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54화 (254/400)

Round 254. 충격과 공포, 혼란과 환장

‘온다. 녀석이 온다!’

준영이 중앙선을 넘어오자 리버풀 선수들은 공수 가리지 않고 페널티 박스 안팎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철저히 간격을 유지한 상태로 좌우와 중앙의 돌파와 패스 루트를 차단했다.

‘밀집 수비?’

‘이놈들, 전반에는 이러지도 않더니, 왜?’

준영이나 맨유 선수들이 의아해하는 리버풀의 밀집 수비는 플랜 B의 일환이었다.

후반에 맨유가 공격에 무게를 더할 것을 대비해 준비한 전술이었던 것.

물론 주야장천 수비로 일관하는 건 아니고, 공을 빼앗아 올 때까지만이었다.

“90분 내내 수비만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섕클리 감독은 수비를 중시하긴 해도 지나치게 치중하는 건 반대였다.

수비만 하다 보면 좋은 찬스도 만들지 못하고, 상대에게 계속 기회를 내어 주고, 그러다 결국 실점까지 허용할 수 있다.

더구나 펠레나 로저 헌트, 알란 아코트 같은 우수한 공격 자원이 있는데 뭐 하러 웅크린단 말인가.

막을 땐 막고, 후려칠 수 있을 땐 후려치는 게 옳았다.

“아무튼… 존, 너는 이 상황에서 어떤 답을 찾을 거냐?”

섕클리는 현재 공을 잡은 이준영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했다.

준영은 중앙선을 넘은 뒤에는 다소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망설이는 건 잠시뿐.

바비 찰튼과 패스를 주고받으며 조금씩 전진해 나갔다.

처음엔 자리를 지키던 리버풀 선수들도 준영과 바비가 계속 접근해 오자, 인터셉트를 위해 덤벼들었다.

‘여기서 가로채서 역습으로 전환하면……!’

그러나 생각보다 공을 빼앗기가 쉽지 않았다.

준영과 바비는 패스를 빠르게 주고받는 데다, 볼 관리 능력도 상당히 뛰어났기 때문.

금세 문전으로 돌파해 들어갈 것처럼 굴다가도 수비들이 몰려오면 백 패스나 횡 패스를 하면서 물러났다.

이러는 가운데 전방 공격수, 특히 중앙의 클러프와 숀은 끊임없이 페널티 박스 안팎을 드나들며 수비수들의 시선을 끌며 신경을 긁어 댔다.

“욕심부리지 말고 자리를 지켜. 섣불리 덤벼들다간 당한다!”

리버풀의 주장 로니 모란은 버럭버럭 소리를 치며 선수들의 간격을 유지시켰다.

수비를 단단히 하면서 맨유의 실수를 유도해야 할 상황에 자신들이 성급하게 굴다 실수를 해서는 안 되니까.

그러나 점점 통제에서 벗어나는 선수들이 생겨났다.

그럴 만도 한 게 눈앞에 먹잇감, 아니 공이 아른거리고 있는데 가만히 있기란 힘들었으므로.

‘저걸 차단하면 단번에 역습으로…….’

‘여기서 점수 차를 벌리면 유나이티드를 주저앉힐 수 있어!’

이에 수비들뿐만 아니라 역습을 준비하고 있던 공격수들도 인터셉트를 노렸다.

그런데 거기서 사고가 일어났다.

「캡틴 리가 좌측 측면에 있던 알버트 스캔론에게 패스를 보냅니다. 곧장 달려드는 리버풀… 아, 뚫렸습니다!」

측면에서 수비를 거들던 이안 캘러헌이 동료와 움직임이 겹치며 공을 놓친 것은 물론, 공간까지 내준 것이다.

“저런 바보들!”

스캔론이 공을 잡고 박스로 들어오자, 수비수들이 황급히 이동해 빈틈을 메웠다.

하지만 한 군데가 채워지면 다른 곳은 비게 되는 법.

맨유 선수들은 그 순간적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수비를 유인한 스캔론이 공을 중앙으로 흘려 줬고, 쇄도해 들어온 준영이 곧바로 논스톱 슈팅을 날렸다.

터엉-!

크로스바 하단을 맞힌 공이 골대 안으로 떨어지기 무섭게 우레 같은 환호성이 관중석에서 터져 나왔다.

「골! 골입니다! 유나이티드의 캡틴 리, 다시 동점을 만들어 냅니다!」

득점에 성공한 준영은 21세기에서 하듯 잔디 위를 죽 미끄러지는 골 셀레브레이션을 펼쳤다.

비에 젖은 필드를 호쾌하게 쭉 미끄러지는 퍼포먼스에 기자들은 저도 모르게 연달아 셔터를 눌러 댔다.

“또 녀석에게 당했군!”

“어차피 이 정도는 각오하고 있던 일이잖아. 낙담할 필요 없어.”

실점을 한 리버풀은 서둘러 전열을 수습했다.

