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303. 도움의 손길
미스터리 푸드의 독극물 과자 사건은 한국에도 알려졌다.
재빠르고 과감한 대처와 런던 경찰의 수사 발표 덕분에 오해를 사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오히려 많은 한국인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울분과 동정을 표했다.
“거참, 어떤 육시랄 놈이 수작을 부린 거야?”
“백인만 사람이다 싶은 코쟁이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보였던 게지.”
“이번 일로 손해가 크다던데 어찌 되려나…….”
“자자, 한탄만 하지 말고 도와줄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거리와 시장, 학교와 관공서 등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이준영의 재난에 대해서 언급되곤 했다.
그 와중에 음모론도 피어올랐다.
“이거 혹시 자유당 떨거지들이 부추겨서 벌어진 일 아냐?”
“에이, 정권도 바뀌었는데 그놈들이 무슨 힘이 있을라고.”
“모르는 소리. 독초는 단방에 뿌리가 뽑혀 나가진 않아. 괜히 이번에 특별 재판소와 혁명 검찰부가 출범한 줄 아나.”
특별 재판소와 혁명 검찰부.
지난 자유당 정권하에 자행된 부패와 반민주 사건들을 담당하기 위해 출범된 특별 기관이다.
이 두 기관은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홍일이 제일 먼저 통과시켰던 국가 재건 조치법에 따라 출범했다.
현직 검사와 현역 법무 장교들로 구성된 혁명 검찰부는 출범하자마자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해 나갔다.
그 때문에 이미 4월 혁명 때 체포된 곽영주, 홍진기, 최인규뿐만 아니라, 전 동대문파 두목 이정재와 임화수, 유지광 등도 줄줄이 체포되었다.
“그것들을 싹 다 사형시켜야 하는데 말이야.”
“그러게. 이미 죄목은 명명백백한데 뭔 재판을 한다고 꾸물대는지, 원…….”
“그래도 민주주의 국가라면 재판은 해야지.”
세간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을 무렵, 육군 정복 차림의 두 군인이 경무대를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전 부산 군수사령부를 맡았던 박정희와 그의 부관 박태준이었다.
“진급 축하드립니다.”
“그래, 임자도 축하하네.”
이번에 별을 하나 더 달았지만, 박정희는 마냥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4월 혁명 때 세운 공로로 진급하고 새 직책을 얻었지만 실권은 없었으니까.
‘마치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예편해.’라고 하는 것 같단 말이지.’
아주 좋은 기회를 놓쳐 버렸다.
그 옛날 나폴레옹이 야심을 펼쳤던 시절과 비슷했던 정국.
하지만 멀리 부산에 있었던 그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공로라고 해 봤자 몰래 일본으로 밀항하려던 이기붕 일가를 체포한 게 고작이다.
‘그때 이기붕이가 혁명 세력과 싸워서 정권을 수호하면 크게 치하하겠다고 했었지.’
그러나 그 제안은 곧바로 거절해 버렸다.
자유당 정권, 특히 곽영주는 항상 자신의 이력을 두고 탐탁잖게 여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편이 되라니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더구나 민심은 물론이고, 미국과 영국도 자유당 정권에 돌아선 상황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오성 장군도 내 속내를 알고 있는 것 같았어.’
4월 혁명 직후 김홍일이 부산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당시에 그리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지만, 뭔가 분명히 경계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차라리 전역하는 게 나으려나? 돌아가는 모양새를 봐선…….’
국가 재건 조치법을 주저 없이 통과시키는 걸 봐도 김홍일은 추진력이 강해 보였다.
거기다 현재 군의 주축인 육사 8기들을 비롯해 군부 인사들에게도 강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즉, 정부가 어지간한 삽질을 하지 않는 이상 딴짓은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십니까?”
“응? 뭘 말인가?”
생각에 잠겨서 박태준의 말을 듣지 못했던 박정희가 되물었다.
