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37화 (337/400)

Round 337. 엉뚱한 선물

가와부치 사부로의 난입 이후, 한국 대표팀의 공세는 계속 이어졌다.

후반 36분에 최정민의 패스를 받은 조윤옥이 또 한 골을 추가했고, 종료 직전 차태성의 중거리 슛이 골망을 흔들면서 기어코 두 자릿수 스코어를 만들어 냈다.

10 대 0.

열도 침몰 운운하던 준영도 예상치 못한 점수였다.

‘한 6~7골 정도 넣을 걸 생각했지만……. 뭐, 아무려면 어때. 우리가 이겼으면 된 거지.’

경기 종료 후, 역대급 대승으로 기뻐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 스포츠 언론이나 축구인들은 충격에 넋이 나가 버린 상태였다.

“이 정도 참패는 1917년에 파울리노 알칸타라가 이끄는 필리핀 대표팀에게 2 대 15로 참패한 이후로 처음이군.”

“이런 경기력으론 스폰서가 우수수 떨어져 나갈 겁니다. 국민들도 외면할 거고…….”

“어떻게든 올림픽, 아니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만회하지 않으면 안 돼.”

“하지만 무슨 수로요? 10년, 아니 20년 후면 몰라도 지금 스쿼드로는 어림도 없어요.”

일본 축구의 위상은 심해로 침몰하다 못해 맨틀을 뚫고 들어갔다.

일본 축구인들이 충격과 고민을 안고 있는 사이, 오늘 경기 4골 1어시스트로 M.O.M으로 선정된 준영은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리 선수, 명성에 어울리는 엄청난 활약을 보여 주셨는데, 앞으로도 한국 대표로 계속 뛸 겁니까?”

“예, 물론입니다.”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에서 다시 소집한다면요?”

“그럴 일은 없다고 봅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는 제가 아니라도 좋은 선수들이 많으니까요.”

더구나 준영은 영국 축구계에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역사보다 8년 일찍 월드컵 우승컵을 안겨 줬고, 유러피언 컵도 벌써 4개나 가져왔다.

여기에 인터콘티넨털 컵에서도 우승하며 축구 종가의 위엄을 만방에 떨쳤다.

‘이만하면 영국에서 축구 하게 해 준 은혜는 충분히 갚은 거지.’

내심 이렇게 생각한 준영이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했을 때, 뱁새눈의 동양인 기자가 손을 들며 질문을 건넸다.

“로동신문의 문상철 기자올시다. 우리 공화국 인민들도 리준영 선수가 구라파에서 보여 주고 있는 쾌거에 기뻐하고 있는 걸 아십네까?”

이유형 감독과 대표팀 주장 최정민의 표정이 싹 변했다.

설마 북한 기자가 찾아왔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 때문.

그들은 준영에게 함부로 대답하지 말라는 투로 눈치를 보냈지만…….

“북녘 분들이 절 성원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리 선수를 아주 좋아합네다. 경애하는 김일성 수령 동지께서도 리준영 선수의 혁명적인 활약을 본받아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지요.”

“거참 고마운 일이네요.”

문상철은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북에서 이준영에 대해 들먹여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단지 축구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감히 수령 동무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한 적이 있기 때문.

그것도 프라하와 서울에서 두 번이나 했다!

그 때문에 당에서도 당장 그 반동의 입을 찢어야 한다는 둥, 남조선 괴뢰들이 시켜서 한 발언일 거라는 둥 시끄러웠다.

‘리준영이의 언행은 괘씸하지만 재주는 아깝지. 평양으로 데려와서 자아비판을 하게 한 후에, 조선 축구의 발전에 힘쓰도록 하는 게 좋다고 본다.’

이 문제와 관련해 김일성은 이런 의사를 보였고, 이준영에 대한 처분도 결정되었다.

‘당장 중요한 건 남조선 괴뢰들과 리준영이를 이간질시키는 거지.’

지금 문상철이 준영을 띄우는 것도 그 때문.

멸공을 부르짖는 남조선 괴뢰들이라면 필시 지금 리준영의 모습을 보고 의구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데 참 큰일이군요.”

“예? 큰일이라니요?”

“그야 저는 자본가에 외국물이 든 골수 반동이거든요. 그런 반동의 활약을 좋아하다니 될 말입니까?”

