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38화 (338/400)

Round 338. 레전드 트리오

“어머, 이건…….”

“이걸 형부에게 선물로 줬다고?”

“무섭게 생겼어!”

리즈와 그녀의 동생들, 그리고 폴은 준영이 받은 선물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선물은 인간들의 시선이 탐탁지 않은지 사납게 울부짖었다.

캬아앙-!

“우와! 우와!”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던 카린은 뒷걸음질을 치다 넘어질 뻔했다.

그런 동생을 잡아 준 리즈가 준영에게 물었다.

“한국에 표범이 있었어요?”

“응, 아직 멸종되지 않은 모양이야.”

합천 군민들이 준영에게 보낸 선물.

그것은 살아 있는 표범이었다.

희고 노란 바탕에 근사한 점박이 무늬를 가진 녀석은 아직 어린 개체인 듯 덩치는 그리 크지 않았다.

“들어 보니까 동네 강아지를 잡아먹고 도망친 걸 잡았대. 원래는 약으로 팔려고 하다가 나한테 보낸 거라고 하더군.”

준영의 말에 폴 매카트니는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에선 표범을 약으로 써요?”

“그렇다고 하더라고.”

준영도 옛날 사람들이 관절염에 좋다고 고양이 고기를 먹었단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표범을 약으로 쓴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정력에 좋은 모양이네. 확실히 형부한테 필요할지도?”

“얘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낯을 붉힌 리즈가 앤지의 등짝을 때렸지만, 앤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 내가 틀린 소리 했어? 둘이 뜨밤을 보낸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아직 애가 생기지 않은 건 이상하잖아.”

“그, 그건 할아버지도 결혼 전까진 안 된다고 하셨고… 나와 준도 조심하고 있으니까…….”

쩔쩔매는 리즈를 위해 준영이 화제를 바꾸었다.

“표범은 그쪽이랑 상관없어. 듣자니 근골을 튼튼하게 하고 관절의 통증을 낫게 하며 오장을 편안하게 한다는군.”

“그럼 형부보다 할아버지에게 필요한 거네.”

알버트는 요즘 관절염 때문에 지팡이를 쓰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준영은 무릎 통증이 나아지는 데 좋은 운동 몇 가지를 알려 주기도 했다.

“표범 한 마리 잡아먹는다고 바로 좋아지는 건 아니야. 더구나 이 녀석은 멸종 위기종이라고. 보호해 주지 않으면 안 돼.”

“나도 그게 옳다고 봐요. 어니스트 시튼이던가? 그 사람이 쓴 책에서도 그랬어요. 들짐승들이 가축을 습격하는 게 인간이 숲을 파괴해서 그렇다고.”

폴 매카트니도 준영의 의견에 찬성했다.

이렇게 멋진 동물을 죽인다는 건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뭐, 형부의 뜻이 그렇다면……. 그럼 얘를 키울 거야? 아님 자연으로 돌려보내?”

“글쎄, 이미 야생성이 강하니 키우긴 힘들 것 같고, 산으로 돌려보내자니 또 잡힐 듯하니… 그냥 동물원에 보내는 게 좋을 것 같군.”

준영은 내일 표범을 창경원에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한편으로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 시대에는 아직 멸종하지 않은 토종 동물들이 있겠구나.’

여우나 늑대, 반달가슴곰 등등.

어쩌면 일본인들에게 남획된 독도의 강치도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를 일이다.

‘대통령 각하께 부탁해 봐야겠군.’

이런 일에 굳이 일부러 나설 필요는 없다.

하지만 레전드의 업적 항목에 동물 보호가 추가되어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

한국에서의 일정을 끝낸 준영은 지인들과 많은 국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영국으로 떠났다.

돌아가는 비행기에는 조윤옥과 차태성도 있었다.

준영보다 먼저 한국에 와서 대표팀 훈련에 합류했던 그들은 돌아가는 길에 동승하게 된 것.

그들 외에도 비행기에 같이 탄 이들이 또 있었다.

바로 차지철과 이희택.

이번에 소령으로 진급한 차지철은 주재무관으로 영국에 가서 준영의 경호를 맡기로 했다.

이희택의 경우엔 준영이 그 천재적인 재능을 높이 보고 직접 영국으로 데려가서 키워 보기로 했고.

“두 사람, 혹시 형제야?”

준영의 물음에 둘은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요.”

“그럴 리 없잖소.”

