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31화 (331/400)

Round 331. 멀고 험한 여정

후반전 벤피카의 공격은 좌우 측면의 도미시아누 카벰과 주제 아우구스투가 주도했다.

어떤 포지션이든 잘 수행하는 카벰과 능수능란한 발재간에 일대일에서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아우구스투는 쉴 새 없이 맨유 측면을 두들겨 댔다.

‘하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군.’

구트만 감독은 맨유 좌우 풀백들을 바라보았다.

엄청난 활동량에 빠르고 강력한 수비 능력의 레이 윌슨, 그리고 ‘천재’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는 던컨 에드워즈.

이 둘은 카벰과 아우구스투의 돌파를 저지하고 패스를 끊어 냈다.

‘투지가 넘칠 뿐만 아니라 굉장히 자신감을 가지고 플레이하는군. 하지만 과연 끝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구트만이 보기에 카벰의 기량은 벤피카 선수들 중에서도 최고 수준.

거기다 아우구스투는 브라질의 가린샤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뛰어나다.

분명히 한 번은 뚫고 들어갈 능력이 있었다.

「아우구스투, 아구아스에게 패스, 아구아스가 다시 리턴! 아우구스투, 수비를 제치고 들어갑니다!」

구트만의 예상대로 아우구스투가 찬스를 만들었다.

순식간에 맨유 박스로 공을 몰고 들어온 그를 준영이 막아 세웠다.

몸을 크게 흔들며 현란하게 발재간을 부린 아우구스투가 준영을 제치고 슈팅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의 페인트에 속지 않은 준영은 깔끔하게 공을 걷어 냈다.

아우구스투는 물론, 기대감을 품고 있던 구트만 역시 낯을 구겼다.

‘쳇, 하여튼 저 녀석이 문제로군.’

애써 박스로 진입한다 한들 저 장신의 수비수를 뚫기가 쉽지 않았다.

콜루나가 전반에 그를 상대로 골을 만들어 냈지만, 그 동점 골이 맨유 수비진에 균열을 만들어 내진 못했다.

지금 콜루나는 바비 찰튼과 노엘 캔트웰의 집중 마크에 쉬이 박스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구아스와 클러프 역시 몇 번의 찬스를 잡기도 했지만, 이준영을 뚫지 못했다.

‘저렇게 흔들림 없이 최후방을 지키고 있으면, 큰 힘이 날 수밖에 없겠군.’

맨유가 유러피언 컵을 3연패 할 수 있었던 건 단지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믿음직한 수호신이 있었기에 선수들도 안심하고 마음껏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공격에 좀 더 무게를 더하지 않으면…….’

하지만 기량에서 압도할 수 없으니, 수를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

구트만의 사인에 따라 미드필드에 있는 산타나와 크루즈가 번갈아 가며 공격을 지원했다.

하지만 그것으론 부족했는지, 여전히 공격은 지지부진.

뒤에서 보고 있던 수비수 제르마누가 답답했던지 전진하려 들고 있었다.

콜루나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도 패스 능력이 뛰어난 선수.

하지만 구트만은 그가 공격에 가세하는 걸 자제시켰다.

‘공격에 너무 숫자를 늘리다 보면 수비가 헐거워져.’

당연하지만 역습에 취약해지게 된다.

원래 맨유를 상대로 선수비 후역습 작전을 짰던 구트만은 상대가 자신의 작전을 역으로 이용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믿어야지. 결승까지 올라온 우리 선수들의 기량을!’

그렇게 선수들을 믿고 지켜보는 건 버스비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벤피카의 후반 공격이 꽤 매섭다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어질 순 없어. 분명히 흐름을 바꿀 상황은 온다.’

준영을 필두로 하여 수비수들이 침착하게 잘 막아 주고 있었다.

여기에 전방의 공격수들도 벤피카 미드필더나 수비수들의 가세를 견제하며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에게서 미스가 나온다면…….

「클러프가 공을 달라고 손을 들고 있지만, 빌리 맥닐이 바싹 붙어 패스가 여의치 않습니다. 후방으로 공을 돌리는 산타나, 유나이티드 선수들을 끌어내 보려 합니다만 잘 안 되는군요.」

맨유가 섣불리 수비 전열을 풀지 않자, 공을 받은 페르난도 크루즈는 다시 공격진으로 패스를 보냈다.

그가 찔러 준 패스에 콜루나는 논스톱으로 산타나에게로 공을 보냈다.

