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38화 (238/400)

Round 238. Forever The Moment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네카어슈타디온.

잠시 후 이곳에서 1958-59 시즌 유러피언 컵 결승전이 열린다.

정상을 다투는 팀은 디펜딩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프랑스 최강의 스타드 드 랭스.

4강 맨유와 레알 마드리드의 시합을 두고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 경기 역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어느 쪽이 이길까?”

“그야 저승사자 군단을 지옥으로 밀어 버리고 올라온 맨체스터의 붉은 악마들이지.”

“랭스도 그에 못지않을걸? 스웨덴 월드컵 득점왕과 프랑스 현직 국가대표들로 구성된 스타 군단이잖아.”

“헹, 그런 걸로 치면 유나이티드도 마찬가지이지. 그쪽은 월드컵 올스타 멤버들이 있다고.”

경기장으로 몰려든 7만여 명의 관중들은 어느 쪽이 우승을 할지 논쟁을 벌이거나 내기를 걸었다.

대체로 비등비등했다.

마냥 맨유의 손을 들어 주기엔 랭스의 전력도 만만찮았기 때문.

하지만 그 예상은 경기가 시작되자 산산이 부서졌다.

「유나이티드 8번 알렉스 퍼거슨, 빠르게 랭스 진영으로 돌파해 들어갑니다. 달려 나오는 수비수 브루노를 제치고 슛-! 아, 들어갑니다! 들어갔습니다!」

중계 캐스터뿐만 아니라 관중들도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시작한 지 아직 1분 정도밖에 안 지났다고!”

“랭스 녀석들, 안 막고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대체?”

관중들의 시선이 골을 넣은 스코틀랜드 소년 공격수에게 향했다.

준영이 골을 넣었을 때와 같은 골 셀레브레이션을 펼친 알렉스에게 동료들의 축하가 쏟아졌다.

“잘했다, 퍼기.”

“헤헷, 주장이나 선배들에 비하면 별거 아니더라고요.”

다른 공격수들도 그렇지만, 알렉스와 데니스 로도 준영이나 던컨 등을 상대로 공격 훈련을 많이 했다.

이렇게 월드 클래스 수비수들에게 조련을 받다 보니, 어지간한 수비수들은 어렵지도 않았던 것.

“자,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방금 득점은 잊고 정상적으로 플레이를 하자고.”

“Yes, Captain.”

이렇게 이른 선제골을 터트린 맨유와 달리, 랭스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어리다고 얕본 게 화근이었어요.”

“멍청아, 얕보기는 왜 얕봐! 저놈들, 레알 마드리드도 쓰러트린 괴물들이라고!”

안 그래도 경기하기 며칠 전 레몽 코파가 찾아와서 맨유의 정보를 알려 주며 충고를 해 줬다.

90분 동안 절대 방심하지 말라고.

그 충고를 가볍게 들었던 대가는 정말 뼈아팠다.

“그나마 경기 시간이 아직 많으니 다행이군.”

“네, 만회할 수 있어요. 우리 팀엔 월드컵 득점왕 퐁텐이 있으니까!”

쥐스트 퐁텐.

원래 프랑스 대표팀에서도 후보에 불과했지만, 지난 스웨덴 월드컵 때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월드 클래스 공격수로 부상했다.

이번 유러피언 컵에서도 그는 10골을 넣으며 팀을 결승에 올려놓았다.

그런 실력자인 만큼 분명 오늘도 한 건 해 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건만…….”

피아토니는 파트너인 퐁텐이 고전하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퐁텐의 움직임이 나쁘지는 않다.

상대 문전에 있는 빈 공간을 잘 찾아 들어가고, 몇 차례 슈팅도 날렸다.

하지만 그게 전부.

오늘 상대는 너무 나빴다.

맨유의 주장이자,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 주전 수비수였던 존 Y. 리.

뛰어난 신체 능력과 판단력을 가진 그는 퐁텐의 움직임을 완전히 봉쇄했다.

‘확실히 득점 감각은 좋아 보여. 근데 피지컬이 허약하군.’

예전에 어떤 감독이 말했다던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공격수.

퐁텐은 뛰어난 득점 감각 하나로 상대 문전을 여는 스타일의 공격수였다.

하지만 그 감각도 어느 정도 비빌 수 있는 상대에게나 위력을 발휘한다.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격차가 나는 상대를 넘어서기는 힘들었다.