둘 다 숨겨진 형제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안 그래도 서자(庶子)로 태어나 그런 물음이 불쾌했던 차지철은 인상을 찡그렸다.

“왜 그런 엉뚱한 질문을 하는 거요?”

“말 놔도 된다니까 그러네. 군대도 아니고, 내가 상관도 아닌데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그거야… 아직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우물거리던 차지철은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준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랑 친해지자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건네는 건가?”

“앞으로 자주 볼 사이인데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게 좋잖아. 그리고 둘 다 표정이 시무룩해서 그랬던 거야.”

비행기에는 한영 재단에서 선발된 유학생들도 타고 있었다.

잔뜩 흥분해서 떠들고 있는 그들과 달리 차지철과 이희택의 표정은 무거웠다.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가 걱정되어 그래.”

차지철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이미 환갑이 넘으셨지. 사실 이번 임무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어머니께서 걱정 말고 넓은 세상을 보고 큰 인물이 되라고 하시더군.”

‘드라마에서 본 대로 효자네.’

월권을 일삼았던 독재 정권의 간신배라고 하지만, 효심은 누구보다 강했던 인물.

역사가 바뀌었으니 다른 유형의 악당이 될지, 그냥 착실한 군인으로 살지 알 수 없다.

다만 준영은 가족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높이 사서 도움을 주기로 했다.

“내 지인에게 어머님을 보살펴 드리라고 부탁할게.”

“정말인가? 그리만 해 준다면 절대 은혜를 잊지 않겠어.”

반색을 하는 차지철에게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대표라는 놈이 거짓말을 할까 봐? 뭐, 그래도 걱정되면 영국으로 모셔 올까? 요즘 맨체스터에도 한국 사람들이 꽤 사니까 마냥 불편하시진 않을 거야.”

준영의 말에 차지철의 표정이 금방 환하게 변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이희택도 나섰다.

“저도 부탁할 수 있을까요? 고향에 할머니가 계셔서…….”

“그래, 지난번에 들었어. 걱정 마. 내가 알아보고 손을 써 줄 테니까.”

그러자 이희택의 표정도 밝아졌다.

똑같이 안도하는 둘은 정말 형제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였다.

아니, 형제 같은 우애가 싹이 트려 하고 있었다.

“할머니 밑에서 컸다고?”

“예, 어머니께서 재가를 하셔서…….”

“거참 힘들었겠구나.”

동병상련이라고, 불우한 성장기를 겪은 두 사람은 금세 친해졌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준영은 앞으로 준비할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즌에 대한 대비, 그리고 일정이 난감한 제2회 인터콘티넨털 컵, 그리고 10월에 월드컵 플레이오프를 대비한 한국 대표팀 전지훈련 등등.

‘그것도 있지만, 당장 다음 달에 중요한 이벤트가 있구나.’

준영은 슬쩍 옆자리의 리즈에게로 눈을 돌렸다.

동생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리즈는 준영의 눈길에 무엇 때문에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부드러운 미소로 그녀의 눈길에 화답한 준영은 다음 달에 치를 일을 떠올렸다.

‘분명 월드컵이나 리그에서 우승했을 때만큼이나 내 인생에 기억이 될 만한 일이 되겠지.’

준영은 빨리 7월이 오기를 바랐다.

***

2030년, 손웅민은 UEFA 코치 라이선스를 취득하기 위해 영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하고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탁자 위의 달력을 바라보았다.

“벌써 또 한 달이 지났나? 시간 참 잘 가는군.”

그는 6월로 달력을 넘겼다.

그러자 시원한 파도가 치는 바위에 느긋하게 뒹굴고 있는 강치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동물 보호 단체에서 발행한 이 달력에는 한국 야생 동물 사진이 실려 있었다.

지난달 사진은 지리산 생태 공원의 표범이었다.

“어디 보자, 한국 경기가 6월 15일부터니까…….”

이제 보름 앞으로 다가온 브리튼-에이레 월드컵.

대한민국은 세르비아, 코스타리카, 그리고 주최국 잉글랜드와 A조에 속해 있었다.

“세르비아와의 첫 경기를 잘 치러야 하는데, 이놈들 전력이 만만치 않으니…….”

유럽 예선에서 세르비아의 성적은 6승 3무 1패로 2위.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등 만만찮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월드컵 티켓을 땄다.

