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18화 (318/400)

Round 318. 마지막까지

‘우와, 엄청나군.’

알베르토는 혀를 내둘렀다.

자신도 헤딩슛을 제법 하는 편이지만, 공과 선수를 한꺼번에 밀어 넣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준영은 해냈다.

신화 속의 거인 같은 저 엄청난 체구가 정말 폼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훈련 때도 굉장했지만, 실전에서 보는 느낌은 확실히 다르군. 근데 이거 득점 맞나? 파울 아닌가?’

알베르토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심판은 골로 인정했다.

다소 거칠긴 해도 정당한 경합이라고 본 것.

맨유 팬들은 환호했고, 콥스는 야유를 퍼부었다.

“방금 그건 파울이라고!”

“올드 트래퍼드가 언제부터 럭비장이었냐!”

섕클리 감독도 인상을 구겼다.

저 무지막지한 골은 준영이 허더스필드에 있을 때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녀석이 공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어야지!’

준영의 공중전 능력을 잘 아는 팀들은 두세 명을 전담 마크로 붙일 정도로 대비를 했다.

완전히 저지하진 못하더라도, 헤딩 타이밍을 빼앗기만 해도 성공이기 때문.

그러나 좀 전에 리버풀 선수들은 완전히 준영을 놓쳐 버렸다.

사전에 대비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펠레가 선제골을 넣은 지 얼마 안 되어 들뜬 선수들이 잠시 집중력을 잃은 듯했다.

“괜찮냐? 안 다쳤어?”

간단하게 골 세리머니를 펼쳐 보인 준영은 토히스와 예이츠의 상태를 살폈다.

“No worries.”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한 토히스는 씩 웃음을 지었다.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던 예이츠도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캡틴 리의 파워 넘치는 동점 골로 스코어는 1 대 1. 경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양 팀의 플레이는 더욱 불이 붙고 있습니다.」

중계 캐스터의 말대로 경기는 보다 화끈하게 전개되었다.

리버풀은 다시 리드를 잡기 위해, 맨유는 역전을 시키기 위해 공격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로저, 좀 더 과감하게 파고들어 가!”

“패스, 이쪽으로 패스!”

“측면으로 들어온다. 쫓아가서 막아!”

쉴 새 없이 소리를 치며 부지런히 뛰고, 패스와 슈팅을 주고받고.

아깝고 아찔한 상황들이 연거푸 벌어지는 가운데, 관중들도 연방 이마와 손에 고인 땀을 훔쳤다.

“앗, 벌써 시간이 이렇게…….”

“영화도 그렇지만, 재미있는 건 왜 이리 휙휙 빨리 지나가는 걸까.”

“전반전이 한 90분이면 좋을 텐데.”

“에이, 그건 아니지.”

어느새 전반 40분대.

끝나기 5분 전, 집중력이 떨어지는 그 시점에 펠레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리킥 득점을 한 것을 제외하면 주로 2선에서 패스 공급을 맡았던 그가 직접 공을 몰고 맨유 골대 앞으로 밀고 들어왔다.

「펠레, 좌우로 크게 몸을 흔들며 페인트. 하지만 던컨이 쉽사리 속지 않고… 아, 제치고 들어가나요?」

던컨은 깜짝 놀랐다.

완전히 돌파 루트를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펠레가 순식간에 방향을 전환해서 빠져나가 버린 것.

‘이 녀석이……!’

‘이번엔 내가 이겼다!’

미소를 지은 펠레가 곧장 슈팅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완전히 뿌리쳤다고 생각했던 던컨이 뒤쪽에서 절묘하게 공을 건드렸고, 빗맞은 펠레의 슛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위기를 모면한 유나이티드! 맥닐이 마중 나온 바비 찰튼에게 패스. 찰튼, 바로 논스톱으로 알베르토에게 찔러 줍니다.」

간결한 터치에 순식간에 공은 중앙선을 넘어갔다.

잽싸게 리버풀 진영으로 공을 몰고 갔던 알베르토는 과감하게 슈팅을 시도했다.

‘위험해!’

뻐엉-!

리버풀 수비수들이 몸을 날렸지만, 빨랫줄처럼 좍 뻗어 간 슈팅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날아갔다.

슈팅 방향을 읽은 버트 슬레이터 골키퍼가 몸을 날린 순간, 론 예이츠의 마크를 뿌리친 토히스가 발을 가져다 댔다.

