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44화 (344/400)

Round 344. 2연패, 그리고 새로운 도전

“이런 맙소사!”

“세상에, 이런 일이……!”

필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로베르트와 차지철은 돌발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세상에 동점 골을 넣었다고 폭탄을 집어 던지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준영의 상태를 살펴보는 게 최우선.

로베르트와 차지철은 황급히 필드로 달려 들어갔다.

안 그래도 양 팀 선수들과 팀 닥터, 경기장 용역들이 준영에게로 모여들었다.

“주장! 죽으면 안 돼요!”

“울지 마. 나 안 죽어.”

벌렁 나자빠졌던 준영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렉스 퍼거슨의 호들갑 때문이 아니라, 폭음으로 한쪽 귀가 멍멍했기 때문.

거기다 섬광 탓인지, 매캐한 연기 탓인지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젠장, 미친 거 아냐? 폭탄을 던지다니!’

정확하게는 폭죽 뭉치.

그래서 파편 같은 건 없었고, 섬광과 불꽃이 튀는 정도라 준영도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근데 이게 무슨 냄새지? 어디서 타는 냄새가…….’

의아해하는 준영의 머리와 유니폼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좀 전에 튄 불똥 몇 개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으악! 주장! 불! 불이요!”

놀란 알렉스는 황급히 팀 닥터의 가방에서 액체가 든 병을 꺼냈다.

“안 돼. 그건 소독용 알콜……!”

화르륵!

팀 닥터가 한발 늦었다.

연기를 솔솔 피워 올리던 불똥은 알렉스가 뿌린 알코올 세례를 맞고 본격적으로 불꽃을 피워 올리기 시작했다.

“앗, 뜨거! 물! 빨리 물!”

급한 상황에서 준영이 손으로 불꽃을 두들기고, 로베르트와 차지철이 슈트 상의를 마구 휘두르며 불을 꺼 주었다.

덕분에 큰 위기는 모면했지만, 살 껍질과 머리 일부가 살짝 그슬리고 말았다.

“야 인마, 퍼기! 너 나 죽일 셈이냐?”

“미, 미안해요. 몰랐어요. 너무 급한 나머지 그만…….”

싹싹 빌던 알렉스는 원망의 눈길을 관중석으로 돌렸다.

정작 폭탄을 던진 놈은 따로 있는데 왜 자신이 혼나야 한단 말인가.

“유나이티드 5번, 경기할 수 있겠나?”

카를로스 심판의 물음에 준영은 타 버린 유니폼을 벗으며 말했다.

“환복해야 하니 시간을 좀 더 주십쇼.”

“그리하지.”

예비 엔트리의 선수가 황급히 라커룸으로 가서 준영의 가방에서 여분의 유니폼을 가져왔다.

그사이 경기장 용역과 경찰들은 관중석을 들쑤시며 범인을 찾았다.

“개판이구만.”

“누가 아니래.”

차지철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준영은 대회 관계자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그들은 진땀을 잔뜩 쏟고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기자들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모처럼 건수를 잡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들은 남몰래 웃음을 지었다.

***

경기가 재개되는 데는 10분이 넘게 걸렸다.

심판이 추가 시간을 주었지만,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그런지 전반전은 그대로 1 대 1로 종료.

후반전에 전열을 가다듬은 양 팀은 다시 제대로 맞붙기 시작했다.

액땜(?)의 효과 때문일까.

후반전 시작하고 10분도 안 되어 맨유에 행운이 따랐다.

「짐 박스터가 주제 토히스에게 패스. 토히스, 살짝 물러서다 터닝슛! 아, 이게 들어갑니다. 들어가 버렸습니다…….」

마이다나 골키퍼가 슈팅 방향을 잡았지만, 슛이 누베르 카누의 몸에 맞고 굴절되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스코어 2 대 1.

다급해진 상황에서 페냐롤은 총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전방 압박과 중원에서의 저지, 그리고 최종 수비 라인에서 차단당하면서 기회는 번번이 무산되었다.

「아, 또 오프사이드……. 페냐롤 선수들, 너무 성급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좀 더 침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페냐롤 선수들도 침착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홈에서 털리다니! 나가 죽어라, 이 병신 새끼들아!”

“너희가 선수냐, 주급 도둑놈이지!”