준영은 퐁텐이 돌아서거나 정확한 슈팅을 하지 못하도록 적당히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렇게 퐁텐이 봉쇄되니 랭스의 공격도 시원찮을 수밖에 없었다.

피아토니와 뱅상이 분전했지만, 이쪽도 던컨이나 바비 찰튼 등에게 견제를 받아 이렇다 할 위협적인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결국 전반전은 1 대 0으로 맨유가 리드한 상태로 마무리되었다.

“후반전엔 전술을 바꾼다! 반드시 역전해야 한다. 4년 만에 결승에 올라왔는데, 또다시 준우승에 그칠 순 없어!”

랭스의 감독 알베르 바퇴스는 선수들에게 분발을 촉구했다.

그가 다그치지 않더라도 이기고 싶은 건 선수들도 마찬가지.

‘후반전엔 어떻게든 골을 넣고 말겠어.’

‘우승은 우리 것이야!’

하프타임이 끝나자, 전의를 끌어 올린 랭스 선수들이 필드로 나갔다.

관중들도 후반전은 랭스의 대반격이 시작될 것이라 믿었다.

「피아토니, 퐁텐에게 패스! 하지만 존 Y. 리가 끊어 내서 전진해 나옵니다. 한 명 제치고 길게 패스… 아, 정확하게 데니스 바이올렛에게 전달됩니다!」

준영의 빌드업 패스에 순식간에 랭스의 수비 라인이 뚫렸다.

종케를 비롯한 랭스 수비수들이 황급히 둘러쌌지만, 그 전에 데니스 바이올렛은 공을 슬쩍 옆으로 내줬다.

그리고 뒤쪽에서 달려오던 바비 찰튼이 논스톱 슛을 작렬, 랭스 골문을 흔들었다!

「골! 골입니다! 후반전 시작 2분 만에 유나이티드가 또 한 골을 추가합니다!」

스코어 2 대 0.

대반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짜릿하게 후려 맞은 추가 골은 랭스 선수들의 전의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했다.

그와 달리 맨유 선수들은 더욱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트레블이 코앞에 있다!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게 공수 간격을 유지해! 절대 상대에게 기회를 내줘선 안 돼!”

2 대 0은 참으로 애매한 점수 차였다.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한 골이라도 추격을 당하게 되면 자칫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되고 만다.

‘레알 마드리드가 그렇게 흔들리다 우리한테 덜미를 잡혔지.’

우리는 그런 실수를 저질러선 안 된다.

이렇게 다짐한 준영은 랭스가 날리는 침투 패스나 크로스를 연달아 끊어 내며 최후방을 든든하게 지켰다.

‘한 골! 일단 한 골만 만들어 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분전하던 쥐스트 퐁텐이 다시 한번 과감하게 맨유 문전으로 공을 몰고 들어왔다.

그리고 연달아 페인트를 시도한 끝에 마침내 준영을 제치는 데 성공했다.

‘해냈다!’

곧장 슈팅을 시도한 퐁텐.

그러나 쏜살같이 태클을 날린 빌 포크스와 충돌하고 말았다.

“헉, 페널티킥?”

“아냐. 빌이 태클로 공을 걷어 내는 게 더 빨랐어.”

맨유 선수들이 가슴을 쓸어내릴 때, 랭스 쪽은 발칵 뒤집혀 버렸다.

주심이 페널티킥을 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퐁텐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

“큭, 발목이…….”

“충돌하면서 꺾인 건가?”

잠시 경기가 중단된 가운데, 랭스의 팀 닥터가 달려 들어왔다.

부축을 받고 필드 밖으로 나간 퐁텐은 경기가 재개되었을 때 되돌아왔다.

하지만 더 이상 뛰는 건 힘들었던지, 절뚝거리며 서성이고 있다가 동료들에게 패스를 건네주기만 했다.

“아, 이러면 랭스는 글렀어.”

“안 그래도 지고 있는데 팀의 주포가 저 지경이 되었으니…….”

뭔가 맨유에 돌발 악재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 경기는 뒤집어질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공수의 안정을 우선하던 맨유가 재빠르게 패스를 주고받으며 볼 점유율을 유지하다 보니, 쫓아다니는 랭스 입장에선 체력도 많이 소진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별다른 전환 없이 남은 시간이 흐르며 경기는 종료되었다.

“이겼다아-!”

“유러피언 컵 2연패다!”

“거기다 트레블이라고! 트레블!”

준영과 맨유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질러 댔다.

그저 꿈만 같았던 전대미문의 트레블.

쟁쟁한 유럽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 데 성공했다!

