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255. 갈무리
가로 44미터, 세로 16.5미터.
골대 앞의 공간으로 양팀 선수들이 빽빽하게 모여들었다.
“마크할 놈을 절대 놓치지 마!”
“야 인마, 잡지 마!”
공이 문전으로 올라오지도 않았음에도 양팀의 다툼은 치열했다.
높이에서 뒤지는 리버풀 입장에서는 자리다툼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쩝, 쓸만한 장신 수비수가 둘만 있으면 이런 걱정을 안 할 텐데…….”
섕클리는 준영을 바라보며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
리버풀에도 180대의 장신 선수가 없는 건 아니다.
1957-58 시즌 ‘존 Y 리 쇼크’ 이후로 풋볼 리그 각 팀마다 장신 선수 확보에 혈안이 되었고, 그만큼 몸값도 올랐다.
영입이 힘든 와중에서도 리버풀은 180대의 장신 선수를 4∼5명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이들은 너무 어리거나, 신체 밸런스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 거기다 순발력도 느리고.
그렇다고 그들의 기량이 형편없는 건 아니었다. 프로 무대에 뛸 수준은 충분했다.
문제는 섕클리의 눈이 높다는 점.
준영을 지도해 본 적이 있는 그의 입장에선 웬만한 선수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준영처럼 큰 키에 균형 잡힌 체격과 빠른 몸놀림, 여기에 뛰어난 발재간을 가진 선수는 정말 드문 게 현실이었다.
‘그나마 그 조건에 맞는 녀석이 리즈 유나이티드의 잭 찰튼인데…… 리즈 놈들이 이적 불가라고 못을 박아 버렸으니!’
섕클리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던 그때, 워렌 브레들리가 코너킥을 찼다.
“저, 저건!”
예상 밖에도 워렌이 올린 코너킥은 맨유 선수들의 머리를 거치지 않고 골대로 직접 날아갔다.
‘노린 건가? 그렇지 않으면 우연?’
어쨌거나 처리하지 않으면 실점한다.
황급히 몸을 날린 더그 골키퍼는 구석으로 떨어지는 공을 쳐냈다.
하지만 워낙 급하게 쳐낸 것이다 보니 공이 멀리 가지 않고 페널티 박스 중앙으로 떨어졌다.
“얼른 걷어내!”
“잡아! 놓치면 안 된다!”
수비를 돕기 위해 박스에 들어와 있던 펠레는 아귀다툼을 벌이는 상황에서 공을 가로채 라인 밖으로 걷어냈다.
침착하게 드리블해서 박스를 빠져나오려 했지만, 바비 찰튼이 달려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아깝군, 좋은 찬스를 또 놓쳤어.”
“그냥 캡틴 리의 머리에 맞추는 작전으로 가야 했어요. 괜히 의표를 찌르려고 하다가 기회만 놓쳤잖아요.”
맨유 유소년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를 보러온 김용식은 조지 베스트의 말에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하기엔 준영 군 주위에 마크하는 선수들이 너무 많았지.”
지금도 준영의 주변에는 4명의 선수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중에 한 명은 펠레.
아무리 체격이 좋아도 여럿이 달려들면 버거울 수밖에 없다.
그것도 순간의 찬스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일단 드로잉으로 공격을 계속할 수 있으니 기대해 보자구나.”
“근데 드로잉 위치가 골문이랑 좀 멀어요.”
아무래도 근처의 동료에게 주고 크로스를 올리는 방식으로 가지 않을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가운데, 드로잉을 맡은 알버트 스캔론이 엄청난 기행을 벌였다.
뒤로 물러나서 달려오면서 공중제비를 한 후에 공을 집어 던진 것!
‘덤블링 드로잉이잖아!’
어떻게든 멀리, 강하게 던져야 한다는 마음에 스스로 생각해냈던 걸까.
아무튼 그 드로잉은 제대로 의표를 찔렀다.
