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15. 기대와 대비
인터콘티넨털 컵에서 우승을 거둔 후, 맨유 선수들은 다시 리그 경기에 집중했다.
5라운드 웨스트햄 원정에서 2 대 1 승리를 따냈고, 6라운드 레스터 시티전에서 3 대 0의 완승을 거뒀다.
이 기간에 오노 요코가 퍼트린 루머로 시끄러웠지만, 준영은 전혀 동요 없이 안정된 수비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9월 14일 열린 7라운드 경기.
5라운드에서 맞붙었던 웨스트햄을 올드 트래퍼드로 불러들였다.
“Go! Go United!”
“승리는 우리 것이다!”
맨유 서포터들은 몸에 걸친 붉은 레플리카에 어울리게 뜨거운 응원을 펼쳤다.
잔뜩 고무된 몇몇은 아예 웃통을 벗고, 빨갛게 칠한 몸을 드러내며 북을 두드리고 깃발을 흔들어 댔다.
이런 팬들의 열의에 보답하듯, 선수들도 화끈한 화력을 선보였다.
전반 19분, 데니스 바이올렛이 선제골로 기선 제압하더니, 20분 후 문전 혼전 상황에서 다시 추가 골을 성공시켰다.
경기 내내 맨유에게 밀리던 웨스트햄은 전반이 끝나기 직전 추격 골을 넣었다.
“좋았어, 후반전엔 유나이티드 놈들을 똥줄 타게 만들어 주자고요!”
바비 무어를 비롯한 웨스트햄 선수들은 분위기가 반전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무참히 짓밟혔다.
후반 시작 1분도 안 되어 바비 찰튼이 골을 넣어 버렸던 것.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한 노엘 캔트웰이 깊숙이 치고 들어가서 건네준 땅볼 크로스를 정확한 발리슛으로 때려 넣었다.
그리고 10분 후에 노엘이 또 한 번 웨스트햄 측면을 허물고 들어와 바비 찰튼의 두 번째 골을 만들어 주었다.
“큭, 노엘 형님, 너무해요.”
“미안하지만 승부는 냉정한 법이야.”
노엘은 옛 동료들의 원망 어린 눈빛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측면을 흔들어 댔다.
그러는 가운데 다시 맨유에게 기회가, 웨스트햄에겐 위기가 찾아왔다.
「노엘 캔트웰의 크로스, 바비 무어가 헤딩으로 걷어 냅니다. 하지만 멀리 가지 못한 볼…….」
공격에 가담했던 준영이 리바운드 볼을 잡았다.
“주장, 패스!”
박스 안에 있던 바비 찰튼이 바로 손을 들었다.
이참에 해트트릭을 완성해 보고 싶었던 모양.
움찔한 웨스트햄 수비수들의 시선이 바비에게 쏠린 그 순간, 준영의 발에서 떠난 공은 왼쪽 측면에서 뛰어든 알버트 스캔론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논스톱 슛.
웨스트햄의 골망이 또 한 번 크게 출렁이며, 올드 트래퍼드의 함성도 높아졌다.
“제길, 또 박살 나는군.”
바비 무어는 지난 시즌의 악몽이 떠올랐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그에게 준영이 다가가 말했다.
“그러기에 우리 팀에 오지 그랬냐.”
“또 그 소립니까? 난 웨스트햄을 절대 떠날 생각이 없어요!”
나중에 풀럼에 가서 뛰는 주제에.
코웃음을 쳤던 준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역사가 바뀌었으니, 바비 무어도 정말 원클럽맨으로 남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
다섯 골을 넣고도 맨유는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후반 42분에 문전을 돌파하던 알버트 스캔론이 페널티킥을 얻어 냈고, 키커로 나온 준영은 이를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그렇게 7라운드 경기는 6 대 1 시원한 대승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대승의 기쁨은 오래 누리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후, 런던에서 반갑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닭집이 또 이겼다고?”
“유세비오가 해트트릭을 했대요.”
유세비오, 흑표범 에우제비우의 맹활약에 토트넘은 7전 7승을 달리고 있었다.
이 기세는 마치 지난 시즌 리버풀과 매우 흡사했다.
“우리도 놈들을 추격하기 위해서는 공격수 보강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조니 자일스의 말에 데니스 바이올렛을 비롯한 공격수들이 발끈했다.
