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82화 (282/400)

Round 282. 에레라의 도발

1960년 4월 25일.

맨유 선수들을 태운 컨스텔레이션 여객기가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취재원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한 몸에 받는 맨유 선수단에게 풍채 좋은 장년의 신사가 다가왔다.

“어서 오시오, 유나이티드 여러분. 나는 FC 바르셀로나의 회장인 프란세스크 미로 산스요.”

“반갑습니다, 회장님.”

버스비 감독은 자신들을 환대하는 프란세스크 회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프란세스크는 맨유 구단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일단 홈구장에 경기하러 온 손님이기도 하고, 앙숙인 레알 마드리드의 콧대를 두 번이나 납작하게 만들어 줬으니까.

거기다 자기 팀 선수들이 1차전 맨체스터 원정에서 완승을 거두면서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이런 프란세스크의 눈에 맨유의 주장 이준영이 보였다.

“자네가 존 Y. 리로군. 듣던 대로 거인이구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로 산스 회장님.”

“당연히 환대해야지. 자넨 우리 팀의 명예 선수 아닌가. 하하핫!”

FC 바르셀로나의 명예 선수 이준영.

이 타이틀은 지난 시즌 준영이 레알 마드리드를 격파하는 데 공을 세웠다고 하여 수여되었다.

단순히 드립만 친 게 아니라 이후에 실제로 바르셀로나 유니폼까지 보내왔다. 그것도 준영의 백넘버인 5번까지 찍어서.

“어떤가? 명예 선수가 아니라 진짜 우리 팀 선수가 되어 보는 건?”

프란세스크 회장의 농담 반, 진담 반이 뒤섞인 제의에 준영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바르셀로나는 매력적인 팀입니다. 하지만 저는 유나이티드가 좋아요.”

“그래? 아쉽구만.”

입맛을 다신 프란세스크 회장은 더 권하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의 비서를 통역사로 붙여 주는가 하면, 훈련장도 맨유 선수들이 머무는 호텔에서 가깝고 설비도 좋은 곳으로 바꿔 주었다.

“좋은 사람이군.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할 줄 알아.”

“감독하곤 영 딴판이잖아.”

프란세스크 회장에 비하면 바르셀로나의 감독 에레라는 거만하고 무례한 면이 있었다.

그는 1차전이 벌어지기 전 인터뷰에서 퉁명스럽고 무성의한 모습을 보였다.

거기다 경기가 끝난 후 소감을 묻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유나이티드가 이번 시즌 리그 우승을 놓쳤다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쓰린 속을 긁어 대는 이 같은 빈정거림에 맨유 선수들이나 팬은 주먹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비겁하게 팩트 폭행을 하다니.’

어쨌건 못한 건 사실이니, 준영이나 맨유 선수들은 반박하지 못했다.

대신 2차전에서 만회하자는 생각에 묵묵히 훈련에 집중했다.

“반드시 이기자. 그 프랑스 감독에게 화끈한 맛을 보여 주는 거야!”

“Yes, Captain!”

호텔에 짐을 풀기 무섭게 선수들은 훈련장으로 나갔다.

1차전 완패를 극복하고 결승전에 오르기 위해서는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

맨유 선수들이 땀을 쏟는 사이, 코칭스태프는 28일 2차전에 써먹을 작전과 전술을 짜기 위해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지난 경기에 바르셀로나가 수비적인 전술을 쓰긴 했지만, 원래는 상당히 공격적인 팀입니다.”

“1차전에서 이겼고, 자기네 홈팬들이 보는 경기이니 원래대로 공격적으로 나오겠구만.”

“그럼 앞서 나오지 않았던 라슬로 쿠벌러도 출전하겠죠.”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라슬로 쿠벌러.

바르사 팬들도 그의 출격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대응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터.

“수비 중심 전술로 가는 겁니까?”

“아니, 수비에 신경을 써야겠지만, 움츠려야 할 이유는 전혀 없네.”

맨유가 기사회생하기 위해선 최소 2골 차의 승리가 필요하다.

2골 차 승리면 중립 지역에서 재경기, 그리고 그 이상이면 곧장 결승 진출이다.

“우리에겐 골이 필요해. 그러니 공격적으로 나가야지.”

