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291. 사상 최초의 3연패
2점 차로 전반을 마친 프랑크푸르트는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적극적인 공세로 나왔다.
이른 시간에 골을 만들어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 공격의 선봉장으로 나선 리하르트 크레스는 재빠르게 맨유 문전을 누비다 중앙으로 쇄도하는 에르빈 스타인에게 패스를 건넸다.
「맥닐이 태클로 크레스의 패스를 끊어 냅니다. 뒤쪽에서 공을 잡은 린드너가 그대로 슛! …해리 그렉이 골대 밖으로 쳐 냈습니다!」
린드너의 슛 이후로 스타인의 헤딩슛이 있었지만, 골대 옆으로 흘러 나갔다.
이후에 에리히 마이너가 중앙으로 과감하게 돌파 후 패스를 넣었지만, 알프레드 파프가 받기 전에 준영에게 끊기고 말았다.
“형님! 이쪽이에요!”
우측면으로 달려가던 데니스 로가 손을 들었다.
이미 그쪽을 바라보고 있던 준영이 길게 패스를 찔러 넣었다.
마치 대지를 가르듯 호쾌하게 필드를 가로질러 들어간 패스는 오프사이드를 절묘하게 피해 낸 데니스의 앞으로 정확하게 굴러갔다.
「데니스가 단독 찬스를 잡습니다! 과감하게 파고들며 슛-! 들어갑니다! 들어갔습니다!」
“우와아아아!”
“잘한다, 데니스!”
후반 11분 데니스의 두 번째 골로 점수는 4 대 1이 되었다.
벌어진 점수 차만큼이나 프랑크푸르트 선수들의 발걸음도 무거워졌다.
그렇게 망연자실한 그들에게 맨유 공격수들이 적극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그러다 중앙에서 숀 코너리가 헤르만 후퍼의 패스를 가로챘다.
“이런, 거기서 끊기면 어떡해!”
“빨리 수비해!”
프랑크푸르트 선수들이 허둥대는 사이, 숀은 먼 거리에서 곧장 슈팅을 날렸다.
우측 하단을 노리고 찼던 슈팅은 지면에 한 차례 바운드되며 골키퍼 에곤 로이의 손에 걸렸다.
하지만 완전히 잡지 못하고 쳐 내는 바람에 달려드는 데니스에게 기회를 주고 말았다.
데니스는 골대 빈 곳을 노리고 침착하게 공을 밀어 넣었다.
“해트트릭이다!”
“4분 만에 또 골을 넣다니!”
“이제 승패는 결정 났구만!”
관중들의 박수가 데니스에게 쏟아졌다. 방금 전 골은 그저 해트트릭을 완성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러피언 컵 대회 최초로 결승전 해트트릭이 나왔네요. 스코틀랜드의 아들이 불멸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제 점수는 5 대 1.
하지만 맨유의 공격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이참에 더 많은 골을 넣겠다는 듯, 풀이 죽은 프랑크푸르트 선수들을 마구 몰아붙였다.
“바비가 끊어 냈다!”
“패스해 줘요, 바비!”
이번엔 자신의 차례라는 듯 알렉스가 손을 들었다.
하지만 바비 찰튼은 그에게 패스를 하지 않았다. 알렉스의 위치가 오프사이드였기 때문.
이에 그는 전진해 오던 준영에게 공을 건네주었다.
공을 받은 준영은 곧장 돌파해 들어갔다.
바일베커가 날리는 태클을 뛰어넘고, 가볍게 공을 툭 치고서 스틴카의 마크마저 뿌리쳤다.
그렇게 페널티박스 가까이 접근해 오자 루츠와 후퍼가 황급히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그들과 대면하기 직전 준영은 슛을 날렸다.
살짝 휘어져서 날아간 슈팅은 골대 왼쪽 포스트를 맞고 들어갔다.
“우와아, 6 대 1!”
“아주 박살을 내 놓는군!”
흥에 겨운 대다수 관중들과 달리, 독일 팬들은 시무룩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상대가 챔피언이니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박살이 날 줄이야.
“큭, 이대로 끝낼 순 없어!”
“져도 이렇게 지면 안 된다고!”
어떻게든 점수 차를 줄여야 한다.
프랑크푸르트 선수들은 이 상황에서 역전이 아닌 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잡았다.
점수 차가 벌어지면서 자연스레 느슨해진 맨유 선수들과 달리, 그들은 보다 과감해졌고 침착하게 공격을 전개해 나갔다.
“앞으로 나가, 스타인!”
