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32. 준영의 결심
준영 일행이 탄 비행기는 북극을 지나 앵커리지와 도쿄를 경유해 한국에 도착했다.
“여기가 서울인가요?”
“아니, 여긴 부산이란 항구 도시야. 한국의 남쪽 도시지.”
비행기에는 준영과 리즈 자매들뿐만 아니라, 폴 매카트니도 있었다.
6월 중순까지 밴드 활동을 잠시 쉬기에, 이때 성묘에 동참하기로 했던 것.
‘이 녀석, 진짜 앤지를 좋아하나 보군.’
그렇지 않으면 죽은 여친의 아버지를 찾아뵈겠다고 멀고 낯선 나라까지 함께 오지 않았을 터이다.
그런데 비틀즈 매니저 브라이언 앱스타인은 이 여행에 반대했다.
안 그래도 한참 밴드의 주가가 오르고 있는데, 자칫 앤지와의 밀회가 기자들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곤란해지기 때문.
이에 준영은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다고 약속하며 폴을 경호팀의 일원으로 변장시켜 동행시켰다.
로베르트를 비롯한 경호원들은 하나같이 올백에 검은 슈트, 선글라스를 꼈기에 멀리서는 누가 누군지 잘 구분할 수 없었다.
‘마치 스미스 요원 같군.’
다만 영화와 달리 1960년대의 스미스 요원들(?)은 비행기에서 내리자 다들 중절모를 썼다.
젊은 층에선 점차 모자를 벗고 다니는 게 유행이긴 했지만, 여전히 정장에는 모자가 필수 아이템이었다.
“도시가 보기보다 활기차네요.”
차를 타고 가는 와중에 폴은 신기한 듯 연방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여친 성묘 때문이라지만, 난생처음 먼 나라를 구경하는 것이기에 호기심이 안 들 수 없었다.
“여긴 전쟁 때 임시 수도였거든. 포화로 파괴되지도 않았고, 각지에서 온 피난민들이 모여 살면서 도시가 커졌지.”
“형님도 여기 산 적이 있어요?”
“아니, 얘기만 들었어. 부산은 거의 와 본 적 없지. 거기다… 철들 무렵부턴 홍콩에서 살았고.”
21세기 한국에서 왔다는 걸 말할 수 없는 노릇이라 준영은 대충 둘러댔다.
‘그건 그렇고, 확실히 활기차 보이는 건 사실이군.’
1959년 1월에 들렀을 때만 해도 사람들의 표정도 어둡고 거리도 지저분하고 우중충했다.
그때에 비하면 상당히 밝아지고 거리도 훨씬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치안도 잘 잡혀 있는 듯했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면 더 이상 쿠데타 같은 건 걱정할 필요 없겠군.’
사실 준영은 올해 5월을 주시하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시기이기 때문.
하지만 이억관에게서 그와 관련한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
주동자인 박 씨도 퇴역해서 건설부 산하 공기업에 있다고 들었고, 그의 대타로 반란을 일으킨 이들도 없었다.
‘뭐, 안 일어났으면 다행이지. 그런 불행한 일은 없는 게 좋잖아?’
그러나 불행한 일은 없어도 난감한 일은 역사가 바뀐 상황에서도 남아 있었다.
이억관에게 들었던 ‘그 문제’를 떠올린 준영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걱정한다고 해서 당장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
UN군 묘지에 도착한 준영 일행은 루이스 대령의 묘에 헌화하고 참배를 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사람이 많은 것 같아.”
“그러게. 참배객들뿐만 아니라 뭔가 일꾼들이 행사 준비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주변을 둘러본 카린과 앤지의 말에 준영은 알 만하다는 듯 설명해 주었다.
“이번 달이 6월이거든. 10여 년 전에 전쟁이 발발했던 게 이때지.”
“아, 그래서 그렇구나.”
“그리고 며칠 뒤에 현충일인데, 그때가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를 하는 망종(芒種)이라는 절기야. 예로부터 이 시기에 나라를 지킨 이들에 대한 예를 갖추곤 했지.”
준영은 학창 시절 수업에서 들었던 설명을 떠올리며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성묘를 마친 일행은 호텔로 이동했다.
식사도 하고 여독도 풀 계획이었는데, 도중에 차가 도로에서 멈춰 서고 말았다.
“왜 이리 밀렸지? 러시아워도 아닌 것 같은데.”
