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71화 (271/400)

Round 271. 승리를 위하여

“잘했어요, 주장!”

“속이 다 시원하더라니까!”

준영의 주변에 모여든 동료들이 다들 칭찬과 함께 엄지를 치켜세웠다.

물론 득점한 것을 두고 말한 것이지, 골 셀레브레이션에 대한 평가는 아니었다.

‘21세기였으면 얄짤없이 징계감이었겠지.’

미래에는 웃통을 벗어 던지면 옐로카드, 거기다 정치적 발언이나 제스처를 취했다간 추가로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시대는 정치가 스포츠에 개입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다.

그나마 영국에서는 이런 일이 드물었다.

몇몇 외국인 선수들이 차별에 반대하는 제스처를 취한 게 고작이었다.

‘방금 세리머니가 한국에 보도되면 자유당 권력자들이 피꺼솟하겠군.’

하지만 먼저 피꺼솟하게 만든 건 자유당 정권이다.

단지 불의에 항거하던 어린 학생을 끔찍하게 죽이고 시신을 유기했기 때문이 아니다.

어제 준영은 한국 대사관으로부터 이런 연락을 받았다.

‘본국의 상황이 심상치 않으니, 이준영 선수도 이를 수습하는 데 협조하십시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빨갱이들의 선동에 놀아나지 말라’는 당부의 발언을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아마 이런 발언이 맨체스터 가디언이나 타임지 등 저명한 해외 언론에 실리면 정부의 선전에 용이할 거라 본 모양이다.

물론 준영은 자유당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그네들의 술책에 화가 났기에 ‘독재 타도’ 골 셀레브레이션을 하게 되었다.

‘곽영주가 본다면 당장 욕설 전화가 날아오려나? 어쩌면 간접적인 보복을 하려 들지도…….’

뭐, 그런 걱정은 일단 경기가 끝난 다음으로 미뤄야 한다.

당장 싸워야 할 상대는 자유당이 아니라 리버풀이니까.

선제골을 내준 그들은 조금도 당황하거나 맥이 빠진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독이 바싹 올랐다.

“자,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이제부터 리버풀이 맹공으로 나올 거다!”

“Yes, Captain!”

전열을 빠르게 정비한 리버풀은 양쪽 측면을 활용해 공격의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그 측면 공략에 활발히 나서는 건 이안 캘러헌.

그는 좌우를 오가면서 틈만 나면 측면 공간을 파고들었다.

그런 그의 움직임에 펠레와 로저 헌트, 알란 아코트가 호응해서 움직여 주면서 맨유 수비진을 흔들어 댔다.

하지만 준영과 바비 찰튼이 적절히 수비 빈 공간을 채워 주면서 리버풀의 공격을 무산시켰다.

“역시, 유나이티드의 수비는 만만찮군.”

“저놈들이 작정하고 내려앉으면 뚫을 수 있는 팀이 거의 없을 거다.”

“그래도 우리 리버풀은 뚫을 수 있을 거야!”

콥스가 희망을 품으며 응원을 펼치는 가운데, 리버풀이 공을 잡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졌다.

연방 필드 상황을 살펴보던 준영은 얼굴을 찡그렸다.

‘라인이 너무 내려왔어!’

공수 간격이 지나치게 떨어진 건 아니다.

하지만 수비에 치중하느라 전체적으로 너무 밀려나 있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맨유를 밀어붙인 리버풀 선수들은 골키퍼만 제외하고 후방의 수비수들까지 중앙선을 넘어와서 공격을 지원하고 나섰다.

‘과감하게 나오는군. 우리 편 역습 한 방에 그대로 뚫려 버릴 수 있는데.’

물론 리버풀도 대비를 하고 있었다.

볼 점유율과 활동량을 높이면서 역습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

한 골 얻어맞고 오히려 집중력이 더 좋아졌는지, 꽤 안정적이고 날카로운 패스 플레이를 펼쳤다.

여기에 리버풀 공격수들도 전방에서부터 보다 적극적인 견제, 아니 압박을 시도했다.

‘이 녀석들, 우리가 하는 전술을 써먹고 있잖아.’

‘하긴, 감독이 대놓고 정탐하러 오곤 했으니…….’

리버풀 감독 빌 섕클리는 틈만 나면 올드 트래퍼드나 클럽 하우스 오스길리아스를 찾아왔다.

그러면서 마치 맨유의 코칭스태프인 것처럼 조언과 의견을 내놓곤 했다.