그러자 박태준이 요약해서 다시 이야기했다.
“지금 군부에 있던 인재들을 행정부로 흡수하고 있잖습니까. 이참에 그쪽으로 가서 일찍 자리를 잡는 게 낫지 않나 싶습니다만?”
“임자도 그런 생각을 했나? 과연 자리가 있을 거라고 보나?”
“혁명 검찰부가 구세력들을 일소하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빈자리는 얼마든지 난다고 봅니다.”
“과연……. 그래서 임자는 예편할 생각인가?”
박정희의 물음에 박태준은 싱긋 웃음을 지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 전에 준비를 해 두고 싶습니다. 공부도 하고, 식견도 넓히고 말입니다.”
“그럼 외국 유학을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겠군.”
“유학 말입니까?”
“그래, 현 정부는 물론이고 앞으로 정권을 잡는 사람들도 경제 발전과 산업 부흥을 1순위로 둘 거야. 국민의 삶이 좋아져야 그만큼 지지를 받을 수 있으니까.”
정치, 군사적인 능력이 탁월했던 나폴레옹은 경제 안정과 산업 중흥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근대적인 법전을 편찬하고, 중산층의 사유 재산권을 인정했으며, 도로와 항만 등 각종 사회 인프라 개선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덕에 상공업은 발전하고, 국력이 부흥하면서 프랑스 국민들은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물론 나중에 전쟁한다고 다 말아먹었지만 말이다.
“미국이나 일본으로 유학 가서 선진 산업과 기술을 공부해서 돌아오면 중용받을 수 있겠지.”
“그러고 보니 요즘은 영국으로도 많이들 유학 간다고 들었습니다.”
“이준영이가 지원을 해 줘서 그렇다지? 확실히 영국도 나쁘지 않지. 만약에 영국 유학을 가면 임자는 뭘 공부할 텐가?”
그 물음에 박태준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할 수 있다면 제철 쪽으로 공부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산업이 부흥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게 철이니까요.”
산업 혁명을 이룩한 영국도, 그 후발 국가들도 모두 제철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박태준이 보기에 철은 산업의 쌀.
토목과 건설, 조선 등등 모든 산업에서 철은 빠질 수 없는 소재였다.
“제철이라……. 하긴 우리나라엔 변변한 제철소도 없지. 아직 기술도, 자본도 부족하니까.”
그 기술과 자본을 확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산업 선발 국가들이 선뜻 내어 주지 않을 테니까.
“기회가 되면 한번 영국으로 가 봐. 기왕이면 이준영이하고 친목을 쌓으면 좋겠지. 그치가 영국 자본가나 기술자들하고도 인맥이 있다니까 말이야.”
“그렇다는 얘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이준영의 얘기가 나오자 박태준은 눈을 반짝였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은 인물이었기 때문.
“근데 임자는 발재간이 어떤가? 이준영이랑 친분을 쌓으려면 축구 좀 할 줄 알아야 할 텐데?”
“괜찮습니다. 저 축구 무척 좋아하니까요.”
미래 한국의 철강왕.
끓는 쇳물처럼 뜨거운 의지를 가진 젊은 군인의 눈길이 멀리 서쪽을 향했다.
***
독극물 과자 사건으로 준영의 미스터리 푸드에 상당한 손실이 생겼다.
하지만 과감하게 대처한 덕분에 영국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영국을 넘어 해외 시장 개척에 힘쓰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홍보에 있어 호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었던 것.
더구나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 주고 있었다.
“아우님, 정말 얼마 안 되지만 우리 정성이야. 받아 줘.”
준영을 찾아온 최정민이 돈이 든 봉투를 내밀었다.
대표팀 선수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것이었다.
준영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이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마음만으로 충분하다고요.”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게 우리 바람이야. 어차피 이 돈 쥐고 있어 봤자 한잔 걸치는 데 쓸 건데, 뭐. 아우님이 큰일 하는 데 사용하는 편이 더 낫겠지.”
