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28화 (328/400)

Round 328. 역사의 챔피언

“Go! United Go!”

“Walk on! walk on, Reds!”

맨유와 리버풀 양 팀의 서포터들이 함성을 쏟아 내는 가운데, 10만여 관중들은 흥미진진하게 경기를 지켜보았다.

스코어는 1 대 1.

선제골은 리버풀이 터트렸다.

펠레가 밀어 준 패스를 받은 로저 헌트가 멋진 터닝슛으로 맨유 골망을 흔들었던 것.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반격을 펼친 맨유는 전반 종료 직전에 얻은 코너킥 찬스에서 빌리 맥닐이 헤딩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후반에 양 팀의 공방이 더욱 치열해졌다.

알베르토 스펜서와 펠레.

대서양을 건너와서 축구 종가를 주름잡고 있는 두 용병 공격수들은 연방 상대의 문전을 노리며 슛을 쏘았다.

알베르토의 헤딩슛이 골키퍼 선방에 막힌다 싶더니, 얼마 후에는 맨유 박스로 돌파해 들어온 펠레의 슛이 수비수의 육탄 방어에 튕겨 났다.

기막힌 테크닉으로 만든 찬스들이 멋진 선방과 투지 넘치는 수비에 막힐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아쉬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누구보다 깊은 탄식을 내뱉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펠레.

후반전에 좋은 기회를 몇 차례나 만들어 냈지만, 번번이 맨유 수비수들에게 차단당했다.

‘쳇, 오늘 경기는 존 Y. 리도 없는데!’

병 때문에 그의 출전이 무산된 게 아쉽기는 해도 분명 좋은 기회라고 여겼건만.

오늘 대신 주장 완장을 차고 나온 던컨 에드워즈가 센터백을 맡으며 철저히 펠레를 봉쇄했다.

던컨은 펠레가 이전에도 수차례 맞붙어 본 선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상대였다.

특히 오늘은 이전에 맞붙었던 경기들보다 더욱 탄탄하고 끈질긴 수비를 보여 주었다.

‘괜히 발롱도르를 수상한 게 아니군.’

1959년 발롱도르 수상자로 선정된 던컨은 1960년에도 이준영과 함께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수상자로 최종 선정된 선수는 FC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수아레스.

이 선정을 두고 말이 많았다.

소속 팀을 리그에서 우승시킨 수아레스의 활약은 흠잡을 데 없으나, 문제는 전임 감독인 에레라가 물러났을 때 도핑 파문이 타졌다는 점.

물론 선수 본인이 저지른 건 아니라고 하지만, 논란이 이는 건 피할 수 없었다.

「펠레가 들어갑니다! 펠레! 좌우로 몸을 크게 흔들며 페인팅! 하지만 이번에도 빅 던이 막아 냅니다!」

침착하게 상대의 움직임을 읽은 던컨은 펠레가 슈팅을 시도하는 순간, 공을 빼내 전방으로 전진해 올라갔다.

그리고 슬쩍 측면으로 우회하는 알베르토의 움직임에 맞춰 스루패스.

잽싸게 달려 들어갔던 알베르토는 리버풀 박스 안으로 들어와 중앙으로 컷백을 보냈다.

“어림없다!”

토히스가 패스를 받기 직전, 리버풀 수비수 론 예이츠가 태클로 공을 밀어냈다.

하지만 그 공은 하필 쇄도하던 바비 찰튼의 앞으로 굴러갔다.

「바비 찰튼, 슛! 고오오오올! 역전! 유나이티드 역전!」

주저 없이 때린 바비의 슈팅이 그대로 리버풀 골망을 흔들었다.

신이 나서 펄쩍 뛰어오르는 바비의 모습에 펠레는 분통을 터트렸다.

“제길, 또 저 녀석에게 당했어!”

바비 찰튼, 던컨 에드워즈, 그리고 이준영.

왠지 펠레는 이 3인방에게 영원히 고통받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붉은 제국의 축구 황제는 결코 체념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마음을 가다듬은 펠레는 다시 골 사냥에 나섰다.

패배를 받아들이기에 아직 남은 시간이 많았으므로.

***

영사기가 돌아가는 어두운 방 안.

자그마한 체구의 노인이 매의 눈으로 스크린에 비춰지는 경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오, 저기서 끊어 내서 순식간에 오프사이드를 무너트렸군.”

비록 수비수가 그 역습을 끊어 내긴 했지만, 중앙에서 쇄도하던 미드필더가 리바운드 볼을 잡아 소중한 역전 골을 만들어 냈다.

