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47. 안 좋은 기분
‘할 수 있어! 반드시 해낸다!’
올 시즌 허더스필드 타운으로 이적한 조윤옥은 2라운드 플리머스 아가일 FC와의 경기에 출전,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5 대 1 대승을 견인했다.
9월 루턴 타운과의 경기에서는 데뷔 골이자 결승 골을 터트리며 팬들의 기대치를 한껏 올렸다.
이후로도 공격 포인트를 적립하며 팀의 주전 공격수로 자리를 잡았다.
당연히 자신감이 솟구쳤다.
자신의 발로 조국을 월드컵으로 이끄는 광경을 수도 없이 꿈꿨다.
그렇게 꿈에서 봤던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Не можеш ићи!”
최정민을 아웃시킨 두르코비치가 거칠게 조윤옥에게 어깨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조윤옥은 슬쩍 몸을 비틀며 상대의 차지를 흘려 냈다.
중심을 잃은 두르코비치가 고꾸라지면서 조윤옥은 골키퍼와의 일대일 찬스를 잡았다.
“위, 위험해!”
“막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관중석에서 터져 나온 우려의 함성.
그러거나 말거나 조윤옥은 점점 각을 좁히는 골키퍼를 상대로 과감하게 슈팅을 날렸다.
‘오른쪽!’
쇼스키치 골키퍼가 방향을 잡았지만, 낮게 깔리며 들어온 조윤옥의 강슛은 그의 겨드랑이 사이를 통과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기뻐할 수 없었다. 쇼스키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공의 속도가 죽었으니까.
‘확실히 마무리해야 돼!’
유판순과 정순천이 달려갔지만, 그들보다 선수 친 건 유고의 스위퍼 벨리보그 바소비치.
그는 공이 골라인을 넘기 직전에 가까스로 걷어 냈다.
“아, 이런…….”
너무나 아쉬운 기회가 무산되는 바람에 슛을 했던 조윤옥이나 다른 공격수들은 필드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안타까운 건 준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끝나기엔 너무 아쉬운데…….”
한 번 정도 더 찬스가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지만, 호되게 델 뻔했던 유고 선수들은 전진하지 않고 공을 돌렸다.
이대로 경기를 종료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우우-!”
“뭐 하는 거냐. 상대는 10명이라고!”
홈팬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유고 선수들은 요지부동.
오히려 한국 선수들이 나와서 적극적으로 인터셉트를 노렸지만, 공을 빼앗는 데는 실패했다.
삐익-!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길게 울리며 한국 선수들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우두커니 서 있던 준영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민 형님이 아웃되지만 않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텐데…….’
너무도 아쉽고 분한 결과.
연방 안타까워하던 준영과 한국 선수들의 앞으로 몇몇 유고 선수들이 다가왔다.
“이 빨갱이 자식들이 뭐라는 거야? 자기네가 이겼다고 놀리는 건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진 않은데요.”
유고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을 일으켜 세워 주며 악수를 나누었다.
수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거친 플레이에 굴하지 않고 예상 이상의 저력을 발휘한 상대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쳇, 경기나 신사적으로 할 것이지…….”
“다음번엔 우리가 이길 거다!”
준영의 앞으로도 밀란 갈리치가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그는 조심스럽고 어눌한 억양으로 말을 건넸다.
“I want your uniform.”
“알았어. 다음번엔 페어플레이 좀 하라고.”
페어플레이라는 단어에 밀란은 낯빛을 붉혔다.
자기 팀 선수가 부끄러운 행동을 한 게 찔리긴 했던 모양.
그와 유니폼을 교환한 준영은 필드에서 내려왔다.
아쉬움이 쉬 가시지 않았지만, 얼른 떨쳐 내고 2차전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니까.
***
경기를 마친 한국 선수들은 베오그라드를 떠나 로마로 왔다.
이곳에서 준영과 조윤옥, 차태성은 동료들과 헤어졌다.
소속 팀 경기 일정을 위해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는 3인방과 달리 나머지 선수들은 터키 앙카라로 가는 비행기를 탈 계획이었다.
