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nd 243. 꿩 대신 닭, 아니 독수리
“네가 벨파스트에서 온 조지구나.”
맨유의 유소년 팀을 찾아온 준영은 호리호리한 체격에 준수한 용모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조지 베스트.
맨유 사상 최강 트리오 중 한 명이자, 수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은 축구 천재.
하지만 자제력을 잃고 술과 여색에 빠져 폭력과 기행을 일삼다 훅 가 버린 방탕아.
명암이 뚜렷한 운명을 앞둔 소년은 입을 헤벌린 채 준영을 바라보았다.
“맞아. 내가 조지예요. 아저씨는 존 Y. 리 맞지?”
“그래. 맨체스터 생활은 할 만하니?”
“글쎄요. 학교는 최악이에요. 선생이 걸핏하면 소리치고 때려. 안 다녔으면 좋겠어요.”
영웅, 아니 선수는 공부 따윈 안 한다네~
장차 축구 선수로 성공할 텐데 공부해서 무엇 하랴.
이렇게 생각하는 조지에게 준영이 충고를 했다.
“내 후견인이나 마찬가지인 분이 지난번에 이런 얘기를 하셨어. 신사는 지덕체를 모두 갖춰야 한다고.”
“풋, 노인네 같은 소릴 하시네.”
“뭐?”
조지의 비웃음에 준영의 미간이 꿈틀했다.
그러든 말든 조지는 말을 이어 나갔다.
“아저씨, 요즘 여자들은 샌님 같은 남자는 싫어해. 제임스 딘이 괜히 인기 많은 줄 알아?”
“그 사람은 죽었잖아.”
“죽은 거 아냐. 사람들이 기억해 주면서 추앙하고 있으면 계속 살아 있는 거야. 불멸이 된다 이거지.”
‘어쭈, 이놈 봐라.’
어린놈이 벌써부터 말발이 제법 좋지 않은가.
그런데 준영은 약간 의아하긴 했다.
터너 신부님께 듣기에 조지 베스트가 처음 맨체스터에 왔을 때는 조용하고 소심한 소년이었다고.
한데 지금 이 날라리 같은 녀석은 무엇인가.
터너 신부님이 잘못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역사 변동의 영향인가.
“조지! 뭘 하고 있냐? 휴식 시간 끝났다! 다른 애들은 벌써 훈련하고 있는 거 안 보이니?”
조지 베스트에게 호통을 날린 유소년 팀 코치.
그는 바로 김용식이었다.
현재 그는 맨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으면서 유소년 선수 지도를 돕고 있었다.
“내 잘못 아니에요. 이 아저씨가 말 걸어서 그랬어요.”
“적당히 사양하고 물러날 줄도 알아야지. 얼른 가서 패스 훈련을 해.”
“눼눼, 알겠습니다요.”
오리같이 입을 쭉 내민 조지는 곧장 훈련에 동참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던 김용식에게 준영이 말을 건넸다.
“말을 잘 안 듣나 보죠?”
“확실히 재능은 굉장한데 너무 으스대는군. 아무리 생각해도 데려올 때 잘못 데려온 것 같아.”
김용식은 맨유 구단이 조지 베스트를 데려온 과정을 듣고 혀를 찼다.
아무리 역대급의 재능이라 하더라도 그렇지, 다들 감탄하며 신줏단지 모시듯 할 게 무엇인가.
그 바람에 꼬맹이 조지의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말았다.
“부모의 얘기를 들어 보니, 벨파스트에 있을 때보다 더 문제아가 된 것 같다고 하더군.”
‘아, 이게 나 때문이구나…….’
준영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혹시나 다른 팀에게 조지 베스트를 하이재킹당할까 싶어 일찍 데려오자는 생각에 추천을 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일찍 거만하게 만들고 말았으니!
이러다 맨유에서 제대로 활약하기도 전에 방탕아가 되는 건 아닐지 괜히 불안해졌다.
***
“그래서 조지의 집을 모즐리로 옮기기로 했다고?”
“예. 가까이 두고 관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훈련을 시작하기 전, 준영은 조지 베스트 문제로 머피 코치와 이야기를 나눴다.
“더구나 모즐리는 한적한 동네니까 탈선할 만한 문제도 별로 없죠.”
“거기다 그쪽에 짓고 있는 클럽 하우스까지 완공되면 관리하긴 더 쉽겠구만.”
고개를 끄덕이던 머피가 약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그 꼬마에게 너무 신경 쓰는 거 아니야?”
