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전드 1957-237화 (237/400)

Round 237. 역대급 작품

준영의 롱 패스를 받은 건 왼쪽 측면으로 열심히 달려가던 알렉스였다.

그는 떨어지는 볼을 향해 머리를 내밀어 앞으로 보낸 후 그대로 치고 달렸다.

허둥지둥 쫓아온 레알 수비수 가르시아가 어깨로 밀었지만, 쉽게 밀리지 않았다.

“헹, 그 정도론 어림도 없어.”

‘이런 망할 애송이 자식!’

이대로는 놓칠 판.

급한 나머지 가르시아는 알렉스의 유니폼을 잡아당기려 했다.

하지만 알렉스가 뿌리치면서 실패.

오히려 가르시아는 발이 꼬여 쓰러졌고, 알렉스는 그대로 레알 문전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크하하! 이 몸이 동점 골을 넣어 주마!”

무인지경의 상황.

황급히 각을 좁히고 나온 도밍게스 골키퍼를 상대로 알렉스는 로빙슛을 시도했다.

부드럽고 우아한 포물선을 그린 슈팅은 크로스바를 맞히고 튕겨 나왔다.

데니스 바이올렛이 달려들었지만, 그 전에 산타마리아가 리바운드 볼을 멀리 차 냈다.

“으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네.”

“진짜 위험했어.”

관중들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낯빛이 굳은 것은 프랑코 총통도 마찬가지.

그는 스코어보드의 시계를 보았다.

정규 시간은 이제 5분도 채 남지 않았다.

점수는 3 대 2.

레알이 앞서고 있지만, 1점 차면 중립 지역에서 재경기를 치러야 한다.

“쩝, 무솔리니처럼 엄포를 놓을 걸 그랬나.”

과거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는 1934년 월드컵에 출전하는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우승에 실패하면 사형.’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FIFA와 심판을 닦달해서 판정에 개입한 것은 덤.

하지만 파시스트 정권은 몰락했고, 영국과 프랑스 등 승전국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손을 쓰는 건 불가능했다.

“디 스테파노든 푸스카스든 아무라도 상관없다. 골을 넣어! 결승만 확정 지으면 최고급 승용차와 저택을 하사해 주지!”

프랑코의 말을 듣기라도 했던 걸까.

반격에 나선 레알 공격수들이 매우 활발하게 움직였다.

물론 맨유 선수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리그에서 상대 팀들이 자신들을 애먹였던 2줄 수비로 레알의 슈팅과 크로스를 막아 냈다.

“제기랄, 슈팅 코스가 하나도 안 보이잖아.”

“이쪽으로 패스해!”

답답했던지 푸스카스가 손을 들고 요청했다.

외곽에서 돌파도, 슈팅도 할 수 없었던 리알은 푸스카스 쪽으로 공을 보냈다.

굴러오는 공을 잡아챈 푸스카스.

그는 황급히 마크하는 준영을 제치고 슈팅을 날렸다.

하지만 그 슈팅은 맥없이 굴러가다 골키퍼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큭, 왼발로 차야 했는데.”

급하게 동양인의 마크를 피하느라 스텝을 맞추지 못해 오른발로 슛을 날렸다.

기대감에 고개를 쭉 내밀었던 관중들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푸스카스마저…….”

“시간도 이런데 계속 이러면 골이 나오지 않겠어.”

“골은커녕 잘못하면 실점을 하겠는걸.”

푸스카스의 슈팅을 막아 낸 후, 맨유의 빠른 역습이 펼쳐졌다.

재빨리 필드를 둘러보던 해리 그렉은 오른쪽 측면을 달려가는 데니스 로에게 길게 공을 던졌다.

그것을 신호로 맨유 공격수들과 하프백들이 일제히 레알 진영을 향해 달려갔다.

“얼른 쫓아가!”

“또 실점을 하면 끝장이다!”

레알 선수들은 허둥지둥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동료들의 움직임을 보며 살짝 속도를 줄였던 데니스 로는 상대 문전을 향해 크로스를 날렸다.

때마침 쇄도해 온 준영은 허공을 가르며 떨어지는 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하지만 골키퍼와 수비수들이 달려들어 부딪치는 바람에 헤딩은 실패.

준영은 페널티 박스 밖으로 굴러 나간 공을 쫓아갔다.

“존, 이쪽으로 패스해!”

중앙에 있던 숀과 데니스 바이올렛이 손을 들었다.

그들을 보고 레알 수비수들이 흠칫하는 사이, 준영은 곧장 몸을 돌리며 리바운드 볼을 찼다.

‘걸렸다!’

준영이 날린 터닝 발리슛.

도밍게스 골키퍼와 레알 수비수들은 호쾌한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공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슛은 파 포스트 상단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It’s Great!”