물론 상대도 파악하고 대응해 올 것이다. 그에 관련해서 보다 세부적인 전술을 짤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맷 버스비 감독과 코치들은 호텔에 돌아와서도 머리를 맞대어 가며 열심히 작전을 구상했다.

그때, 유러피언 컵 취재 차 바르셀로나에 와 있던 영국인 기자들이 맨유 선수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몰려왔다.

“갑자기 왜들 저러지?”

“뭔가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은데…….”

선수들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머피 코치가 몰려오는 기자들을 막아섰다.

“인터뷰할 시간은 지난 걸로 압니다만?”

“코치님, 우린 인터뷰 때문에 온 게 아닙니다. 좀 전에 바르셀로나 쪽으로 취재 갔는데…….”

기자들이 분통을 터트리며 취재 중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낯빛을 딱딱하게 굳혔다.

***

유러피언 컵 준결승 2차전을 앞두고 바르사의 에레라 감독은 국내외 취재원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에레라 감독님, 결승전 상대는 누가 될 거라고 보십니까?”

“당연히 독일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지요. 1차전에서 레인저스에게 6 대 1의 대승을 거두지 않았습니까.”

레인저스가 2차전 홈에서 얼마나 만회할 수 있을지 몰라도 1차전에서 워낙 크게 패했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았다.

그건 에레레 감독뿐만 아니라, 기자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도 2차전은 프랑크푸르트만큼 대승을 거둘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상대는 지난 시즌 챔피언입니다만?”

“영원한 강자는 없습니다. 유나이티드는 이미 챔피언으로 위용을 잃었어요. 우리는 1차전에서 훌륭하게 이를 증명해 냈지요.”

에레라의 방금 발언에 영국에서 온 취재원들이 발끈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레라 감독은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우리는 이미 8강에서 울버햄프턴을 격파했습니다. 홈에서 4 대 0, 원정에서도 5 대 2의 대승을 거두었죠.”

에레라는 지난 8강 경기들을 떠올리며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공만 잡으면 전방으로 길게 뻥 차기만 하는 울버햄프턴의 축구는 정말 형편없었으니까.

“솔직히 울버햄프턴은 유러피언 컵 같은 대회에 출전할 자격이 있나 의심스러웠습니다. 전술도, 기술도 없었으니까요.”

“상대를 너무 폄하하시는 게 아닌지?”

“어디까지나 진실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아무튼 그때 잉글랜드 축구나 선수들의 스타일을 잘 알 수 있었죠.”

이후에 준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만났다.

유러피언 컵 2연패를 한 팀답게 이들은 울버햄프턴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전술이나 선수들의 기량 등이 한 차원 높았던 것.

그러나 그들 역시 자신의 전술을 당해 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제가 2차전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다고 확신하는 이유가 이겁니다. 유나이티드는 이미 제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아주 자신만만한 발언이시군요.”

“그럴 수밖에 없죠. 솔직히 축구 종가는 이미 밑천이 드러났습니다. 유러피언 컵이나 월드컵 우승도 따져 보면 외국인 선수의 활약으로 이룬 게 아닙니까.”

대차게 선을 넘는 발언에 영국인 기자들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는 당신네 팀에도 헝가리 선수들이 뛰고 있잖아!”

길길이 날뛰는 영국 기자들의 반응에 에레라는 사과하기는커녕 비웃음을 지었다.

그 바람에 인터뷰는 중단되었지만, 에레라가 던지고 간 불씨는 뜨겁게 활활 타올랐다.

***

“진짜 미친놈이군.”

아침에 영자(英字) 신문을 본 맨유 선수들은 에레라의 발언에 혀를 내둘렀다.

어제 찾아온 기자들에게서 대강 전해 듣긴 했다.

하지만 신문에 적힌 구체적인 발언들을 보자니 정말 대차게 선을 넘어 불 질러 놓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말 오만방자하군. 그렇게나 우리가 우습게 보였나?”

‘네가 할 소리냐?’

오만하기로 악명 높은 브라이언 클러프가 에레라를 비난하다니.

준영은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친 게 아니라면 의도적인 도발이겠군.’

상대의 평정심을 잃게 하여 자신의 의도대로 경기를 이끌어 가는 심리전의 대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2002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 대표팀 사령탑이던 히딩크 감독만 해도 그랬다.

