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07화 (307/400)

Round 307. 또 다른 전설의 시작

에우제비우는 모잠비크의 가난한 노동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놀이라곤 흙바닥에서 맨발로 친구들이랑 공을 차는 것뿐.

그나마 제대로 된 축구공을 구할 수 없어서 신문지를 뭉쳐서 만든 공을 차면서 놀았다.

그러다 국내외 축구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마침내 프로 선수로 필드에 발을 디뎠다.

그러다 고향 마푸투에서 머나먼 런던까지 왔다.

니콜슨 감독이나 대니 주장처럼 믿고 살펴 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낯설고 말도 안 통하는 흑인 혼혈 소년에 대해 편견과 의문을 보이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펠레가 했던 만큼 네가 뛰어난 활약을 보인다면 분명히 다들 널 다시 보게 될 거야.’

감독님의 말에 에우제비우는 펠레에 대해, 그리고 그의 플레이에 대해서 알아보고 연구했다.

그러다 시즌이 개막되었고, 데뷔전인 에버튼전에서 선제골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어진 2라운드, 3라운드 경기에서도 계속 득점을 터트렸다.

그 활약은 토트넘 팬들의 반응을 반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에우제비우에게 보이던 편견과 의문은 이내 호의와 기대로 뒤바뀌었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해. 좀 더 강한 상대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4라운드에서 그에 걸맞은 상대를 만났다.

1958-59 시즌 3관왕.

저승사자 군단을 무찌른 유러피언 컵 3연패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지금 그 붉은 악마들을 이끄는 동양의 거인이 에우제비우의 눈앞에 있었다.

‘넘어 주겠어!’

비백인으로 유럽의 정상에 오른 사나이.

그를 꺾음으로써 그와 같은 정상급 플레이어가 되리라!

투웅-!

‘어라?’

페인트를 넣고 번개같이 빠져나간 순간, 둔한 소음과 함께 발밑이 허전해졌다.

캡틴 리가 공을 가로채 버린 것이다.

‘와, 뚫리는 줄 알았네.’

가까스로 수비에 성공한 준영은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계 축구에 이름을 선명하게 남긴 레전드 플레이어인 만큼, 펠레만큼이나 위험한 느낌이 드는 녀석이었다.

폭발적인 스피드를 십분 활용하는 드리블은 가히 일품이라 할 만했다.

‘왜 흑표범이라고 했는지 알겠어.’

문전으로 쇄도하는 움직임은 정말 사냥감의 숨통을 끊으려 달려드는 흑표범 그 자체.

방심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당하고 말 것이다.

“존, 조심해!”

던컨의 외침에 준영은 뒤에서 섬뜩한 기운을 감지했다.

힐끗 돌아보니 에우제비우가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

공을 되찾으려는 흑표범의 몸놀림은 정말 무서웠다.

황급히 턴 동작으로 방향을 전환했지만, 흑표범은 기어코 공에 발을 닿는 데 성공했다.

그 바람에 준영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공이 굴러갔다.

‘내가 잡는다!’

‘쳇, 빼앗길 거 같냐!’

아직 덜 여문 레전드에게 질 수 없다!

흘러 나간 공을 두고 준영은 에우제비우와 몸싸움을 벌였다.

한차례 충돌에서 휘청이며 밀려났던 흑표범은 이후 몸의 무게 중심을 바싹 낮추고 다시 덤벼들었다.

그 끈질긴 기세에 준영은 황급히 던컨 쪽으로 공을 보냈다.

「에우제비우, 정말 과감하고 무서운 공세였습니다. 캡틴 리가 리그에서 이 정도로 긴장하는 건 지난 시즌 리버풀전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중계 캐스터가 느끼는 기분을 맨유 선수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주장이 진땀을 뺄 정도라니!

‘저 애송이가 진짜 펠레와 동급인 건가?’

‘존이 저렇게 진땀을 뺄 정도라니…….’

정말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펠레는 월드컵에서 활약하기 전에 이미 브라질리그에서 명성을 떨친 뛰어난 유망주였다.

그에 비하면 저 모잠비크에서 온 애송이는 무명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그 무명의 애송이는 이미 3연속 골을 터트렸고, 레알 마드리드까지 무찌른 준영까지 애를 먹이고 있었다.

‘괜히 위험한 놈이라고 강조한 게 아니었어.’

‘거듭 경계하지 않으면……!’

모두의 뇌리에 에우제비우라는 선수가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흑표범은 자신의 전설을 본격적으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

초반의 위기를 잘 넘긴 양 팀은 이후 신중하게 경기를 진행해 나갔다.