“그, 그것은…….”

“멋모르는 인민들은 그렇다 쳐도, 수령의 사상에 참으로 문제가 많군요.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런 작자는 당장 숙청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기자님 생각은 어떠신지?”

문상철은 이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고 얼굴을 울긋불긋 물들였다.

분노와 당혹감에 부들부들 떨던 그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준영은 가늘게 비웃음을 지었다.

***

최종 예선 2차전 다음 날.

한국의 신문 1면에 ‘동경대첩(東京大捷)’이라는 타이틀이 커다랗게 박혔다.

“세상에, 10 대 0이라고? 1 대 0을 잘못 찍은 거 아니야?”

“이준영 혼자 4골을 넣었대요!”

“과연 축구왕이구만!”

전국이 이 소식에 들썩였다.

그리고 오후에 대표팀이 귀국하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선수들의 개선식을 보기 위함이다.

“대한민국 만세!”

“축구왕 이준영 만세!”

국군 군악대를 필두로, 목에 화환을 건 선수들을 태운 지프차가 시내 도로를 통과했다.

태극기를 흔드는 국민들은 선수들, 특히 준영이 손을 흔들 때마다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거참, 월드컵 예선전에서 이긴 정도로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21세기에는 월드컵 8강을 하고도 카퍼레이드 같은 건 안 했다.

확실히 미래와 감성이 다르구나 싶지만, 한편으로 이해는 되었다.

35년 동안 노예로 부렸던 불구대천의 원수의 집구석에 가서 콧대를 납작하게 해 버렸는데 오죽 기쁘겠는가.

그렇게 기뻐하는 건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분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수고했네. 정말 장한 일을 해냈어.”

저녁에 대표팀이 청와대에 도착하자, 김홍일 대통령은 일일이 악수하고 노고를 치하했다.

단지 축구 경기라는 이들도 있지만, 스포츠는 총성 없는 전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김홍일의 경우는 후자였다.

“월드컵으로 가자면 아직 난관이 남아 있다고 들었네. 매우 힘든 싸움이지만,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주게.”

“예, 각하.”

김홍일은 선수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경기에 대해서, 월드컵에 대해서도 이모저모 물어보았다.

“유럽 팀과의 플레이오프에 통과해야 월드컵에 갈 수 있다고 했지? 어떤 팀과 맞붙게 될 것 같나?”

그 물음에 유럽 축구 상황에 밝은 준영이 대답했다.

“아시아는 유럽 지역 예선 10조 1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릅니다. 10조에는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아이슬란드가 있었는데 아이슬란드는 기권했지요.”

“그럼 유고 아니면 폴란드라 이거군.”

“전력상으로 유고슬라비아가 유력합니다. 지난 월드컵에서 5위였고, 6월 4일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1차전에서 승리했으니까요.”

김홍일은 난색을 보였다.

단지 유고슬라비아가 강팀이라서가 아니라 공산 국가였기 때문.

6.25 전쟁 이후, 반공을 부르짖고 있는 대한민국이 공산 국가와 경기를 하는 건 정서상으로 껄끄러운 일이었다.

더구나 플레이오프를 중립 지역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홈 앤드 어웨이로 치른다고 하지 않는가.

“각하, 아무리 반공이 중요하지만, 중요한 국제 경기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준영의 간청에 이어, 대한축구협회 회장 겸 대한체육회 부회장을 맡은 장기영 한국일보 사장도 나섰다.

“유고가 공산 국가라지만 소련과 척을 진 사이고, 서방과 교류도 잦은 중립 국가입니다. 단지 정치적인 이유로 거리를 두면 외교적으로 손해입니다.”

“이념에 매몰되면 국익에 좋지 않다는 건가……. 알았네. 경기가 성사되도록 손을 써 주지.”

김홍일의 승낙에 준영과 대표팀 선수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자칫 정치적인 이유로 기권할 수 있었던 위기 상황을 넘겼으니, 이제 유고슬라비아라는 험한 산을 넘을 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다.

***

저녁 식사가 끝난 후, 대표팀 선수들은 귀가했지만 준영은 청와대에 남았다.

김홍일 대통령이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했기 때문.