거기다 21세기에 비하면 차량 숫자도 적어서 정체될 이유도 없건만.
어리둥절해하던 차에 앞쪽에서 정체의 원인 제공자들이 나타났다.
“한일 회담 반대한다!”
“미국은 왜놈과의 수교를 강요하지 마라!”
반일 피켓과 현수막을 든 시위대가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이런 시위대를 도로 밖으로 밀어내느라 경찰들은 진땀을 쏟았다.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리즈가 준영에게 물었다.
“준, 혁명은 다 끝났다고 하지 않았어요?”
“저건 다른 거야. 일본이랑 수교하는 걸 반대하는 시위라고.”
현재 대한민국 새 정부가 안고 있는 외교적인 난제.
바로 한일 외교 정상화 회담이었다.
사실 한일 회담 자체는 1950년대부터 있었다.
하지만 국민적인 반일 감정도 극히 나빴고, 대통령도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여기에 일본 측 수석대표인 구보다 간이치로의 ‘일본의 통치는 좋은 면도 있었다.’라는 망언 때문에 양국 관계는 더욱 험악해졌다.
“그러다 이승만 박사가 물러나고, 오성 장군이 대통령이 되니 미국 측에서 다시 외교 정상화를 권유한 거지.”
냉전 상황에서 미국은 어떻게든 한국과 일본을 세트로 묶어 소련의 태평양 진출을 막으려 했다.
그래서 한국 정부에게 권유한 거지만, 강요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김홍일 대통령 역시 한일 회담에 반대하는 건 마찬가지.
일본이 반성이라도 하고 있으면 모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보니 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고 있었다.
그사이 현 상황이 언론에 흘러 나가 민심이 들끓게 된 것이라고.
“그거 혹시 정부에서 일부러 흘린 게 아닐까요? 한국 국민들이 이렇게 반대한다고 미국 측에 보여 주려는 의도로 말이죠.”
“뭐, 그럴지도. 근데 현실적으로 계속 반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말이지.”
현 정부 내부에서도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이 있었다.
주적이 북한인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가 계속 악화 상태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
“더구나 일본엔 한국 교민들도 꽤 많거든. 양국 외교가 안 되어 있으니 지금 이 사람들의 법적 지위도 보장이 안 되어 있어.”
그 상황에서 북한은 조총련을 내세워 재일교포들을 북송시키고 있는데 일본은 방관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가 이를 막고자 해도 현재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골치 아픈 문제네요.”
“누가 아니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야.”
지금 일본과 수교를 했다간 민심이 악화된다.
그렇다고 거절했다간 미국 측이 어떤 짓을 벌일지 모른다.
실제 냉전 시기 미국은 남미에서 군부나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서 친미 정권을 만든 적이 있으니까.
‘내가 만약 영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었다면, 미리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기름칠을 해 뒀을 텐데.’
축구 선수가 아닌 사업가로만 활동했다면 분명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을 돌이킬 수 없었다.
4월 혁명 때 그랬던 것처럼, 원래 역사보다 나은 결과를 바란다면 지금부터라도 뭔가를 시도해 볼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아직 늦진 않았어.’
한일 기본 조약이 조인된 건 1965년.
역사의 변동으로 더 앞당겨질지 아니면 미뤄질지 알 수 없지만, 아직 시간은 있었다.
준영은 그사이 축구 선수이자 사업가인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자신이 바꿔 놓은 역사가 원래보다 형편없게 진행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
성묘를 마친 다음 날.
다시 비행기를 탄 준영 일행은 약 한 시간 후 서울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이준영 선수!”
“유러피언 컵 우승 축하합니다!”
조용히 들렀던 부산과 달리, 서울에서는 많은 환영 인파가 공항에 모여 있었다.
준영이 오늘 도착한다고 언론을 통해 알려져 있었기 때문.
“어서 와, 준영이.”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이억관과 강윤의 일가 등, 준영은 마중 나온 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와, 필립이랑 강윤이는 못 본 사이에 키가 많이 컸네요.”
“키보다는 머리가 굵어야지. 이놈들 요새 성적을 보면 영……. 아, 대통령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얼른 찾아가 뵈라고.”
“예, 그럼 저녁에 다시 뵙겠습니다.”
차를 탄 준영 일행은 경무대, 아니 청와대라 이름이 바뀐 대통령 관저에 도착했다.
