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83화 (283/400)

Round 283. 도핑 루머

“쿠벌러는 거의 10년 가까이 바르셀로나에서 뛰었습니다. 팬들에게서도 매우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요.”

실력이나 활약도 디 스테파노에 맞먹을 정도로 출중했다.

당연히 바르셀로나에서 그의 입지는 여느 선수들보다 높았다.

그런 쿠벌러 입장에서 부임한 지 2년도 안 되는 감독의 강압적인 지도가 마음에 들 리 만무했다.

“물론 에레라 감독 입장에서도 쿠벌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죠. 눈엣가시 같았지만, 함부로 제외할 수 없었습니다.”

아서의 말에 준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준결승 1차전에서 제외된 건 어째서죠? 전술적인 문제로 빠진 건가요? 아니면 부상?”

“부상은 아닙니다. 줄곧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했다고 하니까요.”

전술적인 문제 때문도 아니다.

쿠벌러는 디 스테파노처럼 발재간뿐만 아니라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능력도 탁월했다.

프리킥 능력도 뛰어나고 골 결정력 또한 빼어났다.

수비적인 전술을 쓴다고 해도 충분히 한 방을 터트릴 만한 선수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졌다는 건 감독과의 불화가 원인이 맞겠군요.”

“예, 프란세스크 회장이나 다른 임원들도 이 때문에 에레라 감독을 탐탁잖게 보고 경고나 제재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딱히 달라지진 않았지만요.”

더구나 준결승 1차전 승리로 에레라의 콧대는 더 높아졌다고.

쿠벌러 없이도 이겼으니 2차전에서도 그를 제외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에이스 길들이기인가…….”

“불화가 심했지만, 최근에 더 심해졌답니다. 정기적인 다과회 참석도 거부할 정도였으니까요.”

“다과회?”

“그게… 에레라 감독은 경기 전날에 항상 선수들을 모아 놓고 다과회를 한답니다.”

경기를 앞두고 단합을 유도하고 선전을 다짐할 목적이라고.

그럴듯하지만, 스파르타식의 폭압적인 지도 스타일과 어째 어울리지 않았다.

차라리 선수들의 기분을 풀어 줄 겸 맥주와 바비큐 파티를 했다면 더 수긍이 갔을 것이다.

“다과회라…….”

“존, 뭔가 냄새가 나지 않아?”

이미 뭔가를 눈치챈 듯, 던컨이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신이 추측하던 사실의 신빙성이 짙어졌다고 여기고 있었다.

“정황만 보고 함부로 단정할 수 없어.”

“만약에 내 의심대로 정말 에레라가 도핑을 하고 있다면?”

“그래도 실질적인 제재나 징계는 없을걸. 아직 UEFA에서는 도핑 금지 규정은 없으니까.”

하지만 도덕적인 지탄은 피할 수 없다.

더구나 맨유가 속한 풋볼 리그는 현재 엄격한 도핑 금지 규정을 적용 중이었다.

실제로 무작위 검사나 소지품 조사 등에서 발각이 난 몇몇 선수들이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어쨌거나 진짜든 아니든, 논란을 일으키기엔 충분할 것 같은데?”

“뭐야,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면서 논란을 일으키려는 거야?”

던컨의 말에 준영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쪽에서 도발한 만큼 갚아 줘야 하지 않겠어? 심리전은 자신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 줘야지.”

‘카더라’ 정도로 보도가 되어도 바르사는 팀 분위기가 뒤숭숭해질 것이다.

에레라 역시 주변의 의심에 부담감을 느낄 것이고.

“어떻습니까, 아서 기자님?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저도 이번 건을 조사하고 있지만, 확증을 잡지 못하면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보도되진 못할 겁니다.”

“그럼…….”

“저희가 아니라도 이런 자극적인 소재를 떠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많죠. 특히 타블로이드 쪽이요.”

그러니 불 지르는 건 어렵지 않다.

작전을 짜는 준영과 던컨, 아서는 사이좋게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

1960년 4월 28일 캄 노우.

오후 4시에 시작되는 유러피언 컵 준결승 2차전을 보기 위해 관중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오늘 경기 승패만큼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슈가 있었다.

“에레라 감독이 선수들에게 암페타민을 먹였다고 하던데…….”

“그런 헛소문을 믿어? 프랑코와 마드리드 놈들이 꾸며 낸 얘기라고!”

