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56화 (356/400)

Round 356. 제왕이 깨어났다

“맙소사, 진짜 쿠티뉴가 왔어.”

준영은 손에 든 사진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 사진에는 어제 안필드에서 열린 입단식의 주인공이 찍혀 있었다.

본명은 안토니오 윌슨 비에이라 호노리오.

짧게 쿠티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선수는 맨유 선수들과 악연이 있었다.

“2년 전에 인터콘티넨털 컵에서 우릴 물먹인 녀석이 영국에 올 줄이야…….”

“산투스도 돈맛을 본 건가? 펠레가 유럽에 뛴다고 했을 땐 탐탁잖게 여겼다고 하지 않았나?”

준영과 함께 테이블에 둘러앉은 바비 찰튼과 던컨 에드워즈 역시 낯을 구기고 있었다.

유럽과 남미 챔피언이 세계 최강 클럽의 자리를 다투는 인터콘티넨털 컵.

그 세 번째 대회에 맨유와 맞붙은 팀은 브라질의 강호 산투스 FC였다.

당시 산투스에는 지우마르와 마우로 라모스, 지투, 페페 등 월드컵에서 명성을 떨친 브라질 톱 플레이어들이 포진해 있었다.

준영도 이들에 대해 경계하고 있었지만, 다소 간과하고 있던 선수가 있었다.

그가 바로 쿠티뉴.

14살에 프로에 데뷔한 그는 1962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득점왕을 차지하며 산투스의 우승에 공헌했다.

‘득점왕이라 나름 경계는 하고 있었다만…….’

21세기에서는 들어 보지 못했던 선수.

그저 쿠티뉴라고 하니, 21세기의 브라질 국가대표 미드필더 필리페 쿠티뉴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느슨하게 대했던 대가는 컸다.

쿠티뉴는 1, 2차전 모두 결승 골을 터트리며 산투스에 우승컵을 안겨 줬다.

“어린 녀석이 문전에서 엄청나게 침착했지. 경기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도 뛰어났고 말이지.”

“좁은 공간에서 빠져나가는 드리블 능력은 또 어떻고? 그 점은 펠레보다 더 나은 것 같았어.”

이렇게 펠레보다 뛰어난 구석이 있는 녀석이 영국, 그것도 리버풀에 왔다.

1963-64 시즌을 우승한 리버풀에게 있어 쿠티뉴는 리그 2연패와 유러피언 컵 우승을 기대하게 만드는 인재.

최전방에서 펠레와 콤비를 이룬다면 정말 가공할 수준의 파괴적인 공격력이 발휘될 것이다.

“갓 입성한 쿠티뉴야 그렇다 치고, 펠레는 왜 계속 리버풀에 있는 거죠? 레알 마드리드의 베르나베우 회장은 도대체 뭘 하는 건지…….”

바비가 불만스럽게 투덜대자, 준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안 그래도 백지 수표 내밀며 던진 적 있었대. 바르셀로나나 이탈리아 쪽 클럽들도 영입 시도를 했었다는 모양이야.”

준영이 섕클리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리버풀 임원들도 솔깃한 반응을 보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펠레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산투스에서는 이를 모조리 거절해 버렸다고 한다.

오히려 산투스로 복귀시키겠다고 해서, 리버풀 회장이 브라질까지 찾아가서 사정했다고.

“귀화할까 겁난 건가? 이젠 귀화해도 국가대표를 바꿀 순 없잖아.”

“구단 입장에선 국대 차출을 막기만 해도 득이니까.”

“하긴 한창 시즌 중에 차출되면 곤란해지긴 하지.”

준영은 국가대표 차출과 관련해서 구단에 큰 민폐를 끼치진 않았다.

1961년 월드컵 플레이오프에서는 차출 전에 승점을 넉넉하게 쌓아 주고 갔다.

더구나 거리가 있다 보니, 친선전이나 메르데카 컵 같은 자질구레한 대회들에는 차출되지 않았다.

최근에 대한민국 대표팀 경기를 뛴 건 올해 5월 말 이스라엘에서 치러진 제3회 아시안컵 본선.

비교적 거리도 가까운 데다, 거의 시즌 종료 직전에 대회가 치러진 터라 합류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홀가분하게 뛸 수 있었지. 우승도 했고.’

실제 역사에서 한국은 1, 2회 이후로 아시안컵 우승이 없다.

그러나 대회 득점왕까지 차지한 준영의 활약에 힘입어 3연패를 일궈 냈다.

덕분에 준영도 무관으로 그친 시즌의 아쉬움을 조금은 달랠 수 있었다.

“아무튼 쿠티뉴를 어떻게 막을지 생각해 봐야겠군.”

“쿠티뉴가 아니라 큐티뉴-펠레 조합이지. 일단 그 콤비가 어느 정도 파괴력을 가졌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야.”

“일단 시즌이 개막되어야 아는 건가.”

“리버풀 훈련장에 염탐 가야지. 저쪽은 감독이 스스럼없이 찾아오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없잖아.”

