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258. 길을 찾는 방식
허공을 길게 가로지른 공이 페널티 박스 중앙으로 떨어졌다.
버밍엄 시티의 공격수 도널드 웨스턴은 떨어지는 공을 노리며 뛰어올랐다.
투웅-
공중에서 상대 팀 장신 수비수와의 경합에서 튕겨 난 웨스턴은 필드에 벌렁 나자빠졌다.
“큭, 제길……!”
어깨가 부서지는 듯한 통증에 웨스턴은 인상을 찡그렸다.
상대 팀 수비수는 확보한 공을 앞쪽에 있던 동료에게 보내고는 주저앉아 있는 웨스턴에게 손을 내밀었다.
“혹시 다쳤나?”
“아니. 더럽게 아프긴 하지만 뛸 수 있어.”
“그래? 힘내라고.”
웨스턴을 일으켜 세워 준 수비수는 곧장 공격에 가세하기 위해 전방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웨스턴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나이티드의 캡틴 리, 역시 장난이 아니구만.”
1960년 1월 16일.
새해 첫 경기를 홈경기로 치르는 맨유는 버밍엄 시티를 상대로 시종일관 우세를 이어 가고 있었다.
준영은 방금 전과 같은 버밍엄의 역습을 적절히 차단하며 부지런히 전진해 올라가 공격을 지원했다.
“측면에서 온다. 놓치지 마!”
“간격 유지해!”
“가만히 보고 있지 말고 같이 마크하라고!”
버밍엄 선수들은 쉴 새 없이 떠들며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그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관중석에 있던 건장한 동양인 청년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진짜 죽을 둥 살 둥 뛰는군.”
“오버 페이스 같은데…….”
“그래도 저렇게라도 안 하면 연합 축구단을 못 막아.”
흥미진진하게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
이번에 맨체스터로 특별 합숙 전지훈련을 온 그들은 리그 26라운드 경기를 관람 중이었다.
“연합 축구단을 응원하러 왔는데, 어째 상대 팀인 버밍엄의 플레이가 더 눈에 띄네요.”
조윤옥과 함께 온 대표팀의 막내 정순천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분투하는 버밍엄 시티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최정민은 후배의 말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유럽 팀과 비교하면 약팀이잖아. 버밍엄 같은 팀이 강팀을 상대로 어떻게 경기를 하는지 배워 둘 필요가 있어.”
그리 말한 최정민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연합 축구단의 맹공에 쩔쩔매고 있는 버밍엄도 우리보다 훨씬 강할 테지.’
단지 예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수준이 그랬다.
사흘 전에 조윤옥이 뛰었었다는 모즐리 AFC라는 아마추어 팀과 시합을 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고전하며 2 대 1로 가까스로 이겼다.
영국에 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 여독이 덜 풀렸기 때문이라고 해도 실망스런 결과였다.
‘다음 상대는 올덤 애슬레틱이라고 했던가? 그 경기에서는 제대로 만회하지 않으면……!’
“우와아아아!”
최정민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동료들과 주변 관중들이 크게 함성을 터트렸다.
바비 찰튼, 조니 자일스와 멋지게 패스를 주고받던 준영이 과감하게 상대 페널티 박스에 파고든 것.
버밍엄의 수비수가 황급히 앞을 막았지만, 헛다리 짚기에 속아 넘어가 버렸다.
당황한 수비수는 준영의 유니폼을 잡아챘다.
본인도 아차 한 그 순간, 심판의 휘슬이 날카롭게 울렸다.
“페널티킥이다!”
“드디어 선제골을 넣겠구나!”
내내 공격을 주도하고도 아직 골이 없다 보니 맨유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키커로 나온 선수는 알버트 퀵솔.
그가 과감하게 정면으로 때린 슈팅이 그물을 세차게 흔들었다.
“좋았어. 이제 시작이다!”
“마구마구 넣으라고!”
전반전 막판에 넣은 골로 경기를 리드해 가기 시작한 맨유는 후반전에도 계속 공세를 이어 갔다.
그러다 후반 6분, 조니 자일스의 패스를 받은 데니스 바이올렛이 논스톱 슛으로 가볍게 추가 골을 기록했다.
그 상황을 본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혀를 내둘렀다.
“거참, 수비가 3명이나 있는데도 전혀 반응도 못하다니.”
“침투와 동시에 날린 슈팅이 워낙 빨라서 그런 거지. 그 찰나의 순간에서도 골대 빈 곳을 보고 슈팅을 돌려놓다니 대단해!”
“저러니까 유럽 챔피언 팀의 스트라이커 아니겠어?”