토트넘은 전통의 푸시 앤 런을 이용한 활발한 패스 플레이로 맨유를 몰아붙였다.

이에 맨유는 튼튼한 수비와 전후방을 가리지 않는 압박으로 맞섰다.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공이 가는 곳엔 항상 2~3명씩 있구만.”

“거기다 미드필드가 상당히 두껍고 공수 전환이 빨라.”

“하지만 토트넘도 밀리지 않고 패스를 잘 찔러 주는군.”

바비 찰튼과 던컨 에드워즈.

발롱도르를 받은 이 2명의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포진한 강력한 맨유 중원을 상대로 토트넘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와라, 버스비의 악마 새끼들아! 내가 다 지워 주지!”

데이브 맥케이.

스코틀랜드 역대 올스타로 손꼽히는 이 파이팅 넘치는 중원의 투사는 날카로운 태클과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로 맨유의 패스를 끊어 냈다.

그의 선전은 필드의 선수들에게 힘을 주었고, 홈팬들에게서도 환호와 박수를 끌어냈다.

“잘했어, 데이브. 이다음은 내게 맡겨!”

데이브 맥케이가 끊어 낸 공을 넘겨받은 대니 블란치플라워는 바비 찰튼의 마크를 뿌리치고 존 화이트 쪽으로 패스를 찔러 넣었다.

마치 쐐기처럼 파고든 패스.

존 화이트는 곧바로 슈팅을 시도했다.

하지만 셰이 브레넌의 태클을 피하고 때리다 그만 홈런 볼을 때리고 말았다.

브레넌에게 잘했다고 엄지를 들어 보여 준 준영은 중원 쪽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미드필드 쪽을 두껍게 했는데도 계속 패스가 들어오다니…….’

준영은 앞서 1라운드 때 경기가 생각났다.

그때 빌리 브렘너가 중원에서 분투했지만, 리즈는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전방의 공격수들에게 패스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

하지만 토트넘은 달랐다.

대니 블란치플라워라는 뛰어난 중원 사령관이 있었다.

효과적으로 뛰어난 개인기와 판단력, 넓은 시야를 가진 그는 빈 공간이 있다 싶으면 전진 패스를 찔러 넣었다.

‘공격수가 시원찮으면 효과가 없었을 텐데, 딱히 그렇지도 않으니 더욱 문제로군.’

1957-58 리그 득점왕인 로버트 A. 스미스에 순식간에 나타나 득점을 기록하는 유령 존 화이트, 탈아시아급 기량을 갖춘 추니 고스와미.

여기에 전설의 흑표범 에우제비우까지.

조금이라도 눈을 뗐다간 털리기 십상이다.

바로 지금처럼.

“던! 그 녀석 슈팅하게 두지 마!”

준영의 외침에 던컨이 황급히 마크를 붙기도 전에 공을 잡은 에우제비우가 슈팅을 날렸다.

골대에서 30미터도 훨씬 넘는 거리.

하지만 에우제비우의 과감한 슈팅은 해리 그렉이 막을 수 없는 왼쪽 상단 구석으로 정확히 꽂혔다.

“들어갔다아-!”

“또 저 녀석이다! 유세비오(* 에우제비우(Eusébio)의 영어식 발음)가 또 골을 넣었어!”

“유세비오! 유세비오!”

득점을 기다리던 토트넘 팬들이 기뻐 날뛰며 에우제비우의 이름을 연호했다.

코너에 있는 중계 카메라 쪽으로 달려간 에우제비우는 보란 듯이 골 셀레브레이션을 펼쳤다.

그 모습을 맨유 선수들은 우두커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 거리에서 때려 넣을 줄이야…….”

“던이나 주장처럼 전혀 망설임이 없었어. 자신이 있었다는 건가?”

커다란 박수 소리가 얼이 빠진 그들을 일깨웠다.

박수를 친 사람은 준영.

그는 주장답게 곧바로 수습에 들어갔다.

“정신 차리고 전열을 재정비해. 또 골을 허용할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이지!”

던컨이 가장 먼저 대답했다.

방금 전의 실점은 자신이 안이하게 대처하면서 생긴 것이니까.

“그래, 아직 시간은 충분해. 그러니까 저 닭집 녀석들에게 우리가 왜 붉은 악마로 불리는지 알려 주자!”

“Yes, Sir!”

주장의 외침에 다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의 눈빛이 입고 있는 유니폼만큼이나 붉게 타올랐다.

***

선제골을 내준 후, 맨유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중원과 수비뿐만 아니라 최전방 공격수들까지 과감하게 토트넘 선수들을 몰아붙였다.

