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59. 한번 해 봅시다
“어휴, 힘들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준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가 한숨 쉬게 된 까닭은 이번 도쿄 올림픽 한국 축구대표팀의 성적 때문.
한국은 이번에 C조로 유럽의 강호 체코슬로바키아, 칠레 월드컵 우승 팀 브라질, 다크호스 아랍연합공화국(* 이집트-시리아 연합 국가. 1958년에 결성되어 1971년까지 존속)과 한 조에 속해 있었다.
만만한 팀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경기를 가까운 일본에서 하는 데다 로마 올림픽에서 선전했고, 월드컵 플레이오프에서도 유고슬라비아를 상대로 잘 싸웠기에 은근히 호성적을 기대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1차전 체코에게는 3 대 1 패, 이후 브라질에게 2 대 0 패, 그리고 마지막 3차전 아랍연합공화국에는 5 대 0의 참패를 당했다.
3전 3패에 10실점 1득점.
혹시나 하는 기대를 무참히 짓밟는 형편없는 성적이었다.
‘지난 로마 올림픽 때처럼 영국 전지훈련도 지원했고, C조 국가들에 대한 정보도 조사해서 알려 줬어. 근데 왜 이 정도까지…….’
체코슬로바키아나 브라질은 넘사벽이라 쳐도 아랍연합공화국이 그렇게 버거운 상대였던가.
자세한 이유를 알아보고 싶었던 준영은 대한축구협회 쪽에 연락을 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현재 축구협회 이사로 활동 중인 최정민이었다.
(아우님, 정말 면목이 없군. 아우님한테 많은 도움을 받고도 이런 형편없는 성적을…….)
“일단 원인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봅니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되풀이하지 않을 게 아닙니까.”
(휴, 맞는 말이야.)
현재 최정민이 파악한 졸전의 원인은 세 가지였다.
첫째로 선수 기용 실패.
이번 올림픽을 맡은 정국진 감독은 보수적으로 선수를 선발했다.
(정 감독님은 젊은 선수들보다 주로 노장 선수들을 신뢰했지만, 후반전에서 무너져 버렸지.)
“체력과 기동력에서 상대에게 뒤처진 거군요.”
둘째로 소극적인 전술.
정국진 감독은 수비를 강화하는 선택을 했다.
현재 한국 대표팀은 최정민이 은퇴한 후로 최전방의 파괴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래서 수비 전술을 택한 것이지만, 상대를 효율적으로 봉쇄하거나 역공을 만들어 내진 못했다고.
(찬기가 대회 직전에 컨디션이 떨어져서 삼락이 녀석이 대신 미드필드를 맡았는데, 공수 조율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어.)
“거참…….”
셋째로 사기 하락.
그나마 1차전과 2차전을 할 때는 괜찮았지만, 2패로 토너먼트 탈락이 확정된 후에는 선수들의 사기나 의욕이 많이 저하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3차전에서 참패를 당하고 만 것이라고.
(정 감독님도 자신이 오판한 걸 인정했어. 그래서 3차전이 끝나고 자진 사퇴를 했지.)
“협회에서 차기 감독으로 염두에 둔 분은 있습니까?”
(글쎄, 당장 급하게 결정할 일은 아니라서 말이야.)
“서두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내년에는 월드컵 예선도 있습니다만.”
새 감독이 부임해 새로운 선수들을 발탁해서 팀을 재편하고 전술을 다져야 실전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것이다.
이렇게 본 준영은 말을 이어 나갔다.
“솔직히 계속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감독 임명해서 대표팀을 운영하는 방식으론 힘듭니다. 전임 감독 체제에서 꾸준히 팀을 관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러면 좋긴 한데, 일단 재원이…….)
“그 문제는 제가 국내 축구 스폰서 업체들과 논의해 보겠습니다. 대통령 각하께도 말씀드려 보고요.”
(휴, 알았어. 부탁 좀 하지.)
통화를 마친 준영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기왕 전임 감독 체제로 간다면 성적만 높일 게 아니라, 대표팀과 국내 축구 시스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예를 들면 히딩크 감독 같은…….’
그런 감독이 이 시대 한국에 있을까.
