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301화 (301/400)

Round 301. 전설의 퍼포먼스

“누구지?”

“주장, 아는 사람이에요?”

긴 머리의 동양인 여성이 다가오자 다들 준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준영은 고개를 저었다.

뭔가 낯익은 느낌이 들지만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데다, 어쩐지 좋지 않은 느낌도 들었기 때문.

그때 준영에게 다가온 여성이 말을 건넸다.

“칵테일을 보낸 사람을 이렇게 세워 두실 셈인가요?”

“실례. 예상치 못한 만남이라서요.”

준영의 눈짓에 데니스 로가 바로 자리를 옮겼다.

당당하게 그 자리에 앉은 여성은 친근하게 말문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웨이터에게 물어봤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단 분들이 맞고, 당신이 존 Y. 리가 분명하다고 하더군요.”

“예, 제가 이준영입니다. 그쪽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

“이름을 소개할 정도로 대단하진 않아요. 그냥 미스 자몽이라고 알아 두시면 돼요.”

“자몽? 왜 자몽이죠?”

“전 오렌지도, 레몬도 아니라서요.”

자조적인 미소를 짓는 미스 자몽.

그녀의 언행에 준영은 내심 코웃음을 쳤다.

‘겸손한 척하면서 어떻게든 관심을 끌려고 애쓰고 있구만.’

준영은 이 여자에게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뭔가 신비하고 지적인 느낌의 동양 여인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졌다.

데니스 바이올렛이 그녀에게 물음을 건넸다.

“미스 자몽은 어느 나라에서 오셨죠?”

“미국이요. 뉴욕에서 행위예술가 겸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예술가 겸 음악가.

신비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직업이 아닌가.

자몽은 관심을 보이는 데니스나 다른 선수들에게 자신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전 플렉서스라는 아방가르드한 예술 집단에 몸담고 있어요. 새로운 장르의 노래를 구상할 목적으로 카리브 지역의 음악들을 조사하고 있는 중이죠.”

그러면서 그녀는 냉담하게 모히토만 홀짝이고 있는 준영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듣자니 리 선수는 음악 쪽에도 상당한 재능이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그건 어디서 들으셨는지?”

준영이 의외라는 기색을 보이자 자몽은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리 선수에 대해서는 미국의 진보 언론에서도 주목하고 있어서요. 국제 대회 우승을 견인한 뛰어난 스포츠맨에 뛰어난 수완을 가진 사업가이기도 하다고.”

영국은 과거 초강대국이었고, 냉전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는 미국과 가장 친밀한 동맹국이다.

당연히 미국인들은 영국 사회의 동향과 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 보니 최근에 영국에서 화제가 된 동양인 선수에 대해서도 알려지게 된 것이다.

사실 미국인들은 축구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실력으로 두각을 드러낸 점이나 사업가로 성공한 점은 확실히 주목할 만했다.

거기다 처칠이나 오드리 헵번 같은 유명인들과도 친분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니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었다.

“뉴욕에 온 영국 예술가들이 그러더군요. 리 선수의 축구가 아방가르드한 면이 있다고요. 그래서인지 플레이도 아주 예술적이라고 그러던데요.”

그 말을 하는 자몽은 준영에게 매우 관심 있는 눈길을 보였다.

관심이 지나치다 보니 아주 끈적할 정도.

그러나 준영은 냉담했다.

‘자칭 행위예술가라고 하는데, 그냥 관심 종자 같군.’

그뿐만 아니라 동양인, 거기다 어눌한 영어 발음에 플렉서스 소속의 예술가 겸 음악가라는 사실에서 그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으므로.

“리 선수는 예술에 관심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요코 씨. 제 지인 중에는 연극이나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준영의 대답에 미스 자몽, 아니 요코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 그가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

***

“저, 저에 대해선 어떻게……?”

