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246.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1959-60 시즌 맨유의 출발은 순탄하지 못했다.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원정에서 0 대 1로 패했고, 홈에서 열린 2라운드 첼시전에서도 선제골을 내주며 고전했다.
거의 질 뻔한 경기는 후반 43분에 터진 준영의 중거리 슛으로 간신히 무승부를 거뒀다.
사흘 후 3라운드 뉴캐슬전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이 경기도 1 대 0의 신승.
이렇게 불안한 출발에 일부 언론에서는 다시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유나이티드에 암운이 드리워졌다는 둥, 이빨 빠진 챔피언이라는 둥.
당연히 맨유 선수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쳇, 뛰어 보지도 않고 잘도 지껄이는군.”
“언론은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상대의 밀집 수비를 뚫을 방법을 생각해 봐야 돼.”
1라운드 알비온도, 그리고 첼시와 뉴캐슬 역시 맨유를 상대로 5백 수비를 썼다.
첼시와 뉴캐슬은 거의 5-4-1에 가까운 포지션으로 최전방에 공격수 한 명만 놓고 철저히 선수비 후역습 작전을 펼쳤고, 알비온은 사실상 제로톱 전술을 썼다.
“놈들이 너무 수비에만 치중하니 슛이랑 패스를 할 만한 공간이 안 나와.”
“공격에서 수적 열세를 채우려고 전진하면 뒷공간이 비어. 두 경기 실점도 전부 거기서 나왔다고.”
“그것도 그렇지만, 우리 팀 플레이에 잘 대응하는 것 같아.”
세 경기에서 상대 팀 선수들은 정말 많이 뛰었다.
마치 맨유전에 모든 걸 걸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다 보니 경기 중에 근육에 경련이 와서 실려 나가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렇게 침대 축구가 벌어질 때마다 경기 흐름이 뚝뚝 끊겼고, 시간은 낭비되었다.
그렇다 보니 애간장이 타는 맨유 선수들은 침착하게 플레이할 수 없었다.
“거기다 이젠 존의 개인기에도 잘 속아 넘어가지 않더라.”
“2년 동안 당해 왔는데 대응법을 못 세우면 그거야말로 바보지.”
준영이 공격에 올라올 때마다 상대편에서는 발이 빠르고 체격이 좋은 선수를 전담 마크로 붙였다.
더구나 개인기 대비 훈련도 꽤 했던지, 이제는 드래그 백이나 스텝 오버 정도는 잘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다른 팀 공격수들도 이 두 기술을 이제 곧잘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게 단지 전술이나 훈련만은 아니지.’
준영이 처음 이 시대에 왔을 때만 해도 대다수 선수들이 발목까지 올라오는 단단하고 둔한 축구화를 주로 신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발목 움직임이 편하게 목이 짧고 가벼운 축구화를 신는 선수들이 많이 늘어났다.
1부 리그 선수들은 특히 그랬다.
거기다 자금이 되는 팀들은 유니폼도 얇고 통풍이 잘되는 소재로 만들었다.
라텍스를 바른 키퍼 장갑이나 정강이 보호대 등도 많이 도입되었다.
“적을 이기기 위해서 적을 분석하고 배우게 된 거라고 할 수 있지.”
“다들 우릴 따라 하고 있다는 거군.”
“올드 트래퍼드나 우리 훈련장을 염탐하는 놈들이 많으니까.”
기자로 위장하고 숨어든 상대 팀 분석관들이 쫓겨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맨유에서 하는 것처럼 소형 무비 카메라를 쓰는 놈들도 있었다.
“훈련장 정도면 이해라도 하지. 집에서 훈련하는 것도 찍으러 오는 미친놈들이 있더라니까.”
“그런 놈들은 사생활 침해로 경찰에 신고해 버려.”
아무튼 당장 중요한 건 앞으로 다른 팀들도 펼치리라 예상되는 밀집 수비를 뚫을 방법이다.
“전술은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강구하고 있을 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세 가지 정도야.”
첫째는 중거리 슛의 빈도를 높여 수비를 끌어내는 것.
둘째는 월등한 스피드나 개인기로 상대 수비망을 벗겨 내는 것.
마지막 셋째는 박스 안에서 상대 수비들이 지칠 때까지 움직이며 적극적으로 부딪쳐 주는 것.
“뭐,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준영의 말에 던컨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쉽지 않은 걸 해내야 프로지. 우리가 전술만으로 강팀이 된 건 아니잖아.”
