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89화 (289/400)

Round 289. 진정한 국가대표

맨유는 후반전 준영의 중거리 슛과 종료 직전에 터진 바비 찰튼의 쐐기 골로 3 대 0의 완승을 거두었다.

맨유 팬들은 이 결과에 환호했다.

20세기 들어 3시즌 연속으로 FA컵에서 우승한 팀은 맨유가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기쁨을 누리던 팬들은 이후 언론을 통해 보도된 소식에 정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핑 조작 사건이라고?”

“일본인들이 캡틴 리가 약물 복용을 했다고 누명을 씌우려고 했대.”

“아니, 일본인들이 왜……?”

“나도 최근에 톨킨 교수의 책을 보고 알았는데, 한국과 일본은 우리 영국이랑 프랑스, 혹은 프랑스와 독일만큼 앙숙인가 봐.”

올 초에 옥스퍼드의 저명한 학자이자,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톨킨 교수가 한국과 관련한 책을 출판했다.

‘왕의 문자’라는 제목의 이 책은 한글의 창제 과정, 표기 방식과 체계 등을 소개하고 있었다.

일전에 준영이 건네주었던 훈민정음과 한국 관련 역사책들을 기반으로 저술된 것.

여기엔 King Sejong의 일대기와 업적,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한글이 어떤 탄압을 받았는가에 대한 내용도 실려 있었다.

“아무리 과거에 자기네 식민지였던 나라의 선수가 잘나가는 게 아니꼽다 해도 도핑 누명을 씌우려 하다니…….”

‘왕의 문자’를 쓴 저자 톨킨.

친구인 알버트의 집에 찾아온 그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해 전해 듣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건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될 뻔한 준영도 마찬가지였다.

“더 웃긴 게 뭔지 아세요? 사주한 놈이 블랙번에서 뛰고 있는데, 그놈의 숙소에서 스테로이드가 나왔답니다.”

“스테로이드?”

“근육 강화제의 일종인데, 100만분의 1그램만 체내에 들어가도 신체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 약물이죠. 당연히 두뇌도 포함됩니다.”

“맙소사…….”

붙잡힌 공범들의 실토로 주범인 가와부치 사부로가 체포되었다.

그는 자신의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은 지나치게 공격적인 감정을 보이는 가와부치의 모습을 수상하게 여겼다.

결국 추가 조사 결과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게 들통났다고.

“아무튼 그놈 때문에 블랙번 구단도 야단났다고 해.”

알버트의 말에 톨킨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째서? 혹시 구단에서 도핑을 강요하기라도 한 건가?”

“그렇지는 않네. 하지만 현재 풋볼 리그 규정상 도핑을 한 선수가 나오면 그 소속 팀은 승점 10점 삭감에 벌금이지.”

선수 관리 소홀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블랙번 로버스 입장에선 이번 사건이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블랙번은 올 리그 최종 순위 17위로 승점은 37점.

현재 강등이 확정된 22위 루턴 타운과 21위 리즈 유나이티드가 각각 30점, 34점이었다.

즉, 이번 징계로 승점 10점이 삭감되면 블랙번이 꼴찌가 되어 강등당하게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부정으로 그렇게 된다니……. 너무 가혹하단 생각도 드는군.”

“내 생각에도 그렇지만, 선처는 없을 것 같아.”

안 그래도 최근에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의 에레라 감독이 선수들 몰래 약을 먹이다 들통이 난 사건이 있었다.

영국 언론과 축구계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무척 비웃었다.

그런데 영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그냥 넘어갈 리 만무했다.

“뭐,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보게, 미스터 리. 한국 상황은 좀 어떤가?”

“예, 민관군이 협력해서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현재 임시 내각이 구성되었고, 연내에 대선을 다시 치르기로 결정했다고 들었다.

그 말에 톨킨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잘됐군. 마침 한국에 좀 다녀오고 싶었는데.”

“예? 한국에는 왜…….”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소설 작가가 아닌가. 이야기를 만들 새로운 소재나 영감을 얻자면 식견을 넓히는 게 중요하지.”

한국은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진 나라였다.

중국 통일 왕조의 100만 대군을 물리친 장군, 스스로 구세주를 자처했다가 미쳐서 반란군에 쫓겨난 왕, 자신이 세운 나라를 아들에게 빼앗기자 스스로 멸망시킨 군주 등등.

