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10화 (310/400)

Round 310. 세계 정상을 향하여

조윤옥의 추가 골로 2 대 0으로 달아난 한국 대표팀은 이후 짐 루이스에게 실점을 허용했다.

이후 영국의 총공세가 펼쳐졌지만, 함흥철의 신들린 선방에 막혀 동점 골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결국 패배한 영국 올림픽 대표팀은 조 예선 탈락.

그것도 한국에게도 져서 꼴찌가 된 상황이 고스란히 본국에 전달되었다.

“나 참, 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가 올림픽에선 조 예선 탈락이라니…….”

“별수 없잖아. 올림픽은 프로 선수는 출전 못하는걸.”

“그래도 1승도 못하는 건 너무하지. 심지어 듣도 보도 못한 아시아 국가에게 졌다고!”

“근데 Korea면 존 Y. 리의 나라 아니야?”

“아마 그럴걸.”

영국 축구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이는 가운데, 한국 대표팀이 맨체스터에서 합숙 훈련을 했던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여기에 이준영과 맨유 구단의 지원까지 받았다는 사실도.

“주장은 난감하겠네요. 조국이 선전하기를 기원하며 지원했는데 하필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그러게나 말이다. 차라리 이탈리아나 브라질을 이겼으면 좋았을 텐데.”

맨유의 클럽 하우스 오스길리아스에서도 선수들이 올림픽 축구를 화제 삼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사태의 주범(?)인 준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그는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국에선 이런 걸 두고 호랑이 새끼를 키웠다고 해.”

“키운 호랑이에게 물린다……. 딱 맞는 말이군요.”

준영은 탁자에 올려진 신문을 내려다보았다.

신문에는 ‘매국 구단 유나이티드’라는 둥, ‘존 Y. 리의 배덕’이라는 둥 자극적인 타이틀을 단 기사들이 실려 있었다.

“존, 이런 기사 신경 쓰지 마. 적군이 국내에서 훈련하는데도 제대로 정탐을 안 한 놈들이 바보지.”

“던의 말이 맞아. 상대를 얕본 대가를 톡톡히 치른 거니까.”

실제로 냉정하게 탈락 원인을 분석하는 언론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맨체스터 가디언에서는 영국 올림픽 대표팀에 대해 물과 기름, 모래가 섞이기를 기대한 게 문제라고 논평했다.

대표팀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선수들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

계속 한솥밥을 먹는 프로팀도 아니고, 올림픽을 위해 단기적으로 뭉친 선수들이었기에 좋은 조직력이 나올 리 만무했다.

“아무튼 잘 아는 녀석이 활약했다니 반갑군.”

준영은 신문에 올라온 조윤옥의 골 세리머니 사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만났을 땐 완전 애송이 아마추어였는데, 이젠 국가대표로서 당당히 한몫하는 공격수가 되었다.

“힘내라고 했으니 확실히 힘내서 이겨야지.”

이틀 후에 열리는 인터콘티넨털 컵 2차전.

반드시 시원한 승리를 거둬서 세계 챔피언의 자리를 차지하리라 다짐했다.

***

맨유와 함께 인터콘티넨털 컵의 우승을 다투는 CA 페냐롤은 이미 일주일 전 맨체스터에 도착했다.

맨유 구단은 원정 갔을 때 대우받은 것보다 더 후하게 그들을 대접해 주었다.

최고급 호텔에 방을 잡아 준 것은 물론, 한국 대표팀이 사용했던 더 클리프의 훈련장까지 내줬다.

“너무 후하게 대우해 주는 게 아닙니까?”

이렇게 투덜대는 임원도 있었지만, 하드먼 회장과 버스비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멀리서 온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게 예의라고 보았으니까.

그러자 임원들은 구단의 실질적인 물주라 할 수 있는 준영에게 찾아갔다.

하지만 준영의 생각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신사니까 예의를 지켜야죠. 그리고 우리가 베풀어 주는 만큼 저쪽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강대국들이 약소국에 후한 지원을 베푸는 것도 단지 호구라서가 아니다.

‘우리는 이 정도는 얼마든지 베풀 능력이 있다.’

‘우리와 너희는 넘사벽의 차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시켜 줌으로써 감히 기어오르지 못하게 만들기 위함인 것이다.

“그럼 경기 전날 오스길리아스에 페냐롤 선수들과 우루과이 기자들을 초청해서 파티를 하려는 것도……?”

“네, 단순한 친선 도모 및 선전을 펼치자는 뜻에서 여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준영이 의도한 대로 효과가 나타났다.

