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64화 (264/400)

Round 264. 다가오는 폭풍

“브라이언 앱스타인이요?”

“응, 직접 찾아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어.”

준영은 좀 전에 자신을 찾아온 사람에 대해서 리즈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비틀즈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사람.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현재 비틀즈에 완전히 매료된 상태였다.

장차 이들이 대스타가 될 것을 확신했고, 그리되도록 자신이 어시스트하고 싶어 했다.

“호박, 아니 수박이 저절로 굴러들어 왔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도 지금 매니저는 별로 같으니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아.”

“네, 실제 역사에서 검증이 되었다면……. 근데 왜 준을 찾아온 거죠? 레논이나 다른 밴드 멤버들만 만나면 될 것 같은데?”

“그거? 그 사람, 날 객원 멤버 같은 걸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어.”

사실 그럴 만한 짓을 했으니 그런 오해를 사도 어쩔 수 없었다.

레논을 살펴 준 것뿐만 아니라, 노래까지 같이 불렀으니.

더구나 앱스타인은 그 노래도 매우 좋다면서 나중에 정식 앨범에 추가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무튼 잘됐네요. 안 그래도 앤지가 많이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지난번 함부르크 투어 건 얘기를 들었을 때 앤지는 긴장했다.

쿼리멘, 아니 비틀즈가 정말 독일로 가 버리면 굉장히 섭섭해질 테니까.

다행히 준영의 만류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원래는 함부르크 시절을 통해 가수로서 실력을 쌓았다는 얘기를 나중에 전해 듣고 또 걱정에 빠졌다.

실력을 키우지 못한 비틀즈가 실제 역사와 달리 그저 그런 밴드가 되지 않을까 하고서.

“단지 열성 팬이라서 신경 쓰는 건 아닐 테고… 폴 때문인가?”

“네, 요즘 둘이 무척 친하잖아요.”

“그 이상 같아 보이던데, 괜찮을까 모르겠군.”

둘이 서로 좋아한다면 말릴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앞으로 비틀즈가 유명해지면 앤지와 폴 둘 다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긴, 유명 가수에게 연인이 있다고 하면 팬들이 떨어져 나가니까요.”

“실제 역사에서 레논과 신시아가 그랬지. 아 참, 그러고 보니 레논 녀석, 신시아랑 못 만났구나.”

준영이 알기로 둘은 미술 학교에서 만나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실제와 달리 레논은 프로 선수로 활동하다 보니 둘이 만날 기회가 생기지 않은 듯했다.

“못 만나면 안 좋은 건가요?”

“아니, 오히려 반대지. 차라리 서로 모르고 사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혹시 레논과 신시아가 겪을 일을 폴과 앤지가 겪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이 들 수밖에 없는 게, 폴 매카트니도 젊은 시절의 연애가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건 폴의 애인이 자기 일에만 신경 썼기 때문이니…….’

조용히 챙겨 주고 성원해 주는 앤지 성격이라면 오히려 잘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당장 걱정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비틀즈가 영국, 아니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엔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걔들보다 지금 걱정해야 하는 건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지.’

한 달 후 한국에 대선이 있다.

현대사에 길이 남을 사상 최악의 부정 선거다.

벌써 조짐은 보이고 있었다.

이억관과 연락하거나 따로 한국 쪽 소식을 입수해 봤는데, 지난달 말에 ‘공명선거 촉진 위원회’라는 게 결성되었다고 한다.

부정 선거를 저지르려는 집권 세력의 움직임을 야당과 국민들이 눈치를 챈 것이다.

안 그래도 관제 단체나 정치 깡패들이 날뛰고 있는 판이니까.

그렇다 보니 공명선거를 촉구하고, 심지어 대선을 연기하자는 여론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억관 아저씨에겐 정치 쪽으론 일절 나서지 말라고 했지만…….’

준영은 과연 그 애국심이 남다른 아저씨가 자신의 말을 들을까 의문이었다.

아니, 나서지 않으려 해도 나설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부정 선거 이후 벌어지는 혁명이란 그런 거니까.

괜히 국민들이 들고일어난 게 아니다.

위정자들이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우 심하게.

‘억관 아저씨나 서울에 살고 있는 내 친할아버지는 앞으로 벌어질 아수라장에 휩쓸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표정이 어둡네요. 무슨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어요?”