최정민이 보기에 공격수의 기량도 뛰어났지만, 패스도 좋았다.
공격수 앞쪽으로 전달되다 보니 곧장 슛을 하기 편했던 것.
만약에 뒤쪽으로 왔으면 공을 잡고 돌아서 슈팅을 날리는 번거로운 동작이 필요했을 터이다.
‘그사이에 수비수나 골키퍼도 대응에 나설 테니 골이 들어갈 확률도 그만큼 낮아질 테고……. 역시 패스도 마구잡이로 건넨다고 되는 게 아니군.’
패스는 단지 사람을 보고 하는 게 아니라, 그의 움직임을 예상하고 보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 플레이는 맨유뿐만 아니라 버밍엄도 할 줄 알았다.
두 번째 실점 후 다소 공격적으로 나선 그들은 맨유의 빈 공간 쪽으로 공을 보냈다.
그리고 버밍엄의 공격수 버니 라킨은 한순간 스피드를 끌어 올리며 뛰어나갔다.
오프사이드 트랙을 완전히 무너트린 절묘한 움직임이었다.
“우와, 단독 찬스다!”
“골키퍼와 일대일… 은 아니군.”
버니가 해리 그렉과 맞대결을 하기 직전, 바람같이 달려온 준영이 그를 어깨로 밀어내고 공을 빼앗았다.
몸싸움에서 밀린 버니 라킨은 반칙이 아니냐고 항변했지만, 심판은 이를 들어 주지 않았다.
곧바로 이어지는 맨유의 반격.
준영의 발에서 떠난 공은 측면을 달려가던 바비 찰튼을 거쳐 워렌 브래들리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달려가는 워렌을 버밍엄 수비수가 잡아채 쓰러트렸다.
그 모습에 정순천과 최정민은 혀를 찼다.
“저 녀석들, 손을 잘 쓰네요.”
“못 쓰는 거지. 잘 쓰면 심판이 알아채지도 못했을걸.”
워렌이 얻어 낸 프리킥을 처리하기 위해 준영과 던컨이 나섰다.
한국 선수들은 준영이 처리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정작 슛을 날린 건 던컨 에드워즈.
크게 휘어져 날아가던 슈팅은 골대 오른쪽 구석 하단으로 뚝 떨어졌다.
“우와, 저게 뭐야!”
“공을 저렇게 찰 수도 있나?”
한국 선수들만큼이나 홈 관중들이나 기자들도 깜짝 놀랐다.
방금 전 던컨의 슛은 리버풀의 펠레가 날렸던 UFO슛이랑 똑같았으니까.
“Big Dunc! Big Dunc!”
잉글랜드의 천재는 죽지 않았다!
관중들이 던컨을 향해 열광하는 사이, 축구의 신세계를 목격한 한국 선수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것이 월드컵을 제패한 축구 종가의 수준인가?’
세계의 벽은 높다.
최정민은 선배 선수들의 말에 다시 한번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기회에 저 높은 벽을 오를 수 있는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침 벽 위에 먼저 올라가 있는 사람이 동아줄도 내려 주고 있으니, 마냥 어려울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
맨유의 옛 훈련장 더 클리프.
클럽 하우스 오스길리아스가 개장하면서 현재 이곳은 비워진 상태였다.
성인 팀뿐만 아니라 유소년 팀들도 이곳보다 시설이 좋은 오스길리아스로 옮겨 갔기 때문.
그러다 이번에 특별 합숙 훈련을 온 한국 대표팀이 이곳을 훈련장 겸 숙소로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빠밤 빠바밤~
“기상! 기상!”
“야야, 다들 얼른 일어나!”
귀에 익숙한 기상나팔 소리에 선수들은 자동으로 벌떡 일어났다.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특무대나 해병대, 육군 헌병감실, 병참단 등 군부대 팀에 몸담고 있었으니까.
즉, 선수임과 동시에 군인이었던 것.
곧장 훈련복으로 환복한 선수들은 주장 함흥철의 인솔하에 필드로 나왔다.
“총원 22명, 열외 무, 현재원 22명, 아침 점호 준비 끝!”
“그래, 수고들 많다.”
주장 함흥철이 대표팀 감독 위혜덕에게 보고를 끝낸 후, 선수들은 애국가도 제창하고, 코치 민병대가 들고나온 태극기에 경례도 했다.
‘이게 대표팀이야, 군대야.’
지켜보는 준영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벌써 며칠째 봐 오는 광경이지만, 적응이 되지 않았다.
“군 출신이 많다고 굳이 이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만?”
“나도 동감인데, 민병대 코치는 생각이 다른가 보더군.”