“주최국인 잉글랜드를 이기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고, 코스타리카야 현재 전력으로 눌러 버린다 쳐도 세르비아가 골치란 말이지.”

이번 월드컵의 본선 진출국은 모두 48개국.

12개 조 중 1, 2위는 바로 토너먼트 직행, 3위는 성적이 좋은 8팀만 올라갈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의 전력이면 3위 와일드카드도 가능하지만, 방심했다간 조별 예선 탈락이라는 쓴맛을 보게 된다.

월드컵 우승 팀인 브라질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도 조별 예선에서 떨어진 역사가 있지 않은가.

“세르비아의 핵심 주전 선수들도 프리미어에서 톱 플레이어로 활약하고 있으니 더욱 경계할 필요가 있어.”

손웅민을 비롯해 영국에 와 있는 한국 축구인들은 부지런히 그들에 대한 정보를 모아 대표팀에 전달했다.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 시절부터 한국 축구의 난적이었으니까.

그건 월드컵뿐만 아니라, 올림픽에서도 그랬다.

“그나마 쪼개져 있기에 망정이지, 유고 연방 시절처럼 한 덩이였으면… 어휴, 상상하기도 싫군.”

보스니아,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현재 이 국가들의 톱 플레이어들만 모아도 당장 유로컵이나 월드컵 우승 후보로 꼽힐 정도의 올스타 군단이 된다.

“정말이지 옛날 어르신들은 무슨 깡으로 이놈들과 맞설 생각을 한 건지…….”

아마 지금 국내 방송사들도 한창 특집 방송을 만들고 있으리라.

다시 만난 두 나라의 축구 악연과 관련해서 말이다.

“과연 이번에는 그 악연을 시원하게 끝낼 수 있을까?”

손웅민은 기대감을 품고 내일을 준비하기로 했다.

***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총알같이 교실에서 튀어 나간 조지 베스트는 자전거를 타고 곧장 훈련장으로 향했다.

“선생님, 저 왔어요!”

훈련 준비를 하던 김용식은 부리나케 달려온 조지를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녀석, 어지간히 훈련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물론이죠! 그 콜린이라는 자식에게 진 빚을 갚아 주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조지는 올 초에 베리 FC와 맞붙은 경기를 떠올리며 눈빛을 불태웠다.

당시 콜린 벨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녀석에게 철저히 막혀 굴욕을 당했다.

그 이후로 조지는 농땡이를 안 피우고 복수혈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 근데 제가 1등이 아니네요.”

팀원 중에 제일 먼저 훈련장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와 있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런데 셋 다 못 보던 녀석들이었다.

“선생님, 저 녀석들은 누구죠?”

“암스트롱 씨가 독일에 가서 영입해 온 유소년 선수들이다. 이 군이 강력하게 추천했대. 너처럼 미리 영입해 둬야 한다고 말이다.”

“헹, 나랑 같은 급의 천재로는 안 보이는데요?”

“이 녀석, 잘난 척하긴.”

김용식에게 가볍게 쥐어 박힌 조지는 독일 소년 삼총사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반갑다. 이 몸은 미래 유나이티드의 에이스가 되실 조지 베스트다.”

“아, 네가 조지 베스트?”

제법 덩치가 좋은 소년이 아는 척하는 기색을 보였다. 이미 김용식이나 구단 사람들에게 얘기는 들었으니까.

“영어 할 줄 알아?”

“약간.”

어깨를 으쓱한 소년은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했다.

“이쪽은 뇌르틀링겐에서 온 뮐러, 여긴 나랑 바이에른에서 온 마이어 형이야.”

“뮐러와 마이어라…….”

조지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른들의 전쟁 무용담에 곧잘 들먹여지는 독일 사람이 뮐러 아니면 마이어였으니까.

흔해 빠진 이름이라 생각하니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캡틴 리 형님은 왜 이런 녀석들을 추천한 걸까 싶었다.

“너는?”

“베켄바워. 프란츠 베켄바워.”

전설과 전설의 만남.

하지만 미래를 알지 못하는 소년들은 그저 흥미 있는 시선을 교차할 뿐이었다.

***

1. 왼쪽부터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 프란츠 베켄바워입니다.

60~70년대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국가대표팀을 이끌었던 레전드 트리오입니다.

2. 표범의 경우에 1970년까지 국내 야산에서 종종 잡히곤 했습니다.

동해에서 강치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70~80년대쯤이라고 하기에 일단은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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