고급 호텔이나 잘 정비된 훈련장에는 그렇게 감흥을 보이지 않던 페냐롤 선수들도 맨유의 클럽 하우스를 둘러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수 숙소 난방은 바닥에 매설된 온수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 온수는 샤워용으로 재활용되죠.”

“선수들이 몸을 단련할 수 있는 모든 시설과 기구들이 갖춰져 있습니다.”

“의료팀도 상주하고 있어서 재활과 물리 치료도 이곳에서 이뤄지죠.”

“너무 지나치게 갖춰 놓은 게 아니냐고요? 천만에요. 이렇게 해야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어요.”

선수들뿐만 아니라 같이 온 우루과이 기자들도 혀를 내둘렀다.

그들이 알기로 영국은 축구 종가라면서 실속은 썩 좋지 못하다고 알고 있었다.

선수들의 급료도 제한적이고, 훈련 인프라도 형편없다고.

하지만 전자는 몰라도 후자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이런 환경이라면 정말 축구를 잘할 수 있겠어.”

“그런 것과 별개로 도시가 치안이 좋아 보이더군. 우리나라와 달리 시위도 없고 말이야.”

“주급이 제한되어 있긴 해도, 지불은 제때 잘 해 준대. 보너스나 기타 지원금도 적지 않고…….”

직접 보고, 직원들에게 들은 이런저런 정보들에 선수들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현재 우루과이 국내 상황은 점점 나빠져 가고 있는데, 축구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에이전트를 빙자하여 선수나 구단의 돈을 떼 가는 갱단도 있을 정도.

그렇다 보니 부러움과 동경이 생기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영국에서, 여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뛸 순 없을까?’

‘외국인 선수가 영어를 못해도 뛸 수 있다고 규정이 바뀌었다니까…….’

이렇게 바람이 들어간 선수 중에는 페냐롤의 간판 공격수 알베르토 스펜서도 있었다.

그는 다른 것보다 클럽 하우스 전시관에 소장된 국내외 경기 사진들과 유러피언 컵 트로피에 주목했다.

특히 눈길을 둔 건 준영과 악수하는 디 스테파노의 사진이었다.

‘나도 디 스테파노처럼…….’

남미를 벗어나 축구의 중심인 유럽에서 활약해 보고 싶다!

이런 의욕이 무럭무럭 치밀어 올랐다.

멀리서 알베르토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준영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잘하면 감독님 소원이 이뤄지겠군.”

준영은 버스비의 소원이 이뤄지기를 바랐다.

역사가 달라지면서 펠레와 에우제비우도 잉글랜드 풋볼 리그에서 날뛰고 있는 상황.

그러므로 맨유 역시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해서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

1960년 9월 4일.

올드 트래퍼드는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관중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심지어 A보드 광고판 바로 앞까지 입석 관중들이 밀고 들어올 정도였다.

이렇다 보니 경기장 관리 요원들과 경찰들은 진땀을 뻘뻘 흘렸다.

“와, 이러다 경기장이 터져 나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그러게요. 집에서 TV로 보든가 하지.”

젊은 경관의 푸념에 그의 동료는 핀잔을 날렸다.

“자네 같으면 그 작은 바보상자로 경기를 보고 싶겠나?”

“하긴……. 이봐요, 거기! 광고판 넘어오면 안 됩니다!”

명실상부 세계 최강의 축구 클럽을 가리는 대회.

그 첫 대회의 첫 우승 팀을, 맨유가 그 왕좌에 오르는 역사적인 광경을 보고자 하는 팬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았다.

하지만 거대한 올드 트래퍼드도 수용에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 보니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한 채 발을 돌리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흑흑, 암표도 다 팔리고 없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사전에 예매해 둘 걸 그랬어요.”

“누가 아니래? 예매표가 비싸서 당일로 미뤘더니만…….”

“차라리 경기를 메인 로드에서 하지. 그쪽 경기장은 최대 8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잖아.”

“미쳤어? 우리 팀 경기를 왜 시티 놈들 소굴에서 해야 하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런던 웸블리에서 하는 게 낫지.”

어떻게든 경기를 보고 싶었던 이들은 TV가 있는 펍과 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까만 고급 승용차 하나가 경기장 앞에 서더니 2남 1녀가 내렸다.

그들이 입구 쪽으로 다가오자, 관리 요원이 손을 내저었다.

“죄송합니다. 이미 만원이라 경기장 입장이 불가합니다.”

“귀빈석에 예약했는데 안 되는 거요?”

