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26화 (326/400)

Round 326. 작은 표범

“이, 이런……!”

삽시간에 벌어진 일대일 상황.

토히스를 견제하던 슈넬링거는 데니스 로가 골키퍼를 제쳐 내는 광경을 보았다.

그는 황급히 텅 빈 골대로 달려갔다.

때마침 데니가 쏜 슈팅이 골대 상단 구석으로 휘어져 날아들고 있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

하지만 머리로 끊어 낼 순 없는 궤적.

그의 머리칼을 스치며 지나간 슈팅은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2 대 0이다!”

“역시 스코틀랜드의 천재 데니스 로!”

홈팬들의 함성이 화산처럼 폭발했다.

TV 중계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 보란 듯이 셀레브레이션을 펼쳐 보인 데니스는 동료들과 얼싸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잘했어, 노비!”

“이 자식, 완전 포텐 폭발이구만!”

동료들, 특히 준영의 칭찬에 노비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침투하는 데니스의 움직임을 보고 슬쩍 띄워 올려 봤는데, 이게 정말 제대로 걸릴 줄이야!

「노비 스타일스, 정말 엄청난 활약입니다. 누가 이 작은 무명 선수가 시즌 1위 토트넘의 콧대를 부러트릴 거라 생각했을까요.」

빌 니콜슨 감독은 멍한 표정으로 노비 스타일스를 바라보았다.

볼품없는 18살 애송이.

오늘 출전할 거라곤 전혀 예상조차 못했던, 전력 분석 정보망 밖에 있었던 녀석에게 된통 당할 거라곤 진짜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괜히 월드 챔피언의 간판을 따낸 게 아니라는 건가.’

뛰어난 선수들이 많고, 그들의 능력을 알아보는 감독이 있다.

거기다 든든한 재정도 덤.

부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니콜슨은 이를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게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2점이나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마저 당황하면 팀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게 될 테니까.

‘아직 전반전이야. 한 골 추격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경기를 뒤집을 가능성은 있어.’

토트넘이 괜히 현재 1위를 달리는 게 아니다.

여러 경기를 치르는 중에 많은 위기를 겪었고, 이를 훌륭하게 극복해 냈다.

그러니 오늘의 이 위기도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믿음이 깃든 눈빛을 보인 니콜슨은 연방 박수 치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

두 번째 실점 이후, 토트넘은 수차례 반격을 시도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에우제비우는 쉽사리 노비의 마크를 뿌리치지 못했고, 스미스나 추니의 슈팅도 골대를 벗어나거나 키퍼의 선방에 막혀 버렸던 것.

심지어 전반 끝날 무렵에 얻은 코너킥에서 슈넬링거가 날린 회심의 헤딩슛조차도 해리 그렉의 선방에 막혔다.

결국 전반은 2 대 0으로 종료.

토트넘은 추격과 역전을 노리기 더욱 힘들게 되었다.

“힘들다고 해서 불가능한 건 아니지. 감독님 말대로 일단 한 골만 따라잡으면 흐름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

“예, 이깁니다. 반드시 득점합니다.”

에우제비우가 서툰 영어로 대니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듣도 보도 못한 놈에게 꽁꽁 묶인 건 그야말로 치욕이었다.

반드시 후반전엔 그 수치를 되갚아 주고 싶었다.

「자, 후반전 시작됩니다. 올 시즌 챔피언을 노리는 토트넘, 과연 후반전에 유나이티드의 덜미를 잡을 수 있을 것인지?」

휘슬이 울리기 무섭게 토트넘 선수들이 맨유 진영을 향해 달려갔다.

에우제비우는 가속도를 올리며 노비의 마크를 뿌리쳤다.

그리고 중앙으로 쇄도하는 스미스를 노려 크로스, 빠르고 날카롭게 올라간 크로스는 맨유 중앙 수비를 맡고 있던 빌 포크스가 뛰어올라 끊어 냈다.

“윽……!”

“왜 그래요, 빌?”

헤딩 후 착지한 빌이 주춤하자 준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부상당한 건 아닌가 했지만, 빌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별거 아냐. 점프하면서 근육에 힘이 좀 많이 들어간 것 같아.”

“근육이라고요? 어느 쪽이죠? 혹시 허벅지 뒤쪽?”

“괜찮다니까. 봐, 전혀 문제없다고.”

빌은 증명이라도 해 주려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달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준영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사소한 부상이라고 생각했다가 커진 경우도 있으니까.

최근 부상당한 데니스 바이올렛만 해도 그랬다.

새로 공격수들이 들어온 후, 그는 주전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훈련량을 늘렸다.