‘무슨 말이지? 설마 어제 북한 기자 때문인가?’

그 문제는 적절히 넘겼다고 생각했건만.

살짝 긴장하고 있던 준영에게 김홍일이 말을 건넸다.

“대표팀에 동행한 특무대 요원이 보고하던데, 도쿄에서 북괴 놈을 봤다며?”

“각하, 보고를 들으셨으면 아시겠지만, 그때 그 기자에게 한 발언은 북한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김일성 그 개자식이 수작을 부리는 게 싫어서…….”

“알아. 그걸 가지고 탓하려는 게 아니야. 그 일이 있었다고 하니까 걱정이 되어서 그래.”

“걱정이요? 북한 놈들이 절 납치해 갈까 봐 그러십니까?”

“이 군, 그거 농담으로 여길 일이 아니야.”

김홍일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육군 본부 정보 참모부 정보처에 김종필이라는 친구가 있어. 전쟁 전에 북괴의 남침 동향을 파악했을 정도로 유능한 인재지.”

“어, 김종필이면…….”

“아는 사람인가?”

“…아뇨. 예전에 신문에서 본 적이 있는 이름 같아서요.”

준영이 대충 둘러대자, 김홍일도 딱히 의아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김 중령이 북쪽 정보들을 모으고 있는데, 김일성이가 자네를 노리고 있다고 하더군.”

죽이려는 건 아니고 납치해 가서 이용해 먹겠다는 의도라고.

준영의 표정도 심각하게 변했다.

북한이 필요 때문에 타국의 민간인이나 영화감독과 배우를 납치했다는 얘기를 21세기에서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확실히 문제이긴 하겠습니다. 그래도 저도 개인적으로 경호팀을 두고 있으니 괜찮다고 봅니다.”

여기에 MI6 쪽으로부터도 보호를 받고 있으니, 북한 공작원 정도는 막아 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알 리 없는 김홍일 대통령은 영 안심이 안 되는 듯했다.

“자네는 우리나라의 보배야. 그 보배를 마냥 민간인들에게 맡길 수는 없지. 그래서 특별히 경호원을 붙여 줄까 해.”

김홍일은 탁자에 놓인 종을 울렸다.

그러자 곧 문이 열리며, 육군 정복 차림의 장교가 들어왔다.

그를 본 준영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와, 종합격투기 선수처럼 생겼네.’

단단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게 싸움깨나 할 것 같았다.

거기다 목소리 또한 우렁찼다.

“충! 성! 대위 차지철, 1961년 6월 12일부로 이준영 선수의 경호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엥? 차지철?’

준영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원래 역사에서 박정희의 경호실장이었던 사람이 왜 여기서 튀어나온단 말인가.

어리둥절해하는 준영에게 김홍일이 설명했다.

“차 대위는 공수특전단에 있는데, 무술 실력이 아주 뛰어나지. 일단 주재무관 신분으로 해서 영국으로 가서 자네의 경호를 맡게 될 거야.”

주재무관은 외교관의 경호를 맡는 임무도 있다.

준영이 비록 외교관이 아니지만, 국가 홍보에도 기여하고 국익에도 많이 애쓰고 있기에 사실상 민간 외교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이 같은 특별 대우에 반대하는 이들이 없었다고.

“이 군이 1934년생이지? 여기 차 대위도 동갑이니까 잘 지내보라고.”

“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각하.”

정말 엉뚱한 선물을 받았다.

준영이 차지철을 슬쩍 살펴보고 있을 때, 김홍일은 잊은 것이 있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참, 그걸 잊었군. 합천 군민들이 자네 몸보신하라고 전해 주라고 한 게 있는데.”

김홍일은 그 선물을 보여 주겠다며 준영을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무슨 선물이지? 혹시 산삼 같은 건가?’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준영은 잠시 후, 문제의 선물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니, 이건……!”

***

실제로 유고슬라비아가 공산 국가라는 이유로 1961년 월드컵 아시아-유럽 플레이오프에 우리나라가 기권할 뻔했습니다.

당시에 쿠데타가 나고 군사 정권이 반공을 국시로 하고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장기영 회장과 축구인들이 수차례 간청과 설득을 했고, 박정희가 수락하면서 플레이오프에 참여할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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