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58. 역사의 한 페이지
2030년 브리튼-에이레 월드컵 A조 3차전 잉글랜드와 대한민국의 경기.
양 팀 모두 앞선 두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 지었다.
하지만 조 1위를 차지해야 토너먼트에서 유리한 편성을 받을 수 있었기에 양보 없이 치열한 경기를 펼쳐 갔다.
「측면에서 엄지승이 파고들어 갑니다. 잉글랜드 박스 안으로 들어온 엄지승!」
「자, 과감하게 할 필요도 있거든요!」
한국 중계진의 바람과 달리 엄지승은 슛이 아니라 중앙으로 낮게 크로스를 보냈다.
그 패스는 달려드는 공격수 조규선의 발에 걸렸지만, 슛은 골대 위로 넘어가 버렸다.
“아, 거기선 방향만 살짝 돌렸어야지!”
“하하하, 힘을 너무 줬군.”
관중석에서 친구 해리와 함께 경기를 보던 BBC의 다큐멘터리 작가 제이크 김은 아쉬운 한숨을 내뱉었다.
스코어는 2 대 1로 주최국인 잉글랜드의 리드.
전반 11분 미드필더 백상운이 선제골을 터트렸지만, 이후 토트넘의 간판 골 게터 데인 스칼렛에게 연달아 골을 내주며 역전당했다.
전반전이 끝나고 대한민국 대표팀은 교체를 통해 전열을 정비했다.
그 효과로 경기 흐름을 바꾸며 연이어 찬스를 잡았지만, 좀처럼 마무리를 맺기가 쉽지 않았다.
「잉글랜드 역습, 빨리 수비로 전환해야 하는데요.」
「지연시켜 줘야죠. 아, 이재훈 선수, 침착하게 잘 가로챘습니다. 위기 넘기는 대한민국.」
「이재훈 선수, 역시 든든합니다.」
잉글랜드의 공격을 저지한 이재훈은 동료들과 패스를 주고받으며 전진, 과감하게 중거리 슛을 날렸다.
잉글랜드 골키퍼 딘 헨더슨이 몸을 날렸지만, 하단 구석으로 뚝 떨어진 슈팅은 그대로 골대 안에 들어갔다.
“What the Seeval!”
“그렇지! 바로 그거야!”
경악하는 해리와 달리, 제이크 김은 주먹을 불끈 쥐며 쾌재를 불렀다.
그의 눈에 카메라 앞으로 달려간 이재훈이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펼치는 모습이 들어왔다.
“이재훈 선수를 보면 옛날의 이준영이 생각난단 말이야.”
“하, 저 자식이 존 Y. 리랑 같다고?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 차라리 체격은 좀 작아도 우리 잉글랜드 대표팀의 리바이 콜린이 더 비슷하지.”
이후 몇 분의 공방전이 더 이어진 후, 심판이 종료 휘슬을 불었다.
2 대 2 무승부.
골 득실 차에서 앞선 잉글랜드가 1위를 차지했다.
아쉬워하던 한국 선수들은 잉글랜드 선수들과 악수하며 유니폼을 교환했다.
이재훈과 리바이처럼 꽤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선수들도 있었다.
“되게 친하구만. 경기할 때는 으르렁대더니…….”
“그럴 수밖에. 한국 선수들 중엔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었거나 뛰고 있는 이들이 많으니까.”
약 70년간, 이준영을 시작으로 수많은 한국 선수들이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활약해 왔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서는 보통 ‘해외 축구=프리미어리그’로 여겨지곤 했다.
“사실 축구만 그런 게 아니지. 한국 사람들이 이민이나 유학을 미국 다음으로 많이 가는 나라가 영국이니까. 가까운 일본보다 많다고.”
“하긴 제이크 너만 봐도 알 만하군.”
6.25 전쟁 이후로 우방이 된 영국은 이준영이라는 스타 선수를 계기로 한국과 매우 친밀해졌다.
특히 4월 혁명 직후에는 적극적으로 차관과 기술 지원을 하며 당시의 빈약한 한국 경제를 일으켜 주기도 했다.
이에 한국 정부도 매우 적극적으로 영국과의 교류를 이어 나갔다.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나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듣자니 식민지 시절 배상금을 받은 것도, 영국으로 들어왔다던가?”
“맞아. 일본 애들은 아직도 그것 때문에 부들부들하고 있지.”
당시 한국은 한일 국교 정상화에 냉담했다.