“여기에 백성들을 위해 글자를 만든 왕도 있고, 바다를 막아 나라를 구한 영웅도 있지.”

“뭐, 최근엔 국가의 독립에 헌신했다가 독재자로 타락해서 쫓겨난 분도 계시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긴 마찬가지.

전쟁으로 파탄 난 가난한 농업 국가가 반세기도 지나기 전에 손꼽히는 산업 국가로 성장한다.

그 나라의 축구대표팀은 월드컵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다가 갑자기 4강까지 가고, 월드컵 챔피언이자 세계 축구의 강자인 독일을 조 예선에서 탈락시킨다.

‘소설이라도 이런 얘기는 너무 개연성이 부족하지 않냐고 하겠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지금 역사가 바뀌는 중이라고 하지만, 완전히 엉뚱하게 엇나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아직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잔뜩 남아 있었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자유당 인사들에 대한 처벌이나 기근과 경제난 해결 등등.

그래도 이억관이 알려 주는 소식을 봐서는 충분히 희망적이었다.

“톨킨 선생님이 방한해 주신다면 다들 기쁘게 반겨 줄 겁니다.”

“하하, 일개 학자에 불과한 나를 어떻게 알고?”

“이미 신문에도 났습니다. 선생님이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왕을 소개하는 책을 냈다고요.”

미래에 한국의 톨키니스트들도 영광스럽게 생각하리라.

위대한 작가님이 발자취를 남기고 갈 테니까.

이에 준영은 톨킨의 방한을 아낌없이 지원할 생각이었다.

***

웸블리에서 FA컵 3연패를 이뤄 낸 영광을 뒤로하고, 맨유 선수들은 다시 다음 경기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5월 18일에 열리는 유러피언 컵 결승전.

상대는 독일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준결승에서 레인저스 FC를 6 대 1, 6 대 3으로 크게 이기고 결승에 올라왔다.

“웃긴 건 결승전은 레인저스의 연고지인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한다는 거죠.”

알렉스의 말에 준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 동네 사람들, 꽤 고민되겠는걸.”

재수 없는 앵글로 색슨족 놈들의 팀을 응원해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들 팀을 개박살 낸 독일 팀을 응원해야 하는가.

“뭐, 우리 팀을 응원하지 않겠어요? 절 포함해서 우리 팀에 스코틀랜드 출신이 여럿 있으니까.”

주전급 선수만 해도 고참인 숀 코너리를 비롯해 알렉스 퍼거슨, 데니스 로, 빌리 맥닐, 짐 박스터 5명이나 된다.

거기다 맷 버스비 감독도 스코틀랜드 출신이 아닌가.

이 정도면 알렉스 말대로 확실히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맨유를 응원할 만했다.

“결승전은 꼭 뛰고 싶어요. 제 입장에선 금의환향이나 마찬가지니까.”

알렉스는 글래스고에서 태어났고, 그곳을 연고로 한 퀸즈 파크 FC에 입단했다.

그렇기에 반드시 결승전에 출전해서 고향 사람들 앞에서 멋지게 골을 넣고 싶었다.

“그러려면 열심히 훈련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스쿼트 한 세트 더!”

“아악, 그것만은 제발……!”

그렇게 한바탕 훈련을 마치고 준영과 알렉스는 귀가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준영은 알렉스가 이번에 새로 산 차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미니구나.”

“미니? 아, 예. 모리스 미니 마이너예요. 오스틴 세븐이라고도 하고.”

브리티시 모터 컴퍼니, 약칭 BMC에서 만든 경차.

훗날 세계적인 브랜드 자동차가 되는 모델이다.

작년 8월에 출시된 이 자동차는 세련된 디자인에 저연비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기왕이면 말티즈를 사지.”

“저도 주장을 봐서 그 모델을 사고 싶었는데, 캐시가 이게 더 좋다고 해서요.”

준영의 지인인 애S턴 마틴의 회장 데이비드 브라운이 설립한 스마트 자동차에서 생산을 시작한 마T즈, 아니 말티즈도 시장에서 매우 잘 팔리고 있었다.

미니처럼 기름 덜 먹고, 미래 지향적인 깔끔한 디자인에 구조 또한 튼튼했기 때문.

단점이 있다면 미니보다 좀 더 비싸다는 점.

그래서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은 사람들은 미니 쪽을 선호하곤 했다.

물론 비용을 감수하고 말티즈를 선택하는 이도 있었다.

