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56화 (256/400)

Round 256.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

맨체스터 북쪽, 어웰 강가에 자리한 맨유의 훈련장 더 클리프.

아직 훈련을 시작하기 한참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공 차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거참, 내가 제일 먼저 온 줄 알았는데.”

준영은 홀로 공을 차고 있던 던컨에게 다가갔다.

“여, 던. 일찍 나왔네.”

“어서 와, 존. 안 그래도 공을 건네줄 사람이 필요했어.”

“이 자식 보소. 주장한테 볼 보이를 시키겠다는 거야?”

“기왕이면 골키퍼까지 해 주면 좋고.”

천연덕스러운 던컨의 요구에 준영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의 훈련을 도와주었다.

“슈팅, 아니 프리킥 연습을 했던 거야?”

“응, 10월에 브라질 꼬마가 우리 골대에 때려 넣었던 그 기묘한 슛을 연습 중이었지.”

“아, UFO슛 말인가.”

이 시대 언론에서도 40년 일찍 나온 펠레의 슛을 UFO슛이라고 불렀다.

그 슛을 표현하기에 UFO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했으므로.

“벌써 두 달이야. 대충 요령은 알 것 같은데, 실전에서 쓸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차는 건 여전히 힘들단 말이지.”

“너도 참 대단하다. 펠레 녀석도 우연히 터진 슛이라고 말한 걸 연구하고 있었냐?”

“해야지. 4살이나 어린 녀석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아.”

던컨은 지금 지어 보이는 표정만큼이나 진지했다.

그는 천재 혹은 스타플레이어라고 자신을 치켜세워 주던 언론이나 세간의 평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축구계 뉴스를 뒤덮고 있는 펠레에 대해서는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지난 시즌 FA컵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좀 하는 놈이다 싶었는데, 진짜 괴물이 되어 버렸어. 분명히 앞으로 세계 축구계를 주름잡게 될 거야.”

“그래, 앞으로 10년, 아니 20년은 펠레 녀석의 시대가 되겠지.”

원래도 축구 황제로 명성을 날렸던 존재.

그런 그가 원래 역사와 다르게 유럽으로 왔고, 이 시대에 없는 테크닉까지 습득했다.

당연히 앞으로 축구계를 어떻게 주름잡을지 뻔하지 않겠는가.

“거참, 마치 확신하듯이 말하는구나.”

“그만큼 대단한 녀석이라는 거지. 맘에 들지 않으면 다음번엔 펠레를 꽁꽁 묶어 보라고.”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펠레와의 재대결을 단단히 벼르고 있는 던컨의 모습에 준영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실제 역사에선 요절해 버린 천재 플레이어.

그를 아는 이들은 모두가 던컨을 두고 펠레나 마라도나 그 이상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던은 그만한 능력이 있지.’

함께 훈련하면서 자신의 모든 기량을 스펀지처럼 흡수해 간 녀석이다.

풀백이라는 포지션 때문에 공격수보다는 부각이 되지 못하고 있지만, 영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그의 기량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1959년 발롱도르 수상자가 된 것이고.

“자자, 리 경, 흑기사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도 이 몸에게 특별 지도를 해 주시오.”

“좋소, 에드워즈 경. S급, 아니 S+α급으로 지도해 드리리다.”

준영은 흔쾌히 던컨의 요청을 수락했다.

던컨의 실력이 높아져야 팀 전력도 상승하는 데다, 개인적으로도 흥미가 생겼기 때문이다.

모두가 칭찬했던 이 천재 플레이어가 과연 축구 황제의 아성을 무너트릴 수 있을지?

무너트린다면 축구계의 판도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 달라지는 판도 안에 내가 있을 거다.’

준영도 뒤처질 생각은 없었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도 있기에 던컨을 지도하며, 본인도 레벨 업을 해 나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야 이 시대를 대표하는 레전드 플레이어로 선명하게 이름을 남길 수 있을 테니까.

***

스코틀랜드 북쪽 모레이만의 바다.

북해와 접한 이곳에 얼마 전 거대한 해양 플랜트가 설치되었다.