“클러프의 말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습은 확실히 빠르고 정교하군.”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는 노인은 SL 벤피카의 감독 벨라 구트만.

이번 시즌 팀을 유러피언 컵 결승에 올려놓은 이 헝가리 출신의 명장은 조금이라도 맨유를 더 분석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던컨 에드워즈의 기량은 듣던 대로군. 펠레의 저 번득이는 움직임과 화려한 개인기를 잘 봉쇄하고 있어.”

물론 던컨 혼자 잘한 것은 아니다.

공중볼을 잘 따내는 장신 센터백 빌리 맥닐, 심장이 터져라 뛰며 패스를 끊어 내는 노비 스타일스, 공수에 끊임없이 활력을 불어넣는 바비 찰튼 등등.

선수들이 기본적으로 피지컬이 좋고, 활동량도 무척 많았다.

그 점은 공격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맨유는 공격수도 꽤 적극적으로 수비에 임하는 편이었다.

상대 수비수가 공을 잡으면 쉽게 패스를 할 수 없도록 강하게 견제하곤 했다.

‘유나이티드에 있을 때 캡틴 리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어요. 공격수가 한 걸음 수비를 해 줘야 후방의 수비수는 열 걸음 더 빨리 대응할 수 있다고.’

올 시즌 주제 토히스와 맞트레이드로 벤피카에 온 브라이언 클러프가 이렇게 말했다.

그 점에서는 구트만 감독 역시 동감이었다.

“반대로 수비수도 공세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공격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던가.”

거기에 잘 부합하는 선수가 바로 던컨, 그리고 좌측 풀백인 레이 윌슨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적극적인 가세는 양날의 검과 같았다.

상대가 빠르게 역습을 시도할 때 뒷공간을 내주는 상황이 일어났던 것.

5월 6일에 치러진 FA컵 결승전만 해도 그랬다.

경기를 잘 지배하며 토트넘 수비진을 두들기다, 단 한 번의 빠른 역습을 허용하며 뼈아픈 결승 골을 내줬다.

엄청난 스피드로 이 결승 골을 만들어 낸 주인공은 바로 에우제비우 다 실바 페레이라.

프로 데뷔 첫 시즌에 득점왕을 차지한 이 소년 공격수의 활약에 구트만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약간의 아쉬움과 후회가 묻어 있었다.

“저 정도일 줄 알았으면 에우제비우 녀석을 임대 보내지 않는 건데…….”

벌써 토트넘에서는 에우제비우의 완전 이적을 요청하고 있었다.

심지어 토트넘 팬들은 모금 활동까지 하며 에우제비우의 이적료를 모으고 있을 정도였다.

놀라운 건 모금 활동을 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음에도 이적 협상을 해도 될 정도의 거금이 모였다는 점이다.

“뭐, 당장 나가 있는 녀석을 불러들일 순 없는 노릇이니, 기존의 선수들로 잘 대처해야겠지.”

제르마누, 마리우 콜루나, 주제 아우구스투, 아구아스 등등.

벤피카에는 걸출한 선수들이 많다.

이들은 올 시즌 유러피언 컵에서 스코틀랜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등 쟁쟁한 축구 강국의 클럽들을 물리치고 결승에 올랐다.

이들이라면 유러피언 컵 3연패를 달성한 버스비의 붉은 악마들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아시아의 거인도…….”

벨라 구트만의 머리에 가장 요주의 대상이 떠올랐다.

필리핀의 파울리노 알칸타라 이후 최고의 아시아 축구 스타로 손꼽히는 한국인 선수.

결승전에서 그가 어떤 포지션을 맡을지 알 수 없지만, 철저히 준비해 놓으리라 마음먹었다.

***

수두에서 회복한 준영은 곧바로 팀 훈련에 합류했다.

버스비 감독은 그의 합류를 반기는 한편으로 걱정했다.

“아직 결승전까지 시간이 있는데 좀 더 쉬는 게 좋지 않나?”

“저는 자일스와 달리 증상이 그리 심하진 않았습니다. 충분히 쉴 만큼 쉬었고요.”

무엇보다 무관으로 시즌을 끝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유러피언 컵 우승을 하지 못하면 다음 시즌 유럽 대항전은 참가할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트리플 이후로 내리막이 아니냐며 쑥덕이고 있는데, 빌미를 줄 순 없지.’

주변에선 이미 선수로서 충분한 업적을 쌓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준영은 아직 배가 고팠다.

더 많은 승리와 우승을 거두며 해내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더구나 이번 유러피언 컵 결승전 상대는 벤피카잖아. 그럼 당연히 못 참지.’

스페인에 레알 마드리드가 있다면 포르투갈에는 SL 벤피카가 있다.