리턴 패스를 통해 바비 찰튼을 뿌리칠 생각이었는데, 도중에 짐 박스터가 쑥 끼어들어서는 공을 가로채 갔다.

“역습이다. 올라가!”

마치 수풀에 웅크리고 있다가 사냥감을 향해 달려드는 맹수처럼, 맨유 공격수들이 일제히 벤피카 진영으로 뛰어 들어갔다.

***

“전부 돌아와!”

“막아! 태클로 끊어 내라고!”

산타나가 짐 박스터에게 태클을 했지만, 이미 공은 토히스 쪽으로 건네진 뒤였다.

토히스가 슬쩍 알베르토 쪽을 바라보자, 벤피카 수비수들이 알베르토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토히스가 힐킥으로 공을 보낸 건 데니스 로.

순식간에 스피드를 올려 박스로 들어간 데니스는 제르마누의 태클을 드래그 백으로 제쳐 낸 뒤 슈팅을 날렸다.

골키퍼의 다리 사이로 빠진 공은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골! 유나이티드가 다시 앞서 나갑니다!」

역습 한 방에 무너진 균형.

신이 난 데니스와 맨유 선수들의 셀레브레이션을 본 구트만 감독은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역습을 우려하여 제르마누를 남겨 두었건만, 아무런 소용도 없이 당하고 말았으니!

‘아직 시간은 있다. 견고한 유나이티드 수비진에 균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구트만의 기대와 달리 맨유 수비진은 쉽사리 뚫리지 않았다.

콜루나가 애써 올려 준 크로스도, 쇄도하는 공격수에게 밀어 준 침투 패스도 이준영이 모두 끊어 냈다.

여기에 빌리 맥닐이 중앙에서 들어오는 공격수들을 잘 견제하고, 던컨과 레이가 좌우 측면을 거의 완벽하게 막아 냈다.

이렇게 몇 차례나 벤피카의 공격이 무산되자, 포르투갈 관중과 기자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젠장, 저놈들은 지치지도 않나? 각성제를 잔뜩 퍼마시고 나온 게 아니냐고?”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체력이 강하다고 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시간이 지나면 유나이티드 선수들도 지쳐 가겠지.

하지만 이런 기대와 달리 맨유 선수들은 딱히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추격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인지 벤피카 쪽이 더욱 피로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송곳 같은 플레이를 선보이는 선수가 있었다.

「콜루나, 바비 찰튼을 뿌리치고 전방으로 돌파! 빌리 맥닐마저 제쳐 냅니다! 아, 유나이티드, 위기……!」

준영이 황급히 콜루나의 앞을 막아섰다.

몸싸움이 만만찮다는 건 이미 전반에 경험했기에, 좀 더 자세를 낮춘 상태로 상대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오른쪽… 아니, 왼쪽이다!’

번개같이 접으며 슈팅 자세를 취했던 콜루나.

그 순간에 발을 뻗은 준영이 공을 밀어냈다.

그리고 박스 외곽에서 그 공을 잡은 노엘 캔트웰은 우측면을 달려가는 데니스 로의 앞으로 패스를 밀어 주었다.

수비수들을 달면서 공을 치고 가던 데니스는 총알같이 중앙으로 쇄도하는 알베르토에게 크로스를 보냈다.

‘여기서 추가 골을……!’

‘이게 들어가면 끝장이다!’

낮고 빠르게 들어오는 공을 두고 알베르토와 제르마누가 달려들었다.

그리고 알베르토가 다이빙 헤딩슛을 한 순간, 쭉 뻗은 제르마누의 발이 그의 가슴을 걷어찼다.

“아악-!”

알베르토가 가슴을 쥐고 나동그라진 순간, 제르마누는 물론이고 벤피카 선수들의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그들의 시선은 저승사자처럼 달려오는 심판에게 향해 있었다.

“벤피카 4번, 제르마누 루이스 데 피게이레도 퇴장.”

“이, 이런…….”

벤피카 선수들은 관용을 베풀어 줄 것을 애원했지만, 고트프리트 주심은 어림도 없다는 듯 손가락을 흔들었다.

알베르토의 상태를 살피러 달려온 준영과 맨유 선수들은 당연한 판정이라는 듯 박수를 보냈다.

“알베르토, 어때? 괜찮아?”

“으윽… 주장, 슛은?”

