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21화 (321/400)

Round 321. 이끌어 주는 사람

고즈넉한 대학 구내로 키가 큰 동양인 학생이 달려가고 있었다.

연방 손목시계를 바라보던 그는 강의실에 도착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오늘은 안 늦었군.”

“자리에 앉지 않았으니 늦은 거나 마찬가지야.”

등 뒤에서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는 노교수의 말에 동양인 학생, 준영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훈련 끝나고 오려면 시간이 빠듯해서…….”

“이미 몇 번이나 들은 소리야. 얼른 자리에 앉게. 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벤자민 교수의 꾸지람에 준영은 냉큼 빈 곳에 자리를 잡고 교재를 펼쳤다.

8월에 대입 합격 통보를 받은 준영은 리즈가 다니는 맨체스터 대학에서 경영학 강의를 듣고 있었다.

앞으로 석유 재벌 구단주가 되는 데 피와 살이 될 거라고 보고 결정한 거지만, 강의 수준은 예상보다 높아 따라잡기 쉽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벤자민 교수가 종종 강의 중에 던지는 문제들에 답할 때마다 진땀을 흘려야 했다.

“리 군, 자네는 훌륭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면서 이런 것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단 말인가?”

“안 되죠. 그러니 교수님께서 많은 지도를 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에잉, 정신 차리고 쫓아오도록 하게.”

벤자민은 까탈스럽게 굴었지만, 그렇다고 준영에 대한 배려를 해 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대학 당국에서 ‘그 학생은 우리 대학에 기부금도 많이 낸 스포츠 스타입니다.’라고 일러뒀기 때문도 있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프로 선수나 사업 활동 때문에 바쁠 만도 한데, 리포트도 빠짐없이 제출하고 있었다.

거기다 눈여겨볼 만한 점이 또 하나 있었다.

“아 참, 지난번에 마케팅과 관련해서 제출한 리포트 말인데, 미래에 대한 예측은 괜찮은데 근거가 좀…….”

“예, 보강할 만한 관련 자료들을 제출하겠습니다.”

벤자민이 볼 때 준영은 기발한 면이 있었다.

앞으로 컴퓨터가 발전하면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업무 관리를 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둥, 통신 네트워크의 발전이 금융 거래에도 이바지할 거라는 둥.

‘그런 기발한 발상 덕분에 사업에서도 성공한 거겠지.’

준영의 예측 중에 벤자민이 주목한 것은 TV와 전화 보급과 홈쇼핑 시장의 확대와 연관성이었다.

TV 광고를 통해 가정에서 상품을 주문받는 거래는 1934년부터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시작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준영은 이를 활성화하자면 아예 홈쇼핑 전문 채널을 만들어 보다 많은 시간에 많은 상품을 광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고 사업으로도 꽤 수익을 거두었다고 들었는데……. 본인이 구상하고 있는 사업 아이템인 건가?’

정말 준영이 그 홈쇼핑 채널이라는 걸 만든다면 벤자민도 한번 투자를 해 보고 싶었다.

“자,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오늘 강의를 복습하고, 지식을 활용할 방안에 대해 다음 주까지 구상해 오도록.”

‘진짜 숙제 내는 걸 엄청 좋아한단 말이지.’

21세기라면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를 긁어 낼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현재는 직접 자료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행히 저택 서재에는 꽤 다양한 책들이 많이 있어 자료 수집에 어려움은 없었다.

거기다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

“수업은 어땠어요, 후배님?”

준영이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걸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리즈가 나타났다.

“공을 굴리는 것보다 뇌를 굴리는 게 더 힘들군요, 선배님. 은퇴한 동료들이 왜 공부를 힘들어한 건지 실감할 수 있더라고.”

대학에 붙었을 때 재키나 로저 등이 왜 너도 한번 겪어 보라며 키득거렸는지 알 것 같았다.

“후훗, 벤자민 교수님 강의가 좀 힘들긴 하죠.”

“리즈도 들은 적이 있어?”

“1학년 때 들었던 강의를 맡으셨거든요.”

준영은 리즈와 손을 잡고 오붓하게 캠퍼스를 산책했다.

이러니까 마치 청춘 드라마 속에 들어온 느낌.

이런 낭만은 피곤한 심신을 회복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아 참, 지난번에 대학 축구부원들과 같이 뛰었다고 하던데 정말이에요?”

“그거? 그냥 지도해 주고 연습 경기하는 데 꼽사리 낀 거야.”