리즈의 물음에 준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 있는 분들이 걱정되어서.”

앞으로 두 달 후에 시민 혁명이 발발한다.

이러한 얘기를 들은 리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혈 사태가 되는 건가요?”

“안타깝게도 그리될 거야.”

“그럼 당장 대책을 세워야죠!”

“일단 생각해 둔 방법이 있긴 해. 리즈도 좋은 생각이 있으면 알려 줬으면 좋겠어.”

혁명은 막을 수 없다.

그렇기에 준영은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할, 최소한 지인들이라도 무사할 수 있게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

“휴, 이 나라가 정말 어찌 되려는 건지…….”

이억관은 길게 한숨을 토했다.

오늘 아침에 본 신문에는 정말 답답할 수밖에 없는 소식이 실려 있었다.

바로 신병 치료를 위해 미국에 갔던 민주당 대선 후보 조병옥 박사가 어제 돌연 별세하고 만 것이다.

정권 교체를 기대하던 민주당이나 국민들 입장에선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아직 장면 박사님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이 또 부통령으로 당선되면, 대통령 승계가 유력해질 겁니다.”

부사장 전중윤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이승만이 워낙에 고령이다 보니, 이번에 당선된다 하더라도 신변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그러니 이번에 당선된 부통령이 대통령을 승계할 가능성이 높다.

“근데 그게 문제란 말이지. 자유당이 그걸 모르겠나? 기를 쓰고 이기붕을 당선시키려고 할 텐데.”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장면 박사가 계속 부통령을 맡아도 끝날 일은 아니지. 그분은 지성적이고 행정 쪽으로 수완이 있긴 한데, 너무 고지식한 게 탈이야.”

거기다 장면은 성품이 너무 유순한 사람이었다.

전당 대회에서 자신을 저격한 암살범들에 대해서도 선처를 호소할 정도.

하지만 그 때문에 자유당의 견제를 제대로 견뎌 내지 못했고, 심지어 민주당의 내분과 갈등도 수습하지 못했다.

“부사장도 알겠지만, 정치란 게 사람이 좋다고 해서 잘하는 게 절대 아니야. 그래서 난 장면 박사가 걱정돼. 독사 같은 자유당에 맞서 싸울 수 있을지…….”

거기다 부패 척결과 쇄신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바람도 크다.

그만큼 부담이 클 게 뻔한데, 독사들이 달려들고 심지어 민주당 구파들까지 견제하는 상황에서 잘 해낼 수 있겠는가?

“정말 답답할 노릇이라니까.”

“답답하죠. 괜히 영국에 있는 본사 대표님이 정치 쪽과 연을 짓지 말라고 했겠습니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워야 말이지.”

투덜대던 이억관은 최근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자유당 쪽 사람이 찾아와서는 선거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넌지시 요구했다.

당연히 이억관은 거절했다.

그러자 그 뒤로 갑자기 감사 기관에서 들이닥쳐 회사와 재단을 들쑤시는 게 아닌가.

다행히 장부가 깔끔하다 보니 꼬투리를 잡히지는 않았다.

그러자 놈들은 회사나 재단의 자금 출처가 수상하다는 둥 떠들면서 귀찮게 굴고 있었다.

‘사실 수상한 건 맞지. 그 돈은 김창룡이가 은닉한 자산이니까.’

사실 세간에서도 미스터리 푸드, 일명 소표 라면에 대해서 의아하게 보고 있었다.

일개 축구 선수인 이준영이 도대체 무슨 사업 수완이 그리 좋아서 여러 회사를 세우고 거금을 벌어들여 재단까지 만드냐는 것.

이렇다 보니 한때 영국에서 퍼졌던 루머가 다시 한국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루머, 진짜 사실이 아닙니까? 본사 대표님의 일가가 왕족이고, 고종 황제가 독립운동에 쓰라고 건네준 금괴를 빼돌렸다던데요.”

“나 이거야 원……. 부사장 자네도 그걸 믿고 있었나? 전부 거짓말이야. 왜놈들이 준영이 그 친구가 실은 일본인이라고 믿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혀를 차던 이억관은 문득 떠오른 게 있다는 듯 전중윤에게 물었다.

“일본 얘기가 나왔으니 묻겠는데, 일본에서도 인스턴트 라면이 나왔다면서?”

