱉었다.
「마이어, 정말 대단한 선방입니다. 마치 전성기 때 버트 트라우트만을 보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리버풀의 코너킥.
슬그머니 전방으로 올라왔던 론 예이츠는 떨어지는 공을 보고 곧장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보다 높이 뛰어오른 준영이 헤딩으로 걷어 냈다.
“노비, 리바운드 볼 잡아!”
박스 바깥쪽에 대기해 있던 노비가 공을 잡기 무섭게, 조지 베스트가 리버풀 진영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역습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안 캘러헌이 손을 뻗어 패스를 막아 버렸기 때문.
고의적인 핸드볼 파울이었지만, 심판은 별다른 구두 경고 없이 넘어갔다.
“영악한 놈이구만.”
“내가 녀석이래도 저랬을 거야.”
캘러헌의 파울 덕분에 론 예이츠를 비롯한 리버풀 수비수들은 원위치로 복귀할 수 있었다.
「위기를 모면한 유나이티드, 캡틴 리가 공을 몰며 전진해 갑니다. 좌우를 살펴보다 바비 찰튼에게 패스, 찰튼이 다시 리에게 리턴…….」
패스를 주고받으며 야금야금 리버풀 박스로 전진한 준영.
재빨리 박스 측면으로 들어갔던 조지 베스트가 패스해 달라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오프사이드… 는 안 걸리겠군.’
조지의 이런 움직임은 리버풀 수비수들의 시선을 끌었다.
올 시즌 데니스 로, 바비 찰튼과 함께 맹위를 떨치고 있는 북아일랜드의 천재 공격수.
당연히 리버풀 입장에선 요주의 대상이었다.
‘베스트 쪽으로 패스해 주려나?’
‘데니스 로일 수도 있어.’
때마침 박스 안쪽에 있던 데니스 로도 움직이며 수비수들을 유인했다.
조지 쪽을 바라보며 전진하던 준영은 데니스 쪽으로 패스를 보냈다.
‘역시 데니스 로인가.’
올 시즌 맨유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하고 있는 데니스 로.
론 예이츠는 바로 패스 길목을 막아서며 공을 걷어 내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리버풀 수비수들의 배후에서 갑툭튀한 공격수가 있었다.
“그렇게 움직일 줄 알았지.”
중간에서 잽싸게 패스를 잘라먹은 게르트 뮐러.
그의 시선은 훤히 드러난 리버풀 골대를 향해 있었다.
***
1. 산투스에 있을 때 쿠티뉴와 펠레는 체격이나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했기에 팬들이 헷갈려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펠레 쪽이 좀 더 잘했는지, 쿠티뉴는 ‘사람들이 골 넣으면 펠레인 줄 알고, 빗나가면 나라고 생각하더라.’라며 푸념을 하기도 했죠. ^^;;
2. 제프 마이어는 ‘안칭의 고양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본능적인 선방 능력이 대단했습니다. 거의 들어간다 싶은 공도 쳐 낸 일이 많았죠.
그런 그도 1976년 유로 대회 결승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승부차기에서 고배를 마시고 말았는데, 그때 제프 마이어에게 쓴맛을 보여 준 선수가 안토닌 파넨카입니다.
네, 파넨카 킥을 만든 그 사람이 맞고, 그 승부차기에서 처음 선보였다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