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67화 (267/400)

Round 267.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

노을 진 하늘만큼이나 붉게 물든 땅.

수많은 사람들의 주검이 그 땅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쓰러진 사람들은…….

‘학생들이잖아.’

전쟁이라도 난 듯한 풍경에 준영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학생들이 다친 친구들을 부축해서 허둥지둥 거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총을 든 경찰과 몽둥이를 든 건달들이 쫓아왔다.

금방 따라잡힌 학생들은 그들에게 무참하게 짓밟혔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생지옥과 같은 풍경에 절로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지?’

분통을 터트리고 있던 준영은 쓰러진 학생들 틈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자신과 무척이나 흡사한 용모의 어린 학생.

그는 바로…….

“준, 괜찮아요?”

리즈의 물음에 준영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좀 전의 끔찍한 광경은 사라지고, 닐스 보어 박사가 강연하는 모습이 두 눈에 들어왔다.

자신에게 지옥 같은 풍경을 보여 준 루이스 대령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왜 그래요? 어디 피곤한 거예요?”

리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준영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괜찮아. 무엇 때문인지는 강연 끝난 뒤에 알려 줄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간단히 설명할 수 없어. 그러니까 지금은 강연을 들어. 노벨상 받은 분 강연을 듣는 게 흔한 일이 아니잖아.”

준영의 권유에 리즈는 다시 보어 박사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쉬 걱정이 가시지 않았던지, 준영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를 홀로 두지 않겠다는 듯이.

***

특별 강연이 끝난 후.

준영과 리즈는 인적이 뜸한 장소로 와서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아버지가 나타났다고요?”

“그래, 잘못 본 게 아니라 진짜였어. 지난번에 꿈에서 보았을 때처럼 뭔가 예지하는 풍경을 보여 주셨지.”

그러면서 준영은 루이스가 자신에게 보여 줬던, 학생들이 경찰과 깡패들에게 짓밟히는 광경에 대해 설명했다.

“앞으로 한국에서 혁명이 벌어졌을 때 상황을 보여 주신 것 같아. 실제로도 학생들이 시위에 나서서 많이 희생되었다고 하니까.”

“그럼 아버지는 그 학생들을 구하라는 뜻으로 보여 주신 건가요?”

“단순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아. 쓰러진 학생들 틈에 날 닮은 학생도 있었으니까.”

“준을 닮았다면… 준의 할아버지 말인가요?”

“그래, 할아버지의 신변이 잘못될 수 있다고 경고해 주는 것 같아.”

할아버지가 잘못되면 자신의 존재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루이스 대령이 일부러 대낮에 나타나서 그런 광경을 보여 줄 이유가 없으니까.

“그럼 전에 논의한 대로 시행해야겠군요.”

“그래, 혁명이 나기 전에 억관 아저씨 가족이랑 할아버지네를 피신시켜야지.”

마산에서 시작된 4.19 혁명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전역으로 확산된다.

그렇기에 준영은 혁명이 발발하기 전에 타이완이나 홍콩 쪽으로 피신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리 셰프의 가족은 몰라도 준의 할아버지 가족은 어떤 핑계로 피신을 시킬 거죠? 납치라도 할 거예요?”

“그건 최악의 경우에 그럴 거고, 마침 적당한 건수가 있으니 그걸 이용하면 될 것 같아.”

준영은 억관에게 들은 정보를 이용하기로 했다.

필립이 할아버지 이강윤에게 전해 들었다는 고조할아버지의 동생의 이야기.

독립운동하러 만주에 갔다는 그분의 이야기에 살을 덧붙일 것이다.

그럼 할아버지의 가족들도 관심을 보일 테니까.

“아무튼 잘되었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일어날 혁명도 피 흘리지 않고 무사히 끝났으면…….”

“그래, 그렇게 되어야지.”

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가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준영은 그 수레바퀴가 부디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나가기를 바랐다.

그게 아무리 필연이고, 숙명이라 할지라도.

***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한 손웅민은 2029년 4월 현재 국내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러면서 수원 블루윙스의 어린 유소년 선수들을 가르치며 현장 경험도 쌓아 나갔다.

“내년엔 영국에서 수업받을 거라고?”