“제가 추천해서 데리고 온 거니 제가 책임을 져야죠.”
사실 그보단 역대급 재능을 가진 레전드 윙어를 가르쳤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즉, 레전드를 키운 레전드가 되고 싶었던 것.
후대 축구팬들의 입에도 오르내리기 좋은 이야기가 아닌가.
“아무튼 너무 건방져서 문제예요. 적당히 겸손해지게 만들어야 하는데…….”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그런 애새끼는 매가 약이야.”
그리 대답한 건 머피가 아니라, 곁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브라이언 클러프였다.
미래에 로이 킨을 주먹으로 다스린 장본인답게, 그는 비(Be)폭력주의를 주장했다.
“결국 오냐오냐 떠받들어 줘서 저리된 거잖아. 엎어 놓고 크리켓 배트로 볼기짝을 두들겨 주면 아주 겸손해질 거야.”
“크리켓 배트라니, 그건 아동 학대잖아.”
분명히 극약 처방을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크리켓 배트 같은 걸 휘두르다간 처방은커녕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거기다 자칫 성격이 더 삐뚤어져 버리면?
‘아무튼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건 분명해.’
준영이 그리 마음먹었을 때, 버스비 감독이 키가 큰 청년 둘을 데리고 훈련장에 나타났다.
“인사 나누도록. 이번에 우리 팀에 합류한 스코틀랜드 친구들이야.”
“와, 반가워요.”
스코틀랜드 출신인 알렉스와 데니스 로, 숀 코너리가 동향인 그들을 환영해 주었다.
주장인 준영도 그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어서 와요. 론 예이츠랑 이안 세인트 존이죠?”
“예? 아닌데요.”
‘뭐?’
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준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버스비 감독이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존, 론 예이츠와 이안 세인트 존의 영입은 실패했네.”
“어째서죠? 혹시 리버풀… 이나 다른 팀들이 먼저 채 갔습니까?”
“아니, 그렇지 않고 그 둘의 소속 팀에서 거절했어.”
던디 유나이티드는 론 예이츠가 승격을 위한 핵심 멤버라며 이적 거부 의사를 밝혔다.
마더웰의 감독인 바비 안셀 감독도 우승 경쟁을 위해 필요한 선수라며 이안 세인트 존을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빈손으로 돌아올 찰나에 안셀 감독이 이 둘, 빌리 맥닐과 짐 박스터를 추천해 줬어.”
‘엥? 빌리 맥닐이랑 짐 박스터라고?’
전자는 셀틱 FC에 트레블을 안겨 준 주역, 그리고 후자는 레인저스 FC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이자 만능 미드필더.
준영이 알기로 둘 다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유명 인사들이다.
‘더 좋은 것 같은데?’
꿩 대신 닭은 아니고, 펠레나 디 스테파노 같은 봉황급도 아니지만, 독수리급은 충분히 되어 보였다.
버스비 감독은 이들의 영입 때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셀틱에서는 맥닐을 보내는 걸 무척 아쉬워했어. 레인저스는 자신들이 찍어 둔 선수를 채 갔다고 노발대발하더군.”
짐 박스터는 레이스 로버스 소속이었다.
레인저스 FC에서 그의 기량을 눈여겨보고 영입을 준비 중이었는데, 맨유에 그만 하이재킹을 당해 버린 것이다.
“왠지 안셀이 경쟁 팀의 전력을 깎을 목적에서 이들을 추천해 준 게 아닌가 싶더군.”
“뭐, 기대했던 선수들은 아니지만, 이들도 꽤 뛰어나 보이네요.”
“그렇지? 이번 시즌 우리 팀에 아주 큰 힘이 되어 줄 거야.”
남은 것은 이제 팀워크를 다지며 다가올 새 시즌에 대비하는 것뿐.
올드 트래퍼드의 붉은 악마들은 새로운 영광을 위해 전진해 나갔다.
***
모즐리 서쪽에 있는 준영의 별장.
창고를 깔끔하게 개조해서 홈시어터로 꾸며 놓은 그곳에서 미래의 SF 영화가 재생 중이었다.
「Nothing… can stop that now. Just for once… Let me Look on you with my own eyes.」
이미 몇 번이나 감상했지만, 자매들은 대사를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어둠에 물든 악당이 아들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에 선한 마음을 되찾아 악한 황제와 싸우고, 그 후유증으로 죽어 가는 모습이 정말 찡했으므로.