“맙소사! 저런 기가 막힌 슛이 터지다니!”

골대 뒤쪽에 모여 있던 취재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방금 전 골은 정말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할 정도로 역대급 작품.

더구나 그냥 골도 아니고, 양 팀의 운명을 갈라놓은 결정적인 동점 골이었다.

이 한 방으로 벼랑 끝에서 버티던 레알 마드리드는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거대한 경기장을 가득 채운 12만여 명의 관중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동점 골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존 Y. 리.

맨체스터의 붉은 악마들을 이끌고 있는 동양의 거인.

경기 내내 부상으로 고전하던 그가 또다시 유럽 축구를 뒤흔들어 놓았다.

***

스코어 3 대 3.

정규 시간도 모두 끝난 가운데, 경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안 돼. 제발! 제발, 하느님!’

‘아아, 제발 1골만!’

재경기 없이 깔끔하게 결승으로 진출하기를 바랐던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와 관중들.

그들은 이제 재경기라도 반드시 바라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다들 내려와!”

“이대로 경기를 마무리해야 돼!”

공격수들까지 죄다 페널티 박스 주변에 모인 가운데, 맨유가 그야말로 우주 방어를 전개했다.

이를 상대로 레알 마드리드는 기를 쓰고 두들겨 댔다.

날카로운 침투 패스와 크로스를 연달아 보내고, 좁은 공간으로도 과감하게 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성공하는 것은 없었다.

‘하나만… 하나만 걸려라!’

공을 잡고 바쁘게 빈틈을 살피던 디 스테파노.

그는 골문으로 돌진하는 푸스카스에게 패스를 주는 척하다가 직접 돌파를 시도했다.

“디 스테파노를 놓치지 마!”

“파울하지 마! 파울은 절대 안 돼!”

바비 찰튼을 비롯해 맨유 선수들이 디 스테파노에게 우르르 몰려갔다.

4명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 디 스테파노는 기가 막힌 드리블로 마크를 모조리 뿌리쳤다.

‘맙소사, 팬텀 드리블!’

21세기 월드 클래스 크랙들도 성공하기 힘든 묘기가 디 스테파노의 발끝에서 펼쳐졌다.

빌 포크스의 태클마저 흘려 낸 디 스테파노는 파 포스트 쪽을 보고 슈팅을 날렸다.

하지만 구석으로 떨어지는 슈팅은 비호같이 달려든 던컨의 머리를 맞고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떨어지는 공을 향해 프란시스코 헨토가 달려들었지만, 해리 그렉 골키퍼가 먼저 잡아챘다.

해리가 단단히 공을 잡은 가운데, 맨유 선수들이 모리코니 주심에게 몰려가 따지고 들었다.

“추가 시간을 대체 얼마나 주는 거야!”

“빨리 좀 끝냅시다!”

“이만하면 결판이 난 거잖아!”

애써 항의를 무시한 모리코니 주심은 얼른 경기를 재개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억지로 시간을 더 얹어 준다고 해서 상황은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흑흑, 홈에선 이길 줄 알았더니!”

“다음 시즌엔 실망할 일은 없겠군. 유러피언 컵 출전도 못할 테니까.”

“심판아, 추하다! 빨리 끝내라!”

관중들은 야유를 쏟아 내거나, 아니면 자리를 떠났다.

귀빈석에 있던 프랑코 총통은 아까 동점 골이 터졌을 때 경기장에서 나가 버렸다.

마침내 주심도 마지막으로 휘슬을 길게 불면서 경기를 종료시켰다.

“하, 드디어 끝났다.”

사실상의 결승전.

마지막까지 뛰느라 온 힘을 짜냈던 맨유 선수들은 기쁨을 누릴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다들 필드에 주저앉거나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그것은 동점 골의 주인공인 준영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경기는 두 번 다시 안 했으면 좋겠군.’

주저앉아 있던 그에게 푸스카스가 다가왔다.

“Gratulálunk, Ön nyert. Te vagy a legjobb játékos.”

‘뭐라고 하는 건지…….’

어깨를 도닥이며 악수를 건네는 걸 봐서는 나쁜 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다시 몸을 일으켰던 준영은 푸스카스와 유니폼을 교환했다.

“See you again, Korean.”

푸스카스의 짤막한 영어에 준영은 떨떠름한 미소를 지었다.

바라는 대로 매직 마자르 최강의 공격수와 맞대결을 했지만, 다시 만날 엄두는 나지 않았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러피언 컵 결승 진출!>

<캡틴 리, 투혼의 결승행 동점 골 작렬!>

<전대미문의 트레블이 눈앞으로 성큼!>

4강 2차전이 끝난 후, 영국 언론들은 호외를 뿌리며 승전을 알렸다.