“역시 정식 경기는 못 나가는 거군요.”

“나는 일단 프로 선수니까.”

굳이 아마추어 선수들을 가르쳐 주는 수고를 하는 이유는 향후에 인맥을 든든하게 맺기 위함이었다.

다들 사회에 나오면 여러 분야에서 활약할 인재들이니까.

“그러고 보니 미스터 조도 학업 준비를 병행한다고 들었어요.”

“윤옥이 말이지? 그 녀석, 회계 쪽으로 배우려는 모양이더라고. 선수 은퇴하면 은행에 취직할 거라던가.”

그렇다고 조윤옥이 축구를 못하고 있는 건 아니다.

소속 팀인 올덤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 가고 있는 데다 로마 올림픽에서도 활약하며 주목을 받았다.

10월에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컵에도 출전, 득점왕에 오르며 대한민국을 우승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 기쁨을 잡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우승하고 금메달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얇게 도금한 납이더라고요. 최정민 선배가 엄청나게 화를 냈었죠.’

조윤옥에게 그 이야기를 들은 준영은 혀를 찼다.

납메달 사건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지만, 역사가 바뀌고도 벌어졌을 줄은 몰랐으니까.

‘다행인 건 실제 역사와 달리 진짜 금메달은 곧 돌려받았다는 거지.’

신문으로 관련 보도를 접한 김홍일 대통령이 축구협회를 뒤집어엎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후 사건을 책임지기 위해 축구협회 회장과 이사진들이 물갈이되었다.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면서 협회나 대표팀의 미래도 변한 거군.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상황을 보면 바람직하게 나가지 않을지?

거기다 자신이 도와주고 있으니, 분명 그리될 거라 믿었다.

“무슨 생각을 해요?”

“응, 잠시 한국 일을 좀……. 그보다 오늘 저녁에 같이 영화나 보러 가지 않을래?”

“좋아요. 대신 지난번에 봤던 사이코 같은 공포 영화는 사양이에요.”

“알았어. 리즈가 좋아하는 사극이나 판타지 쪽으로 고를게.”

여러 가지 생각할 일들이 많지만, 곁에 있는 사람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동반자였으니까.

***

준영이 리즈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조윤옥은 하숙집에서 고민에 잠겨 있었다.

“흠, 이걸 어떡한다…….”

지금 책상 위에는 윤옥에게 오퍼를 보낸 팀 에이전트나 스카우터들의 명함이 늘어서 있었다.

대개 2~3부 리그 팀이지만, 개중에는 블랙풀이나 볼턴 같은 1부 리그 팀 관계자들 것도 있었다.

“마음 같아선 바로 1부 리그로 가고 싶지만, 주전으로 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준영이 말했다.

어떤 팀에 있든지 일단 많이 뛰는 게 중요하다고.

그 점을 생각하면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할 수 없었다.

‘지금 내 실력으로 1부 리그의 주전 경쟁에서 이겨 내기는 힘드니까.’

거기다 새로운 팀에 적응하는 것도 문제다.

준영 덕분에 외국인 선수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었다곤 하지만,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다.

성실하게 행동해도 텃세와 차별을 견뎌 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는 윤옥도 겪어 봤고, 현재 영국에 노동자로 이주하는 한국인들도 겪고 있는 문제였다.

‘그렇다고 남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란 말이지.’

올덤 팬들은 좋은 활약을 해 주는 윤옥이 계속 있어 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윤옥 본인은 좀 더 위로 올라가고 싶었다.

거기다 올림픽 이후로 오퍼도 많이 들어오자, 올덤 측에서도 등을 떠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참에 비싸게 이적시켜 한몫 챙겨 보고 싶어 하는 듯했다.

‘기왕이면 허더스필드가 낫겠지?’

준영이 한때 몸담았던 허더스필드 타운은 현재 2부 리그 하위권 팀.

빌 섕클리 감독이 떠난 후 과거 허더스필드에서 뛰었던 에드먼드 부트가 부임해 있는데, 쓸 만한 측면 공격수 자원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준영 형님과 함께 뛰었던 선수들도 남아 있다니 적응하는 데도 큰 문제가 없을지도?’

만약 허더스필드로 간다면 뛰어난 활약을 보여 주어야 한다.

준영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진 팬들을 실망시켜서는 곤란할 테니까.

‘그래, 허더스필드로 가자.’