특히나 저 애틋한 부정(父情)은 그녀들에게 남의 이야기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엔딩에서 선한 영혼의 모습으로 나타난 아버지가 아들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진짜 명작이야!”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것 같아.”
“세기의 명작이니까.”
재생이 끝나자, 준영은 다시 불을 켰다.
그리고 노트북과 미니 빔 프로젝트를 정리할 때, 앤지와 카린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저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되긴. 동화책처럼 행복하게 다들 잘 살았습니다로 끝났잖아.”
“하지만 황제가 죽고도 제국 잔당들이 남은 것 같은데? 거기다 저 영화, 굉장히 인기를 끌었을 것 같은데 후속작이 없었을까?”
“웅… 오빠한테 물어보자.”
카린은 곧장 준영에게 다가와 후속작의 존재에 대해 물었다.
“후속작? 있어. 악당 아재가 어떻게 어둠에 물들게 되었는가를 다룬 세 편의 프리퀄 시리즈가.”
“그럼 저 다음 얘기는 없는 거구나.”
“…응, 없어.”
앤지는 준영이 살짝 머뭇거리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형부, 지금 거짓말했지? 후속작 있는 거지?”
“없어. 진짜 없어.”
아무리 봐도 있는 것 같은데.
저렇게 애써 부정하는 걸로 봐서, 어쩌면 후속작이라고 나온 게 형편없는 망작인지도 모른다.
마치 황당무계한 얘기가 되어 버린 007 시리즈 소설처럼.
“아 참, 형부, 지난번에 이안 플레밍의 머리를 쪼개니 어쩌니 했었잖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을 거야?”
“안 하긴. 이미 하고 있어.”
따로 조사를 해 봤는데, 의외로 그 작자를 손봐 주는 건 간단해 보였다.
그래서 계획을 짰고, 곧장 진행시켰다.
“아마 지금쯤 영화 한 편 찍고 있을 거야.”
준영의 입가에 은하를 지배하던 어둠의 황제와 같은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
***
영국 런던 켄트의 주택가.
중절모를 눌러쓴 사내들이 차를 타고 나타나 어느 집 출입문을 거칠게 두들겨 댔다.
“선생님, 집에 계신 거 알고 있습니다. 문 좀 여시죠.”
노크하는 사내의 말에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뭔가 싶어 바라보던 행인들은 사내들과 시선이 마주치자 냉큼 고개를 돌리며 발길을 재촉했다.
“갱들인가?”
“사채 빚이라도 받으러 온 것 같아요.”
“쯧쯧, 플레밍 저 인간, 저렇게 될 줄 알았어.”
갱단(?)이 찾아온 주택은 기자이자 007 시리즈의 작가로 유명한 이안 플레밍의 집이었다.
이웃 사람들은 평소 플레밍이 술과 도박, 여색에 빠져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가 분명 카지노에서 한탕 벌이다가 갱단의 사채를 빌려 쓴 것이 틀림없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건 실제로도 그랬다.
‘젠장, 그렇게 날릴 줄은 몰랐는데…….’
플레밍은 여느 때처럼 단골 호텔 카지노를 찾아가 도박을 즐겼다.
그런데 그날은 새로운 손님들이 있었다.
어딘가 서툴러 보이는 그 호구, 아니 친구들에게서 초반에 승승장구하며 코인을 긁어모았다.
‘그때 발을 뺐어야 했어!’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호구들의 반격이 시작되었지만, 그는 그 정도 손실은 이후에 만회할 수 있다고 판단, 그냥 묻고 더블로 가 버렸다.
그렇게 남자답게 질러 버린 결과 폭망.
좌절하는 그에게 웬 친절한 신사가 돈을 빌려 주었다.
자기 소설 팬이라면서. 반드시 만회할 수 있을 거라며.
하지만 호구로 위장하던 타짜들은 플레밍의 코인은 물론, 영혼까지 털어 버렸다.
그리고 친절했던 열성 팬도 순식간에 냉혹한 채권자로 태도를 바꿨다.
***
빌리 맥닐은 선수 시절 거의 대부분을 셀틱에서 보냈고, 주장까지 맡았습니다.
1967년 인터 밀란을 물리치고 빅 이어를 차지했고, 리그에서는 무려 9년 연속 팀을 우승시키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친정 팀 감독도 맡고 맨체스터 시티와 아스톤 빌라에서도 지휘봉을 잡았죠.
2019년에 타계했는데, 장례식에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케니 달글리시도 참석해서 스코틀랜드 레전드임을 입증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