“2차전까지 약 두 달가량 시간이 있으니까, 그사이 여러 나라를 경유하며 훈련도 하고 평가전도 치를 계획이야.”
이유형 감독이 말한 평가전 상대는 터키와 이스라엘, 버마와 태국, 홍콩이었다.
준영은 그냥 영국에서 더 머물며 훈련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합숙 훈련을 한곳에서 너무 장기간 진행하면 득보다 실이 더 많으니까.
“정민 선배도 같이 가는 겁니까? 저희랑 같이 영국에 가서 치료받는 게 어떻습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 그리 심각한 부상은 아니라고.”
최정민이 장담했지만, 준영은 우려의 눈길을 쉬이 거두지 못했다.
발목에 두툼하게 붕대를 두르고 목발까지 짚고 있는데 어떻게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걱정 말라니까. 발목이 좀 돌아간 것뿐이야. 2~3주 정도 쉬면 괜찮아져.”
“생각하시는 것보다 심한 부상일 수 있어요. 터키에 가면 제대로 검사받아 보세요. 절대 무리하지 말고요.”
“알았어. 거참, 아우님 잔소리는 마누라보다 더하구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최정민에게 준영은 거듭해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기를 권유했다.
걱정스러운 그의 표정은 한국 대표팀이 탄 비행기가 떠날 때까지도 펴지지 않았다.
“형님, 정민 선배 부상이 심각한 겁니까?”
조윤옥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볼 땐 그래. 하지만 더 심각한 건 따로 있지. 바로 본인이 부상을 덮어 두는 거야.”
감독이나 동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경기에 뛰고 싶어 상태를 감추거나 애써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21세기에도 그런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이 시대에는 오죽하겠는가.
턱도 없이 정신력으로 버티라는 둥, 남자답게 참으라는 둥 떠들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동서양을 망라하고 말이다.
“거기다 조금 상태가 좋아졌다고 해서 방심해도 안 되거든. 부상이란 건 생각보다 쉽게 재발하니까.”
“너무 노인네 취급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아니지, 정민 선배 나이를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구만.”
반박하려던 차태성도 준영의 말에 수긍하고 말았다.
“주장도 조심하라고. 우리도 슬슬 30대로 기우는 나이대잖아.”
“명심하지.”
아직은 한창이다 싶지만, 선수 수명이 짧은 이 시대 축구 환경에선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스탠리 매튜스처럼 무탈하게 오래 선수 생활을 하고 싶었던 준영은 스스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
“다녀왔나, 존.”
“배려해 주신 덕에 잘 다녀왔습니다.”
무탈하게 팀에 복귀한 준영을 본 버스비 감독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한국의 에이스 선수가 경기 중에 부상당해 실려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혹시나 준영이 심하게 다친 게 아닌가 했지만, 나중에 연락을 들어 보니 다친 건 다른 선수였다.
“결과는 아쉽게 되었다지? 안타깝겠지만, 잊어버리고 리그에 신경을 써 주면 고맙겠군. 자네는 우리 팀의 주장이기도 하지 않나.”
“네, 지나간 경기는 빨리 잊어야죠.”
훈련에 매진한 준영은 10월 14일 버밍엄 시티전에 출전했다.
그 경기에서 준영은 상대에게 유효 슈팅을 하나도 내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데이비드 허드와 데니스 로가 골을 기록하며 맨유는 2 대 0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아스날 원정.
이 경기는 초반부터 공격수들의 결정적인 기회가 빗나가는 등 불운이 있었다.
여기에 전반 37분, 뉴캐슬에서 이적해 온 조지 이스트햄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말았다.
후반전에서도 불운은 계속되었다.
던컨의 중거리 슛과 토히스의 헤딩슛이 연이어 골대를 맞고 튕겨 나간 것.