“뭐, 인마? 우리가 못 미덥다는 거냐?”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일전에 주장이 그랬잖아요. 올바른 경쟁이 건전한 성장을 이뤄 낸다고.”
자일스는 냉큼 준영을 끌어들여 위기를 모면해 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준영에게로 쏠렸다.
그리고 모두를 대표해 데니스 바이올렛이 물음을 건넸다.
“존, 네가 보기엔 어때? 우리 팀 보강을 해야 할 것 같아?”
“이번 시즌 리그 컵도 생겼고 경기 수도 늘었으니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많을수록 우승 레이스에는 유리하겠죠. 하지만 당장 급하진 않다고 봐요.”
올 시즌 맨유는 공격 쪽에서는 이렇다 할 영입을 하지 않았다.
버스비 감독이 기존 공격진으로도 충분하다고 보았기 때문.
실제로 고참급 중에는 노쇠한 선수도 없고, 알렉스 퍼거슨과 데니스 로 같은 어린 선수들도 많은 경험을 쌓으며 기량이 성장해 가는 중이었다.
“다만 변화는 필요해요. 리버풀이나 토트넘 같은 팀들을 보면 과감한 영입으로 성과를 내고 있으니까요.”
“하긴……. 우리 팀도 네가 오고 나서 많이 변했으니까.”
예전의 맨유는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은 강팀이라는 점을 빼면 여느 풋볼 리그 팀들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전술이나 인프라, 영업 등을 개선 혹은 창시해 가며 풋볼 리그를 선도하고 있었다.
라이벌 팀들도 유나이티드를 벤치마킹해서 쇄신해 가고 있었다.
가까운 리버풀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 선도 구단으로 계속 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와야 한다는 거군.”
“예, 근데 이건 감독님이나 코칭스태프 분들도 생각하고 진행하고 있으니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우린 그저 부지런히 실력을 쌓고 컨디션 관리를 잘하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면 된다는 거군.”
선수로서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게 우선.
다들 그 말에 동의했다.
선수단을 어떻게 구성할지, 팀을 어떤 식으로 만들지에 대한 것을 결정하는 건 감독이 할 일이니까.
그리고 버스비 감독과 머피 코치는 그 점에서 신뢰할 수 있었다.
“만약에 새로 선수를 영입한다면 그 녀석이 왔으면 좋겠어. 마법의 머리라고 하던.”
“아, 그 녀석…….”
클러프의 말에 모두들 인터콘티넨털 컵에서 맞붙었던 페냐롤의 공격수 알베르토 스펜서를 떠올렸다.
2차전에서 페냐롤이 크게 패하긴 했어도 알베르토의 활약은 꽤 인상적이었기 때문.
“과연 그 녀석을 영입할 수 있을까?”
“오면 확실히 큰 힘이 되겠지.”
알렉스 퍼거슨의 말에 데니스 로는 웃음을 지었다.
“넌 주전 자리를 뺏길 텐데 걱정이 안 되냐?”
“흥, 내 걱정이 아니라 네 걱정을 해야지.”
기대하면서 대비해 놓자.
혈기 왕성한 맨유의 공격수들은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그리 대처하리라 마음먹었다.
***
선수들이 전력 보강에 대해 떠들고 있을 무렵.
버스비 감독은 선수 영입 진행 상황에 대해 수석 스카우터인 조 암스트롱에게 보고를 듣고 있었다.
“우루과이에 간 친구들에게 답신이 왔어. 알베르토 본인은 의사가 있는데, 문제는 페냐롤 구단이라더군.”
부친이 영국계인 데다, 최근 유럽 무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커진 알베르토는 맨유 스카우터들의 제의에 무척이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페냐롤 구단도 선수 이적 자체는 아예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라는 이유로 턱없이 비싼 이적료를 요구하고 있다고.
“얼마나 비싸게 부른 겁니까?”
“그쪽이 제시한 금액이면 마드리드에서 푸스카스를 데리고 올 수도 있을 정도야.”
“거참…….”
“뭐, 아직 본격적인 협상은 하지 않았으니까. 밀고 당기다 보면 적절한 절충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보네. 그게 안 되면 다른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조 암스트롱은 토트넘이 에우제비우를 어떻게 데려왔는지 들었다.