아니,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이 저지른 병크 때문에 거의 적대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당시 한국 정치인들이 소련과 외교 관계를 맺을 거라는 둥, 제주도를 소련에 넘길 거라는 둥 그랬다면서?”
“아냐, 해리. 그건 그냥 썰일 뿐이야. 당시 한국은 반공 국가였다고.”
그런 썰이 나올 정도로 가까운 자유 진영 국가인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은 일본에게 어떻게든 한국을 어르고 달래 국교 정상화를 진행하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 결과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조약으로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협정에 의거, 한국 내 과거 일본의 모든 자산을 포기하였고, 연간 7,000만 달러씩 무상으로 10년간 제공하기로 했지.”
“그 7억 달러가 배상금인 거군.”
“맞아. 일본에선 독립 축하금이라고 둘러대고 있지. 처음엔 현금으로 지불 안 하고 인력이나 생산물로 때우려고 했어.”
일본이 이런 꼼수를 부린 것은 이런 현물 배상을 통해 한국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구한말 일본의 경제 침략을 기억하고 있었던 한국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현금 배상을 관철했다.
한국은 이렇게 받아 낸 배상금으로 영국에서 기술 인력과 설비 자재들을 대거 들여와 본격적인 경제 개발에 착수했다.
“결과적으로 한국과 영국에 득이 된 거고, 일본은 피를 본 셈이군.”
“아직도 피를 보는 중이지. 한일 기본 조약에 민간의 배상이나 청구권은 별개로 되어 있거든.”
그 때문에 이후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틈만 나면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에게 고소당했다.
어떤 것들은 국제 소송까지 진행되었고, 인권 유린과 관련된 전쟁 범죄들이 드러날 때마다 일본의 이미지는 실추되었다.
“그래서 일본에 혐한이란 게 많은 건가.”
“뭐, 그보다 대지진과 원전 폭발 이후로 국력이 하락한 요인이 컸지. 삶이 빡빡해지면 불만과 분노를 쏟아 내야 할 공공의 적이 필요하거든.”
“끔찍하군. 그거 유대인을 공격했던 나치 놈들 방식이잖아.”
“그래, 미친놈들이지.”
그 미친놈들 중에 영국까지 원정을 와서 날뛴 놈들도 있었다.
작년에 사쿠라이 마코토라는 극우 인사가 올드 트래퍼드 앞에 있는 이준영 동상에 오물을 퍼부었다가 체포된 적도 있었다.
“어지간히 존 Y. 리가 미웠나 보군.”
“뭐, 이준영 본인도 일본은 까야 제맛이라는 둥 그랬으니…….”
해리와 제이크 김은 자리를 뜨면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갔다.
잘하면 오늘 대화에서 다음 다큐멘터리 소재가 나올 것 같았다.
***
1964년 10월 17일.
몰리뉴 스타디움에서 홈팀인 울버햄프턴과 맨유의 경기가 열렸다.
준영과 던컨 등 일부 주전 선수들은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관중석에서 지켜보았다.
“설마 꼴찌한테 발목을 잡히는 건 아니겠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던. 말이 씨가 된댔어.”
다행히 우려할 정도로 경기가 말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초반부터 경기가 말린 것은 울버햄프턴.
전반 22분, 코너킥 상황에서 알렉스 퍼거슨에게 떨어지는 공을 걷어 내려던 수비수 게리 해리스가 자신들의 골대 안에 공을 박아 넣고 말았다.
“저런 멍청이가!”
“야! 너희들, 정말 제대로 할 생각 없냐!”
“어이구! 빌리 라이트가 있을 땐 이러지 않았는데!”
홈팬들의 원성에 울버햄프턴 선수들은 더욱 주눅이 들었다.
당연히 맨유 선수들은 쾌재를 부르며 활개 쳤다.
전반 38분, 절묘한 드리블로 울버햄프턴의 수비를 완전히 무너트린 조지 베스트가 데니스 로에게 깔끔한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데니스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면서 점수는 0 대 2.
계속 공세를 이어 간 맨유는 전반 종료 직전에 다시 조지와 데니스가 합작으로 추가 골을 만들어 냈다.
“조지 녀석, 확실히 물건이야. 아무리 꼴찌 팀이라도 수비를 저렇게 농락하긴 쉽지 않은데.”
“기본이 아주 탄탄한 데다 양발잡이니까. 드리블이 화려하진 않아도 정확하고 효율적이지.”