하지만 동점 골을 내준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것일까.

공격 전개 과정에서 펠레에게 가야 할 패스가 바비 찰튼에게 차단당하고 말았다.

인터셉트와 동시에 순식간에 필드를 쓸어 본 바비는 측면 빈 공간으로 들어가는 워렌에게로 패스를 찔러 주었다.

‘크로스!’

그리 예상하고 리버풀 수비수 조지프가 껑충 뛰어오른 게 무색하게도, 워렌은 터치라인 가까이 치고 들어가며 컷백.

그렇게 전달된 공을 향해 브라이언 클러프가 달려들었다.

‘돌아서지 못하게… 아니!’

로니 모란이 마크를 붙기도 전에 클러프는 뒤꿈치로 방향을 슬쩍 돌려놓는 슈팅을 시도했다.

골키퍼 정면으로 날아간 슈팅.

하지만 더그 골키퍼는 잡아 내지 못했다.

갑작스럽기도 한 데다, 물기 때문에 미끄러웠으니까.

그렇게 놓쳐 버린 공을 숀 코너리가 긴 다리를 뻗어 골대로 밀어 넣었다.

“크하핫! 역전! 드디어 역전이다!”

“봤냐, 콥스 놈들아! 이게 유나이티드다!”

3 대 2 역전.

12번째 전사들을 비롯한 맨유 팬들은 꽹과리를 빙자한 냄비를 두들겨 대며 신나게 방방 뛰었다.

흥분한 몇몇은 아예 웃통까지 벗어 던지고 머플러나 레플리카를 흔들어 댔다.

승리가 눈앞에 왔다!

그렇게 여기며 축제를 벌이는 이들은 잊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붉은 제국의 축구 황제가 아직 기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당황할 거 없어. 어차피 녀석들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던 거니까.’

센터 서클 안에서 스코어보드를 힐끔 쳐다보았던 펠레는 킥오프 후, 유나이티드 진영으로 달려갔다.

리드하다 순식간에 역전을 당해 버린 탓인지, 팀원들의 움직임은 썩 좋지 못했다.

그 때문에 바비 찰튼이나 조니 자일스에게 또다시 인터셉트를 당해 역습을 허용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다행히 그 역습은 수비수들이 침착하게 막아 냈다.

“허둥대지 말고, 동료들의 움직임을 보고 패스해!”

“좀 더 앞으로 나가, 캘러헌!”

섕클리 감독과 페이즐리 코치의 독려에 리버풀 선수들도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펠레가 위협적인 슈팅을 날리며 아직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었다.

‘고작 1점 차다. 경기가 어떻게 될지 아직 아무도 몰라.’

리버풀 선수들뿐만 아니라, 맨유 쪽에서도 그리 여기며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양 팀은 한동안 치열하게 공방전을 펼쳤다.

그러다 후반 28분, 던컨 에드워즈와 맞대결을 펼치던 펠레는 알란 아코트에게 공을 주고 재빨리 측면으로 돌아 들어갔다.

‘리턴 패스!’

하지만 펠레 쪽으로 패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맨유 수비수들의 시선이 펠레 쪽으로 향한 틈을 타서 이안 캘러헌이 빈 공간으로 파고들고 있었기 때문.

이를 본 알란이 패스를 찔러 주었고, 캘러헌은 주저 없이 슈팅을 날렸다.

‘그렇게는 안 된… 아, 망할!’

황급히 몸을 날린 준영의 무릎에 굴절된 공이 골대 안으로 떨어졌다.

3 대 3.

경기장 분위기는 삽시간에 돌변했다.

“허, 이거 완전히 엎치락뒤치락이군.”

“이러면 진짜 끝까지 알 수 없겠는걸.”

홈팬들의 속이 타들어 갔지만, 취재하는 기자들은 신났다.

몇몇은 리버풀의 승리를 기원하기도 했다.

머지사이드 출신이기 때문인 이들도 있었지만, 리그의 새로운 강호가 유럽 챔피언을 쓰러트린 사건은 대중의 주목을 받을 테니까.

‘좋아, 이 분위기를 타고 역전까지……!’

후반전도 절반이 넘은 시간대.

하지만 펠레의 발놀림은 무뎌지지 않았다.

섕클리의 강도 높은 훈련으로 체력이 좋아지기도 했지만, 흥이 나서 피로도 잊었기 때문.

「펠레, 센터 서클 부근에서 딕 화이트의 패스를 받아 빠르게 달려 나갑니다. 한 명 제치고, 두 명… 아, 세 명째 제칩니다!」

질풍노도.

짐 박스터와 조니 자일스, 심지어 바비 찰튼까지 차례대로 제치는 펠레의 놀라운 드리블에 여기저기서 경악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이거 실화냐?’

바람같이 유연하고 빠른 쇄도.

준영은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을 느꼈다.

이 시대의 축구 경기에서 뛰면서 처음으로 느끼는 공포감이었다.