최정민이 알기로 준영은 한국인 유학생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의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건네주고 있었고, 전쟁고아나 상이용사 지원에도 열심이었다.
자신들이 영국에 와서 전지훈련을 하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것도 준영의 지원 덕분.
그런 좋은 일을 하는 아우가 어려움에 처했는데 가만히 있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었다.
“큰일이라……. 솔직히 저 그리 순수한 뜻에서 베풀고 있는 건 아닌데요.”
“누구든 안 그런가? 자기만족감 때문이라도 타인에게 도움을 주겠다 나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어려운 이웃을 보고도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
계산적이든 어떻든, 당장 어려운 사람들은 그 도움의 손길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아우님을 돕겠다고 국민들이 성금을 모으고 있대. 그러니 힘내라고.”
“알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형님.”
정말이지 작지만 큰 도움.
이렇게 준영이 기운을 차리게 해 주는 건 고국의 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캡틴 리, 나도 당신 업체에 투자하고 싶소.”
“귀하 같은 정직한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군요.”
“나도 식품 업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힘을 거들어 주리다.”
사교 모임에서 만난 사업가들이 투자와 협력을 제의하기도 하고, 해외에서도 주문 요청이 들어왔다.
이런 큰손들뿐만 아니라 소시민들도 힘을 보태 주었다.
“유나이티드를 떠받들고 있는 기둥이 무너지게 할 수 없지.”
“그런 의미에서 난 오늘 저녁으로 미스터리 푸드 라면을 먹을 거야.”
“토마토 스파게티가 확실히 맛있지.”
“어휴, 한심한 남자들 같으니! 돕고 싶으면 양념 치킨 정도는 쏘라고요!”
맨유 서포터와 팬들이 주도해서 미스터리 푸드 제품에 대한 대규모 소비 촉진 운동을 펼쳤다.
심지어 라이벌인 맨시티 팬과 선수들까지 동참했다.
이에 준영도 메인 로드를 찾아가서 케네스 반즈나 버트 트라우트만 등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다들 이렇게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뭘, 너도 우릴 도와주고 있잖아. 상부상조하는 거지.”
준영이 선수협회를 지지하고 있다는 건 이미 축구계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더구나 FA의 스탠리 루스 총무에게 임금 상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다수 선수들은 준영에게 호의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지미 힐을 비롯해 선수협회 쪽 인사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하더군.”
“정말이지 말만 들어도 기운이 나는군요.”
도움의 손길을 뻗은 건 축구 팬과 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맨체스터의 일반 시민들과 학생들도 소비 촉진 운동에 동참했다.
여기엔 리즈와 그녀의 동생들도 거들었다.
“대학에서 우리 학과 중심으로 미스터리 푸드 식품을 사 주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요. 호응이 꽤 좋아요.”
“우리 반 애들도 죽어도 빼빼Ro를 먹겠다고 했어.”
“카린은 오빠를 도우려고 응원 문구를 만들었어!”
뿌듯한 표정을 지은 카린은 스케치북에 써 놓은 문구를 준영에게 보여 주었다.
“먹어서 응원하자… 라.”
“어때? 괜찮지? 선생님도 단순명료해서 좋다고 그랬어. 모두에게 외치게 할 거야.”
“어… 그래, 고맙다.”
준영은 어색한 기색을 감추려 애썼다.
21세기에 방사능 지역 식품을 판촉하는 문구가 튀어나올 줄이야.
물론 카린이 그걸 알고 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기에 준영은 귀여운 막내 아가씨가 애써 준 마음과 문구를 감사히 받기로 했다.
***
먹어서 응원하자는 발상은 일본에서 처음 나온 건 아닙니다.
광우병 논란이 났을 때 영국 장관이 쇠고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 주려고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죠.
물론 슬쩍 패티 빼는 모습이 걸려서 빈축을 샀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