“하지만 정황이 의심스러운걸.”

“맞아. 쿠벌러가 감독 다과회를 거부한 것도 있고, 엔리크 겐사나가 환각 증세로 병원을 찾은 적도 있다고 하잖아.”

“다 거짓말이야! 거짓말!”

약물 논란이 터진 건 어제 아침.

영국 쪽 언론사에서 카더라로 시작되었지만, 오후가 되자 후속 보도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처음에 스페인 축구 팬들은 맨유가 떨어질 것 같으니까 영국인들이 수작을 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후에 국내 언론들이 보다 구체적인 보도를 내놓기 시작했다.

단지 바르사의 선전에 배가 아팠던 관영 매체들이 동참하고 나선 건 아니었다.

이전부터 의심스러운 정황이 포착되고 있었고, 이를 보도할까 말까 망설이던 언론사들도 이번 기회에 보도를 냈던 것.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바르사, 특히 에레라 감독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장에 도착하자, 기자들이 벌 떼같이 몰려들어 질문을 퍼부었다.

“에레라 감독님, 도핑 루머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쿠벌러 선수가 도핑을 거부해서 불화가 일어났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오늘 쿠벌러 선수가 출전할 수 있는 겁니까?”

질문 세례에 에레라는 ‘경기가 끝난 후에 이야기하겠다.’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이렇게 도핑 루머가 진화되지 않는 가운데, 기자들의 관심은 오늘 경기 출전 명단으로 쏠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GK:해리 그렉

DF:빌리 맥닐, 이준영(주장), 빌 포크스

MF:던컨 에드워즈, 바비 찰튼, 짐 박스터, 데니스 로, 레이 윌슨

FW:알렉스 퍼거슨, 브라이언 클러프

GK:안토니오 라마예츠(주장)

DF: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엔리크 겐사나, 시그프리드 그라시아

MF:이시드로 플로타츠, 마르티 베르제스

FW:루이스 수아레스, 졸탄 치보르, 율로지오 마르티네스, 산도르 코츠시스, 라슬로 쿠벌러

경기 시작 전에 발표된 출전 명단에서 기자들의 시선이 한 선수에게로 향했다.

“쿠벌러가 출전하잖아.”

“감독과의 불화나 도핑 의혹은 루머에 불과했나 보군.”

“모르지. 논란을 피할 의도로 출전시키는 건지도.”

여전히 시끄러운 상황에서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대기 중인 선수들이 필드로 입장했다.

입장하면서 맷 버스비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선전을 다짐하는 맨유 선수들과 달리,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에레라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다들 명심해. 우린 감독을 위해서 뛰는 게 아니라, 팀과 팬들을 위해 뛰는 거란 걸.”

“당연하지!”

쿠벌러의 말에 바르사 선수들은 모두 맞장구를 쳤다.

그들에게 있어 에레라 감독은 공공의 적.

비록 우승이라는 목표를 위해 같은 배를 타고 있지만, 선수를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그에게 호감을 느낄 수 없었다.

“1차전과 다르게 바르사가 꽤 공격적인 포진으로 나왔군.”

“유나이티드는 미드필드 쪽에 선수가 많아. 아무래도 수비에 신경을 쓰나 본데…….”

기자들이 카메라 렌즈를 맞추는 사이, 마침내 경기가 시작되었다.

***

바르셀로나는 초반부터 강공으로 나왔다.

측면에서 공을 몰고 들어온 쿠벌러가 부지런히 패스를 찔러 주며 찬스를 만들어 냈다.

“어이, 마르티네스! 이쪽이야!”

쿠벌러에게 공을 받은 마르티네스는 맨유 수비진 사이로 파고든 코츠시스를 보았다.

마르티네스의 날카로운 크로스가 날아들자 코츠시스가 뛰어 헤딩하려는 순간, 준영이 공중 경합을 하며 공을 박스 외곽으로 밀어냈다.

‘쳇, 정말이지 이 별종 한국 놈 상대론 헤딩을 따내기 쉽지 않군.’

‘역시 코츠시스. 포착 능력 하나는 뛰어나단 말이지.’

코츠시스는 움직임도 많지 않고, 본인이 뭔가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기회가 오면 귀신같이 마무리를 짓는 능력이 있었다.

거기다 점프나 헤딩 능력도 뛰어나 장신인 준영도 만만하게 볼 수 없었다.