준영이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클럽 하우스의 구단 직원이 찾아와 말을 전했다.

“캡틴 리, BOA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BOA? 영국 올림픽 위원회에서 무슨 일로 나를 찾는 거죠?”

“긴히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답니다.”

“흠, 올림픽 선수들에게 지원하는 용품이나 음료 때문에 그러나?”

현재 영국 올림픽 대표 선수들은 나2키의 협찬을 받고 있었고, 미스터리 푸드의 이온 음료 아쿠아도 애용 중이다.

사업상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던 준영은 곧장 BOA 관계자를 만나러 갔다.

***

“그래서? BOA에서 무슨 일로 찾아온 거예요?”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안나와 놀아 주던 준영은 리즈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게, 올림픽을 앞두고 전지훈련 장소를 찾더라고.”

“전지훈련요?”

“그래. 당신도 알겠지만, 올해 올림픽은 10월에 일본 도쿄에서 열리잖아. 멀기도 멀고, 영국이랑 기후나 환경도 사뭇 달라.”

BOA에서는 도쿄에 입성하기 전, 일본과 가깝고 기후도 비슷한 나라에서 전지훈련을 하기를 원했다.

처음엔 홍콩을 지목했으나, 더 가까운 나라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그러니까 BOA가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하려는 거군요.”

“작년에 한국에 대규모 선수촌이 만들어진 것도 알고 있더라고.”

그동안 한국 올림픽 대표 선수들은 마땅한 훈련장이 없었다.

그러다 작년 여름, 태릉에 선수촌이 완공되었다.

북한이 다음 올림픽에 출전할 거라는 정보를 들은 김홍일 대통령은 절대 순위에서 북한에 뒤져서는 안 된다고 선수촌 건설을 지시했다.

준영을 비롯해 유일한과 이명철 등 국내 기업인들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빨리 만드느라 숙소를 비롯해 상당수 건물들을 목재와 함석판을 이용해 지었대. 억관 아저씨 말로는 선수촌이라기보다 군대 병영 같다던데…….”

그래도 선수들은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겼다며 무척 좋아했다.

양질의 식사도 제때 나오고, 훈련 용품이나 장비 지원도 잘 되었다.

거기다 준영이 초빙한 해외 스포츠 지도자도 종종 찾아왔다.

얼마 전에는 빌 바워만이 방한해서 한국 육상 선수들을 한 수 지도해 준 적도 있었다.

“영국 쪽에서 초빙한 코치들에게서 정보가 샜겠군요.”

“샌다고 해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저쪽이 원하는 대로 전지훈련을 도와주면 한국 선수들에게도 득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어울려 함께 훈련하다 보면 배우는 게 적지 않을 터.

이렇게 긍정적으로 판단한 준영은 BOA 관계자에게 대한체육회를 설득해서 연락을 주겠다고 전했다.

“이런 걸 보면 당신은 정말 거물급 인사가 된 것 같아요.”

“훗, 거물급이 된다 해도 항상 우리 여왕님의 기사지요.”

준영이 리즈에게 슬쩍 얼굴을 가까이 댔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려는 찰나, 그의 등에 매달려 있던 안나가 머리를 잡아당겼다.

“아아, 안나야, 당기지 마! 아빠 아퍼! 아프다고!”

“후후훗, 공주님도 잘 모시라고 하는 것 같네요.”

말괄량이 공주님의 질투(?)를 이길 수 없었던 준영은 밤이 된 후로 미루기로 했다.

분위기를 띄우든, 거사를 치르든, 공주님이 꿈나라로 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니까.

***

8월 22일.

맨유는 1라운드 홈에서 웨스트 브롬위치와 맞붙는 것을 시작으로, 1964-65 시즌 대장정에 들어갔다.

초반 분위기는 괜찮았다.

조지 베스트의 패스를 받은 데니스 로가 선제골을 터트리고, 이어 프란츠 베켄바워의 롱 패스를 받은 바비 찰튼이 추가 골을 넣으며 2 대 0으로 앞서갔다.

그런데 후반 말미에 빌 포크스의 헤딩 미스가 자책골로 이어지며 분위기가 돌변.

거기다 종료 직전에 내준 코너킥 혼전 상황에서 웨스트 브롬위치의 토니 브라운에게 뼈아픈 동점 골을 내줬다.

결국 경기는 2 대 2 무승부.

2라운드 웨스트햄 원정에서는 데니스 로가 선제골을 터트리고도 역전패했다.

닷새 후, 3라운드 레스터 시티전에서도 2골을 먼저 넣고 또 연속 실점을 허용하며 무승부에 그쳤다.

“하, 도대체 유나이티드는 왜 이런 거야?”

“내가 볼 땐 그 애송이 크라우트가 문제야. 그 독일 수비 놈이 자꾸 엇박자를 내고 있다고!”

“골키퍼도 믿음직스럽지가 못해. 해리 그렉은 언제 복귀하려는지…….”

8월을 무승으로 끝내면서 언론과 대중에게서 우려와 질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준영은 실수한 동료들을 옹호하며 부정적인 전망을 일축했다.