이름부터가 남다른 느낌이 드는 민병대 코치.
그는 선수들이 먼 외국에서 장기간 있다 보면 자칫 기강이 풀어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군대식으로 엄히 통제하고 있는 거라고.
“안 그래도 요새 영국으로 돈 벌러 오는 사람들이 많잖아. 선수들 중에서도 혹시 그럴 맘이 있는 친구들이 일탈하지 않을까 싶은 거지.”
“그런 우려는… 할 만하군요.”
가난한 나라 선수들이 올림픽과 같은 국제 대회에 출전했을 때 탈주하여 잠적하는 일이 종종 있다.
국가대표라는 신분으로 합법적으로 입국해서는 불법 체류 노동자가 되는 것.
‘이 시대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그래서 엄히 통제하는 것이지만, 민병대도 마냥 선수들을 억누르지는 않았다.
풀어 줄 때는 적당히 풀어 주는 편이었다.
“문제는 훈련 방식이 좀…….”
“막무가내식이네요. 계속 이렇게 하려는 모양인데 걱정입니다.”
준영은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미래의 훈련법들을 알려 주었다.
선수나 지도자들이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가 좋은 훈련 방식을 도입하여 선수들의 능력을 높이기를 기대했던 것.
하지만 민병대는 이런 기대와는 어긋난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내가 알려 준 체력 단련법을 써먹고 있긴 해. 하지만 완급이라는 게 없잖아. 이래서야 그냥 운동장 뺑뺑이를 도는 거랑 뭐가 달라.’
이런 식이면 단련이 아닌 혹사가 될 뿐이다.
보다 못한 준영과 김용식이 지적과 만류를 했지만, 민병대는 이렇게 대답했다.
“혹사라니? 이 정도 체력 훈련도 소화하지 못하고 경기에 어떻게 뛸 수 있겠나.”
“훈련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경기에 뛸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더욱 훈련에 정진해야지. 자네도 스피드와 체력이 중요하다고 했잖아. 구라파와의 수준을 좁히려면 더 열심히 해야지. 안 그래?”
“그렇다고 무작정 훈련량을 늘린다고 될 일은 아니죠.”
준영은 민병대 코치가 무엇이 문제인지 알 것 같았다.
이 사람에게 필요한 건 최신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낡아 빠진 하드웨어를 교체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민병대 본인은 하드웨어 업그레이드에 그리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자네가 도움을 주는 건 고맙지만, 대표팀 관리는 내가 알아서 해. 이건 위 감독님도 일임하신 거야. 그러니 지나친 참견은 하지 말라고.”
“하, 지나치다고요? 진짜 지나친 게 뭔지 보여 드릴까요?”
살짝 열이 받았던 준영이 언성을 높였다.
그러자 김용식이 서둘러 그를 만류하고, 민병대에게도 충고했다.
“이봐, 민 코치, 애써 유럽까지 온 이유가 뭔가? 여기 와서도 우리 방식으로 하는 게 옳다고 고집을 피워서야 쓰겠나?”
“…….”
“중요한 건 길을 찾는 거라고. 지도만 외우는 게 아니라 말이야.”
민병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준영과 함께 물러난 김용식은 안타까운 기색으로 한숨을 쉬었다.
“민병대 저 친구 입장도 이해는 돼. 당장 성과를 내야 하는 입장이니까 몰아붙일 수밖에 없는 거지.”
“성과라면 올림픽 본선 진출 말입니까?”
“그 전에 이번 전지훈련에서 하는 시합의 결과도 중요하지. 대표팀 체면이 구겨졌으니까 말이야.”
예선 1라운드 통과를 했다고 하지만, 2차전에선 일본에게 패했다.
국민 정서상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던 것.
당연히 대표팀 입장에선 이를 만회할 만한 성과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내가 민병대 저 친구라도 저랬을 거야.”
과연 그럴까.
김용식 선생이 지금 대표팀 코치로 있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을 해 봐야 소용이 없다.
민병대의 사고방식이 바뀔 만한, 뭔가 충격이 필요해 보였다.
***
1960년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지휘했던 위혜덕 감독은 연희전문학교를 나왔고, 현역 시절 경성 축구단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1930년대에 국내에서 꽤 유명한 선수였지요.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로는 위덕 무역이라는 업체를 운영하면서 부를 쌓아 재정적으로 대표팀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일단 스폰서에 가깝다 보니 실질적인 지도는 당시 코치였던 김용식 선생이 맡았다고 합니다.
민병대 감독은 이름만 봐서는 가상 인물 같지만 실존 인물입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축구대표로도 뽑혔고, 나중에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지내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