“예, 알아보니 닛신 식품이라는 곳에서 생산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베껴서 만든 줄 알았는데, 그쪽도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맛이나 풍미가 다르다고.

“일단 그쪽은 일본 내수 시장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쪽보다 우리 입장에서는 국내의 모조품들이 더 문제지요.”

현재 이리저리 나오기 시작한 짝퉁 라면은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앞마당인 자유 중국과 동남아 시장까지 넘보는 업체도 나왔다.

문제는 이들이 품질은 둘째 치고 위생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

짝퉁에서 벌레나 이물질이 나와서 한바탕 시끄러워진 적이 있는데, 이 바람에 원판인 소표 라면에도 불똥이 튀기도 했다.

“위생 상태는 항상 신경을 쓰도록 해. 사람 입에 들어가는 건 무조건 조심해야 하는 법이니.”

“예, 알겠습니다.”

이억관은 사업과 관련된 논의를 하면서 답답한 국내 정치 상황을 잊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가 외면하려 노력해도, 권력자를 따르는 승냥이들은 군침을 흘리며 배회하고 있었다.

***

1960년 2월 27일.

블룸필드 로드의 필드로 주황색과 백색의 유니폼을 걸친 선수들이 입장했다.

전자는 홈팀인 블랙풀 FC, 후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최근 울버햄프턴 원정에서 무승부, 아스날에 2 대 1 승리를 거둔 블랙풀은 거함 맨유를 잡고 상위권으로 도약하고자 했다.

“저 아저씨는 은퇴 안 하나?”

“그러게. 빌리 라이트 주장도 은퇴했는데 말이야.”

준영과 던컨은 오늘 경기에 출전한 스탠리 매튜스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경기가 시작되자, 매튜스는 초반부터 노익장(?)을 과시하며 블랙풀의 공격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의 측면 공격은 던컨의 밀착 수비와 준영의 거친 차징에 무산되었다.

“우-! 우우!”

무자비한 노인 공격에 블랙풀 팬들은 야유를 쏟아 냈지만, 준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판 역시 파울로 판정하지 않았다.

‘상대가 제대로 수비 진영을 갖추기 전에 기선을 제압한다!’

이런 의도로 날린 준영의 롱 패스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전방으로 날아갔다.

빈 공간으로 정확히 떨어진 그 공을 향해 바비 찰튼이 제대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블랙풀의 미래로 촉망받는 수비수 지미 암필드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마크를 붙든 말든 과감하게 밀고 들어간 바비는 그대로 슈팅을 날렸다.

낮고 빠르게 날아가던 슈팅은 골키퍼의 손을 스치며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좋았어!”

오늘은 뭔가 잘 풀릴 듯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추가 득점은 얻어 내지 못한 채 전반 종료.

틀린 것 같았던 예감은 후반 5분부터 데니스 바이올렛의 골 퍼레이드가 시작되면서 제대로 이루어졌다.

“이런 바보들, 만회 골이 급해도 그렇지, 너무 라인을 올렸잖아.”

“어떻게 한 놈한테 내리 3골을 먹어! 그것도 10분 사이에!”

“정신 차려, 머저리들아!”

4 대 0이라는 스코어에 블랙풀 팬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하지만 맨유는 그런 그들의 충격과 분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바비 찰튼이 후반 말미에 2골을 더 몰아치면서 최종 스코어는 6 대 0.

모처럼의 원정 대승에 맨유 선수들은 활짝 웃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아. 스탠 아저씨는 오래오래 뛰는 게 좋을 듯해.”

“그러다 또 회춘 모드 각성하면 어쩌려고.”

준영이 라커룸에서 동료들과 즐겁게 떠들고 있을 때였다.

경호원인 로베르트가 들어와서 그에게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준영은 깜짝 놀랐다.

“…진짜 그 사람 맞아요?”

“예, 분명히 한국에서 봤던 사람이었습니다.”

준영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그가 갑자기, 그것도 이렇게 멀리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다.

***

앞에서 스탠리 매튜스가 50살에 현역 은퇴를 했다고 말했었는데, 사실 60대에 들어서도 선수 겸 감독으로 지역 아마추어 팀의 경기를 뛴 적이 있답니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실력마저 출중하다 보니, 오만방자하기로 유명한 브라이언 클러프도 그를 더러 ‘단순한 우상을 넘어 신과 같은 존재.’라며 칭송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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