“유나이티드 놈들, 오버 페이스를 하는군.”

“오버 페이스가 아니야. 저놈들은 저러고도 90분을 뛴다고.”

“약이라도 하는 건가?”

“그랬으면 벌써 블랙번 꼴이 났지. FA에서 틈만 나면 검사를 하는 데가 유나이티드야.”

“괴물들이로구만.”

“괜히 붉은 악마라 불리겠어?”

관중과 기자들은 맨유 선수들의 체력에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맨유 선수들의 체력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준영이 전수한 21세기 방식의 체력 강화 훈련을 꾸준히 해 왔기 때문.

최근에는 의료 기구로 사용되는 트레드밀(Treadmill)을 러닝머신이라고 이름 붙이고 클럽 하우스 실내 훈련장에 가져다 놓았다.

지루하긴 해도 유산소 운동을 하는 데 좋았기 때문.

여기에 금연과 음주 규율에 따르는 선수들도 상당히 늘었다.

체력 훈련에서 뒤처지면 주전 경쟁에서 도태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

이러한 훈련과 규율은 다른 팀에도 전파되긴 했지만, 여건이나 구단 내부 반발 등의 문제 때문에 맨유 구단만큼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진 않았다.

「론 헨리가 전방으로 패스… 아! 데니스 바이올렛이 공을 가로챕니다! 토트넘의 위기!」

막 공격으로 전환하던 토트넘 선수들은 허둥지둥 후방으로 되돌아왔다.

물론 데니스는 그들을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토트넘 골키퍼 브라운이 달려 나오는 것을 보고 칩슛을 날렸다.

‘들어갔다!’

데니스의 칩슛은 파 포스트 상단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골이 들어가기 직전, 수비수 슈넬링거가 달려와 헤딩으로 공을 쳐 냈다.

덕분에 공은 골대 위로 날아가 버렸고, 공 대신 슈넬링거가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빌어먹을, 저 망할 크라우트 자식! 다 들어간 골이었는데!”

“아깝네요. 그래도 기회가 남아 있으니 살려 보자고요.”

코너킥 공격에 가담하러 온 준영이 투덜대는 데니스를 위로했다.

조니 자일스가 코너킥을 맡은 가운데, 준영과 맨유의 장신 선수들이 저마다 문전에서 자리를 잡았다.

토트넘 선수들은 공격수들까지 박스로 들어와 수비에 가담했다.

평균 신장에서 뒤지다 보니, 수비 숫자를 늘려서 몸싸움에서 밀리거나 헤딩을 주는 일을 막으려 했던 것.

“이봐, 밀지 마!”

“너야말로 내 유니폼 놓지?”

문전 앞에서 혼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자일스가 찬 코너킥이 박스 위로 떨어졌다.

‘좋아, 제대로 왔다!’

준영은 자신의 점프를 막으려는 데이브 맥케이의 저항을 뿌리치고 뛰어올랐다.

그의 머리에 꺾인 공이 골대 빈 공간을 향해 떨어졌다.

하지만 골라인을 완전히 넘어가기 직전, 슈넬링거가 발로 걷어 냈다.

‘아놔, 저 크라우트 새끼!’

데니스가 왜 녀석을 씹었던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분통을 터트리고 있을 틈은 없었다.

토트넘이 역습에 나서고 있었으니까.

「슈넬링거가 걷어 낸 볼, 존 화이트가 받아서 측면의 추니에게 내어 줍니다. 곧바로 달려가는 추니, 짐 박스터가 그 뒤를 재빨리 쫓아갑니다.」

박스터에게 따라잡힐 것 같았던 추니는 반대편 쪽으로 길게 패스를 보냈다.

‘아, 이런! 너무 길게 찼네.’

자책하던 추니는 이내 반색을 했다.

노엘 캔트웰을 제치고 달려온 에우제비우가 라인 밖으로 나가기 직전에 공을 살려 냈기 때문.

‘또 에우제비우다!’

‘또 저 애송이냐!’

토트넘의 기대와 맨유의 위기가 교차하는 가운데, 흑표범은 망설임 없이 골대를 향해 가속해 나갔다.

***

에우제비우는 이탈리아에서 뛸 기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15살에 유벤투스 스카우트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입단을 추진했지만, 모친의 만류에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어린 아들을 낯선 외국으로 보내는 게 안 좋다고 보았던 거죠.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의 빼어난 활약으로 인테르로 이적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번엔 포르투갈 독재자 안토니우 살라자르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하네요.

이런 점은 펠레랑도 여러모로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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