국대 선배 염기윤의 물음에 손웅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토트넘 쪽에서 모든 편의를 봐줄 테니까 핵심 코칭 자격증을 따래요.”

“캬, 레전드가 확실히 좋긴 좋구만.”

UEFA 코치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다면 세계 어디서든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다.

토트넘에서는 손웅민이 UEFA 프로 레벨까지 수료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고.

“그러다 토트넘 감독 되는 거 아니야? 한국 축구인이 프리미어리그의 감독이 된다……. 이야, 전대미문 아니냐, 이거?”

“전대미문이요? 한국인 프리미어리그 감독은 옛날에 이준영 선생이 먼저 하지 않았어요?”

아니, 이준영은 구단주만 맡았던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국 축구계에 대단한 업적을 남긴 퍼스트 레전드인데, 왜 제대로 생각나지 않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한 적도 없는데.

“이준영 선생은 감독을 안 했어. 선수 생활하다 갑자기 실종된 사람이 무슨 감독을 하냐?”

“예? 실종이라니요?”

전혀 뜻밖의 이야기에 손웅민은 깜짝 놀랐다.

그는 2002년 월드컵까지 보고 세상을 뜬 게 아니었던가?

분명히 그리 알고 있는데 왜 또 엉뚱한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너 몰랐구나. 이준영 선생은 1960년 4월에 갑자기 실종되었어.”

“정말입니까?”

“그래, 보라고.”

염기윤은 손에 든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서 손웅민에게 보여 주었다.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이준영의 생몰 부분이 ‘1934~?’로 표시되어 있었다.

“아니, 어쩌다 실종이 된 거죠?”

“자세한 건 몰라. 그때 갑자기 한국에 입국했는데, 너도 알고 있듯이 그때가 우리나라 최고 혼란하던 시기 아니냐.”

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는 이미 한국에 정치적인 소요 사태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고 한다.

예전부터 정재계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상황을 파악했을 거라고.

“뭐, 여러 가지 설이 있어. 이승만을 찾아가서 하야를 요구했다가 인왕산 어딘가에 생매장당했다는 둥, 시위에 휘말려 총격을 당한 그를 경찰들이 몰래 파묻었다는 둥…….”

심지어 혼란한 와중에 북한 공작원들에게 잡혀 납북되었을 거라는 설도 있었다.

1960년대 이후로 북한 축구가 굉장히 강해졌는데, 이준영이 북으로 끌려가서 북한 선수들을 지도해서 그런 게 아니냐는 것.

물론 북한 축구인들은 이를 부정했다.

“그 사람, 김일성 개새끼 했다면서요?”

“그랬나? 그럼 간첩들에게 죽었을지도? 아무튼 확실하게 밝혀진 건 없어.”

염기윤의 말에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손웅민이 그 자리를 떠났다.

“야, 웅민아, 어디 가냐?”

“알아볼 게 좀 있어서요!”

뭔지 모르지만, 뭔가 자꾸 바뀌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단순히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이준영에 대해서,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대해 좀 더 확실히 알고 싶었다.

***

1960년 3월 8일 저녁.

대선을 일주일 정도 앞둔 가운데, 동대문 운동장에서 한국과 영국의 친선 축구 경기가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이뤄진 친선전이지만, 사전에 많은 홍보를 한 덕분에 경기장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경기는 언제 하는 거지?”

“아, 이제 나온다!”

필드로 나오는 선수들을 본 관중들은 이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파란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 때문.

파란 유니폼을 입지 않은 건 아니지만, 최근에 국가대표 유니폼은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왜 푸른색으로 돌아간 것일까?

그 의문은 잠시 후 선수들을 격려하러 나온 이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이기붕이잖아!”

“아니, 그럼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게 설마…….”

자유당을 상징하는 색깔은 청색.

선수들이 푸른 유니폼을 입은 것도 혹시 그런 이유가 아닌지?

정말 그렇다면 이 경기도 자유당의 선거 운동으로 진행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새끼들, 장면 박사 유세는 온갖 수작으로 훼방을 놓더니!”

“우-! 우!”

이기붕이 시축을 하려고 나서자, 관중석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야,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야유했어?”