그런 식으로 도움을 많이 주기도 했지만, 훔쳐 배운 것도 제법 많았다.

‘하지만 흉내 내는 놈들에게 질 수 없지!’

펠레의 움직임에 주목하던 던컨은 그가 있는 쪽으로 패스가 전달되자 곧장 인터셉트를 시도했다.

‘끊었… 이런!’

던컨의 발에 맞은 공은 펠레 뒤쪽에 있던 리버풀 선수 토마스 리쉬먼에게 흘러갔다.

리쉬먼은 살짝 띄우는 논스톱 패스로 다시 펠레에게 공을 보냈다.

펠레가 발등으로 그 공을 박스 안쪽으로 떨어트린 순간, 빌리 맥닐의 태클이 날아들었다.

삐익-!

“페널티킥… 은 아니군.”

“맥닐 녀석, 좀 더 빨리 나와서 막았어야지!”

맨유 원정 팬들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펠레는 자신이 얻어 낸 프리킥을 처리할 준비를 했다.

일전에 엄청난 UFO슛을 봤다 보니, 준영과 맨유 선수들의 대응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젠장, 프리킥 위치가 너무 가깝잖아!”

“바싹 밀착해! 오른쪽으로 좀 더 움직이고!”

골키퍼 해리 그렉이 부지런히 수비벽을 조정하는 가운데, 펠레는 프리킥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그냥 단순하게 가 볼까?’

결정을 내린 그는 바로 공을 향해 달려들며 슈팅을 날렸다.

준영과 수비벽을 선 맨유 선수들은 일제히 뛰어올랐다.

그러나 펠레의 슛은 그들의 발밑으로 지나갔다.

“이런!”

깜짝 놀란 해리 그렉은 지면을 스치며 날아드는 슈팅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공은 골라인을 넘어가 버렸다.

“Nice Goo-ooal!”

“역시 펠레! 믿고 있었다고!”

안필드에 펠레의 이름을 연호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에 펠레는 더욱 크게 외치라는 듯이 두 팔을 흔드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를 바라보는 맨유 선수들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브라질 애송이는 진짜 축구의 신에게 축복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그랬다면 벌써 월드컵을 들고 있었겠지.”

“아무튼 더 이상 애송이라고 깔볼 수준은 아니야.”

빌리 맥닐은 다른 선수들보다 더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파울 탓에 실점을 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저 녀석, 저와 동갑이라죠? 앞으로도 계속 맞붙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하네요.”

맥닐의 하소연에 준영이 그의 등을 철썩 후려쳤다.

“벌써부터 깜깜하면 어쩌냐. 당장 이 경기도 끝나지 않았는데.”

“아, 그렇죠…….”

머리를 긁적이는 맥닐에게 준영이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어차피 경기하다 보면 실점은 나게 되어 있어. 자의든 타의든 간에 말이지. 이미 먹은 골은 잊어버려. 거기 미련을 두고 있으면 다음 실점을 막지 못하게 돼.”

“되풀이하지 않는 게 중요한 건가요.”

“그래, 공격수든, 수비수든, 골키퍼든… 다들 이기기 위해 경기를 하는 거니까.”

승리를 위하여.

준영의 그 말이 맥닐의 가슴에 박혔다.

“고마워요, 주장. 우리 팀이 이길 수 있도록 끝까지 힘낼게요.”

“그래, 그래야 레전드가 된다.”

후배 수비수를 도닥여 준 준영은 다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점수는 1 대 1.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경기의 흐름은 리버풀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일단 그 흐름을 막아 내기 위해 그는 다시 부지런히 필드를 뛰어다녔다.

***

전반을 1 대 1로 마친 양 팀은 후반에도 팽팽하게 경기를 이어 나갔다.

아니, 경기 흐름은 후반전에 더욱 빨라졌다.

마치 파도가 들어왔다가 빠지는 것처럼, 리버풀의 거센 공격이 진행된다 싶다가도 이내 맨유의 맹공이 펼쳐지곤 했다.

그렇다 보니 라디오 중계 캐스터는 입을 쉴 틈이 없었다.

「이안 캘러헌이 유나이티드 박스 쪽으로 크로스! 수비수 빌리 맥닐이 헤딩으로 걷어 냅니다. 이를 받은 던컨 에드워즈, 빠르게 리버풀 진영으로 치고 올라갑니다!」

부지런히 필드를 살피며 전진해 나가던 던컨은 접근해 온 수비수를 스텝 오버로 제쳐 내고 측면 깊숙하게 들어갔다.

‘크로스?’