수비수들을 뿌리친 준영이 헤딩으로 돌려준 공을 클러프가 골대 안으로 때려 넣었다.
골이 터지기 무섭게 조지는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우와, 동점골!”
“허허, 이거 끝까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구만!”
김용식은 스코어보드의 시계를 보았다.
정규시간은 거의 다 지났지만, 심판이 얼마간의 로스타임을 줄 것이다.
그 안에 또다시 상황이 뒤바뀌게 되는 건 아닐까?
<마지막에 다잡은 대어를 놓친 리버풀, 펠레가 놓친 고기를 잡기 위해 돌파해 들어갑니다!>
좀 전에 프리킥을 얻어냈을 때처럼, 펠레는 저돌적인 돌파를 시도했다.
맨유 선수들의 악착같은 마크를 뚫고 나온 그는 노 마크인 로저 헌트 쪽을 보고 패스를 건네주었다.
공을 받은 로저 헌트는 곧바로 맨유 골문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기뻐할 수 없었다.
“젠장, 오프사이드라니…….”
펠레가 패스를 해 주기 직전, 준영이 전진하며 오프사이드 트랩을 깔았다.
로저 헌트가 여기에 걸린 것을 본 부심은 곧장 깃발을 들었다.
“와, 또 실점하는 줄 알았네.”
“진짜 이런 경기는 심장에 안 좋다고.”
관중석에서 아쉬움과 안도의 한숨이 교차하고 있을 때,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길게 울렸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양팀 선수들은 필드에 주저앉거나 벌렁 누웠다.
최종 스코어 4 대 4 무승부.
현재 1위 리버풀을 잡고 승점 격차를 좁히겠다는 맨유 입장에서도, 그리고 맨유에게 복수를 노렸던 리버풀 입장에서도 아쉬운 결과였다.
“3월에 안필드에서 다시 보자.”
“좋아, 그땐 진짜 박살을 내주지.”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양팀 선수들은 악수를 나누었다.
준영도 펠레와 유니폼을 교환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3월에는 반드시 이기겠어.”
“그 말대로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
펠레의 저주가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아는 준영은 가늘게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저주만 믿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축구 황제가 완전체가 되었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앞으로 훈련에 더 많은 땀을 쏟으리라 다짐했다.
그래야 반짝 스타가 아닌,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진정한 레전드가 될 테니까.
***
BBC에서 일하고 있는 제이크 김은 한국계 영국인이다.
작년에 그는 축구 다큐멘터리 ‘Football, The Great Player’의 제작에 참여했다.
그가 맡은 일은 자료 조사 및 수집.
제6부 ‘Legend 1957’의 자료 역시 그가 맡았다.
6부의 주인공인 존 Y 리, 이준영이 자신과 같은 한국계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할아버지 김인수는 이준영과 인연이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은인이라고 할 수 있죠. 1958년에 9월에 있었던 암살 시도에서 그를 구해줬으니까요.”
“그럼 그때 오빠를 구하고 돌아가셨다는 분이…….”
“네, 저희 할아버지십니다.”
카린은 오늘 자신을 찾아온 중년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의 조부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준영에게 들은 적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이 자신에게 큰 빚을 지워주었다던가.
“저희 할머니 입장에선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았죠. 할아버지가 있는 영국으로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가 그랬으니까요.”
“그랬군요, 당신의 할머니나 아버지는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겠군요.”
제이크 김의 부친은 나중에 한영 재단의 장학생으로 뽑혀 영국에 유학을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지에서 자리를 잡고 일가를 이루었다고.
“오빠는 나에게 정말 소중한 가족이었어요. 당신의 할아버지께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미스터 강.”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는 감사 인사를 듣기 위해 찾아온 게 아닙니다.”
“그럼?”
잠시 망설이던 제이크 김이 어렵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의문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준영이라는 분은요.”
