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11화 (311/400)

Round 311. 진짜 이겨야 할 상대

「골! 캡틴 리, 벼락 선제골! 유나이티드가 우승컵을 향해 성큼 다가갑니다!」

전반 3분 만에 터진 선제골.

준영은 코너 플래그 쪽에 있는 중계 카메라 쪽으로 쭉 미끄러지는 골 셀레브레이션을 펼쳤다.

그러자 A보드 광고판 너머에 있던 관중들이 우르르 난입해 들어와 얼싸안으며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

“Captain Lee! Captain Lee!”

“You are our hope!”

“I love you!”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

준영의 골을 보며 쾌재를 부르던 경찰과 경기장 관리요원들은 허둥지둥 필드로 난입한 관중들을 돌려보냈다.

난동의 원흉(?)인 준영도 거들고 나섰다.

“자자, 아직 경기 중이니까 돌아가요.”

“그냥 여기서 경기 끝내면 안 돼요?”

“그럼 우리가 몰수 패예요.”

준영은 자신에게 자석처럼 달라붙은 여자들을 다독이며 떼어 냈다.

그러자 그냥 가기 싫었던 여자 하나가 껑충 뛰어서 뺨에 입을 맞추고 갔다.

“나 이거야 원…….”

“주장, 정말 부러운데요.”

짐 박스터의 말에 준영은 곧바로 정색했다.

“야, 이런 거 부러워하지 마. 애인 있으면 더더욱.”

혹시나 방금 전 상황을 리즈가 본 건 아닌지?

불행하게도 준영의 이런 우려는 빗나가지 않았다.

“형부가 요새 참 인기가 많네.”

“저런 걸 보고 파리가 꼬인다고 하는 거지?”

귀빈석에서 쌍안경으로 경기를 바라보던 프레드로 가의 세 자매들.

앤지와 카린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미소 짓는 리즈를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지. 준은 스타플레이어인걸.”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거야?”

“응, 저런다고 준이 딴 데 눈 돌릴 사람은 아닌걸.”

연인의 지조를 믿는 리즈는 살포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언니, 눈빛은 웃고 있지 않네.’

‘카린이 잘못하면 보이는 눈빛을 하고 있어.’

혹시 경기가 끝나면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는 건 아닐까?

앤지와 카린은 불길한(?) 예감을 덮어 둔 채 다시 필드로 눈길을 돌렸다.

***

난입 해프닝이 수습된 후, 경기가 재개되었다.

경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한 방 크게 맞은 페냐롤은 루이스 쿠비야를 중심으로 전열을 서둘러 정비해 나갔다.

하지만 맨유 선수들은 그들이 뜻대로 플레이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쿠비야, 앞으로 공을 몰고 나갑니다. 중앙에서 짐 박스터를 제치고… 아, 빅 던이 달려들어 공을 빼앗아 갑니다. 총알같이 페냐롤 진영을 달려가는 빅 던!」

페냐롤의 미드필더 살바도르와 리나사가 던컨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던컨은 절묘한 볼 컨트롤과 빠른 스피드로 그들을 제치고 빠져나갔다.

그렇게 던컨이 접근해 오자, 깜짝 놀란 페냐롤 수비수들은 던컨과 맨유의 최전방 공격수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직접 슛? 아니면 패스?

머뭇거리는 사이 페냐롤 페널티 박스로 바비 찰튼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마크가 붙기 전에 던컨의 패스가 전달되었다.

‘이런 제길! 완전히 속았군!’

골키퍼 마이다나가 황급히 바비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돌아서 슈팅을 하지 못하게 저지하려 했지만, 살짝 방향을 돌려놓은 바비의 힐킥은 그의 옆구리 사이로 빠져나갔다.

「골! 바비 찰튼, 추가 골! 남미 챔피언 페냐롤, 속절없이 두들겨 맞습니다!」

중계 캐스터만큼이나 흥분한 관중들은 고래고래 함성을 지르고 뛰어올랐다.

혹시나 또다시 난입 사태가 벌어지는 건 아닐까.

경찰들의 우려와 달리 이번에는 별일이 없었다.

다만 바비가 관중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느라, 경기가 재개되는 데 약간 시간이 걸렸다.

“이거야 원, 정신이 하나도 없군.”

알베르토 스펜서는 2 대 0으로 바뀌는 스코어보드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경기가 시작된 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점수가 이렇게 되다니.