존 레논이 바로 그랬다.

“미니도 좋지만, 난 말티즈가 더 낫다고 봐요. 조작감이나 승차감이 더 좋으니까.”

‘당연하지. 저가로 만들어도 내가 가져온 미래 자동차 기술이 들어갔을 텐데.’

레논의 말에 준영은 씩 웃음을 지었다.

원래 역사에서 비틀즈 멤버들은 다 미니를 좋아했고, 존 레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달라진 역사 탓인지, 아니면 준영의 영향 때문인지 그는 미니가 아닌 말티즈를 선택했다.

“근데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뭐가?”

알렉스는 말티즈에 올라 시동을 거는 레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레논 저 녀석, 아직 운전면허를 못 땄…….”

“야-!”

무면허라는 말을 듣자마자 준영은 냉큼 레논을 차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축구계 레전드 플레이어가 된 사나이는 미래 레전드 싱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

「존 형님이 비폭력주의자라고요? 그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죠.」

손웅민이 펼쳐 놓은 노트북에는 동영상 플랫폼에 올라와 있는 인터뷰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영상에서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비틀즈의 베이시스트인 폴 매카트니.

이준영의 동서인 그는 젊은 시절의 비하인드 썰에 대해서 풀어놓았다.

「분명히 점잖은 사람이지. 그래, 당대 사람들에 비하면 확실히 그랬어요.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는 게 아무렇지 않던 시대에도 진짜 신사적이었으니까.」

당시 스타 선수들에게서 종종 있었던 염문도 실제로 나온 게 전혀 없었다.

몇몇 타블로이드에서 오드리 헵번과의 관계를 과장하기도 했지만, 실제론 서로 동네에서 아는 누나, 동생 사이로 대하는 정도였다고.

「브리지트 바르도 씨의 말에 따르면 그에게 협박과 폭행을 당한 적도 있었다던데요?」

「그 미친(삐-)의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어요. 아무튼 주먹을 쓸 때는 썼단 말이지. 1963년이었나. 그때 새 앨범 구상하면서 우리가 몰래 마리화나를 피운 적이 있는데, 그때 진짜 단어 그대로 피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어.」

당시 일이 떠올랐던지 폴은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트라우마가 확 박혀서 약물은커녕 담배도 피우지 않게 되었다고.

「뭐, 그래도 그게 다 우릴 위해서 그런 거니까. 동양 철학을 알고 싶다고 하니까 제대로 경험해 보라고 한국 사찰에서 참선을 추천하기도 했어요.」

폴의 말이 이어지는 와중에 한 장의 흑백 사진이 떠올랐다.

봉은사에서 참선하던 시절에 친분을 쌓은 승려, 법정과 찍은 사진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한국에서 존 형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 그와 아는 사이란 것만으로 정말 과분한 대접을 받았어요.」

「존 Y. 리가 당시 해외에서 한국이란 나라를 홍보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죠?」

「그것도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 여러모로 공헌한 것도 많으니……. 진정한 국가대표라 할 만하죠.」

영상을 보면서 손웅민은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뭔가 귀신이라도 씐 것처럼…….’

선배 염기윤에게서 이준영이 1960년대쯤에 실종되었다고 듣고 조사를 했는데, 얼마 전에 또 전혀 다른 행적이 나왔다.

어이없는 건 실종설을 얘기했던 염기윤이 ‘내가 언제 그랬냐.’라며 오리발을 내민 것.

‘1960년에 나온 행적도 실종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었지.’

관련해서 검색을 해 보면 4월 혁명 당시 탱크를 막고 지휘관을 설득하는 모습이나, 캄 노우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경기하는 장면의 사진이 나왔다.

그리고 FA컵 3연패를 하고 영국 여왕에게 트로피를 받는 모습, 글래스고 햄던 파크에서 열린 유러피언 컵 결승전 영상들이 나왔다.

‘이 결승전이 역대급 경기로 손꼽힌다던가?’

현재까지도 대회 최다 관중, 결승전 최다 득점 기록을 가진 경기.

호기심이 든 웅민은 당시 유럽에서 7천만 명이 시청한 그 경기 영상을 재생시켰다.

***

실제로 존 레논은 미니가 너무 타고 싶어서 면허도 없는데 구입해서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비틀즈뿐만 아니라 당시 미니스커트로 영국 패션계를 뒤흔든 메리 퀀트 역시 미니를 좋아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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