“그래, 맞는 말이야.”
아무리 감독의 전술이 뛰어나고, 스폰서가 많아도 선수가 뛰어나지 않으면 성적이 나올 리 만무하다.
맨유에는 뛰어난 선수가 많다.
그것도 유럽을 두 번이나 제패한 선수들이다.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
“멋진 말이군. 그거 누가 한 말이야?”
“예전에 어떤 선전 포스터에서 본 거였어. 꽤 인상 깊었지.”
21세기의 아주 유명한 SF 영화.
아마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었다면 리즈와 앤지, 카린도 무척 감명 깊게 보았을 것이다.
아버지와 자식 간의 애틋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니까.
“아무튼 3라운드 전까지 답을 찾아보자.”
“Yes, Captain!”
할 수 있다.
다들 자신감을 불태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
불안하게 시즌을 출발한 8월을 뒤로하고, 맨유 선수들은 9월 2일 4라운드 첼시 원정 경기에 나섰다.
“이길 수 있어!”
“그래, 이번에야말로 빨간 악마 새끼들을 때려잡자!”
“Pride of London! Let’s go together for victory!”
홈구장인 스탬퍼드 브리지에 모인 첼시 팬들은 상당히 고무되어 있었다.
아쉽게 무승부로 끝났지만, 올드 트래퍼드에서 승리를 따낼 뻔했으니까.
그러니 홈에서 열리는 경기에선 이길 수 있다고 기대했다.
‘첼시 서포터도 그럴듯해졌구만.’
준영은 짙은 파랑색으로 물든 관중석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비시즌에 첼시 팬들은 얼마나 준비를 했는지 대형 깃발은 물론, 첼시 엠블럼이 그려진 거대한 통천까지 펼쳐서 흔들어 댔다.
“안됐지만, 너희가 우리 1승 제물이 되어 줘야겠어.”
“헹, 아직 1승도 못 올린 놈들이 우릴 잡겠다고? 꿈도 크셔.”
킥오프 직전, 지미 그리브스와 알렉스 퍼거슨이 말다툼을 벌였다.
첼시는 3경기 2무 1패, 맨유는 그보다 낫긴 해도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승격 팀인 리버풀이 펠레를 앞세우며 3연승으로 선두를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오늘 승리로 반드시 그 격차를 줄인다!’
그렇게 다짐한 알렉스는 킥오프가 되기 무섭게 첼시 진영으로 달려갔다.
맨유는 오늘 경기 3-5-2 포메이션으로 나왔다.
하지만 공격 시에는 3-3-4로 변형될 정도로 좌우 윙어 레이 윌슨과 던컨 에드워즈의 공격 가담이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오늘 공격의 키 플레이어는 알렉스 퍼거슨.
그는 부지런히 상대 페널티 박스를 드나들며, 첼시 주장 피터 실렛을 비롯한 중앙 수비수들과 끊임없이 부대꼈다.
‘이 애송이 녀석, 꽤 거칠게 덤벼드는군.’
피터 실렛이 눈살을 찌푸릴 때, 좌측면 깊숙이 파고든 레이 윌슨이 크로스를 올렸다.
그 공을 노리고 알렉스와 피터가 뛰어올랐다.
투웅-
알렉스의 머리에 맞고 튕긴 공을 첼시 골키퍼 레지날드 매튜스가 잡아챘다.
“쳇, 아깝군!”
알렉스가 제대로 헤딩슛을 맞히지 못한 건 피터 실렛의 마크 탓.
공중 경합에서 피터 실렛의 이마에 부딪쳐 입술이 터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다녔다.
“저 애송이, 근성 있구만.”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선제골을 박아 넣은 놈이야. 절대 방심해선 안 돼.”
홈경기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경기는 원정팀인 맨유가 주도해 나갔다.
그들은 시종일관 좌우 측면을 파고들면서 중앙에서는 알렉스와 데니스 바이올렛이 수비진을 흔들어 댔다.
“아무리 상대가 유럽 챔피언이라지만, 너무 움츠리고 있는 거 아냐?”
“있어 봐. 움츠렸다가 한 번에 치고 올라갈 테니까.”
관중들이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가운데, 데니스 바이올렛의 돌파를 저지한 피터 실렛이 전진해 나왔다.
바비 찰튼과 로니 코프를 과감하게 제쳐 낸 피터는 최전방을 향해 길게 패스를 날렸다.
그 패스는 공격수 지미 그리브스의 앞으로 정확히 떨어졌다.