준영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김홍일은 그를 보자마자 얼싸안으며 반겼다.
“어서 오게. 안 그래도 공항에 마중 나가려 했는데, 밑에 있는 친구들이 체통 어쩌고 하면서 만류하지 뭔가.”
“하하하, 이해합니다. 아 참, 늦었지만 대통령 당선되신 거 축하드립니다.”
“축하 편지를 보내 줬으면서 또 뭘 말하고 그러나.”
“편지랑 직접 전하는 말이랑 다르잖습니까.”
응접실로 자리를 옮긴 그들은 한동안 덕담과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중에는 작년에 있었던 납메달 사건도 있었다.
“신문으로 그 소식을 보니 얼마나 화가 나던지! 세상에 떼먹을 게 없어서 우승 메달을 떼먹다니 말이야.”
“각하께서 손써 주신 덕분에 대표팀 선수들의 피땀이 부정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 점에 감사드립니다.”
납메달의 저주가 생길 일이 없어졌으니 앞으로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더 우승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물론 지금은 그보다 당장 코앞에 다가온 일이 있었다.
김홍일도 그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래, 한국에 장인어른 성묘만 하러 온 건 아닐 테고……. 다른 일정이 있지?”
“예, 대학과 고교 선수들 격려 및 지원을 할 예정입니다. 그다음엔 대표팀으로 갈 거고요.”
대표팀으로 간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단순히 찾아가서 친분을 나누거나 함께 훈련하는 데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에 정식 합류하는 거군.”
“예, 6월 8일 타이완과의 평가전에 데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다음 11일에 도쿄에서 열리는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에 뛸 거고요.”
대한민국 대표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 유러피언 컵 결승이 끝나자 바로 한국으로 날아온 것이다.
준영의 이 같은 결정에 김홍일은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미안한 감정을 비쳤다.
“자넨 이미 잉글랜드 대표팀으로 뽑힌 적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쪽에 합류해서 활약할 수 있을 텐데?”
“FA기술위원회에서 그리 달가워하지 않아서요. 저도 딱히 안달하고 싶단 생각은 안 들더군요.”
준영이 빠진 후, 잉글랜드 대표팀의 성적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던컨 에드워즈가 다시 승선하고 바비 무어가 합류하면서 사정이 나아졌지만, 팬들의 성에 찰 수준은 아니었던 것.
‘캡틴 리를 합류시켜라. 그가 오면 잉글랜드는 월드 챔피언의 전력을 구축할 수 있다.’
‘실험이나 육성 같은 시답잖은 소리 하지 말고 당장 존 Y. 리를 뽑아라!’
이런 팬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FA기술위원회는 준영을 선발하지 않았다.
준영도 이에 원망과 미련을 두지 않았다.
21세기에는 꿈꾸지 못했던 월드컵 우승을 맛봤으니까.
“자네 마음이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는 못난 조국을 위해 경력을 희생하는 건 아닌가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군.”
“각하, 저는 희생하는 게 아니라 도전하는 겁니다. 누가 강요한 게 아니라 제가 결정한 거라 이겁니다.”
준영에게 월드컵이란 이미 엔딩을 본 게임과 같았다.
이미 해 본 게임을 똑같이 하면 기대와 흥분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점을 타개하려면 난이도를 높여야 한다.
그래서 준영은 한국 대표팀 합류를 결정한 것이다.
‘그 난이도가 High급이 아니라 Hell급이라는 게 문제지만.’
어렵겠지만, 그만큼 극복하면 레전드로서의 성취감은 더 클 터.
거기다 막무가내로 Hell급 난이도에 도전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한국 대표팀으로 어떻게 월드컵에 갈지 로드맵도 머릿속에 그려 놓았다.
“그리고 일본을 박살 낼 찬스를 놓칠 순 없죠.”
“과연……. 그건 못 참겠다 이거구만.”
준영은 도쿄에서 치러지는 일본전에서 완승 혹은 대승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아주 역대급 악몽 수준으로 박살을 내 줄 생각이었다.
대한민국, 그리고 이준영이라는 공포가 그들의 뇌리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도록.
***
실제 당시 Hell급 난이도의 월드컵 플레이오프에 도전하셨던 국가대표 선수분들입니다.
뻔한 결과를 알고도 피하지 않고 도전했던 저분들의 피땀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한국 축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