그의 발끝에 맞고 방향이 꺾인 슈팅은 골망을 시원하게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화산처럼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골! 유나이티드, 전반 막판에 경기를 뒤집어 놓습니다!」

시원하게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알베르토와 토히스에게 맨유 팬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역전했다. 이길 수 있다!

다들 반색을 하며 낙관하기 시작했지만, 준영은 냉정하게 전열을 정비했다.

“각자 위치로! 아직 전반전도 안 끝났어!”

방심은 금물이다.

지난 시즌에서도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리드하고 있던 경기를 PK까지 내주며 승리를 놓쳐 버렸으니까.

그때 자신의 실수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준영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

토히스의 역전 골로 전반을 2 대 1로 마친 맨유는 후반에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 점은 리버풀 역시 마찬가지.

섕클리 감독은 펠레를 최전방으로 전진시키고 포메이션을 변경하는 등 승부수를 던졌다.

‘4-1-2-3인가.’

준영은 리버풀의 전술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허더스필드 시절에 자신이 제안한 4백의 4-4-2를 섕클리가 현 시대에 맞춰 개량한 포메이션이었으므로.

‘그게 벌써 3년 전인가. 왜 이리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는 걸까.’

아마도 그사이 정말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지금은 섕클리의 저 플랜 B에 잘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다들 잘 들어. 저 녀석들, 후반전에 훨씬 많이 뛰고 조직적으로 나올 거다. 우리가 공격할 때 저쪽에서는 최소 3명 이상 붙을 테니 가까이 있는 동료를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해. 알겠나?”

“Yes, Captain!”

준영의 지시에 다들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렇게 미리 일러둔 덕분에 리버풀의 총공세에도 맨유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았다.

준영을 비롯해 현재 리버풀이 사용하는 포메이션을 이미 실전에서 경험해 본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

다만 좀 더 조직적으로 변한 상대의 수비에 고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알베르토와 토히스.

공을 잡기만 하면 주변에서 리버풀 선수 3명이 달려드니, 볼을 간수하거나 돌파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런 방식의 수비는 그들에게 낯설다 보니 애먹을 수밖에.

‘진짜 그물망 같군.’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밀집 수비와는 또 다르군.’

그나마 준영이 지시한 대로 바비 찰튼이나 데니스 로 등 동료들이 접근해서 공격을 풀어가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맨유의 공격이 주춤하는 사이, 리버풀은 펠레를 필두로 부지런히 찬스를 만들었다.

펠레가 과감한 드리블 돌파로 수비를 끌고 가면 로저 헌트가 반대편 공간으로 들어가고, 이안 세인트 존이 그 뒤를 든든히 받쳤다.

「펠레, 슛하느냐? 한 번 더 치고 들어가면서 힐킥으로 내주고… 로저 헌트, 슛! 그러나 해리 그렉이 잡아챕니다.」

리버풀 공격수들은 마치 숲속을 누비는 다람쥐같이 맨유 박스로 잘 파고들었다.

하지만 마무리에서 아쉬움이 있었다.

골대에서 빗나가 버리거나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거나.

좀 더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려다 준영이나 다른 맨유 수비수들에게 차단되기도 했다.

그런 아쉬운 상황이 펼쳐질 때마다 콥스는 애가 탈 지경이었다.

“젠장,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기다려 봐. 펠레가 다시 한번 골을 넣어 줄 테니!”

“캘러헌 이 자식아, 끌지 말고 펠레에게 패스하라고!”

후반전 시간은 순식간에 절반 넘게 흘러갔다.

그러던 후반 26분.

던컨을 따돌린 펠레가 페널티 박스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St. 존이 건넨 패스가 그의 발 앞으로 전달되었다.

‘나이스 패스!’

바싹 긴장한 골키퍼 해리 그렉을 보며 펠레가 슈팅을 날리려던 그 순간, 준영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래, 막으러 올 줄 알았다고.’

입꼬리를 말아 올린 펠레는 슬쩍 헛다리를 짚는 척하다 준영의 마크를 뿌리쳤다.

‘훗, 태클은 못하는군.’

지난 시즌 페널티킥을 내주고 퇴장당한 상황이 떠올랐던 모양.

준영을 제치는 데 완전히 성공했다고 확신한 펠레는 이번에는 진짜 슛을 날렸다.