“린드너에게 패스를 줘!”
공을 잡은 린드너는 직접 박스로 치고 들어가다 골 에어리어 쪽으로 컷백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것을 때마침 쇄도하던 스타인이 발로 차 넣었다.
「에르빈 스타인이 만회 골을 만들어 냅니다. 자, 이제 6 대 2인데, 과연 프랑크푸르트가 얼마나 쫓아갈 수 있을까요?」
일분일초가 급했던 프랑크푸르트 선수들은 골 셀레브레이션을 할 엄두도 못낸 채, 공을 센터 스폿에 가져다 놓았다.
바로 맨유가 공격을 전개하면 가로채서 역습을 만들어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역습에 걸린 건 프랑크푸르트였다.
공을 탈취하러 전진하다 후방에 소홀하게 되었던 것.
맨유 선수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공을 잡은 짐 박스터는 재빠르게 상대 문전으로 달려가는 던컨 에드워즈 앞으로 공을 밀어 주었다.
과감하게 오버래핑을 시도했던 던컨은 중앙의 숀 코너리를 보고 크로스를 올렸다.
투웅-!
헤딩을 하려는 숀과 공을 낚아채려던 골키퍼가 공중에서 충돌했다.
그 와중에 공은 뒤로 흘러가 버렸고, 딱 맞춰 들어온 알렉스가 가볍게 골을 만들어 냈다.
“이야, 알렉스도 해트트릭을 해냈어!”
“두 선수가 해트트릭을 해낸 건가? 그것도 결승전에서?”
“대단한 기록이야. 이건 절대 안 깨질걸.”
관중들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스코틀랜드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두 영건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한 골 더 욕심을 부리고 있을 때, 프랑크푸르트가 다시 공격에 나섰다.
후방에서 길게 날아온 공을 빌 포크스와의 경쟁에서 따낸 스타인은 발리슛으로 또다시 맨유 골대를 흔들었다.
“저쪽도 제법 근성은 있군.”
“초반에 기를 죽이지 않았으면 힘들 뻔했어요.”
점수는 7 대 3.
거의 야구 경기에 준하는 스코어가 나왔다.
이대로 점수 차가 줄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준영은 동료 선수들의 위치를 조정하며 수비를 강화했다.
“바비, 내려와서 수비를 거들어 줘. 데니랑 알렉스도 측면 쪽으로 들어오는 선수들 마크하고!”
그렇게 내려앉아 성문을 굳게 닫아걸자 프랑크푸르트는 남은 시간 동안 더 이상의 골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리고 심판은 정규 시간이 끝나자 추가 시간 없이 그대로 경기를 끝냈다.
“이겼다! 또 우승이다!”
“해냈어! 우리가 정말 해냈다고!”
경기가 종료하자 맨유 선수들은 얼싸안으며 신나게 뛰었다.
오늘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동료 선수들도 필드 안으로 달려 들어와 샴페인을 터트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Manchester is Wonderful!”
“Glory United!”
약 1년간의 대장정.
지난 시즌과 다르게 리그에서 우승도 놓쳤고, 준결승에서 바르셀로나라는 강력한 도전자에게 탈락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극복해 냈다.
주장인 준영 개인적으로도 심란했던 시즌이었다.
피할 수 없는 역사에서 일어난 조국의 혁명과 그 과정에서 휘말린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소멸할 뻔한 자신의 존재성.
다행히 그 모든 것을 이겨 내고 다시 한번 정상에, 그리고 대회 사상 최초의 3연패를 달성했다.
‘여기가 끝은 아니야.’
아직 한 경기 더 남았다.
우승 메달과 트로피를 받아 든 준영은 7월에 열리는 인터콘티넨털 컵을 떠올리고 있었다.
유럽과 남미 최강 클럽이 격돌하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자가 진정한 세계 최강의 축구 클럽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준영은 그 정상에 서는 순간을 기대했다.
***
그날 밤.
맨유 구단이 머무는 글래스고의 호텔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글로스터 공작을 비롯한 FA의 임원들에 스코틀랜드 축구협회 대표인 윌리 앨런, 에베 슈바르츠 UEFA 회장 등등.
유럽 축구계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분들을 필두로 많은 손님들이 축하 파티에 참석했다.
“우승을 축하하네, 캡틴 리.”
“앗, 베르나베우 회장님!”
각계 인사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는 준영에게로 풍채 좋은 노신사가 다가왔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페인 축구의 거목이자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인 그가 한껏 미소를 지으며 준영의 어깨를 두들겼다.