‘뭐, 만만찮게 볼 놈은 이놈뿐만은 아니지.’

방금 헤딩으로 끊어 낸 공을 잡아챈 졸탄 치보르가 짐 박스터의 마크를 피하며 마르티네스에게 공을 넘겼다.

쿠벌러 쪽을 바라보던 마르티네스는 루이스 수아레스가 노마크인 것을 보곤 곧장 그에게 패스를 보냈다.

“찬스다!”

“아, 근데 오프사이드네.”

수아레스가 공을 잡기 무섭게 선심이 깃발을 들었다.

맨유의 3백 수비가 펼친 오프사이드 트랩이 제대로 발동한 것이다.

바르사 선수들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물러나는 사이, 맨유 선수들은 전열을 재정비했다.

천천히 전방을 둘러보았던 해리 그렉이 높고 길게 패스를 보냈다.

그러자 앞서 미드필드 지역까지 전진해 올라갔던 준영이 공을 따내서 측면으로 달려가는 데니스 로에게 패스를 전달했다.

“흥, 그럴 줄 알았지.”

바르사 수비수 그라시아가 공을 차단해 냈다.

중앙에 공격수가 둘뿐이다 보니, 공격 상황에서 맨유는 미드필더나 풀백이 측면에서 공격에 가담해야 했다.

이미 1차전에서도 그런 상황을 여러 차례 보았기에 막아 내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이제는 잽싸게 역공으로 나설 차례.

그라시아는 맨유 진영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쿠벌러를 향해 패스를 건넸다.

하지만 쿠벌러가 공을 받는 순간, 비호같이 달려든 던컨이 강하게 차징을 가했다.

“큭, 이런……!”

한차례 주춤했던 쿠벌러가 방향 전환을 하려 했지만, 던컨은 그가 돌아서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렇게 쿠벌러가 주춤하면서 바르사의 빠른 역공은 실패로 끝났다.

‘잉글랜드의 천재 던컨 에드워즈……. 1차전 때와 완전 다르군.’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던 쿠벌러는 치보르 쪽으로 패스를 건넸다.

하지만 그 패스는 빌리 맥닐에게 끊기고 말았고, 곧바로 맨유의 역공으로 전개되었다.

“주장, 받아요!”

맥닐이 전방으로 길게 올려 준 공을 준영이 잡아챘다.

자신들 페널티 박스 부근까지 올라온 준영을 보고 바르사 수비수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놈, 아까 수비 라인으로 돌아간 거 아니었나?’

‘언제 전방 지역까지 올라온 거야?’

어쨌거나 내버려 둘 수 없다.

존 Y. 리는 발재간도 좋고 공수에서 거의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었으니까.

겐사나가 길목을 막는 사이, 로드리게스가 준영이 돌아서지 못하도록 바싹 달라붙었다.

끈질기고 강력한 마크에 준영은 당해 낼 수 없었는지 이리저리 물러서다 터치라인 가까이 밀려나 버렸다.

“잘한다, 로드리게스!”

“그 꺽다리 원숭이를 라인 밖으로 밀어내 버려!”

홈 관중들의 함성에 들뜬 로드리게스는 준영을 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그런데 공이 아웃되기 직전, 준영이 밑동을 차서 띄워 올렸다.

그러곤 헤딩 리프팅을 하듯이 공을 통통 튀기며 잽싸게 박스 쪽으로 돌아섰다.

좀 전에 수세에 몰려 물러날 때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

흠칫 놀란 로드리게스는 파울을 감수하고 거칠게 준영을 걷어찼다.

하지만 걷어차여 넘어지기 직전, 준영은 낮고 빠르게 크로스를 올렸다.

그리고 중앙에서 잽싸게 기회를 포착한 브라이언 클러프가 날아오는 공을 받아 발리슛을 때렸다.

“막을 테면 막아 봐라, 고양이!”

마라카낭의 고양이, 라마예츠 골키퍼가 클러프의 발리슛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워낙에 강한 슈팅은 그의 펀칭에 아랑곳하지 않고 골라인을 넘어가 버렸다.

***

‘황금의 머리’라는 별명을 가진 산도르 코츠시스입니다.

기회가 오면 확실히 해결하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스트라이커이지요.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얼굴도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겼습니다.

스위스 월드컵에서 11골을 넣는 활약을 펼치면서, 월드컵 최고 공격수를 선정할 때 항상 순위권에 올라가 있는 선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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