그러나 번개같이 수비에 가세한 바비 찰튼이 어깨로 슬쩍 떠미는 바람에 슈팅 자세가 흐트러지고 말았다.

‘이런 젠장!’

공이 골대 옆 그물을 때리자, 펠레는 분통을 터트렸다.

“치사하게 일대일 승부에 끼어들어 초를 치다니!”

“축구는 11명이 하는 거라고.”

주변에서 가세하거나 훼방을 놓는 것도 염두에 두고 플레이하는 것도 능력.

바비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펠레도 더 이상 반박을 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또다시 아쉬운 찬스를 놓친 리버풀. 해리 그렉의 킥으로 다시 맨유가 공격을 시작합니다.」

최전방의 토히스가 헤딩으로 공을 데니스 로에게 돌려놓았다.

측면으로 파고들며 돌파나 크로스를 노리던 데니스.

하지만 리버풀 수비수들의 마크가 너무 심했다.

이대로 가다간 아무것도 못하고 공을 빼앗기거나 구석으로 몰릴 판이다.

‘그냥 상대에게 맞춰 스로잉이나 코너킥을 노려 볼까?’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반가운 외침이 들려왔다.

“데니, 이쪽으로 패스해!”

때마침 공격 가담을 위해 올라온 던컨.

데니스는 망설임 없이 수비수 다리 사이로 공을 빼서 그에게 패스를 보냈다.

그리고 던컨은 골대를 보고 곧바로 슈팅 자세를 취했다.

‘거기서 찬다고? 30미터도 넘는데?’

‘아냐. 빅 던이라면……!’

리버풀 선수들이 황급히 마크하러 오기도 전에 던컨의 중거리 슛이 터졌다.

주춤하던 버트 슬레이터 골키퍼는 공이 날아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빠르군. 하지만 이건 골대를 벗어날…….’

그의 눈이 한순간 휘둥그레졌다.

거짓말같이 궤적이 휘어진 슛은 왼쪽 포스트를 맞히고 그대로 골대 안으로 굴러 들어가 버렸다!

“우아아! 빅 던의 추가 골!”

“It’s crazy!”

맨유 팬들이 터트린 함성이 맨체스터 전역에서 터져 나왔다.

현장은 물론 TV로 보던 사람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슛 자체도 엄청난 데다,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골이었으니까.

“하, 이 상황에서 저런 골을 때려 넣다니……. 던컨 녀석, 정말 천재로구만.”

섕클리 감독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시즌 리그 우승도 했고, 뛰어난 선수들도 영입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유나이티드를 눌러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여전히 버스비의 붉은 악마들은 만만치 않았다.

‘세계 정상까지 올라간 녀석들의 저력이 만만치 않군. 더 준비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섕클리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주저앉지는 않았다.

2점 차가 된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추격을 계속한 리버풀은 후반 38분 로저 헌트가 밀어 준 패스를 받은 펠레가 만회 골을 성공시켰다.

이후에도 총공세를 펼쳤지만, 전열을 정비한 맨유는 더 이상 기회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반전은 없었고, 경기는 3 대 2 맨유의 승리로 끝났다.

“멋진 경기였어. 다음에 또 보자.”

“오냐. 다음번 안필드에서 이자까지 쳐서 화끈하게 갚아 주지!”

펠레를 비롯해 리버풀 선수들과 악수를 나눈 준영은 섕클리 감독에게도 다가가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독님.”

“오냐. 사흘 후에 유러피언 컵 경기가 있지? 그 경기도 꼭 이겨라. 우리도 16일 날 랭스를 꺾을 테니까.”

섕클리는 패배의 아쉬움을 추스르며 다음을 기약했다.

앞으로 유나이티드와 맞붙을 기회는 더 남아 있다.

리그에서도, FA컵에서도, 그리고 유러피언 컵까지.

“방심하지 마라, 존. 마지막에 이기는 게 진짜 이기는 거야.”

“명심하지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을 리버풀의 위대한 아버지 빌 섕클리.

준영은 그와 굳게 악수를 나누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

빌 섕클리는 ‘축구가 삶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축구에 진심이었던 사람이죠.

항상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기를 바랐으며, 항상 모든 선수들을 공평하게 대하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패배나 실패에 굴하지 않고 뚝심 있게 팀을 이끌어 가면서 리버풀을 정상에 올려놓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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