“이런 빨갱이 같은 새끼들!”

경기장 치안을 맡은 동대문 깡패들이 눈을 부라렸지만, 관중들은 시치미를 뚝 떼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야 이 새끼야! 너지? 네가 그랬지?”

“뭐라고? 생사람 잡지 마쇼!”

“이게…….”

동대문파의 행동대장이 관중 한 사람을 지목해서 멱살을 잡았다.

당장이라도 끌어내려는 그의 행동을 유지광이 만류하고 나섰다.

“그만둬. 경기 시작 전에 소란을 만들 셈이냐?”

“하지만 형님…….”

반발하던 행동대장은 유지광이 날카롭게 치켜뜬 눈에 움찔하며 물러났다.

입에 담배를 문 유지광은 손을 흔들며 퇴장하는 이기붕과 그의 수행원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적당히 해도 될 일을 꼭 이렇게 티를 내려고 하나? 자제해도 시원찮을 판에…….”

지난달에 대구에서 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다.

장면의 선거 유세가 대중의 주목을 받는 걸 원치 않았던 정부에서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등교를 지시했기 때문.

당연히 학생들은 반발했고, 8개 학교 1,200여 명의 학생들이 이틀간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경찰들에게 진압되었지만, 그 바람에 민심은 격앙되었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크고 작은 시위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말 이대로 저치들에게 붙어 있어도 괜찮을지 모르겠군.”

유지광이 한숨을 쉬는 가운데 경기가 시작되었다.

득점은 아주 이른 시간에 터졌다.

전반 5분, 정순천이 올려 준 크로스를 최정민이 정확한 타이밍에 뛰어들며 헤딩골을 성공시킨 것.

기선을 제압한 한국 대표팀은 8분 후에 또 한 골을 추가했다.

발 빠른 돌파로 측면을 허물고 들어간 최정민이 멋진 휘어 차기로 영국 대표팀의 골대를 흔들었다.

하지만 연속 골을 터트린 최정민의 반응은 담담했다.

아니, 짜증이 나려 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예상보다 훨씬 형편없잖아.’

그도 이번에 방한한 영국 대표팀이 진짜 정예는 아닐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지금 영국은 한창 시즌 중인 데다, 머나먼 극동 아시아에 자신들의 일류 선수들을 파견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2, 3군 수준의 선수들은 오겠거니 했는데, 정말 기대 이하였다.

대다수 선수들이 거칠기만 하고 발재간이나 움직임이 형편없었다.

대표팀 막내로 뽑혔던 조윤옥이 뛰고 있는 올덤 애슬래틱보다 못해 보였다.

“또 골이다!”

“이번엔 문정식이 넣었어!”

“근데 영국 대표팀이 이렇게 약한가?”

한국 대표팀의 3 대 0 리드.

하지만 대다수 관중들은 기뻐하기보다 의아해할 따름이었다.

축구 종가, 그것도 지난 월드컵 우승을 한 나라의 대표팀이 아닌가.

아무리 멀리 한국까지 와서 피곤하다곤 해도 이렇게 형편없을 수 있을까?

다들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최정민이 문전을 돌파하며 또 한 골을 넣었다.

그의 해트트릭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저것들, 순 가짜잖아!”

“때려치워라, 이것들아!”

“어디서 사기를 치는 거야!”

여기저기서 야유와 욕설이 터져 나왔다.

급기야 필드로 병이나 쓰레기를 집어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시민 여러분, 민주 시민으로서 질서를 지켜 주십시오!」

경기 진행요원들이 방송으로 자제를 요청했지만,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 관중들의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멈추지 않을 수레바퀴가 무섭게 돌기 시작했다.

예정보다도 더 빠르게.

***

2010년 9월 8일, 바레인은 토고 대표팀을 초청하여 친선전을 벌였고, 3 대 0의 가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토고 축구협회에서 이 친선전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즉, 바레인 원정에 참여한 토고 선수들과 친선전을 주선한 에이전트는 사기꾼들이었다는 거죠.

더 어이없는 건 이 사기극이 벌어진 건 일주일 뒤라는 것.

소설보다 더한 사기극이 그리 옛날도 아니고 겨우 10여 년 전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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