이건 마치 적진으로 돌격하기도 전에 포격을 맞은 거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다들 침착해!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어!”

“실점은 잊어버려. 우리 플레이를 하면서 차근차근 쫓아가면 돼.”

알베르토와 주장 마르티네스가 페냐롤 선수들을 다독이며 전열을 수습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미 묵직하게 날아든 두 방의 펀치에서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경기장 한 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커다란 깃발을 흔들며 쉴 새 없이 북을 치고 함성을 내지르는 유나이티드의 거센 응원에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Go! Go United!”

“Reds go marching on!”

살바도르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쿠비야의 집중력이 떨어졌다!

게임이라면 당장 이런 문구가 떠올라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와 달리 초반 러시에 성공한 맨유 선수들은 단어 그대로 버프를 받아 필드를 시원하게 누비고 다녔다.

「짐 박스터가 센터 서클 부근에서 인터셉트, 박스 쪽으로 접근하는 클러프에게 찔러 줍니다! 그러나 태클에 걸리는 클러프…….」

곤살베스가 클러프의 발을 걸자, 피에르 심판은 곧장 휘슬을 불었다.

곤살베스가 항변했지만 심판은 고개를 저었다. 태클이 늦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프리킥 찬스가 만들어지자, 맨유의 서포터 12번째 전사들은 북과 꽹과리 소리를 높이며 분위기를 고양시켜 나갔다.

“누가 찰까?”

“저 정도 거리면 존 Y. 리 아니면 던컨이지.”

“오, 던컨이 차려나 봐.”

그러나 기자들의 예상과 달리 던컨은 차는 척하고 지나치고, 준영이 곧장 낮게 때려 찼다.

점프한 페냐롤 선수들 발밑으로 스쳐 간 슈팅은 마이다나의 선방에도 불구하고, 골라인을 넘어가 버렸다.

“3 대 0!”

“크하핫! 오늘은 뭔가 되는 날이구만!”

초반부터 제대로 기선 제압.

맨유 팬들의 신나는 함성이 쩌렁쩌렁하게 하늘로 울려 퍼졌다.

그 함성은 올드 트래퍼드뿐만 아니라, 맨체스터 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

경기 시작부터 호되게 두들겨 맞은 페냐롤은 전반 20분이 지나면서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최전방에서 알베르토 스펜서를 비롯한 공격수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맨유 수비진을 흔드는 가운데, 쿠비야와 살바도르, 리나사가 부지런히 패스를 전달했다.

이들이 펼치는 남미 축구 특유의 자유롭고 개인기 중심의 플레이는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하지만 페냐롤 선수들은 그런 관중들의 반응이 반갑지 않았다.

‘자기네 팀이 리드하고 있으니 여유롭다 이거군.’

‘어디 추격당하는데도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지 보자고!’

이를 악물고 찬스를 만들려 애쓰는 페냐롤.

계속 두들기고 비집고 들어간 덕분에 마침내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후안 오베르그, 측면에서 레이 윌슨의 태클을 뛰어넘으면서 유나이티드 박스로 들어옵니다. 위험한데요.」

빌 포크스가 황급히 오베르그에 대한 마크에 나섰다.

하지만 그가 달라붙었을 땐 이미 오베르그의 발끝에서 공이 떠난 다음이었다.

‘이런, 애매하잖아!’

다리를 쓰기도, 그렇다고 머리를 대기도 어중간한 높이.

더구나 골문 앞에서 어설프게 처리하다간 자책골이 될 수 있었다.

준영의 몸을 살짝 스치고 간 공은 알베르토 쪽으로 떨어졌다.

이미 준비를 끝내 놓았던 알베르토는 공이 오자마자 시저스 킥으로 맨유 골망을 흔들었다.

“우와아!”

“기가 막힌 골이군.”

“그래, 남미 챔피언이라면 그 정도 실력은 보여 줘야지!”

멋진 슛을 보여 준 알베르토에게 관중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에 답례할 여유가 없었던 알베르토는 곧장 공을 센터 스폿에 가져다 놓았다.

“호호홋! 외국 속담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고 하던데, 지금이 딱 그렇네요.”

귀빈석에서 경기를 보던 오노 요코는 방금 실점 상황에서 미스를 저지른 준영을 비웃었다.

수비수답지 않게 초반부터 공격 가담을 하며 2골이나 넣는 광경을 볼 때는 왠지 부아가 치밀었는데, 방금 전엔 그야말로 깨소금이 따로 없었다.