「조니 자일스, 브라운의 패스를 끊어 냅니다. 그리고 전진하는 캡틴 리에게 패스. 캡틴 리, 먼 거리에서 그대로 슛-! 키퍼가 쳐 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답답한 상황에 원정 응원을 온 맨유 서포터들과 런던의 한국 교민들은 아쉬운 탄식을 내뱉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는가 싶던 후반 41분, 준영이 찬 긴 쓰루패스가 알베르토 스펜서의 앞으로 전달되었다.
아스날의 오프사이드 라인을 완전히 허물어 버린 알베르토는 시원하게 골망을 흔들었다.
“동점 골이다!”
“역시 해낼 줄 알았지!”
막판에 터진 값진 동점 골.
하지만 경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추가 시간에 알렉스가 과감한 돌파로 크로스를 올렸고, 상대 문전으로 뛰어들던 준영이 헤딩 골을 터트렸다.
“역전 골이다!”
“이겼다, 이겼어!”
극적인 역전 골로 적지에서 승리를 거둔 맨유 선수들과 팬들은 얼싸안고 기뻐했다.
이 경기로 리그 단독 1위는 물론 토트넘과 리버풀, 번리 등 우승 경쟁 팀들과 승점 포인트를 두 경기 차로 벌렸으니까.
“이대로 유나이티드의 독주가 계속될까?”
“모르지. 아직 리그 레이스는 한참 남았는걸.”
“28일 볼턴전과 다음 달 리버풀전까지 잡는다면…….”
영국 축구 팬들 사이에서 맨유의 우승 확률이 높아져 가는 가운데, 연승을 견인한 준영은 한국 대표팀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오, 이스라엘에게 이겼다고요?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내가 축하받을 게 뭐 있나. 선수들이 잘해서 그런 거지. 거기다 주장 덕에 다들 실력이 부쩍 올랐고 말이야.)
맨유가 아스날 원정을 다녀온 다음 날.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과 평가전을 치른 대한민국 대표팀은 정순천의 연속 골에 힘입어 2 대 1 승리를 거두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패한 데다 10월 18일 터키에게도 0 대 1로 석패하며 아쉬움이 많았던 터라, 이번 승리는 분위기를 반전할 만한 계기가 되었다고.
(내일은 양곤으로 떠날 거야. 28일에 버마와 갖는 평가전에는 정민이도 출전하겠다며 벼르고 있지.)
“벼르다뇨? 정민 형님이 벌써 회복이 다 된 겁니까?”
(컨디션이 온전한 건 아니지만, 훈련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모양이야.)
“그래요?”
정말 제대로 회복이 된 걸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준영은 의문과 불안을 떨칠 수 없었다.
자신이 보기에 최정민의 발목 부상은 쉽게 회복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감독님, 이미 살펴보고 있으시겠지만, 정민 형님 상태를 꼼꼼히 좀 봐 주세요. 만약에 무리하고 있는 거라면 큰일입니다.”
(안 그래도 팀 닥터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하던데……. 알았어. 상태를 보고 28일에 출전시킬지 말지 결정하도록 하지.)
“예, 꼭 부탁드립니다.”
준영은 대표팀 일정과 관련해 몇 가지 더 이야기한 후에 통화를 종료했다.
“최정민 선배가 진짜 회복이 된 거면 좋겠는데…….”
조윤옥이 일취월장했다고 하지만, 최정민은 반드시 챙겨 놓아야 할 카드였다.
아시아의 황금발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기량과 노련미를 갖췄고, 대표팀 선수들의 신뢰가 두터우니까.
‘될 수 있으면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안 좋은 기분이 들지?’
마치 그때랑 비슷했다.
1958년 2월, 자신이 준비한 전용기를 타지 못한 맨유 선수들이 뮌헨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때처럼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어.’
준영은 인맥을 동원해서 양곤으로 갈 수 있는 의사를 수소문했다.
최정민의 상태를 좀 더 확실히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판단했으므로.
***
다른 분들도 그렇지만, 저도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별로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 같긴 했습니다.
근데 이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판정들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 옛날 인종 차별을 일삼던 나치 독일도 베를린 올림픽에서 자국의 육상 선수 루즈 롱을 이긴 미국의 흑인 선수 제시 오언스의 금메달은 빼앗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