“말했잖습니까. 예술에 관심이 있다고. 뉴욕에서 활동 중인 동양인, 아니 일본인 여성 예술가 오노 요코에 대한 소문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태연스럽게 대충 둘러댔지만, 실은 21세기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습득한 정보들이다.

비틀즈를 좋아하는 신부님 덕분에 관심을 두고 조사해 보다가 사악한 일본 마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던 것.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요코는 당황하다 이내 반색을 하며 준영에게 들이댔다.

“정말 영광이에요. 영국을 주름잡는 스포츠 스타가 저 같은 마이너 예술가를 알고 계실 줄이야!”

“저도 요코 씨를 이런 카리브 끝자락에서 볼 줄은 몰랐습니다.”

준영의 미간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들통나면 당황해서 물러날 거라 생각했건만, 더 들이대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은근슬쩍 자신의 손까지 잡으면서.

‘괜히 비틀즈를 박살 낸 일본 마녀가 아니구만.’

사실 비틀즈의 해산에는 여러 원인이 있고, 요코가 직접적으로 관여한 건 아니다.

그러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의 불화에 부채질을 한 건 분명한 사실.

그뿐만 아니라 레논이 죽었을 땐 유골을 빼돌리기도 하고, 그의 유품을 멋대로 처분하는 행각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뻔뻔함을 준영에게도 보이고 있었다.

‘나한테 들이댈 심산인가? 이 자리에 레논이 없어서 그런가?’

레논은 이번 우루과이 원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밴드의 중요한 공연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빠졌던 것.

아니, 레논이 있더라도 요코가 지금 그에게 눈길을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비틀즈는 아직 세계적인 유명 밴드가 아니니까.

‘처음부터 록스타들을 유혹하려고 접근했다고 하지. 처음엔 레논이 아니라 폴 매카트니에게 찝쩍댔고,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에게도 꼬리를 쳤다니…….’

그렇게 들이댄 끝에 결국 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그 짓을 레논이 아닌 자신에게 할 속셈이라, 준영은 이 일본 마녀를 그냥 둘 수 없었다.

“요코 씨, 음악가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했죠?”

“네, 맞아요.”

“그럼 제 동료들에게 한 곡 불러 줄 수 있으십니까? 이번에 먼 원정을 다녀오면서 다들 피곤해하고 있어서요.”

“노래를 말인가요?”

“네, 제가 반주를 거들겠습니다.”

준영의 제의에 잠시 망설이던 요코는 이내 승낙했다.

여기서 눈도장을 찍으면 이 유명 스포츠 스타에게 확실히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이에 준영은 클럽 지배인에게 부탁해서 무대에 올랐다.

“불러 주실 노래는 정하셨습니까?”

“그러니까… 주디 갈란드가 불렀던 ‘Over the Rainbow’는 어떨까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온 발라드 곡 말이군요. 네, 좋습니다.”

다들 잔뜩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준영의 노래 실력을 잘 아는 맨유 선수들도, 클럽 안에 있는 다른 손님들도.

그런데 요코는 준영이 집어 든 악기를 보고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건 일렉트릭 기타잖아. 저걸로 ‘Over the Rainbow’를 연주하겠다고?’

이상하게 여기는 건 클럽의 밴드 사람들도 마찬가지.

다들 지켜보는 가운데 준영이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일렉트릭 기타 특유의 쩌렁쩌렁한 음색이 클럽 안에 울려 퍼졌다.

‘아니, 이게 이렇게 연주될 수 있나?’

‘원곡하고 딴판인데, 뭔가 매력적이군.’

원곡은 도로시가 머나먼 세계를 동경하는 느낌.

그러나 준영이 일렉트릭 기타로 연주하는 현재 곡은 마치 회오리바람에 휩쓸려 오즈로 날아가는 상황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었다.

이런 낯선 음색과 리듬에 멍하니 있던 요코는 준영의 눈치에 뒤늦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Some- 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클럽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발음은 어눌했고, 가성 또한 기괴했으므로.