준영은 조지 베스트의 플레이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대성할 것이 확실한 인재라 일찍 영입했고 틈틈이 지도해 주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활약을 보여 주었다.
‘크랙으로서 딱 좋다고 할까. 경험만 계속 쌓으면 펠레나 에우제비우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겠어.’
후반전에도 맨유는 공세를 이어 갔다.
조지 베스트는 그 공세를 주도하며 끊임없이 울버햄프턴의 수비를 흔들어 놓았다.
바싹 약이 올랐던지 자책골을 넣었던 게리 해리스와 바비 톰슨 등 수비수들이 거친 태클을 날리기도 했지만, 조지는 여유롭게 피해 냈다.
「노비 스타일스가 전진하는 프란츠 베켄바워에게 공을 넘겨줍니다. 프란츠, 깊숙이 전진하며 조지 베스트에게 패스. 조지, 한 명 제치고 두 명째…….」
연달아 수비수를 제쳐 낸 조지는 달려 나온 골키퍼마저 뿌리치고 중앙으로 컷백.
이것을 알렉스가 가볍게 밀어 넣으며 네 번째 골을 만들었다.
「홈팬들이 야유를 쏟아 내고 있습니다. 울버햄프턴 선수들이 정신을 차려 줬으면 좋겠군요. 홈에서 이렇게 완패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중계 캐스터의 말을 듣기라도 한 건지, 후반전 중반부터 울버햄프턴이 적극적으로 전진하며 공격 찬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맨유 박스로 떨어지는 크로스는 골키퍼 제프 마이어가 몽땅 잡아챘다.
심지어 후반 40분, 레이 크로우포드가 골문 바로 앞에서 날린 결정적인 헤딩슛도 짐승 같은 몸놀림으로 쳐 냈다.
결국 경기는 0 대 4로 원정 팀 맨유의 대승으로 끝났다.
“잘했어. 아주 완벽해.”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 선수들에게 박수 치던 준영.
그때 그를 노려보던 소년 하나가 그에게 달걀을 집어 던졌다.
차지철이 황급히 손을 뻗어 막았지만, 계란의 일부가 준영의 옷에 튀었다.
“저 자식이……!”
“놔둬. 이 정도 분풀이는 애교 수준이니까.”
계란이 묻은 것을 대충 털어 낸 준영은 라커룸으로 향했다.
“거치른 벌판으로 달려가자~”
“으쌰라 으쌰~”
라커룸에서는 선수들이 흥겹게 응원가를 부르며 대승을 자축하고 있었다.
그러다 준영과 던 등이 들어오자 환호하며 맞아들였다.
“주장 형, 봤어요? 이 천재의 대활약을!”
조지가 으스대자, 준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응, 한 골도 못 넣던데.”
“너무하네! 어시스트는 3개나 했다고요!”
“약팀이 아니라 강팀을 상대로 잘해야지. 강팀에게 강한 선수가 칭송받는 법이야.”
불만스럽게 입술을 쑥 내밀었던 조지는 이내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훗, 두고 보라고요. 31일 날 내 손으로 리버풀을 박살 내 버릴 테니.”
“인마, 축구 경기에서 손을 쓰면 안 되지.”
“알았어요. 그럼 발로.”
맨유 선수들은 기분 좋게 맨체스터로 돌아왔다.
저택으로 귀가한 준영을 리즈가 맞이했다.
“다녀왔어요? 오늘은 그리 피로해 보이지 않네요.”
“오늘은 출전 안 했어. 근데 무슨 일이라도 있어? 당신, 표정이 좀…….”
혹시 안나가 사고를 친 걸까.
그리 예상하던 준영에게 리즈가 곤란한 기색으로 전문 하나를 꺼냈다.
“그게, 당신이 안 좋아할 소식이 들어왔어요.”
혹시 친지에게 뭔가 안 좋은 일들이 생긴 걸까. 아니면 진행 중인 사업에 문제가 일어난 걸까.
리즈가 건넨 전문을 살펴본 준영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 갔다.
***
6.25 전쟁 휴전 이후 영국은 우리나라에 2,600만 달러의 재건 지원금을 제공했습니다.
실제 대외 원조도 지원해 주었고, 과학 기술 인력 양성에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도 영국 서리 대학과의 협력으로 이뤄졌습니다.
우리나라 조선업이 발전한 것도 70년대 영국의 차관 제공과 기술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