“저기, 요코, 그 말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

“왜요? 내가 뭐 틀린 말을 했어요?”

“틀리진 않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릴 필요가 있다고.”

앙리는 주변의 눈총에 진땀을 흘렸다.

맨체스터에서 존 Y. 리는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동안 그가 해낸 일을 봐도 충분히 그만한 평가를 받을 만했고.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올드 트래퍼드에서 원숭이를 운운하다니.

여기가 귀빈석이 아니라 서포터석이었다면 당장 스테이크처럼 다져졌을 것이다.

‘혹시 리즈도 들었나?’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리즈.

경기 시작 직전에 이미 그녀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한동안 못 본 사이에 훨씬 아리따워진 그녀의 모습을 보자니, 앙리는 뭔가 후회감이 들기도 했다.

“힘내요, 준!”

“방금 전 상황은 잊어버려!”

“유나이티드 오빠야들, 이겨라!”

요코의 말을 못 들었는지, 아니면 듣고도 그냥 무시하는지.

리즈와 그녀의 동생들은 응원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구만.’

리즈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들의 기대와 성원을 받는 사나이.

앙리는 부러운 눈길로 준영의 플레이를 바라보았다.

***

전반 38분, 알베르토의 만회 골로 한 골 만회한 페냐롤.

전반 끝날 시점부터 적극적으로 반격에 나선 그들은 후반전에서도 공세를 이어 갔다.

마치 전반 시작 때 맨유가 그랬던 것처럼 후반전을 시작하자마자 과감하고 화끈한 플레이를 펼쳐 보였다.

「쿠비야, 유나이티드 진영으로 들어갑니다. 페널티 아크 부근에 있던 알베르토에게 패스, 알베르토, 슛-! 아, 골대 맞고 나갑니다.」

후반 12분, 알베르토의 중거리 슛은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서늘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페냐롤이 또다시 찬스를 잡았다.

보르헤스가 건네준 패스를 알베르토가 수비수를 유인하면서 흘렸고, 이것을 오베르그가 뛰어들며 슛을 날렸다.

하지만 낮게 깔아 찬 슈팅은 해리 그렉이 몸을 날려 잡아챘다.

“과연 남미 챔피언이군. 포기하지 않고 무섭게 밀어붙이고 있어.”

“덕분에 경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졌네요.”

버스비 감독과 머피 코치는 경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초반에 3골을 득점했을 때만 해도 다득점으로 느긋하게 경기를 끝내는 게 아닌가 우려(?)했지만, 이후에는 꽤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 세계 클럽 왕좌를 다투는 결정전이라면 그만큼 치열함이 있어야지.’

지금 페냐롤 선수들은 마치 3 대 1이라는 스코어는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득점과 승패에 연연하지 않자, 오히려 더 좋은 경기력이 나왔다.

‘마음을 비웠다 이건가? 그래,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그러는 게 더 낫지.’

준영은 페냐롤과 달리 맨유 선수들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현재 리드도 우승에 대한 강한 의지로 만들어 낸 것이니까.

‘이기기 위해선 그 강한 의지를 계속 이어 나가야 해. 페냐롤의 추격을 막고, 다시 공격 찬스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페냐롤 쪽으로 흐르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

그리고 지금 그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쿠비야에게 패스를 받은 알베르토가 자신에게 돌진해 오고 있었던 것.

‘이 녀석을 눌러야 이긴다!’

진짜 이겨야 할 상대를 쓰러트려야 한다.

유니폼은 달라도 같은 생각을 하는 양 팀의 스타플레이어가 충돌했다.

***

소설에서도 한차례 언급한 적이 있지만, 알베르토 스펜서의 아버지는 영국계 자메이카인으로, 거대 석유 기업 BP의 자회사 직원으로 에콰도르에 파견되었다가 현지에서 결혼해서 알베르토를 낳았다고 합니다.

실제 FA에서는 그를 영국으로 데려와 국가대표로 선발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에콰도르 국가대표로 뛸 적에 웸블리에서 잉글랜드 대표팀과 맞붙은 적이 있는데, 이때 득점을 했죠.

이후에 에콰도르가 웸블리에서 한 번도 경기를 한 적이 없다 보니, 알베르토는 웸블리에서 골을 넣은 유일한 에콰도르 선수로 남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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