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36화 (336/400)

Round 336. 역대급 나라 망신

야구나 농구와 달리 축구는 점수가 많이 나오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렇다 보니 3점 차까지 벌어지면 거의 한쪽으로 승부가 기울어졌다고 보기 마련.

물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면 경기가 어디로, 어떻게 굴러갈지 장담할 수 없다.

문제는 경기 흐름.

일본은 아직 변변한 슈팅 하나 날리지 못했다.

한국 공격수들의 전방 압박에 속공이 막히고, 중원에서는 이준영과 김찬기에게 차단당했다.

간신히 공격수들에게 패스가 가도 한국 수비수들의 빠르고 거친 마크에 공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아… 안 된다, 안 돼.”

“조센징 놈들, 분명히 약 먹고 나온 게 틀림없어.”

“그래, 안 그러면 저런 체력이 나올 리 없지.”

실제로 한국 선수들은 ‘반일로이드’를 잔뜩 섭취(?)한 상태였다.

하나 그 약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검사로 밝혀낼 수 없었다.

“아, 테루키가 공을 잡았다!”

“슛해라, 테루키!”

전반 30분, 나가누마 겐이 돌파하다 흘린 공을 미드필더인 미야모토 테루키가 잡아챘다.

그는 곧장 과감한 중거리 슛을 날렸다.

“아앗, 저거…….”

골키퍼 함흥철은 날아가는 슛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크로스바 한참 위로 넘어가는 홈런 볼을 무슨 수로 잡아 낸단 말인가.

“쯧쯧, 여기가 고시엔이냐.”

준영의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테루키는 벌겋게 얼굴을 붉혔다.

치욕과 분노로 떨고 있는 그를 선배인 히라키 류조가 위로했다.

“힘이 너무 들어갔군. 다음번 찬스엔 더 잘 찰 수 있을 거다.”

“예…….”

찬스가 또 있긴 할까.

아무튼 다시 수비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이 다시 공격해 오고 있으니까.

함흥철이 찬 롱 패스가 우측면의 유판순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그 패스는 카마다 미즈오의 헤딩에 끊겨 히라키 류조 쪽으로 굴러갔다.

‘좋아, 여기서 역습을…….’

돌아서려던 히라키는 바위산같이 자신의 앞을 떡하니 막는 준영을 보았다.

깜짝 놀란 그는 근처에 있던 미야모토에게 패스를 보냈다.

하지만 그 패스는 전진해 왔던 센터백 박승옥에게 끊겼다.

“이런, 인터셉트 당하다니!”

“막아! 파울은 하지 말고!”

박승옥은 과감하게 슈팅을 날렸지만, 황급히 마크하는 일본 선수의 몸에 맞고 튕겨 나갔다.

공격수 우치노 마사오가 리바운드 볼을 잡으려 했지만, 김찬기와의 몸싸움에서 밀리고 말았다.

‘거참, 이렇게 쉽게 밀어낼 수 있다니.’

김찬기는 황당해하는 우치노를 보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예전에도 일본과 경기를 했지만, 이렇게까지 몸싸움에서 우위에 있진 않았다.

이게 다 준영의 조언을 듣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공을 들인 덕분이다.

팔굽혀 펴기나 플로어 딥스, 스쿼트 등 복잡한 기구 없이도 맨손으로 할 수 있는 훈련법들을 배워서 꾸준히 했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김찬기같이 준영이 알려 준 훈련을 꾸준히 한 선수들은 이전보다 근력이 많이 상승했다.

단순히 몸싸움뿐만 아니라 점프나 순간 가속도 등 모든 면에서 향상된 것.

이렇게 몸이 좋아지니, 자신감도 덩달아 높아졌다.

“근성도, 기합도 안 되는군.”

“경성에서 1차전은 2 대 1로 남조선이 간신히 이겼다며? 반년이 좀 지났다고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거야?”

“리준욘이 있으니까…….”

관중석에서 한탄이 쏟아져 나오는 사이, 한국이 다시 기회를 잡았다.

조윤옥이 최정민과 원투 패스를 받아 수비를 홀랑 제쳐 버리고는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붙었다.

과감하게 날린 슈팅은 골키퍼의 다리 사이를 통과하며 골망을 흔들었다.

“4골째다!”

“아주 박살을 내는구나!”

재일교포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러자 부아가 치밀었던 몇몇 일본인들이 그들에게 깡통과 쓰레기를 집어 던졌다.

“아악, 어떤 놈이야?”