맨체스터에서 지도자 연수를 한 김용식 선생은 대표팀보다 유소년 선수 육성에 더 매진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민병대나 김규환 등 영국에서 단기 연수를 받은 지도자들이 있지만, 그리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럼 차라리 외국인 감독은 어떨까.”
일본도 1962년 한국전 대참패 이후로 데트마어 크라머라는 서독의 축구 지도자를 고문으로 영입했다고 들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졸전을 치렀으니, 한국 국내에서도 외국인 지도자 영입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마침 딱 맞는 사람도 있지.’
현장에선 떠났지만, 축구뿐만 아니라 스포츠 전반의 활성화와 인프라 구축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
자신과도 친분이 있기에, 준영은 그에게 한번 연락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
대한체육회장 겸 대한축구협회장 민관식은 이사들과 함께 청와대를 찾았다.
올림픽에서 축구대표팀이 졸전을 벌였다 보니, 높으신 분의 부름에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각하. 저희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김홍일 대통령을 만나자마자 민관식은 냉큼 사죄부터 올렸다.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홍일은 짧게 한숨을 내쉬곤 손을 내저었다.
“됐소. 일단 저쪽에 앉아서 얘기 좀 합시다.”
자리를 옮긴 민관식과 축구협회 이사들은 대통령이 어떤 얘기를 할까 조마조마했다.
현재 국민적인 반응이 최악이다 보니 그리 좋은 얘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얼마 전에 중앙정보부에서 보고를 했는데, 북괴 놈들이 내년 월드컵 예선에 참가할 거라고 하더구려. 협회에서도 알고 있소?”
“예, AFC 쪽에서 전해 들었습니다.”
혹시 지난 대회 예선처럼 홈 앤드 어웨이로 진행하는지, 그럼 평양 원정을 가야 하는 건지 의문과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 이번엔 특정 국가에서 토너먼트로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
“근데 북괴 놈들 전력이 상당하다는 소문이오. 63년 이후로 벌써 20회 넘게 국제 경기를 치렀는데, 버마에게 1패 한 걸 빼고 전부 이겼다고 합니다.”
거기다 이준영이나 조윤옥 같은 사례를 따라서 소련이나 체코, 동독으로 선수들을 보내 그곳 축구팀에서 경험을 쌓게 하고 있다고.
“월드컵 예선까지 약 1년 정도 남은 걸로 아는데, 우리도 대비해야 하지 않소? 북괴 놈들에게 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물론입니다, 각하. 그렇지 않아도 현재 논의 중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민관식은 앞으로 국가대표팀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차기 감독 후보로 꼽히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지 설명했다.
“전임 감독 체제라…….”
“대회나 경기가 있을 때마다 뽑아서 맡기는 게 아니라, 급료를 지불하면서 2년에서 4년간 장기적으로 팀 운영을 맡기는 거지요.”
“흠, 나쁘지는 않은데…….”
이미 김홍일도 준영에게 연락을 받아 전임 감독 체제로 가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잉글랜드도 월터 윈터보텀 감독이 전임 감독을 맡은 후, 현대 축구의 흐름에 맞게 대표팀을 운영하며 우승을 일궈 냈다고.
“이번 올림픽에서 일본이 8강 토너먼트에 올라갔다고 하던데?”
“예, 조 예선에서 아르헨티나에게 이겼습니다.”
“그래, 서독 코치를 고문으로 데려와서 성과를 냈다고 하더구려. 우리도 한번 그렇게 해 보는 게 어떻소?”
“예? 그건…….”
“지금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서 외국인 고문이나 기술자를 초빙해서 실력을 높여 가는 중이오. 축구도 그렇게 하는 게 좋지 않소?”
대통령의 말에 몇몇 이사들은 난색을 보였다.
과연 한국까지 와서 전임 감독을 할 외국인 감독이 있겠는가. 그 급료는 누가 감당할 것인가.
사실 이런 문제보다 그들이 달갑잖게 여기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차기 감독은 우리 모교 출신이 맡았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후배들도 대표팀에 잘 선발할 수 있지.’
물론 이걸 대통령에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들은 다른 이유를 댔다.
“각하,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 감독이 제대로 선수를 뽑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거기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선진 축구 전술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도…….”
그러자 최정민이 바로 반박하고 나섰다.