“내가 해도 너희보단 잘해!”

원성과 욕설을 쏟아 내는 홈팬들의 성화는 그들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계속 시간이 흐르다 후반 41분, 맨유 문전으로 접근하던 페드로 로차가 노비 스타일스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바로 휘슬을 분 심판은 프리킥을 선언했다.

“아깝다! 조금만 더 가면 페널티킥이었는데!”

“그래도 위치가 좋아. 쿠비야가 감아 찰 수 있어!”

동점을 만들면 남은 시간 역전도 충분히 가능.

그렇게 1, 2차전 양 팀 모두 1승 1패로 끝나면 재경기를 치를 수 있다!

까앙-!

관중들의 기대는 골대가 배신하면서 완전히 어긋났다.

골대 모서리를 맞힌 쿠비야는 분통한 나머지 알아듣기도 힘들 정도로 빠르게 욕설을 쏟아 냈다.

“자, 시간 얼마 안 남았다! 무리한 플레이는 자제하고 계속 공을 확보한 상태로 진행해 가도록!”

머피 코치의 지시에 준영과 맨유 선수들은 안전하게 공을 돌리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페냐롤 공격수들이 공을 빼앗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오히려 그럴 때마다 공은 그들에게서 먼 곳으로 날아갔다.

심지어 정규 시간이 끝나고 추가 시간에 맨유에게 역습을 당했다.

코너 플래그 지점까지 공을 몰고 갔던 조지 코헨은 등을 진 상태에서 시간을 끌며 공을 지켜 냈다.

그러다 빼앗길 것 같자, 상대 선수의 발에 맞혀 코너킥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그 코너킥을 찰 일은 없었다.

심판이 거기서 경기를 종료시켰기 때문이다.

“우우우우- 우!”

“제기랄, 이런 거지 같은 결과를 볼 생각은 없었다고!”

“때려치워라, 때려치워!”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관중들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야유와 욕설을 터트리거나, 자신들끼리 말다툼을 하다 멱살을 쥐기도 했다.

이미 경기가 끝나기 전에 경기장에 증원된 경찰들은 이런 관중들을 저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연히 수상식은 굉장히 어수선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회, 내년에도 할 수 있을까요?”

알렉스의 물음에 준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높으신 분들이 쉽게 포기하진 않을 거야. 대중의 흥미를 끌 만한 대회인 건 분명하니까.”

월드컵도 그렇지만, 인터콘티넨털 컵도 과연 누가 최강이냐는 인류의 원초적인 관심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이 대회가 쉽게 폐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정의 여지는 있지.’

그와 관련한 자신의 의견에 UEFA와 CONMEBOL에서 귀 기울여 줄 것인가?

회의적이긴 했지만, 준영은 일단 언급은 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

맨유의 인터콘티넨털 컵 2연패.

이 낭보는 순식간에 대서양 너머 브리튼 섬과 유럽 본토에 전해졌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화제가 된 것은 우승보다 경기 중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와, 선수에게 폭탄을 집어 던지다니!”

“세상에, 이 사진 좀 봐.”

“아주 죽이려고 작정했구만!”

신문과 방송에 준영의 유니폼에 불이 옮겨붙은 장면이 찍힌 사진이 실렸다.

사실 그렇게 된 건 알렉스의 삽질 때문이었지만, 자극적인 보도를 좋아하는 언론에서 과정을 생략해 버렸다.

당연히 대중들에겐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시즌 중에 대서양을 오가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비시즌에 중립 지역에서 단판전을 치르는 편이 좋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미국이라거나…….」

준영은 인터뷰에서 폭탄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적지에서 애먼 일 당하기 싫어요.’라고밖에 들리지 않았다.

물론 당한 게 있다 보니 다들 그의 의견에 수긍했다.

실제로 UEFA, CONMEBOL의 인사들도 중립국 개최를 긍정적으로 보았고, 미국 축구협회는 쌍수를 들며 반겼다.

“존 Y. 리의 제안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맞아요. 미국은 스포츠 산업이 발전했지만, 축구 인기는 미진하니까.”

“미국이라는 거대 시장이 축구에 관심을 보인다면 세계 축구는 한층 발전하게 될 테죠.”

이렇게 축구계 일각에서 내년 인터콘티넨털 컵 진행과 관련해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즈음.