“이 쪽바리 새끼들이……!”

당장이라도 치고받을 듯한 험악한 분위기.

그때 웬 덩치 큰 사내가 버럭 언성을 높였다.

“문화 시민답지 못하게 이 무슨 짓들이오!”

재일교포들도, 일본인들도 그를 보고 깜짝 놀라 다툼을 멈췄다.

“力道山?”

“프로레슬링 세계 챔피언 역도산이다!”

일본에서 덴노 다음으로 유명한 스포츠 스타 역도산.

제자들을 데리고 오늘 경기를 보러 왔던 그는 단숨에 소란을 정리했다.

“외신 기자들도 보고 있소! 올림픽이 코앞인데 난동을 피워서 나라에 먹칠을 할 셈인가!”

그 말에 일본인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고, 재일교포들도 키득대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에도 경기는 계속 진행 중이었고, 득점까지 나왔다.

코너킥 찬스에서 이준영이 일본 수비수들을 뿌리치고 가볍게 헤딩슛을 성공시킨 것.

“앗싸-!”

역도산의 제자 오오키 긴타로, 아니 김일이 벌떡 일어나서 쌍수를 번쩍 들었다.

그러다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경기를 지켜보는 동료와 스승을 보고 이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쯧쯧, 긴타로 자식, 점잖지 못하긴…….”

혀를 차는 역도산.

하지만 그도 입꼬리가 귀 쪽으로 향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

전반전을 5 대 0으로 마치고 기분 좋게 라커룸으로 돌아온 한국 대표팀.

이유형 감독이 후반전 작전을 설명하고 있을 때, 창문을 두들기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어, 비가 오네?”

“그것도 꽤 많이 오는걸.”

준영과 한국 선수들은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6월 도쿄에서 비가 곧잘 내린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고 준비해 뒀으니까.

다들 당황하지 않고 스터드가 높고 왁스를 발라 방수를 해 놓은 축구화로 갈아 신었다.

“자, 후반전에도 힘내자!”

“대- 한민국-!”

신나게 구호를 외치며 필드로 가볍게 달려 나가는 한국 대표팀과 달리, 심각한 표정의 일본 선수들은 시무룩하게 걸어 나왔다.

그런 그들의 눈에 제법 썰렁해진 관중석이 보였다.

쏟아지는 비 때문인지, 아니면 형편없는 자신들의 경기력 때문에 떠난 것인지.

원인을 알 겨를도 없이 후반전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가자. 어떻게든 한 골이라도 만회해야 돼!”

“はい!”

주장 나가누마 겐을 필두로 일본 선수들이 거세게 한국 선수들에게 달려들었다.

비가 많이 쏟아지고, 공이 잘 굴러가지 않을 테니 한국이 뜻대로 경기하지 못할 거라 판단했다.

확실히 패스와 슛의 질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하지만 그건 일본 쪽도 마찬가지.

거기다 빗물이 스며든 물렁한 필드는 한국보다 체력이 약한 일본 선수들에게 고역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수중용 축구화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거기서 얼른 패스를… 아, 미끄러지면 어떡하냐고!”

“진짜 한심한 놈들이군!”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일본 관중들은 별반 차이 없는 상황에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 경기장에 일본을 응원하는 함성은 들려오지 않았고, 재일교포들이 외치는 함성만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겨라, 대한민국!”

“이 사람아, 그게 아니라 그냥 ‘대- 한민국!’이라고 외치는 거야.”

“어? 그런가?”

“그래, 영국에서 이준영을 응원하는 한국 사람들은 다 그렇게 외친대.”

후반전엔 준영이 공을 잡는 일이 많아졌다.

이유형 감독이 준영을 최전방으로 올리고 대놓고 롱 볼 축구를 지시했기 때문.

일본 수비수들은 팔을 사용하거나 높은 태클을 날리며 그를 견제하려 애썼다.

‘안됐지만, 이 정도 견제는 영국에서 흔하게 겪어 봤다고.’

팔을 쓰든, 태클을 날리든.

준영은 이를 뿌리치거나 피해 내며 공격 찬스를 만들어 갔다.

질척이는 필드에서 보란 듯이 발끝으로 공을 튕겨 방향 전환을 해낸 그는 골대를 향해 그대로 슈팅을 날렸다.

구석으로 꽂혀 들어가는 슈팅을 호사카 골키퍼는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 저 상황에서 저런 개인기가 나오다니…….”

“확실히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군. 이길 수 없는 게 당연해.”