축구 종가의 위상을 드높인 이 쾌거에 많은 명사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과 준영에게 축하 전문을 보냈다.

“이해는 하지만, 설레발을 너무 쳐도 곤란한데…….”

집으로 돌아온 준영은 잔뜩 쌓인 축하 전문들을 보며 떨떠름한 웃음을 지었다.

“준, 머리는 어때요? 괜찮아요?”

리즈는 준영이 뇌진탕 부상을 입었던 것이 신경이 쓰였던지 연방 상태를 묻곤 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승리보다 준영의 건강이었으므로.

“괜찮아. 이상한 증상도 없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돼.”

“그럼 다행이지만… 다음에 또 다치는 건 아닌지 걱정돼요.”

리즈가 보기에 준영은 명예욕이 상당히 강했다.

사실 그 점은 현재 그의 입장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했다.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남다른 위업을 쌓고 싶어 할 테니까.

‘거기다 준은 이 나라, 아니 이 시대에 있어 이방인이니까…….’

차별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런 이가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유명해지는 방법 말고 다른 건 없다.

“이제 준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위치까지 올라왔으니까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해요.”

“알겠습니다, 여왕님. 주의하겠습니다.”

슬쩍 리즈의 허리를 끌어당긴 준영은 그녀와 키스를 나누었다.

그렇게 간만에 오붓한 시간을 즐기려는 차에, 노크 소리가 산통을 깼다.

“무슨 일이죠?”

떫은 표정을 짓는 준영에게 미안한 기색을 보인 체트리는 전문 하나를 건넸다.

“스페인에서 축하 전문이 왔어요.”

“스페인에서요? 그쪽에서 나한테 축하 전문을 보낼 사람이 있던가?”

의아해하던 준영은 체트리가 돌아가자마자 전문을 살펴보았다.

“푸핫! 이게 뭐야! 하하핫!”

“왜 그래요? 누가 보낸 거예요?”

리즈의 물음에 준영은 그녀에게 전문을 보여 주었다.

“FC 바르셀로나에서 온 거야. 그것도 프란세스크 미로 산즈 회장이 보낸 거로군.”

미로 산즈 회장은 레알 마드리드의 결승행을 저지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투혼 어린 선전에 대해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앙숙인 레알 마드리드의 탈락을 어찌나 개꿀로 여겼던지, 준영을 FC 바르셀로나의 명예 선수로 등록하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 시즌 자기네 팀이 유러피언 컵에 출전하니까 그때 만나서 좋은 경기를 하자는군.”

“FC 바르셀로나는 강한가요?”

“그래, 강팀이야. 유럽 축구 역사상 최초로 6관왕에 두 번의 트레블을 기록한 제왕이지.”

그 기록은 먼 미래의 일.

하지만 지금도 FC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리그 초대 우승 팀으로, 올해까지 일곱 번의 리그 우승을 거둔 강호였다.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고 우승을 할 정도라면, 절대 무시할 순 없겠네요. 미리 대비해 놓는 게 좋을지도?”

“당연히 대비를 해야지. 하지만 일단 우리에게 당장 급한 건 6월 3일 결승전이야.”

상대는 프랑스의 강호 스타드 드 랭스.

쥐스트 퐁텐과 피아토니, 장 뱅상, 로베르 종케, 도미니크 콜로나 등 프랑스 국대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시즌 전 친선 경기에서 우리가 2 대 0으로 승리하긴 했지만, 진검 승부는 분명히 다를 테지.”

트레블까지 이제 단 한 경기.

정상을 코앞에 두고 미끄러지는 건 원치 않았던 준영은 만반의 준비를 하리라 마음먹었다.

***

프란세스크 미로 산스는 FC 바르셀로나의 제31대 회장입니다.

원래는 구단 이사였는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레알 마드리드에 하이재킹당하는 대사건이 터지며 전임 회장이 물러났고, 그가 새 회장으로 임명되었죠.

구단 회장이 된 미로 산스는 기존의 구장인 ‘캄 데 레스 코르츠’가 늘어나는 팬들을 수용하기에 너무 비좁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이사회와 여러 차례 논의 끝에 새 구장을 짓기로 결정을 내렸죠.

하지만 10만 석짜리 경기장 건설에 엄청난 비용이 들면서 바르셀로나는 빚더미를 짊어지고 말았지요.

결국 미로 산스는 재정난을 야기한 책임을 지고 1961년에 회장직에서 사임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야심 차게 건설한 새 구장은 1957년 9월에 완공되었습니다.

이 구장이 바로 ‘캄 노우(Camp Nou)’, 혹은 ‘누 캄프’라 불리는 현재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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