던컨을 마크하러 나왔던 리버풀 수비수 딕 화이트는 곧장 몸을 날렸다.

하지만 던컨은 절묘한 턴 동작으로 그를 벗겨 내고는 문전으로 직접 치고 들어갔다.

“빅 던크가 온다! 막아!”

“슛을 못하게 하란 말이야!”

한차례 접으며 달려드는 로니 모란을 뿌리친 던컨은 이후 재차 접는 동작으로 또 한 번 수비수를 제쳐 냈다.

펠레 못지않은 빠르고 부드러운 드리블에 리버풀 팬들이 경악한 그 순간, 던컨의 발끝에서 마침내 슈팅이 터졌다.

까앙-!

던컨이 날린 강슛이 골키퍼 로버트 슬레이터의 손에 맞고 크로스바 하단을 때렸다.

그리고 골대 안으로 떨어지는 공을 골키퍼가 황급히 밖으로 쳐 냈다.

‘골인된 거 아닌가?’

중앙에서 쇄도하던 준영이 리바운드 볼에 발을 댔지만, 수비수의 몸을 맞고 골대 위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코너킥 판정을 내리는 주심에게로 맨유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방금 그 슛 들어갔다고요!”

“분명히 라인을 넘었어요!”

“똑똑히 봤다고! 골대 뒤쪽에 있던 기자들에게 물어봐요!”

던컨의 골을 인정해 달라.

이러한 맨유 선수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주심은 고개를 저었다.

뭔가 애매한 건 사실이지만, 선심에게서도 별다른 언급이 없다 보니 골로 인정할 수 없었다.

“젠장, 분명히 들어갔는데!”

“됐어, 던. 지나간 거 미련 두지 말고 코너킥 공격이나 잘해 보자.”

솔직히 아쉬운 건 준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심판의 판정이 절대적이니,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여긴 적지인 안필드이니, 판정에서 손해 보는 건 감수해야지.’

마음을 다잡는 사이, 코너킥이 날아왔다.

공은 수비수들의 집중 견제를 받는 준영의 머리 위를 지나, 약간 외곽으로 이동하고 있던 데니스 바이올렛에게로 향했다.

껑충 뛰어오른 데니스는 떨어지는 공을 골대 쪽으로 돌려놓았다.

텅-!

“아아악!”

슈팅이 골포스트를 맞고 나간 순간, 데니스 바이올렛은 비명을 터트렸다.

노골 탓이 아니라, 착지하던 중에 왼발을 크게 접질렸기 때문.

“데니스, 괜찮아요?”

“빨리 의무팀 좀……!”

경기가 잠시 중단된 가운데, 맨유 팀 닥터가 황급히 달려왔다.

데니스의 발목 상태를 살펴보던 닥터의 얼굴이 납빛으로 물들었다.

“뼈는 괜찮은데 인대가 늘어난 것 같군.”

“심각한 겁니까?”

“일단 오늘 경기는 어렵다고 봐야지.”

안 그래도 기우뚱하며 점프할 때 뭔가 불안해 보이더니만.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날린 헤딩슛이 득점으로 이어지지 못하다 보니, 데니스의 마음은 더욱 쓰릴 수밖에 없었다.

“크윽, 이거 놔요. 난 아직 뛸 수 있어!”

“고집부리지 마! 그러다 부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데니스가 들것에 실려 나오자, 머피 코치는 서둘러 선수들에게 사인을 보냈다.

후반전 남은 시간은 약 20분.

10명으로 줄어들었으니, 포메이션에도 변화를 주어야 했다.

“존, 앞쪽으로 나가! 앞에서 공을 받아 주고 상대 수비를 견제해 줘!”

머피 코치는 데니스가 빠진 위치에 준영을 전진시켰다.

중앙에 장신 공격수가 있으면 공격을 단순하게 할 수 있고, 상대 수비도 그만큼 묶어 둘 수 있으니까.

특히 체력이 좋고 활동량이 많은 준영이라면 공격진의 빈자리를 쉽게 메워 줄 수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 대처로군. 그러나 지금 우리 팀을 상대로 그런 미봉책은 통하지 않아.’

빌 섕클리 역시 필드의 선수들에게 사인을 보냈다.

맨유의 악재가 딱하긴 했지만, 그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

갑자기 인터넷이 끊겨서 뭔 일인가 했습니다……;;;

AS센터에 전화해도 통화 중이라고만 하고, 덕분에 사무실의 애꿎은 모뎀과 공유기만 타박을 당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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