그러다 발바닥 통증이 나타났는데, 금방 나을 거라 보고 대충 연고를 바르고 훈련과 경기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정밀 진단을 받은 결과 족저근막염인 게 밝혀졌다.

그 바람에 현재 치료와 재활을 받는 중이었다.

“조심해요. 빌도 내년이면 이제 서른이잖아요. 몸 관리 잘해야 선수 생활을 오래 하죠.”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얼른 수비나 하자고.”

토트넘이 다시 공격해 들어오자 빌은 황급히 대응하러 달려갔다.

쉬 걱정을 지우지 못했던 준영도 당장은 토트넘의 공격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부디 빌의 부상이 심각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

후반전 초반은 토트넘의 흐름이었다.

좌우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는 에우제비우와 추니를 활용하며 연방 맨유 수비진을 흔들어 댔다.

하지만 맨유 수비는 상당히 견고했다.

중앙으로 날아드는 크로스는 준영과 빌이 끊어 내고, 돌파 시도 역시 레이와 던컨이 저지해 냈다.

미드필드에서 노비와 짐 박스터의 활약도 좋았다.

여기다 전반에 공격에 치중했던 바비 찰튼까지 수비에 가세하니, 토트넘에게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쳇, 답답하구만.’

대니 블란치플라워가 직접 돌파 후, 슛을 시도했다.

골대를 향해 날카롭게 날아간 유효 슈팅.

하지만 미리 방향을 읽은 골키퍼 해리 그렉은 안정적으로 잡아 낸 후, 빠르게 오버래핑을 시도하는 던컨에게 공을 던졌다.

「반격에 나서는 유나이티드, 빅 던이 야생마처럼 측면으로 달려갑니다. 이에 토트넘의 론 헨리가 태클! 하지만 가볍게 뛰어넘는 빅 던!」

론 헨리에 이어 또 한 명의 수비수를 제쳐 낸 던컨이 토트넘 박스 쪽으로 공을 올려 보냈다.

다소 짧게 들어간 크로스.

공이 떨어지는 곳으로 달려간 알베르토는 몸을 던지며 공을 머리로 살짝 돌려놓았다.

절묘하게 굴절이 된 헤딩슛은 골키퍼를 지나 골대 쪽으로 뚝 떨어졌다.

‘저런 절묘한 헤딩슛을……!’

‘진짜 마법의 머리로군!’

모두가 감탄하는 그 순간, 토트넘의 스위퍼 슈넬링거가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Cutting’이라는 단어밖에 없었다.

어찌나 다급했던지,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떨어지는 공을 쳐 냈다.

“어?”

“핸드볼이잖아!”

“대놓고 손을 쓰다니!”

경기하던 선수들, 그리고 카메라를 든 기자들,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까지.

다들 슈넬링거의 반칙을 보았다.

“우-! 우우!”

“지금 럭비 하냐?”

“당장 퇴장시켜! 퇴장!”

사방에서 쏟아지는 거센 야유와 동료들의 황당한 표정에서 슈넬링거는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사색이 된 그는 휘슬을 불며 달려온 심판이 페널티킥 스폿을 가리키는 광경을 보았다.

그리고…….

“토트넘 5번 칼 하인츠 슈넬링거, 퇴장!”

다이렉트 퇴장 판정에 놀란 토트넘 선수들이 관용을 베풀 것을 애원했지만, 심판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박스 안에서 핸들링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골대로 다 들어간 공을 고의로 쳐 낸 것이다.

더구나 맨유 입장에서는 3 대 0으로 달아날 수 있는 중요한 골이 아니던가.

“어쩔 수 없었어. 그 상황에선 정말 다른 방법이…….”

힘없이 중얼거리며 필드에서 물러나는 슈넬링거.

빌 니콜슨은 이해한다는 듯 그의 어깨를 도닥여 주곤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경기도 그렇지만, 이다음 경기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칼이 정말 잘해 줬는데, 그 빈자리를 누구로 메우지?’

니콜슨이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알베르토가 페널티킥을 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앞서 토트넘의 스미스처럼 꾸물대지 않았다.

그대로 골대 왼쪽 하단을 보고 강슛을 날렸다.

「알베르토, 슛……! 아아! 빌 브라운, 선방! 최대 위기에서 탈출하는 스퍼스!」

실축한 알베르토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설마 그걸 막아 내다니!

아쉬움의 탄성이 필드뿐만 아니라 관중석에서도 진하게 맴돌았다.

“훗, 칼의 무모한 한 수가 영 헛되진 않았군.”