‘쳇, 겁먹지 말라고!’

스스로를 다그친 준영은 거침없이 밀고 오는 축구 황제를 향해 달려가 태클을 날렸다.

발끝에 공이 걸림과 동시에 펠레가 나동그라졌다.

삐익-!

“파울? 내가 먼저 공을 걷어 냈는데 어째서죠?”

준영의 항의는 심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실 방금 전 상황은 애매했다.

준영이 먼저 걷어 낸 것 같기도 하고, 펠레가 더 빨랐던 것 같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리플레이를 돌려 볼 수 없으니 심판 판정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박스 밖이니 다행이지, 페널티킥이었으면…….’

준영이 동료들과 수비벽을 만들 때, 그의 곁에 선 던컨이 말했다.

“존, 저 녀석, 진짜 무섭게 강해졌는데?”

“저기서 끝이 아니라는 게 더 무섭지. 점점 더한 괴물이 될 거다.”

둘이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공 앞에 선 펠레가 제자리 뜀을 하면서 몸을 날렸다.

‘저거 설마?’

뻐엉-

활처럼 몸을 휘었던 펠레가 킥을 날리자, 공이 무서운 소음을 울리며 날아갔다.

수비벽을 피해 날아간 슈팅은 그대로 나갈 듯하다, 도중에 휘어져서 골대 안에 떨어졌다.

골키퍼 해리 그렉은 전혀 반응하지도 못했다.

“저, 저게 뭐야!”

“이건 사기야. 저런 말도 안 되는 궤적이 어딨어?”

충격과 공포, 혼란과 환장.

필드고 관중석이고 모든 이들이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건 골을 넣은 펠레도 마찬가지.

자신이 차고도 저런 원더골이 들어갈 것은 예상치 못했던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방방 뛰며 텀블링까지 했다.

‘맙소사, UFO슛까지…….’

혹시 외계인이 찾아와서 펠레에게 치트 능력을 심어 준 게 아닐까?

잠시 카린이 할 만한 의심을 하던 준영은 자신의 뺨을 두들겼다.

멍때리고 있을 때가 아니기에, 서둘러 충격으로 굳어 버린 동료들을 다그쳤다.

“다들 정신 차려. 우리 지금 역전당했다고.”

“엉? 어… 그렇지.”

“얼빠진 표정 그대로 내일 신문 1면에 나가기 싫지? 그러니까 이대로 지면 안 된다고!”

다그친 보람은 있었다.

실점의 충격을 빠르게 털어 낸 맨유 선수들은 침착하게 반격에 나섰다.

오히려 그들보다 리버풀 선수들이 더 흥분했다.

역전당했다가 다시 재역전을 이뤄 낸 데다, 펠레의 원더골에 단단히 고무되었기 때문.

‘이길 수 있어! 아니, 우리가 이겼다!’

‘우리가 최강이다!’

너무 흥분하다 보니 전열도 들쑥날쑥.

섕클리 감독의 호통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경기가 빨리 끝나기만 바랐고, 공이 오면 일단 멀리 걷어 내는 데 몰두했다.

처음에는 그런 대응도 통했지만, 공을 계속 점유하는 맨유 선수들이 침착하게 들쑤시기 시작하자 계속 수비가 흔들렸다.

그러다 공격 가담을 하러 전진한 던컨에게 무회전 중거리 슛을 허용하고 말았다.

「던컨의 강력한 슛-! 더그 골키퍼가 가까스로 골대 위로 쳐 냅니다. 아깝습니다!」

아찔한 슈팅에 리버풀 선수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위기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아까운 기회를 놓친 걸 보면 유나이티드의 운이 다한 게 틀림없어.’

‘승리의 여신이 우리 리버풀을 선택했다!’

그들이 승리를 확신하는 사이, 준영은 리버풀 페널티 박스로 들어와 코너킥 공격을 준비했다.

남은 시간은 5분 남짓.

결과를 바꿔 놓기에 시간은 부족하지 않았다.

***

호베르투 카를로스가 1997년에 쏜 UFO슛은 축구 역사에 두고두고 언급될 정도로 진기명기죠.

무회전이랑 같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들 있는데, 저 슛은 무회전이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궤적이 나온 원인은 ‘마그누스 효과’라고 합니다. 물체가 회전하며 유체를 통과할 때는 압력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휘어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거지요.

이에 반해 무회전 슛은 공기가 공의 위아래로 흘러가면서 발생하는 소용돌이의 기압 차이로 공의 궤적이 달라지는 겁니다. 굉장히 불규칙한데, 이 현상을 두고 ‘카르만 소용돌이 효과’라고 하죠.

물론 축구 선수들이 물리학을 알고 찬 건 아닙니다.

카를로스도 자신의 UFO슛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한편으로 ‘선수 생활 중 단 한 번 넣을 만한 골.’이라고 했는데, 은퇴하고 집에서 심심풀이로 연습할 때는 잘 넣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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