깔끔한 정장 차림의 청년이 내민 표를 확인한 관리 요원은 바로 통로를 열어 주었다.

청년은 뒤에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때, 윌? 예약해 놓길 잘했지?”

“응, 웬일로 준비를 잘했네.”

이복동생의 대꾸에 앙리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프랑스에 있는 기숙학교로 돌아간 뒤로 많이 성실해졌다고 들었는데, 아직 서먹한 감이 지워지진 않았다.

그래도 자신만 보면 으르렁대던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편이었다.

“뭐… 일단 고맙다고 해 둘게. 정말 보고 싶었던 경기였으니까.”

“그래, 그럴 거라 생각했어.”

우리 윌이 달라졌어요!

앙리가 흐뭇해하고 있을 때, 그와 팔짱을 끼고 있던 동양인 여자가 그를 졸라 댔다.

“앙리, 이러다 경기 시작하겠어요. 얼른 들어가요.”

“알았어, 요코. 너무 보채지 말라고.”

윌리엄 터너는 요코에게 질질 끌려가는 앙리를 보며 혀를 찼다.

BB라는 시건방진 여배우와 결별한 후, 얼마 전 뉴욕에 가더니 웬 동양 여자를 데리고 왔다.

일본 귀족 집안 출신에 자칭 음악가에 예술인이라 떠벌리는데, 그리 좋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말과 다른 행동을 하거나, 제멋대로 굴었기 때문.

영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탔을 때도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의 간식을 마치 제 것인 양 가져가서 먹었다.

“으이구, 여자를 사귀어도 하필 저런 거랑…….”

나지막하게 투덜대던 윌리엄은 경기장에 크게 울리는 환호성에 황급히 입장했다.

그가 재킷을 벗자 붉은 레플리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귀빈석으로 가는 형과 다르게 서포터들이 있는 골대 뒤쪽 자리로 향했다.

오랜만에 왔으니, 목청이 터져라 신나게 응원해 볼 생각이었다.

***

경기 시작 시간이 되자, 양 팀 선수들이 필드로 입장했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홈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노란색에 검은색 줄무늬의 CA 페냐롤.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교환한 양 팀은 진영을 정한 후, 심판의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삐익-!

“와아아아!”

“이겨라, 유나이티드!”

프랑스 심판 피에르 슈빈테가 휘슬을 불기 무섭게 관중석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준영과 맨유 선수들은 그 폭풍 같은 함성을 등에 업고 초반부터 페냐롤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낯선 경기장 분위기와 맨유의 강한 압박에 당황하던 페냐롤은 공을 뒤로 물렸다.

그런데 페널티 박스까지 공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맨유 공격수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페냐롤의 마이다나 골키퍼는 클러프가 달려들자, 공을 전방으로 길게 내찼다.

하지만 황급히 걷어 낸 공은 바로 나가지 못하고 터치라인 밖으로 흘러 나갔다.

“좋았어. 상대가 흔들리고 있다!”

“놈들이 전열을 정비하기 전에 한 방 먹여 주자고!”

바로 스로인으로 공격을 펼쳐 나가는 맨유.

깊숙이 전진해 온 풀백 노웰 캔트웰이 박스로 접근하다가 페널티 아크 쪽으로 전진하던 던컨에게 패스를 보냈다.

하지만 던컨은 공을 잡지 않은 채 수비수만 끌고 지나쳤다.

흘러 나간 공을 잡은 건 이준영.

거침없이 때린 그의 강슛이 페냐롤 골대에 그대로 꽂혀 들어갔다.

***

최근에 경기 침체와 중국 부동산 시장 붕괴로 중국 슈퍼리그가 파탄 일로로 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가 나타나기 전에도 슈퍼리그가 돈은 많이 주는데 선수들이 축구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이란 지적은 계속 받고 있었지요.

선수 숙소나 구단에서 내준 아파트 상태가 좋지 못해서 선수가 자비로 호텔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고, 치안이나 부상 선수의 재활 지원 등이 많이 부실하기도 했습니다.

축구 굴기를 하면 이런 인프라나 행정적인 지원의 개선도 필요한데 그게 잘 안 되었던 거지요.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90년대와 2000년대 전후에는 많이 열악했습니다.

대전 같은 경우는 숙소에 물이 새고 곰팡이가 피었다고 언론에 나오기도 했고, 울산은 문수 구장이 지어지기 전에 종합 운동장을 썼는데, 이때는 보수를 안 해서 여기저기 금이 가서 언제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였지요.

그런 점을 보면 많이 개선되었고, 앞으로도 이런 점에 관심을 기울이고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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