에레라도 그와 마찬가지였던 모양.

그러나 도발당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문제는 에레라의 이 발언이 단지 맨유 선수들만 격발시킨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저녁에 리즈와 나눈 통화에서 알 수 있었다.

“이미 영국 현지에서도 에레라 감독의 발언이 알려졌다고?”

(네, 아주 난리도 아니에요.)

맨유 팬들뿐만 아니라 영국 국민들도 분노했다.

프랑스인지 아르헨티나인지 출신도 불분명한 놈팡이가 감히 축구 종가를 씹다니!

그런데 그 분노는 바르셀로나뿐만 아니라, 울버햄프턴이나 맨유에게로도 튀었다.

대체 얼마나 형편없는 경기를 했으면 상대가 저런 식으로 비아냥거리냐는 것.

(만약 이번에 유나이티드가 지면 선수들은 도버 해협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과격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거참,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네.”

일본에겐 절대 지면 안 된다고 했던 어떤 늙은 전직 대통령이 떠올랐던 준영은 피식 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무튼 현재 영국 내 분위기는 과거 무적함대가 영국에 침공해 올 때만큼이나 들끓어 오르고 있다고 했다.

하필이면 여왕의 이름도 그때와 같다 보니 이를 끼워 맞춰 드립 치는 사람들도 있다고.

“거참, 2차전은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 되겠네.”

(미안해요. 괜한 얘기를 해서 부담 준 건 아닌지…….)

“아냐. 적절한 자극은 나쁘지 않으니까.”

에레라의 발언으로 맨유 선수들의 전의는 뜨겁게 불타올랐다.

물론 이게 바르사에 떨어질 불벼락이 될지, 아니면 에레라의 의도대로 맨유를 자멸시킬 불꽃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떠날 때도 얘기했지만 절대 다쳐선 안 돼요. 알겠죠?)

“네네, 여왕님.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준영이 리즈와 통화를 마쳤을 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그의 방으로 던컨과 웬 사내가 들어왔다.

“던, 무슨 일이야? 그 사람은 누구지?”

“지난번에 내가 얘기했던 기자야.”

“아, 너랑 친분이 있다는?”

붉은 머리에 주근깨가 많은 사내는 준영과 악수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아서 해리슨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리 선수가 라슬로 쿠벌러의 동향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말입니다.”

안 그래도 아서는 그와 관련해 조사를 하고 있었다.

우승 팀 감독과 팀 에이스 선수와의 대립은 대중의 눈길을 끌 좋은 소재였으니까.

“일단 조사해서 알게 된 건 에레라 감독의 지도 방식이 굉장히 스파르타적이라는 겁니다.”

에레라는 금연가였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심지어 음식조차 가리고 물도 함부로 마시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습관을 선수들에게도 강요한 점이다.

“그게 문제가 되나요? 영국에도 금주와 금연을 단속한 지도자들이 있잖아요. 허버트 채프만 감독만 해도…….”

“물론 그렇죠. 하지만 에레라 감독은 도를 넘었어요.”

그는 엄격한 규율을 세우고, 많은 양의 훈련을 선수들에게 강요했다.

심지어 선수들 숙소의 침대 시트가 삐뚤어져 있는 것까지 지적할 정도로 군대식으로 굴려 댔다고.

‘그게 무슨……. 바르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특무대냐?’

확실히 그런 지도 방식으로 팀은 강해졌고, 숙적인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고 우승도 차지했다.

문제는 너무 강압적인 그의 지도 방식에 대해 불만을 가진 선수들도 많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반발하는 선수가 바로 라슬로 쿠벌러였다.

***

엘레니오 에레라는 UEFA에서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10대 감독 중의 한 명으로 선정한 사람입니다.

카테나치오를 완성시켜 인테르의 전성기를 이끈 경력과는 별개로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훈련 중에 선수들이 구토할 정도로 몰아붙였는데, 부상당한 선수도 이 강훈련에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깁스를 한 선수도 훈련을 시켰다고 할 정도이니……;;;

거기다 자기 팀 선수가 연애에 빠져 훈련을 게을리하자, 그 선수의 애인을 꼬셔 갈 제비를 고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악행은 따로 있는데, 그건 스포일러급이라 여기서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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