자료 조사를 할 때도 느꼈지만, 뭔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면 헤어스타일이나 패션 감각은 당시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뭐 그거야 제임스 딘이나 오드리 햅번 같은 케이스도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그의 행적이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홍콩에 있을 때 자료가 전무 한 것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그것도 그럴 수 있죠. 제가 처음 이상하게 여긴 건 이 자료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을 꺼내든 제이크 김은 1959년 당시 음성 기록을 재생했다.
이준영이 한국에 왔을 때 그를 취재한 신문사에서 녹음해 둔 것이었다.
그리운 음성이 들리자 카린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녀를 움찔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제이크 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여사께선 한국어를 잘 모르시니 차이를 못 느끼실 겁니다. 이준영 선수의 발음은 당시 한국인들과 다릅니다.”
“그거야 오빠가 외국에 오래 살다보니 그런 거겠죠.”
“아뇨, 그거랑 다릅니다. 전 이 자료를 한국의 국문학자들에게 보내봤는데, 1950년대가 아니라 요즘 세대가 쓰는 말투랑 흡사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현대와 조선시대 정도로 차이가 나는 건 아니지만, 현대의 한국어도 세대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준영의 말투는 이질적이었다.
“그뿐만 아니죠. 그의 몇 가지 행보를 보면 마치 예언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1958년 2월 뮌헨 비행기 사고만 해도 그렇다.
그냥 기상악화로 탑승을 만류하는 거라면 경고 전보를 무려 3통이나 보낼 이유는 없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좌석을 바꾸라는 언급까지 있었다.
실제로 좌석을 앞쪽으로 바꾼 덕분에 맨유 선수들은 죽음은 면했다.
“1960년 초에 한국의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나 전보만 해도 그렇죠.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뭔가 심각한 정치적인 대란이 일어날 것을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북해 유전이나 강남 부동산 투자는 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 축구계뿐만 아니라, 정재계, 문화계의 여러 인재들을 발탁하거나 친분을 쌓았다.
“여사께선 가족으로 그와 오래 알고 지내셨으니 여기에 대해서 뭔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잠시 침묵을 지키던 카린.
그녀는 가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오빠가 많은 것을 바꿨다는 거예요. 애써 무시할 수 있었던 일도 외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나갔지요.”
“그럼…….”
“예전부터 그는 외계인이니, 스파이니, 미래나 다른 차원에서 왔다느니 하는 소리들을 들었죠. 그래서 새삼스럽지 않네요.”
안알랴줌.
제이크 김이 무척 궁금한 기색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입을 닫았다.
그에 대한 비밀은 무덤까지 가지고 갈 생각이었다.
그것이 소중한 가족에 대한 의리일 테니까.
***
1959년 12월 24일.
준영은 가족과 함께 모즐리의 성당의 크리스마스 이브의 미사에 참석했다.
올해를 잘 보낼 수 있게 해주신데 감사하고, 다가오는 신년에도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1950년대가 끝 나가는군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
“네, 나에겐 특히 그래요.”
준영의 옆에서 나지막하게 속삭이던 리즈는 감회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지난 10년 간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아버지가 전사하시고, 어머니도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를 도우면서 동생들을 보살피며 집안을 꾸려가던 중에 불의의 교통사고도 겪었다.
“그때 준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정말 큰일 났을 거예요.”
“나도 그땐 정신이 없었지. 진짜 눈앞이 깜깜했다고 할까.”
낯선 시대에서 앞도 보이지 않던 상황은 리즈를 만남으로서 달라졌다.
그때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이 평안과 행복은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딸바보 아빠 유령의 만행(?)은 넘어갈 수 있었다.
‘앞으로 다가오는 10년도 잘 넘길 수 있기를!’
1960년대.
한국과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격변하는 시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달라졌을지 알 수 없는 그 격동의 시대를 앞둔 준영은 자신이 아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
제가 덤블링 드로잉을 처음 본게 현재 수원 FC에서 뛰는 박주호 선수의 청소년 대표팀 경기에서였지요.
이게 쉬운 게 아니라서 러시아 월드컵에서 이란 선수가 시도하려다 실패해서 망신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