포르투갈 축구 최다 챔피언 클럽으로 60년대 유럽 축구를 호령했던 강호.

명장 벨라 구트만의 지휘 아래 결승 고지에 오른 그들은 첫 번째 유럽 챔피언 타이틀을 노리고 있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이번 시즌과 다음 시즌 연속으로 유럽 챔피언이 된다만…….’

준영은 그 역사를 그대로 진행되게 할 생각이 깨알만큼도 없었다.

역사가 그대로 진행된 건 토트넘의 더블 우승으로 족하니까.

“아무튼 절대 무리하지 않도록 하고……. 가족들하고도 만나야지. 격리한다고 계속 클럽 하우스에서만 지내지 않았나.”

“그래야죠. 안 그래도 오늘 훈련 끝나면 집에 갈 겁니다.”

그동안 리즈나 다른 가족들이랑은 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먼발치에서 봤을 뿐.

그렇다 보니 재회가 무척 기대되었다.

***

“와, 오빠다! 큰언니, 오빠가 왔어!”

훈련을 마친 준영이 저택에 나타나자, 카린이 황급히 리즈와 가족들을 불렀다.

한걸음에 달려 나온 리즈는 반색의 미소를 지으며 준영의 품에 안겼다.

“이제 다 나은 거죠?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

겨우 며칠이지만, 몇 년은 떨어져 있었던 것 같았다.

중간에 전화도 하고 거리를 두고 얼굴도 봤지만, 그 정도론 만족할 수 없었다.

이렇게 서로 온기를 느끼고 나니, 텅 빈 마음이 푸근하게 채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자자, 인사는 그만하면 된 것 같으니 이만 들어오는 게 어떤가? 안 그래도 저녁 준비도 다 되었는데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알버트의 권유에 준영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고 다과를 나누면서 푸근한 시간을 보냈다.

“아, 혹시 소식 들었어요? 조가 다음 시즌부터는 허더스필드에서 뛴대요.”

“결국 합의가 된 모양이군. 잘됐네.”

조윤옥의 이적과 관련해서는 준영도 이미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적료나 시기 문제를 두고 올덤과 허더스필드 간에 밀고 당기는 협상이 있었다.

그러다 2월을 넘기며 협상은 지지부진해졌고, 심지어 파투 날 기미까지 있었다.

올덤이 보기엔 허더스필드에서 제시하는 조건이 탐탁지 않은 데다, 다른 팀에서도 입질이 왔기 때문.

당연히 조윤옥 입장에선 애가 탔다.

잘못하면 자신이 원치도 않는 팀으로 가게 생겼으니까.

“듣자니 올덤 측에서 결국 승낙했대요. 다른 팀에서 제시하는 조건이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나 봐요.”

“아무튼 마무리가 잘되었으니 윤옥이도 새 팀에서 잘 적응했으면 좋겠군.”

다른 팀도 아니고 허더스필드니까 잘 적응할 거라 믿었다.

켄 테일러나 레스 마시 등, 준영은 허더스필드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들과 계속 친분을 이어 가고 있었다.

거기다 맨유에서 뛰었던 레이 우드 골키퍼도 지금 그 팀에 있다.

그러니 윤옥이 뭔가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허더스필드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캡틴 리, 미스터 조가 찾아왔습니다.”

“거참,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고용인의 전갈에 준영은 바로 조윤옥을 맞아들였다.

“어서 와. 이적 협상 타결되었다며?”

“예, 형님. 근데 몸은 괜찮으십니까?”

“싹 다 나았지. 그런데 같이 온 사람은 누구냐?”

윤옥은 혼자 온 게 아니라, 일행이 있었다.

준영이 그에게 눈길을 돌렸다.

꽤 날카로운 눈빛에 강인한 인상을 한 소년이었다.

***

1960-61 시즌 유러피언 컵은 레알 마드리드의 독주가 끝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대회였습니다.

문제는 1라운드에서 숙적 레알을 해치우고 결승까지 올라온 FC 바르셀로나가 너무 오만했다는 거죠.

그들은 벤피카를 얕잡아 봤고, 벤피카 선수들 중에 그나마 자기 팀에 위협이 될 만한 선수는 마리우 콜루나밖에 없다고 여겼죠.

결국 그 오만은 호된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때 고배를 마신 바르셀로나는 약 30년 후인 1991-92 시즌에 비로소 유러피언 컵 챔피언이 됩니다.

공교롭게도 바르셀로나가 우승한 시즌은 유러피언 컵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으로 치러진 시즌이었고, 이후에는 UEFA 챔피언스리그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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