그래서 그 방식을 어느 정도 참고해서 진행해 볼 생각이 있었다.
“페냐롤이 원하는 건 고액의 이적료지. 그걸 우리가 당장 지불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만한 가치를 가진 선수라고 증명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임대해 와서 가치를 높인 후에 레알 마드리드나 AC 밀란 같은 팀으로 보내면 된다 이거군요.”
“바로 그거야.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이적료는 페냐롤에 지급하고.”
물론 그 이적료의 일부는 맨유가 알선료 명목으로 챙길 수도 있다.
“근데 페냐롤이 알베르토를 바로 유럽 구단으로 이적시키려 하면요?”
“자네의 지적은 틀리지 않아. 하지만 알베르토는 디 스테파노와 다르지. 축구 강국이라 할 수 없는 에콰도르 출신이니까.”
거기다 남미에서와 달리 유럽에선 미검증된 인재.
만약 인터콘티넨털 컵에서 페냐롤이 우승했다면 알베르토의 주가가 폭등했겠지만, 그러지도 못했다.
당연히 유럽 구단들은 그에 대해서 아직 지켜보자는 입장이 강하다 할 수 있었다.
“다만 이렇게 알선하는 것도 우리만 가능하다고 봐선 안 되겠지. 충분히 주의하면서 협상할 계획이야.”
“아무튼 잘되었으면 좋겠군요. 아 참, 포르투갈에 다녀온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버스비 감독은 만약 알베르토 스펜서 영입에 실패하면, 포르투갈에서 공격수를 영입할 생각이었다.
이미 낙점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SL 벤피카의 장신 공격수 주제 토히스.
토트넘의 빌 니콜슨 감독이 영입하려 했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들었다.
얼마 전 조 암스트롱이 그의 플레이를 보고 왔다.
“확실히 니콜슨이 군침을 흘릴 만했어. 존이랑 비슷한 190대 장신인 데다, 수비수를 등지거나 헤딩으로 패스를 연결해 주는 플레이에 무척 능하더군.”
“흠, 숀이랑 비슷한 유형의 공격수인 모양이군요.”
버스비 감독이 지난번에 은퇴한 숀 코너리를 떠올리며 말하자, 암스트롱은 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숀보다 훨씬 더 잘하더군. 그 친구를 데려올 수 있으면 최전방 공중 경합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야.”
“데려올 수는 있습니까?”
“알베르토 쪽과 달리 완전히 주전으로 자리 잡진 못했으니까. 벤피카 쪽에서는 이적료도 좋지만 맞트레이드도 괜찮다고 했어.”
문제는 벤피카 측에서 탐내는 선수가 데니스 바이올렛 혹은 브라이언 클러프라는 것.
둘 다 빼어난 활약을 해 주고 있는 공격수들이다 보니, 버스비 입장에선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존을 내준다면 토히스뿐만 아니라 자기 팀 핵심 선수인 제르마누와 아우구스투를 끼워 줄 수 있다고 하더군.”
“그건 절대 안 됩니다.”
버스비는 딱 잘라서 거절했다.
준영은 맨유에 애착심이 강하기도 했고, 버스비 역시 그를 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더구나 현재 맨유는 준영이 리빌딩했다고 하여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는 레알 마드리드 주전 선수들을 다 줘도 존이랑 바꾸지 않을 겁니다.”
“그래, 알고 있네. 그냥 그쪽에서 그런 언급을 하더라는 걸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야.”
흥분한 버스비를 다독인 암스트롱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협상만 잘되면 둘 다 올드 트래퍼드에 데려올 수 있겠지. 와서 어느 정도 활약을 하느냐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잘될 거라고 봅니다.”
이미 낯선 선수가 와서 잘 정착한 사례가 있다.
그렇기에 버스비는 선배인 준영이 그 두 선수를 잘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
주제 토히스는 에우제비우의 단짝으로 뛰었던 장신 공격수입니다.
현대적인 포스트 플레이의 정석을 보여 준 선수로 명성이 높았으며, 1966년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의 최전방 공격을 선도하며 팀을 3위에 올려놓았죠.
에우제비우와 함께 한국에 방문해서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당시 우리나라 대표 장신 스트라이커인 김재한 선수가 그의 플레이에 감탄해서 많이 배우려 애썼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