“저건 잭업이라고 하는 시추용 바지선입니다. 바다에 떠 있을 수도 있지만, 여러 개의 격자형 다리를 해저에 내려서 고정된 상태에서 작업을 할 수 있죠.”

“그렇군요.”

관련 기술자의 설명에 제이미 번즈는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 전 대륙붕 관련 법안이 통과되기 무섭게, 이미 대서양을 건너와 있던 미국산 이동형 해양 플랜트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도거뱅크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은 북해의 다른 곳보다도 수심이 낮아요. 대략 164피트(50미터) 정도니까요.”

“시설이 안정적으로 운용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겁니까?”

“예, 잭업이 착저하는 건 최대 400피트까지도 가능하니까요. 문제는 악천후죠. 난바다만큼은 아니지만, 여기도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치니까요.”

이 미국산 해양 플랜트는 카리브해 연안에서 사용하던 것이라 거친 북해에서 장기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보완이 필요했다.

특히 신경 써야 할 점은 안전 문제.

까딱 잘못되기라도 하면 플랜트가 통째로 날아가 수십, 아니 수백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

“뭐, 그런 걱정은 유전을 개발하면서 할 일이지만요.”

“지난번에 시추로 해저 지층을 살펴봤다고 들었는데 어떻습니까?”

“확실히 가능성은 높습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다른 곳들보다도 훨씬.”

이에 곧장 후속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부디 잘되어야 할 텐데…….’

미래에 연합 왕국을 지탱할 소중한 자산.

그렇기에 영국 정부는 대륙붕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해 북해 인접 국가들과도 해역 분할을 위한 외교적인 협상을 하고 있었다.

‘일단 시작은 연안 지역부터지만, 성과가 나면 존 Y. 리가 지목한 북해 중앙 해역의 유전도 개발할 수 있겠지.’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 옛날부터 해 왔던 바보짓을 하는 게 편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도전과 혁신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힘들다고 해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이미 영국은 패권 국가로서 미국과 소련에 밀려난 상황이고, 산업에 있어서도 다른 유럽 국가들의 도전을 받고 있었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의 성장과 추격이 심상치 않았다.

거기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이 고도의 성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간 존 Y. 리가 말한 대로 앞으로 20년은 악몽의 시대가 되겠지.’

수출 경쟁력 약화, 장기 불황, 실업 증가 등등.

그런 암울한 미래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을 터.

그렇기에 높으신 분들은 새로운 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미래의 자산을 빨리 확보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번즈가 직접 작업 상황을 보기 위해 찾아오게 된 것이고.

‘근데 12월에 바다에 오는 건 진짜 못할 짓이로군.’

눈과 얼음이 하얗게 얼어붙은 배와 시추 설비를 보며 번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상부의 명령이 아니었으면 절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드드드! 그릉그릉!

뭔가 일이 터졌는지, 플랜트에 있는 기술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설마?’

번즈는 황급히 목에 걸고 있던 쌍안경을 들었다.

가장 부산한 움직임은 시추 장비 쪽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뭔가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그렇게 우려하던 찰나, 시추 장비에서 화염과 시커먼 연기가 뿜어 올랐다.

“저, 저건……!”

“괜찮아요. 저건 유증기를 처리하기 위한 플레어링 작업이니까요.”

유증기가 나온다는 건, 시추공이 뚫린 해저 지층에 석유가 있다는 뜻!

반즈가 반색을 하는 가운데, 플랜트 기술자들도 환호성을 터트렸다.

1959년의 마지막 주.

스코틀랜드 해안에서 24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에서 유전이 발견되었다.

실제 역사보다 17년 일찍 발견된 이 지역의 유전은 본격적인 북해 유전 탐사와 개발의 방아쇠를 당겼다.

***

“와, 그게 정말입니까?”

번즈에게 연락을 받은 준영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젠가 터질 거라 예상했던 대박.

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터졌다고 하니 놀라고 기쁜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쉽지 않았다.

(매장량은 자세히 조사해 봐야 알 테지만, 일단 시장성은 충분할 거라고 합니다.)

“앞으로 정부나 투자 업체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겠군요.”