“선수 선발이야 한국인 코치가 보좌하게 해서 뽑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영국처럼 선수 선발을 전담하는 기술위원회를 만들어도 되겠지요.”
그러자 반대 의견을 냈던 이사들이 최정민을 흘겨보았다.
아직 나이도 젊은 놈이 왜 나서냐고.
하지만 최정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선진 축구 전술을 따라가지 못할 거란 비관도 타당치 않다고 봅니다. 지난 로마 올림픽 때만 해도 유럽식 훈련과 전술을 도입해서 성과를 냈으니까요.”
최정민의 말에 김홍일은 반색을 하였다.
“나도 최 군의 의견에 동감이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배우고 행하는 건 빠르지 않소. 실업 축구 리그만 해도 그렇고.”
지금 한국에선 ‘전국 축구 연맹전’이라는 실업 축구 리그가 운영되고 있었다.
1962년 8개 팀이 실험적으로 시작했던 이 리그는 올해 10개 팀으로 확대되어 정식으로 출범했다.
내년에는 영국의 FA컵을 본떠 ‘대통령배 전국 축구 대회’도 열 계획이었다.
“그러니 한번 해 봅시다. 자금 문제야 정부에서 지원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각하. 다만 저희가 인맥이 부족하니 해외에서 유능한 감독을 영입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있는 인맥이라도 잘 살리면 되는 일 아니겠소.”
대통령의 말에 모두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민관식이나 최정민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탐탁지 않아 하는 이사들도 적지 않았다.
‘계속 이준영의 영향력이 커지는군.’
‘이래서는 좋지 않은데…….’
그러나 견제하고 싶어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자신들이 맞서기엔 이미 실력이나 명성, 재력에서 까마득하게 우위였으니까.
***
한국에서 대표팀 개편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준영은 10월 31일 안필드 원정 경기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관중들은 기대와 흥분으로 들떠 안필드로 몰려들었다.
“드디어 올 시즌 우승의 향방을 가르는 경기가 시작되는군.”
“리버풀이 1위를 고수할 수 있을까, 아니면 유나이티드가 밀어내고 올라설까?”
“지난 경기를 생각하면 유나이티드의 기세가 엄청나던데…….”
24일 아스톤 빌라전에서 맨유는 무려 7골을 터트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 화력 쇼는 마치 리버풀에게 보란 듯이 퍼부은 것 같았다.
“흥, 그래도 이쪽은 펠레와 쿠티뉴가 있다고.”
“맞아. 그 둘의 합작 플레이도 엄청나잖아.”
쿠티뉴의 플레이는 모두가 기대했던 이상.
그 둘은 지난 웨스트 브롬위치전에서도 4골을 합작하며 팀의 3 대 4 역전승을 일궈 냈다.
“이 경기에서 확실히 보여 주지. 이제 우리가 챔피언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오히려 안심이 되는걸.”
선수 대기실에서 펠레와 가볍게 언쟁을 주고받은 준영.
잠시 후 그는 양 팀 선수들과 함께 필드로 나왔다.
“아빠, 이겨! 힘내!”
수많은 관중들 속에서 준영은 가족들을, 그리고 귀여운 딸을 찾아냈다.
공주님에게로 손을 흔들어 준 필드의 거인은 자신의 자리로 가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삐익-!
잠시 후, 휘슬이 울리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좋아, 어디 한번 해볼까.”
발동이 걸린 준영의 두 눈에 맨유 진영으로 들어오는 리버풀의 브라질리언 콤비, 펠레와 쿠티뉴의 모습이 들어왔다.
***
1.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에 전임 감독 체제가 자리 잡은 건 1991년부터입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에 역대급 스쿼드를 가지고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3패로 대회를 마무리했지요.
그 이후로 문제점이 지적되며 전임 감독 체제가 자리를 잡습니다.
2. 데트마어 크라머는 60년대 일본 축구의 발전에 공헌했고, 90년대에는 우리나라 올림픽 대표팀 총감독 및 기술 고문을 맡기도 했습니다.
당시 수석 코치였던 김삼락은 크라머의 유화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이었지만, 서정원이나 최용수, 신태용 등 당시 선수들은 그를 무척 존경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