영국으로 돌아온 준영은 가족과 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거참… 제수씨 심장이 철렁 내려앉을 뻔했겠구만.”

한국 대표팀과 함께 맨체스터에 온 최정민의 말에 리즈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 욘락 안 해 저스면 애 터러져슬지도요.”

“하하, 제수씨 한국말이 나날이 느는군.”

“네, 준에게 마니 배우어요.”

평소에는 거의 쓸 일이 없는 한국어.

하지만 리즈는 언젠가 준영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고, 그땐 자신도 함께 가서 살리라 마음먹고 있었기에 부지런히 익혀 두고 있었다.

“어쨌거나 크게 안 다친 게 천만다행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우리 대표팀, 널 필두로 한 원맨팀이니까.”

“원맨팀이라뇨. 형님이나 다른 선수들도 얼마나 잘하는데요.”

“치켜세울 필요 없어. 현실이 그렇잖아.”

국제적인 시각에서 보면 한국 대표팀은 양 떼에 호랑이 한 마리가 지켜 주겠다며 나선 거나 마찬가지.

하지만 최정민은 이 현실을 부정하거나 자조할 마음은 없었다.

“양 떼도 사자가 지휘하면 강해진다잖아. 호랑이가 지휘해도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네가 대표팀 주장을 맡았으면 한다.”

“제가요? 하지만 지금 흥철 형님도 있고, 다른 고참 선수들도 있는데 고작 대표팀에 2경기 나온 제가 주장을 맡는 건 좀…….”

“뭐 어때. 아우님보다 잘하는 녀석이 누가 있다고? 거기다 지금 대표팀 물주가 아우님인데 누가 반대를 해.”

대한 축구협회의 재정은 빠듯했다.

국가에서 지원하거나, 부유한 축구인들이 자금을 내서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등장한 준영은 선수들의 장비를 지원하기도 하고, 지도자들의 연수나 대표팀의 영국 전지훈련을 추진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자금은 물론, 영국 내 인맥까지 동원해서.

당장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준영의 도움이 컸다.

“어찌 보면 염치없고 뻔뻔한 짓이지. 다른 사람들 눈엔 아우님한테 감투를 씌워서 더 부려 먹겠다는 걸로 보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라니까요. 제가 원해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택한 겁니다.”

그리 말한 준영은 최정민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주장이 되면 팀을 더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정식으로 주장이 되는 건 대표팀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겠습니다.”

“그래. 아무튼 고마워, 아우님.”

최정민은 준영의 손을 잡으며 거듭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선수 인생.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해서 함께 땀 흘려 주고 있는 고마운 아우를 위해 헌신하리라 마음먹었다.

***

로마 올림픽 전의 전지훈련 때도 그랬듯, 한국 대표팀은 맨체스터에 머물며 근방의 클럽들과 연습 경기를 하며 전력을 다져 나갔다.

준영은 맨유와 대표팀을 오가면서, 리그 경기에도 출전하고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지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진짜 몸이 두 개라면 좋겠는데…….”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사람들을 더 모아 봐. 나도 한 팔 거들 테니까.”

김용식 선생을 비롯해 버스비 감독과 머피 코치, 여기에 은퇴한 맨유 선수들까지 나서서 한국 대표팀의 훈련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출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10월 5일, 결전을 3일 앞두고 대한민국 대표팀은 1차전 결전의 장소인 베오그라드로 떠났다.

월드컵이 열리는 칠레로 가는 길을 뚫기 위하여.

***

실제 칠레 월드컵 아시아-유럽 플레이오프에 참가한 당시 우리나라 대표팀의 여정은 엄청나게 힘들었습니다.

직항로가 없었기 때문에 김포에서 출발, 도쿄와 타이베이, 홍콩, 테헤란, 앙카라, 이스탄불, 로마를 거쳐 비로소 베오그라드에 도착했죠.

무려 37시간의 여정이었고, 도착은 경기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세계의 벽이 높은데, 시차나 현지에 적응할 틈도 없이 경기를 해야 했지요.

그 시절과 비교하면 확실히 월드컵 가는 길이 수월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시아 예선 경기 수를 생각하면 현재 선수들의 노고 역시 무시할 수 없죠.

코시국에 홈과 원정을 바쁘게 오가며 월드컵 진출을 이뤄 낸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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