베르나베우 회장에게 있어 준영은 애증이 교차하는 존재였다.
자기 팀의 대회 3연패를 저지한 원흉, 하지만 얄미운 바르셀로나 놈들의 우승을 저지한 공헌자.
정말이지 탐이 나는 선수가 아닐 수 없었다.
“무너진 팀을 짊어지고 대회 3연패라니……. 진짜 전무후무한 일을 해냈어. 축구 팬이라면 다 자네의 이름을 기억할 걸세.”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래, 유나이티드에서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우리 팀으로…….”
“전 유나이티드가 좋다니까요!”
이런 노골적인 이적 제안은 준영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도 있었다.
축하를 빙자하며 찾아온 각 팀의 에이전트나 스카우터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제안을 건넨 것.
그런데 이 중엔 제법 진지한 제안도 있었다.
“이제 슬슬 고향으로 돌아오는 게 어떤가? 선수로서 나이도 적잖으니 다른 준비도 해야지. 우리 쪽으로 오면 지도자 교육과 연수도 아낌없이 지원하겠네.”
에딘버러에서 찾아온 하이버니언 FC 관계자의 제안에 숀 코너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다른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도 주전 경쟁이 힘들다고 들었는데? 내년이면 유나이티드에 더 좋은 선수들이 모여들 텐데, 감당할 수 있겠나? 아니면 혹시 다른 팀으로 이적을……?”
“아뇨. 전 이번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할 겁니다.”
팀 고참 선수의 은퇴 선언.
근처에서 이 말을 들은 알렉스는 깜짝 놀랐다.
그는 부랴부랴 준영에게 다가와서 방금 숀이 한 말을 전했다.
“진짜야?”
“예, 전혀 농담 같지 않았어요.”
준영은 곧장 숀에게 찾아가서 사실인지 물었다.
숀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짜 은퇴할 거야.”
“아니, 왜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한 거예요?”
“감독님께는 석 달 전에 말씀드렸어. 너희에게 비밀로 한 건 나 때문에 괜히 부담감을 안게 하기 싫어서였어.”
뮌헨 비행기 사고 이후 숀은 팀의 주요 고참 선수로 활약했다.
많은 득점을 하진 못했지만, 전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면서 팀의 승리를 견인해 왔다.
팀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분전한 그에 대해 동료들의 신뢰는 두터웠다.
아마 은퇴 결심을 알게 되었다면 만류했거나, 반드시 우승을 안겨 주자며 야단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뭐, 너무 걱정하지 마. 난 인생의 제2막을 공연하러 가는 중이니까.”
“혹시… 연극이나 영화 쪽에서 좋은 제안이라도 받았어요?”
실제 역사에서 그의 행보를 떠올린 준영의 물음에 숀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할리우드에서 오퍼가 왔어. 내 연극을 보고 호평을 했던 영국계 배우들이 추천을 해 줬다더군.”
‘역시…….’
숀도 30대에 접어들었다.
선수로서 충분한 활약을 했다고 여기고 있을 상황에서 배우라면 동경할 만한 무대에서 제안이 왔으니,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인터콘티넨털 컵까지는 뛰고 가지 그랬어요.”
알렉스의 섭섭한 표정에 숀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나보다 잘하는 동생들이 있는데 걱정 없지. 그리고 박수 칠 때 떠나는 게 기분이 좋은 법이거든.”
숀의 의지는 확고하다.
그리고 그가 배우의 길로 나가는 건 정해진 운명 같았다.
이에 준영은 기분 좋게 보내 주기로 했다.
“숀 형이라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도 만들었으니 대본 영화 같은 건 일도 아니죠. 안 그래요?”
“하하핫, 네 말대로야. 은막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 줄 테니 기대하라고!”
자신감이 넘치는 숀의 근사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준영은 앞으로 그가 출연할 영화들이 기대되었다.
원래 역사에서도 열연을 펼쳤던 영화들, 그리고 어쩌면 나올지 모르는 작품들까지도.
항상 지켜봐 주리라 마음먹었다.
***
실제 1959-60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터트린 건 푸스카스와 디 스테파노입니다.
푸스카스는 이후 1961-62 시즌 결승전에서도 해트트릭을 합니다만, 레알 마드리드는 흑표범 에우제비오를 앞세운 벤피카에게 5-3으로 패배했죠.
이후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한 선수로 AC 밀란의 피에리노 프라티가 있지만, 이후에는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챔스로 전환한 현대까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