“구석에 제대로 박혔어. 아주 멋진 슛이었다고.”

알베르토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폈다.

골대 안에 떨어진 공을 보고 있자니, 숨통이 막히는 고통도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준영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무리하지 않는 게 좋다고.”

“뛸 거야. 우승이 목전이잖아.”

점수는 3 대 1, 주축 수비수가 퇴장당한 벤피카는 그 기세가 꺾였다.

제대로 잡은 승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좋아. 우승까지 앞으로 약 20분, 다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마!”

“Yes, Captain!”

준영의 말에 우렁차게 응답한 맨유 선수들이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들의 기운 넘치는 모습에 구트만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올해는 여기까진가…….’

동점 골이 터졌을 때만 해도 우승컵이 목전에 온 것 같았는데.

입에서 터져 나오는 아쉬움의 한숨이 쉬 그치지 않았다.

***

벤피카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어차피 골을 넣지 못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콜루나와 아우구스투의 투혼은 더 이상의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 채 경기가 끝났다.

결국 1960-61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컵은 또다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돌아갔다.

당연하지만 영국은 또 한 번 축제 분위기로 들썩였다.

“대회 4연패……. 앞으로도 이런 기록이 있을까 싶군요.”

“유럽 축구의 패권은 우리 축구 종가에게 넘어왔다고 할 수 있지요.”

“당연하지요. 최근에 혁신적인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으니까.”

“그래도 주급 상한제 폐지는 좀 성급한 게 아닌지…….”

맨유 우승이 있기 전, 영국 축구계를 한창 달군 이슈는 주급 상한제 폐지였다.

지미 힐과 바비 롭슨을 필두로 한 선수 노조의 끊임없는 요구와 이준영과 던컨 에드워즈, 바비 찰튼 등의 스타플레이어들의 적극적인 지지 표명에 FA도 결국 수락했던 것.

이렇게 주급 상한제가 폐지되자, 바로 각 팀 핵심 선수들의 임금이 올랐다.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건 풀럼의 마에스트로 조니 헤인스.

현재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장인 헤인스는 제일 먼저 주급 100파운드를 받았다.

이런저런 보너스도 덩달아 뛰다 보니, 조니 헤인스는 명성에 걸맞은 가치를 가진 선수가 되었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선수 간, 구단 간의 빈부 격차가 커질 거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부러우면 그만큼 활약하고 성적을 내면 되는 거지요. 지금은 자본주의 경쟁 사회가 아닙니까.”

알버트가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사교 모임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

회원들 중에 축구팀에 협찬, 투자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

그중에는 알버트의 인맥으로 맨유에 투자한 사람들도 있었다.

“빅 던이나 바비 찰튼도 재협상을 하고 있다고 하던데 어떻습니까?”

“구체적인 액수는 모르지만, 국대급 선수답게 우대해 줄 거라고 합니다.”

“그럼 캡틴 리는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알버트에게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알버트는 준영의 후견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아니, 최근에는 손녀사위로 낙점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캡틴 리가 보인 활약을 생각하면 조니 헤인스보다 더한 대우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잖습니까.”

“나도 그렇게 봅니다만, 존은 그 문제에 딱히 관심이 없더군요. 동료들이 충분히 대우받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하긴 딱히 주급에 연연할 필요는 없을 테니…….”

이준영은 축구뿐만 아니라, 사업과 관련해서도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었다.

식품과 광고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국내 토목과 북해 석유 개발에도 과감하게 투자해서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그렇다 보니 정재계 인사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중이었다.

“그런데 남작님, 오늘 캡틴 리는 오지 않은 겁니까?”

“아이들과 함께 한국에 갔습니다. 루이스의 성묘를 하러요.”

알버트는 한참 극동으로 가고 있을 손녀들, 그리고 준영을 떠올렸다.

아이들의 멀고 험한 여정이 부디 무사히 끝나기를.

그는 조용히, 그리고 간절히 기원했다.

***

실제 1960-61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는 유혈 사태가 있었습니다.

벤피카의 마리우 콜루나 선수가 바르셀로나 측의 가격에 코뼈가 부러졌었죠.

선제 실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공격했고, 바르셀로나 골키퍼 라마예츠가 치명적인 자책골을 허용하는 등 행운을 누리며 첫 우승을 맛봤습니다.

그리고 다음 시즌도 벤피카가 또 우승을 하는데… 그 뒤로 그 유명한 구트만의 저주가 생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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