수비수 조 캐롤런이 그를 쫓아갔지만, 스피드는 지미 그리브스가 더 빨랐다.
조 캐롤런을 따돌린 지미는 각을 좁히러 나온 해리 그렉마저 제쳐 내고 공을 골대 안에 밀어 넣었다.
“Great!”
“정말 멋진 역습이었어!”
전반 25분, 맨유는 웅크리고 있다가 날린 첼시의 카운터펀치에 당했다.
우레 같은 함성이 스탬퍼드 브리지를 뒤흔드는 가운데, 관중석에서는 파도처럼 푸른 물결이 일어났다.
‘파도타기? 저건 언제 어디서 배웠대?’
선제골을 내준 상황이긴 하지만, 준영은 당황하지 않고 선수들을 독려했다.
“걱정 마.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어!”
“공격을 주도하는 건 우리 쪽이야. 일단 한 골만 만들어 보자!”
“시간은 많아. 조급해하지 말고 침착하게!”
연방 독려한 준영은 중앙선을 넘어가 과감하게 공격을 지원했다.
그의 패스를 받은 바비 찰튼이 과감하게 돌파하며 수비수들을 끌고 나갔다.
그러다 힐 패스로 공을 뒤쪽으로 흘렸고, 준영이 달려들며 슛을 날렸다.
파 포스트 상단을 노린 감아 차기.
몸을 날린 레지날드 키퍼가 펀칭을 했지만, 공은 멀리 날아가지 못했다.
피터 실렛의 마크를 뿌리친 알렉스가 리바운드 볼을 헤딩으로 골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우어! 들어갔다아!”
“휴우, 바로 추격하는구나!”
“진짜 또 질질 끌려가는가 했었다고!”
시무룩하게 웅크리고 있던 맨유 서포터 12번째 전사들이 쾌재를 불렀다.
이른 시간의 추격 골.
첼시 쪽으로 흐를 것 같던 분위기는 다시 맨유 쪽으로 돌아섰다.
***
경기 전, 버스비 감독과 머피 코치는 오늘 출전 멤버들에 대한 기준을 세웠다.
팀에서 가장 체력이 뛰어나고, 컨디션이 제일 좋고 과감한 선수들 위주로.
체력과 컨디션, 그리고 자신감이 승리의 열쇠가 될 거라고 본 것이다.
“어지간한 개인기나 패스로 뚫리지 않는 상대 수비진을 흔들자면 물리적인 방법이 가장 확실하죠.”
“그래, 상대에게 계속 부담을 주고 지치게 만들면 빈틈은 만들어지기 마련이니까.”
저돌적인 알렉스는 선봉장으로서 임무를 잘 수행했다.
이제 남은 건 역전뿐.
예상보다 그 기회는 빨리 다가왔다.
실점으로 첼시 수비진이 흔들린 틈을 타서 던컨이 측면을 허물며 컷백.
데니스 바이올렛이 수비수를 끌고 가며 흘린 공을 바비 찰튼이 논스톱 슛으로 밀어 넣으며 경기를 뒤집어 놓았다.
동점 골을 넣은 지 불과 3분 만의 일이었다.
“뭐야,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네.”
“인마들아!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는 첼시 팬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패닉에 빠진 첼시 선수들은 쉬이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던컨이 무회전 슛이라는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쌔액- 좌아악!
바람을 세차게 가르고 날아온 슈팅은 그물을 찢어발길 듯이 흔들어 댔다.
스코어 1 대 3.
좀 전에 요란을 떨던 첼시 팬들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빌어먹을, 역시 대단하구만!’
피터 실렛은 분통을 터트렸다.
유럽을 제패한 붉은 악마들.
한번 흐름을 타고 달려드는 그들은 정말이지 무서웠다.
설마 홈에서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역전당하고 스코어가 벌어질 줄은 몰랐다.
‘훌륭하다, 훌륭해, 유나이티드 놈들. 하지만 여기서 끝날 거라 생각하지 마라.’
Pride of London.
팬들이 내건 현수막에 적힌 저 문구대로, 피터는 자존심을 걸고 끝까지 맞서 싸우리라 다짐했다.
***
9월 19일, 첼시(1957~1961)와 토트넘(1961~1970)에서 득점 머신으로 활약했던 지미 그리브스가 향년 81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토트넘과 첼시의 경기가 있기 전에 부고가 전해졌죠.
1960년대 잉글랜드 축구계를 평정했던 레전드 스트라이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