“시즌이 개막하며 다들 긴장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다 같이 분발하고 있기에, 금방 반전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준영의 발언에 라이벌 팀의 팬들은 강등이나 걱정하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그 비웃음이 무색하게 4라운드에서 맨유는 웨스트햄에게 3 대 1로 승리, 앞서의 패배를 그대로 갚아 주었다.

역사에서 증명된 데니스 로, 조지 베스트, 바비 찰튼 트리오의 공격력이 폭발한 것.

사흘 후 풀럼 원정에서도 승리했다.

선발 출전한 게르트 뮐러가 2골을 몰아치고, 프란츠 베켄바워가 호수비를 선보였으며, 골키퍼 제프 마이어는 결정적인 선방을 해냈다.

이들 게르만 트리오는 에버튼 원정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며 팀의 3 대 0 완승을 견인했다.

“와, 순식간에 3연승이네.”

“코리아의 속담에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더군.”

“3년 후에 유나이티드가 망할 거라고?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여론이 혹시나 하는 사이, 맨유는 노팅엄, 에버튼, 스토크 시티를 연달아 격파했다.

그리고 9월 26일, 강력한 우승 후보인 토트넘 핫스퍼와 맞붙었다.

「캡틴 리가 패스를 차단, 전진하는 프란츠 베켄바워에게 전달합니다. 베켄바워, 찔러 주는 패스. 조지 베스트가 살짝 방향 바꿔 흘려 주고… 데니스, 슛-! 골!」

맨유는 전반부터 데니스 로가 연속 골을 터트리며 2골을 앞서갔다.

이후 바비 찰튼과 게르트 뮐러가 추가 골을 넣으며 점수 차를 크게 벌렸다.

베스트-로-찰튼 트리오와 게르만 득점 기계에게 호되게 당한 토트넘은 종료 직전 에우제비우가 한 골 넣으며 간신히 0패를 면했다.

<제왕이 깨어났다!>

다음 날, 더 가디언에 올라온 기사는 반전된 상황을 잘 알려 주었다.

당연히 팬들도 언제 좌절했냐는 듯 으스대며 기대감을 부풀렸다.

“흥, 저러다 망할걸. 틀림없어!”

“실컷 쫓아와 봤자 1위는 리버풀이라고!”

“맞아. 펠레와 쿠티뉴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냐?”

라이벌 팬들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맨유는 현재 리그 3위인 첼시마저 잡아 내며 9월 경기 전승을 달성했다.

번리 원정에서 0 대 0으로 비기며 잠시 주춤했지만, 이후 선더랜드를 무려 5 대 0으로 대파하며 1위 리버풀을 바싹 쫓아갔다.

“후후후, 이제 울버햄프턴과 아스톤 빌라를 잡으면 리버풀이 조준경 안에 들어온다.”

준영은 10월 31일 안필드 원정이 표시된 달력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이틀 후에 맞붙을 울버햄프턴은 왕년의 강호로서 면모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들은 현재 12경기에서 겨우 1승 1무만 기록했을 정도로 극심한 부진에 허덕이고 있었다.

거기다 아스톤 빌라 역시 2승 2무 8패로 하위권에 처진 상태.

선더랜드 경기 때처럼 준영이나 다른 주전급들이 출전하지 않아도 이 둘은 간단히 완파할 수 있어 보였다.

‘리버풀만 잡으면 1위를 탈환할 수 있어.’

그다음엔 리즈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

한때 전력 급락으로 2부 리그로 강등당했던 리즈 유나이티드.

그들은 올 시즌 다시 퍼스트 디비전에 복귀해서 선두권을 다툴 정도로 무서운 상승력을 보이고 있었다.

‘잭 찰튼에 바비 콜린스… 여기에 우리 팀을 떠났던 자일스 녀석도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군.’

이제 진짜 ‘장미 전쟁’이라 할 만한 양 팀의 더비전이 치러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준영이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을 때, 다급한 노크와 함께 차지철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표정이 안 좋은데?”

“안 좋을 수밖에! 빌어먹을, 어떻게 이런 일이 터질 수 있냐고!”

단단히 격분한 차지철은 손에 든 전문을 준영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 전문을 읽은 준영의 표정도 차지철과 비슷하게 일그러졌다.

***

오른쪽의 펠레와 함께 있는 저 선수가 쿠티뉴입니다.

펠레는 쿠티뉴의 침착함이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고 격찬하며, 문전에서의 해결 능력은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했지요.

매우 이른 나이에 프로에 데뷔한 것이나 신체적 특징을 보면 펠레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둘이 합도 잘 맞았다고 하고요.

산투스에서 457경기를 뛰며 368골을 넣어 브라질에서도 역대급 공격수로 손꼽히는데, 국가대표로서는 그다지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습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 때문에 번번이 대표팀에서 하차하고, 결국 30살이 되기 전에 은퇴를 하고 말았지요.

어쩌면 펠레의 저주 1호로 꼽히는 선수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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