스코어가 더 벌어지자 일본 관중들은 화를 낼 기력도 상실했다.

그래서 5분 후에 준영의 헤딩 패스를 받고 최정민이 골을 터트렸을 때는 박수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가 못하는 게 아니라, 남조선이 잘하는 거지.”

“원래 일본, 축구 못하잖아.”

“거기다 리준욘은 월드 클래스니까 말이지.”

안 그래도 준영은 월드 클래스라는 걸 증명하는 플레이를 또 한 번 펼쳤다.

측면에서 조윤옥이 낮게 올려 준 크로스를 발등으로 띄워 올린 다음, 그대로 오버헤드 킥을 날린 것이다.

‘설마!’

준영이 등지지 못하게 막고 있던 미야모토 마사카츠와 미치히로 오자와는 화들짝 놀라 골대로 고개를 돌렸다.

호사카 골키퍼가 골라인을 넘어간 공을 보며 원통하게 땅을 치는 모습이 보였다.

“세상에, 바이시클 슛……!”

“저걸 실전에서 쓰는 선수가 진짜 있구나.”

“진짜 대단하네.”

그야말로 기가 막힌 테크닉에 너도나도 탄성을 터트렸다.

정말이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다수 관중들의 반응은 이랬지만, 그래도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준영 때문에(?) 인생이 망한 사람은 특히 그랬다.

“리준욘! 뒤져라, 개 같은 조센징 자식!”

갑자기 필드로 난입한 사내.

그를 본 나가누마 겐과 미야모토 마사카츠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가와부치?’

‘선배가 왜 거기서 나와?’

가와부치 사부로.

추레한 차림을 하고 있던 그는 칼을 들고 준영에게 달려갔다.

경기장 관리를 맡고 있던 경찰들이 화들짝 놀라 그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쫓아가던 경찰들은 필드의 진창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저, 저거…….”

“야, 빨리 저 자식 막아!”

그냥 두면 큰일 난다.

황급히 나선 양 팀 선수들 중 히라키 류조가 가와부치를 잡아챘다.

“그만둬, 가와부치!”

“놔라! 골도 못 막는 쓰레기 수비수 주제에!”

히라키는 몸부림치는 가와부치를 땅바닥에 메다꽂았다.

그러나 가와부치는 쓰러지기 직전, 준영을 향해 칼을 집어 던졌다.

‘헉!’

준영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피했다.

“아우님, 괜찮나?”

“예, 다친 덴 없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지.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워 든 주심은 고개를 내저었다.

짤막한 길이의 주머니칼이었지만, 얼마든지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흉기였다.

‘축구 경기를 하다 관중 난입은 종종 봤지만, 칼부림까지 벌이는 경우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군.’

주심은 가와부치를 끌고 나가는 경찰에게 칼을 넘겼다.

“크아악! 놔라, 이 머저리들아! 왜 일본인이 조센징 편을 드냐!”

“빨리 끌고 나가!”

제대로 나라 망신.

끌려 나가는 가와부치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히라키는 준영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하군. 원래 저런 놈이 아니었는데…….”

“됐어. 아무도 안 다친 게 천만다행이지.”

히라키나 일본 선수들의 속은 무척 쓰렸다.

월드컵 출전권이 달린 중요한 경기에서 대패하고 있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소동까지 벌어지다니!

이준영이나 한국 측에서 넘어간다고 해도 FIFA나 세계 언론에서 곱게 넘어가 줄지 의문이었다.

아니, 그 전에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 축구협회나 스포츠 업계의 높으신 분들이 가만히 있을지?

정말이지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답답한 일은 또 하나 있었다.

‘경기 계속하는 거야?’

‘아, 그냥 적당히 끝내 주지.’

안타깝게도 주심은 남은 시간 경기를 계속 진행해 나갔다.

이미 심해까지 가라앉은 일본 선수들 입장에선 정말 괴롭기 짝이 없었다.

***

2004년 올림픽 최종 예선으로 한중전을 할 때 중국 관중들이 우리나라 응원단에 물통과 금속 너트 같은 걸 던진 일이 있었습니다.

칼부림 난입은 현실에서, 그것도 아주 최근인 1월 22일 벌어졌지요.

브라질리그 상파울루와 팔메이라스의 U-20팀들 간의 경기에서 벌어진 일인데, 상파울루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했고 그중 한 명이 팔메이라스 선수에게 칼을 던졌습니다.

당연하지만 난동을 일으킨 관중들은 죄다 경찰에 잡혀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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