잠시 미소를 지었던 니콜슨 감독은 바쁘게 선수들에게 사인을 보냈다.

아직 위기는 끝나지 않았고, 머릿수까지 부족해졌으니 서둘러 수비에 손을 써야 했다.

「여전히 공은 유나이티드 쪽에서 잡고 있습니다. 바비 찰튼이 짐 박스터에게 주고 박스 안으로… 캡틴 리도 박스 안으로 들어갑니다. 과연 여기서 추가 골을 터트릴 것인지?」

토트넘 박스에서 양 팀 선수들의 경합이 치열하게 일어났다.

여기서 골이 터지면 맨유는 승리 확정, 즉 토트넘은 추격의 의지를 완전히 잃게 된다.

그렇기에 준영과 맨유 선수들은 퇴장으로 아직 상대가 어수선한 틈을 타서 득점을 만들려고 애썼다.

“막아! 절대 놓치면 안 돼!”

“토히스,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밀고 당기고 쫓는 상황에서 짐 박스터의 패스가 준영에게 들어왔다.

돌아서지 못하게 상대 수비수가 바싹 붙은 상황에서 준영은 힐킥으로 공을 안으로 슬쩍 넣었다.

그 절묘한 패스는 기습적으로 파고든 던컨의 앞에 전달되었다.

「빅 던, 찬스! 아앗, 달려온 골키퍼와 충돌… 흘러나온 공을 알베르토가 마무리를 짓습니다! 기어코 세 번째 골을 성공시키는 유나이티드!」

니콜슨 감독이 고개를 떨구는 가운데, 올드 트래퍼드에 거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알베르토가 신나게 골 셀레브레이션을 펼치는 사이, 준영은 골키퍼와 충돌했던 던컨의 상태를 살폈다.

“좀 어때? 세게 부딪친 것 같은데?”

“으윽… 난 괜찮아.”

오른쪽 가슴을 매만지던 던컨이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쿡쿡 쑤시긴 한데 부러진 건 아닌 것 같아.”

“다행이군.”

토트넘의 빌 브라운 골키퍼도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스코어보드의 시계를 보며 남은 시간을 체크한 준영은 황급히 수비로 되돌아갔다.

이미 승부의 추가 기울어졌다곤 하지만, 마지막까지 방심은 금물이니까.

***

김포 양촌면의 운동장.

양곡리와 걸포리 간의 동리 대항 축구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양곡리에는 동북고, 고려대 축구부에서 활동했던 선수들이 많았고, 걸포리에는 임국찬 등 현역 청소년 대표 선수들이 즐비했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선수들이 보여 주는 화려한 테크닉에 환호했다.

“와, 저 순간적으로 도는 기술은 이준영이가 하던 거 아냐?”

“역시 진짜 축구 선수들은 수준이 다르구먼!”

연방 감탄하는 군중들 중에 10대 중반의 소년이 있었다.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는 소년은 연신 몸을 실룩거렸다.

자신이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돌파할지, 누구에게 패스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몸의 근육도 덩달아 반응했던 것.

‘역시 축구를 해야겠어. 그것도 동네 축구가 아닌 진짜 축구를!’

선생님이 권장하는 체조보다 축구가 훨씬 더 재미있었다.

거기다 그 유명한 이준영 선수도 ‘좋아하는 걸 하라’며 답신과 함께 직접 사인한 축구공을 보내 주지 않았던가.

“앗, 조심해!”

열심히 경기를 보던 중에 갑자기 빗나간 공이 날아왔다.

소년은 자신의 앞으로 공이 떨어지자 잽싸게 물러나 오른발 터치로 가볍게 받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깔끔한 트래핑에 주변 사람들은 물론 공을 가지러 온 선수도 감탄을 내뱉었다.

“제법이네. 누구에게 축구를 배웠냐?”

걸포리의 주장인 백원기가 묻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딱히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어요. 그냥 형님들 하는 거 보고 따라 한 거예요.”

“그래?”

눈으로 보고 따라 배울 정도면 대단하지 않은가.

백원기는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너 이름이 뭐냐?”

“이희택이요. 앞으로 축구 선수가 될 겁니다.”

아시아의 표범 이희택.

장차 한국 축구의 거목이 되는 소년은 자신이 정한 길로 나가기 시작했다.

***

이회택 옹은 축구 선수가 되는 데 고생이 참 많았습니다.

가정환경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고, 축구부가 있는 한양공고로 진학하려고 모아 둔 학자금을 사기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우여곡절이 있는 상황에서 영등포공고에서 입학하는데, 이때 길을 열어 준 사람이 본문에 나온 백원기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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