윤옥이 결심을 굳혔을 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열어 봤더니 주인아저씨가 편지를 들고 서 있었다.

“너한테 편지가 왔는데 전해 준다고 해 놓고 깜빡 잊고 있었지 뭐냐.”

“그래요? 고맙습니다.”

누가 보낸 편지일까 살펴보던 윤옥은 반색을 하였다.

중학교 은사이던 박병석 감독이 보낸 편지였기 때문.

지난번에 한국에 갔을 때도 뵌 적이 있었는데, 무슨 일로 갑자기 서신을 보내신 건지?

바로 봉투를 뜯어 내용을 살펴본 조윤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니, 이게 무슨……!”

***

최근 한국에서는 축구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원래도 인기 있었지만, 준영의 활약 덕분에 저변이 더 넓어진 것.

동네마다 아이들이 깡통이나 돼지 오줌통, 짚을 뭉친 공을 차는 건 매우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어른들도 조기 축구팀을 만들어 동네 대항 경기를 펼치곤 했다.

당연히 학교 축구부나 실업팀이 참가하는 축구 대회나 리그도 좀 더 체계화되었다.

이에 맞춰 나2키의 한국 법인인 승리제화에서는 전국의 학교에 축구공을 기증하고, 우수한 선수들에게 축구화와 유니폼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원받는 유망주 중 윤옥이 나온 동북 중학교 출신의 김기복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윤옥이 자네 후배로구만.”

“예. 근데 이 녀석, 사고를 쳐서 강문 중학교로 전학을 갔었죠.”

자신을 찾아온 윤옥에게서 이야기를 듣던 김용식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고? 대체 무슨 사고를 친 건가? 혹시 패싸움이라도 했나? 아니면 애들한테 금품을 빼앗았어?”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전국 대회 우승을 했는데요…….”

윤옥이 설명하는 사건의 정황은 이랬다.

우승했으니, 김기복과 선수들은 학교에서 불고기 잔치를 열어 줄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러나 교장은 무덤덤하게 수고했다는 말만 하고 끝냈다.

이에 동북중 축구부원들은 근처 고깃집에 가서 우승기를 담보로 맡기곤 불고기를 실컷 먹었다고.

“고놈들 참…….”

“걔들은 그게 반성문 정도로 끝날 줄 알았답니다. 근데 학교에서는 그리 안 보고 죄다 강문중으로 쫓아내 버렸죠.”

김기복은 강문중에 가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이후 중학교 은사인 박병석 감독을 따라 동북고에 진학했다.

“그러다 지난 10월에 열린 아시안컵에서 제가 뛰는 걸 보고, 자기도 해외에 가서 선진 축구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대요.”

이에 박병석 감독에게 혹시 영국으로 축구 유학 갈 방법이 없는지 문의했다고 한다.

“박병석이라……. 내가 알기로 그 친구는 한국의 여느 지도자들과 달리 기본기와 기술을 무척 중시하지. 거기다 선수들을 무척 아끼는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하고.”

“예, 그래서 제 의사를 먼저 알고 싶어 하셨지요.”

이 시기 한국에서는 감독이나 선배 선수들이 제자나 후배들을 보살피며 가르치곤 했다.

그렇기에 박병석 감독도 혹시 윤옥이 후배를 이끌어 줄 수 있는지 문의했던 것.

“그래, 어쩔 건가? 거절할 건가?”

“아뇨. 그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대뜸 찾아왔을 때 준영 형님도 이렇게 당황하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그때 이후 약 2년이 지났다.

그사이 훌쩍 청년이 된 윤옥은 최정민의 뒤를 이을 대표팀의 차세대 공격수로 기대를 받고 있었다.

“준영 형님이 절 이끌어 준 만큼, 저도 이제 후배들을 이끌어 줘야죠.”

“쉽지는 않을 텐데…….”

“뭐, 고작 한 명인걸요.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보살피면 되겠죠.”

김용식은 어려운 결정을 내린 윤옥의 어깨를 도닥였다.

그리고 자신도 힘닿는 데까지 어린 후학들을 도와주리라 다짐했다.

***

실제로 60년대에 앨런 고울링이라는 선수가 맨체스터 대학을 다니면서 맨유에서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에 나온 맨시티의 뱅상 콩파니 역시 선수 생활 말년에 맨체스터 대학 산하의 비즈니스 스쿨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요. 콩파니는 선수는 운동뿐만 아니라 공부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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