(그런 셈이죠.)

일각에선 바로 채굴해서 쓰기보다는 전략적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전략적인 활용도 언제든 사용이 가능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법.

거기다 이 냉전 시대에 있어 서유럽에 안정적으로 석유를 공급할 수 있는 유전을 묵혀 둘 까닭이 없었다.

(아무튼 관련해서 정보가 입수되면 또 알려 드리죠.)

“감사합니다, 번즈 씨. 다가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쇼.”

번즈와 통화를 마치고도 준영은 쉬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계획은 하고 있었지만, 아직 멀다고 여겼던 석유 재벌 구단주의 꿈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 같았으니까.

“하하핫! 드디어! 드디어 시작이 되는 건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흥분한 준영이 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할 때, 리즈가 방 안으로 들어와 물었다.

“듣자니 번즈 씨에게서 온 전화 같은… 꺄아앗!”

“하하핫! 꿈이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되었어!”

꿈은 이루어진다.

들뜬 준영은 리즈를 번쩍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자세한 영문을 모른 채 회전목마(?)를 탔던 리즈는 어리둥절해하다 준영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반색을 했다.

“와, 정말 북해에서 석유가 발견된 거군요.”

“그래, 이제 시작이라고.”

“그래도 석유 재벌 구단주가 되는 건 아직 한참 있어야 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선수 생활 은퇴한 후쯤일 텐데.”

“구단주라면 그렇지. 하지만 석유 재벌은 은퇴 전에도 가능하단 말씀.”

“이미 지금도 재벌이잖아요.”

준영의 미스터리 푸드는 지난달 뉴욕과 파리에 지부를 내고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미국이나 유럽 본토에서도 간편한 인스턴트식품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

실제 수출한 물량도 모두 동이 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거기다 조셉 포스터와 함께 운영하는 나2키 역시 미국과 유럽 시장에 진출해서 순조로운 판매를 이어 가고 있었다.

과감하게 적용한 신소재와 미래 지향적인 세련된 디자인이 소비자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고.

당연히 엄청난 수입을 얻었고, 그만큼 준영의 은행 계좌도 두둑해졌다.

“뭐, 그렇긴 한데… 석유 재벌은 그냥 재벌과는 넘사벽급으로 차이 난다고.”

“후훗, 절대 반지를 낀 사우론처럼 말이죠? 사우론처럼 타락하거나 망해서는 곤란할 텐데.”

“거참, 이 아가씨가 비교를 해도 하필…….”

준영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생긋 미소를 지은 리즈는 그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춰 주었다.

“주의하라는 거랍니다, 기사님. 너무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니까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여왕님.”

준영은 예전에 신부님께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욕심 때문에 멍청한 짓을 저지르곤 한다고.

확실히 과욕은 금물.

그렇다 해도 석유 재벌이란 타이틀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 그리고 재벌이신 기사님에게 부탁이 좀 있어요.”

“무슨 부탁이신지요, 여왕님?”

뭔지 몰라도 리즈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다.

물론 카린처럼 달나라에 가고 싶다고 졸라 대는 건 곤란하지만.

“좀 이르긴 한데, 학과 학생들이랑 컴퓨터 연구 업체를 만들려고 계획을 하고 있어요.”

“벤처 기업 같은 거 말이지?”

“네, 말 그대로 모험적이긴 한데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고 보는데. 준이 투자를 좀 해 주지 않겠어요?”

“그거야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지.”

달나라에 가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다.

더구나 컴퓨터나 통신 관련 산업과 시장은 앞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 아닌가.

“혹시 업체 이름은 정해 두었어?”

“NEXT라고 하려고요.”

“넥스트라……. 괜찮은 이름인 것 같네.”

기왕이면 사과(?)를 강탈하는 게 어떤가 싶기도 하지만, 리즈가 정했으니 따라 주기로 했다.

***

저게 시추용 바지선 잭업입니다. 다리가 많아서 그런지 스콜피온이란 별명도 있었다고 하네요.

1950년대에 텍사스 앞바다에서 해저 유전을 개발하는 데 최초로 사용되었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