“음치인가?”

“아냐. 예술가라잖아. 아방가르드라니까 뭔가 독특한 시도를 하는 거겠지.”

“하긴 노래가 저러니까…….”

하지만 납득하려던 이들도 점점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의 연주는 분명히 원곡과 차이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요코의 가창력은 연주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치 회오리바람에 같이 휩쓸린 까마귀가 깍깍대는 느낌이랄까.

쾅-!

노래가 끝날 무렵, 갑자기 준영이 기타를 거꾸로 들더니 그대로 무대에 내리쳐 부쉈다.

그 과격한 행동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왜 저러지? 혹시 저 여자 노래가 마음에 안 들어서 화가 난 건가?’

혹시 욕을 바가지로 날리거나 손찌검을 하려나?

그러나 이런 예상과 달리 준영이 모두에게 활짝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캔자스 외딴 시골집이 지금 오즈에 도착했습니다.”

“아하……!”

기타를 부수면서 난 소음.

그건 회오리에 휩쓸린 집이 땅에 떨어진 걸 묘사했던 것이었다.

이제야 의도를 알 수 있었던 사람들은 다들 박수를 쳤다.

다만 원래 밴드의 기타리스트는 부서진 기타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처량한 모습은 회오리에 집을 잃은 도로시네 삼촌을 떠올리게 했다.

“내 기타… 비싼 건데…….”

“걱정 마세요. 보상해 드릴 테니.”

기타리스트를 위로한 준영은 무대에서 내려오는 요코에게 다가갔다.

“어떻습니까, 방금 퍼포먼스? 이만하면 그럴듯한 행위예술이라고 할 만하다 생각합니다만?”

“아, 네. 물론…….”

요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 모르지만, 고개를 내저었다가는 아까 박살 난 기타 같은 꼴이 될 것 같았으니까.

그런 그녀에게 다가간 준영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염불을 하고 난 뒤엔 잿밥을 먹기 마련이죠. 근데 염불은 뒷전이고 잿밥에 관심 있어서는 제대로 된 예술가라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묻어갈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하란 겁니다.”

결론은 ‘꺼져’.

얼굴이 벌게진 요코는 동료들에게 돌아가는 준영을 잡지 못한 채 바라보기만 했다.

속에서 분노와 수치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제대로 하라고? 내가 형편없었다 이거야?’

요란하게 편곡된 곡을 따라가려고 열심히 불렀는데 이런 취급을 하다니!

정말 오만방자한 작자가 아닌가.

거기다 냉담하기 짝이 없는 저 반응은 또 어땠는가.

이역만리에서 자신과 같은 동양인 여성을 만났는데 반가워하거나 호기심 어린 기색이 전혀 없었다.

‘결국 나에게 노래를 시킨 것도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망신을 주려고 그런 건지 몰라.’

우매한 일반인들은 아방가르드를, 예술을 모른다.

그러니 어떤 의도로 그렇게 불렀는지, 음색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음치라고 여겼을 것이다.

노래도 못 부르면서 예술가, 음악가를 자처하는 한심한 여자라고 말이다.

‘유럽에서 잘나가는 스포츠 스타라고 이런 식으로 사람을 망신을 주다니! 어디 얼마나 잘나가는지 두고 보겠어!’

요코는 유명인에게 묻어가려 한 본인의 행실에 대해서는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것도 자신의 전문이라 여긴 예술로 짓밟은 한 남자에게 원한을 활활 불태웠다.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면서.

***

악기 부수기는 플렉서스의 일원이었던 백남준 씨가 왕년에 곧잘 했다고 합니다.

기타 부수기의 경우에는 더 후의 기타리스트였던 피트 타운젠트가 처음 선보였다고 하죠.

처음엔 별 의도도 없었고, 그냥 천장이 낮아서 사고가 난 거였는데, 뜬금없이 일이 터져서 홧김에 때려 부순 게 오히려 유명해졌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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