“Glory Manchester! Glory Man United!”

“우리가 진짜 챔피언이다!”

감격에 울고 웃는 그들은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영원히 기억될 영광의 순간.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기자들은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그 역사적인 무대의 주인공이 된 미래인의 모습이 필름에 선명하게 찍혔다.

***

“3개 대회 우승이라니! 정말 대단하구만! 대단해!”

신문에 실린 준영의 모습을 본 이억관은 흐뭇한 미소를 쉬 지우지 못했다.

이미 준영에게 연락을 받긴 했지만, 당당히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진을 보자니 느낌이 또 달랐다.

‘마치 일왕의 무조건 항복 선언에 어리둥절해하다 진짜 해방이란 걸 알고 기뻐했던 그때의 감동과 비슷하군.’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이억관뿐만이 아니었다.

호외를 받아 본 사람들은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뿌듯함을 느꼈다.

“사장님, 오성 장군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아, 모셔 오게.”

비서의 보고에 이억관은 신문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홍일이 그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음, 이 사장의 지원 덕분에 순탄하게 지내고 있지.”

대사직에서 물러난 김홍일은 그동안 전방 부대 위문 및 상이용사와 전사자 유가족들을 보살피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저 어려운 장병들을 격려하고, 나라를 위해 죽고 다친 이들과 그 가족을 보살피려는 것뿐이지만, 그것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자들은 내가 무슨 쿠데타라도 일으키려는 줄 아는 모양이더군.”

“그 정도로 경계심을 보이는 걸 보니, 그네들도 꽤 심각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긴 한가 봅니다.”

올바른 지원과 대우가 있다면 군부가 불만을 품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휴전 상황임에도 일선 장병들은 매우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7사단이던가? 그쪽은 지난겨울에 동사자가 적어서 표창장을 받았다더군.”

“없는 게 아니라 적어서 줬다고요?”

“그래. 참 어이없고 한심한 일이 아닌가. 나나 자네, 그리고 여러 독지가들이 힘을 써도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한 실정이야.”

김홍일은 올 초에 준영과 대화를 나눠 보고, 장차 들이닥칠지 모르는 암운을 막아 내려 힘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위문과 지원 활동 정도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군인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기란 어림도 없었다.

“재계 일각에서도 자유당 정권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군부 쿠데타를 우려하는 건가?”

“단순한 소문이지만, 들먹여지는 이름이 심상찮습니다.”

초대 국방부 장관이자 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

그가 족청계 인사들과 더불어 현 정권을 공격할 거란 이야기가 무성했다.

“이범석이라……. 자유당에서 축출당해서 그런가?”

이범석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다.

전쟁 중에 부산에서 계엄군을 동원해 개헌을 통과시키고 이승만의 장기 집권을 밀어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자유당 내에서 이기붕, 장택상과의 정쟁에서 패배하고 밀려나고 말았다.

“확실히 과격한 기질이 있는 사람이지. 하지만 그 정도로 소문이 퍼졌다면 행동하긴 쉽진 않을 거야.”

“하긴 대응을 할 테니까요.”

“대응해야 할 쪽에서 체념할 정도라면 또 모르지.”

씁쓸한 웃음을 짓던 김홍일은 답답한 기분을 풀기 위해 슬쩍 화제를 바꾸었다.

“아 참, 오다가 호외를 봤는데 이준영이 3개 대회 우승을 일궈 냈다면서?”

“예, 영국 최초라고 합니다. 그걸 한국인이 해낸 거지요.”

“참으로 대단한 쾌거야.”

남다른 활약을 할 만한 인물이라는 건 지난번에 만났을 때 확인했다.

만약 그런 안목을 가진 인재가 단지 스포츠나 사업을 하지 않고 다른 큰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럼 이 나라의 미래가 답답하게 여겨지지도 않았을지도…….’

아쉬운 마음에 김홍일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

쥐스트 퐁텐은 프로 데뷔 시즌에 21골을 터트릴 정도로 클래스가 남다른 공격수라는 걸 보여 줬습니다.

리그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프랑스 대표팀에 발탁되어 월드컵 단일 기록 13골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죠.

이건 현재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고, 퐁텐 본인도 후배들이 자신의 기록을 깨기 쉽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정도였습니다.

빼어난 득점 감각에 테크닉도 좋고 연계 능력도 있는 선수였지만, 하필이면 유리 몸이라 28세라는 당시로서도 다소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아마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했다면 게르트 뮐러보다 더 많은 골을 넣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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